사자를 죽인 마사이족, 정말 잘못한 것일까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인간과 야생이 땅을 공정하게 공유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게다가 야생지역에서 사는 원주민은 대부분 가난하고 맹수들의 공격에 취약하다. 이 같은 현실이 무시될 경우 발생하는 게 맹수에 대한 원주민의 복수다.

지난 5일(현지시간) 케냐 마사이 마라 국립보호구역에서 유명한 사자들이 죽었다. 희생된 사자는 영국 BBC의 유명 야생 다큐멘터리 ‘빅 캣 다이어리’에 주인공으로 출연한 사자 무리 ‘마시 프라이드’ 중 일부였다. 한 마리는 다큐멘터리에서 큰 인기를 끈 17살짜리 암사자 비비로 확인됐다.

사인은 독극물 중독이었다. BBC는 “비비는 입에 거품을 물고 옆으로 쓰러진 채 발견됐다”며 “발견 당시 발작증세를 보이면서 숨을 헐떡였다”고 전했다.

빅 캣 다이어리는 1996∼2008년 마사이 마라 국립보호구역에 서식하는 사자 무리 마시 프라이드의 생태를 드라마 식으로 구성해 화제가 된 명작 다큐멘터리다. 이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한 케냐 자연보호 운동가 사바 더글러스 해밀턴은 “사자들의 독살 소식을 듣고 가슴이 찢어지게 아팠다”고 말했다. 동물학자 겸 빅 캣 다이어리의 첫 해설자 조너선 스콧은 “한 시대의 종언”이라며 한탄했다.

지난 5일 BBC와 인터뷰하면서 자신들의 입장을 밝히고 있는 마사이족 대표. / BBC 화면 캡처

지난 5일 BBC와 인터뷰하면서 자신들의 입장을 밝히고 있는 마사이족 대표. / BBC 화면 캡처

마사이족, 가축 보호하기 위해 사자 사냥
사자들을 독살한 유력한 용의자는 마사이 마라 구역까지 가축을 몰고 들어와 목축한 마사이족이다. 밤에 이곳에 풀을 먹으러 온 가축이 종종 사자에게 잡아먹히곤 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마사이족은 독극물을 바른 고기를 미끼로 사자를 죽였다는 것이다. 케냐 야생동물보호당국에 따르면 체포된 이들이 유죄로 밝혀지면 최고 19만6000 달러 벌금 또는 종신형이 선고된다. 케냐 동물보호단체 ‘와일드라이프 디렉트’의 폴라 카훔부 대표는 “(그들이) 감옥에서 썩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마사이족은 42개 케냐 민족 중 하나다. 유목민으로 호전적이지만 사냥을 하지 않고 소, 염소를 키우며 산다. 이들에게 가축은 생명이다. 가죽, 고기, 우유 등을 제공하는 게 가축이기 때문이다. 마사이족은 사자가 송아지와 아이를 공격한다면 먼저 송아지를 보호한다는 말이 있다. 소떼를 몰고 가다가 물을 발견해도 먼저 소떼들이 먹게 한 뒤 나중에 자신들이 마신다.

그런 마사이족도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할 말이 있다. 마사이족 대표들은 BBC를 통해 “우리가 기르는 가축에게 풀을 먹일 수 있는 땅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며 “풀을 먹이려면 사자가 사는 지역으로 가축을 몰고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이번 사건이 발생한 마사이 마라 국립공원은 케냐 남서부의 빅토리아호와 그레이트리프트밸리 사이에 위치했다. 탄자니아 세렝게티 국립공원과 붙어 있고, 울타리 등이 없어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다. 수많은 얼룩말 등은 세렝게티와 마사이 마라를 이동하며 산다. 우기에는 탄자니아 세렝게티에 있다가 건기에 풀을 찾아 마사이 마라로 옮긴다. 물론 사자, 치타, 하이에나도 같이 이동한다.

BBC 기자가 지난 5일 마사이 마라 국립보호구역에서 사자들이 독극물을 먹고 죽어가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 BBC 화면 캡처

BBC 기자가 지난 5일 마사이 마라 국립보호구역에서 사자들이 독극물을 먹고 죽어가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 BBC 화면 캡처

마사이족은 서구 침략자들이 총을 들고 들어와 그어놓은 국경을 지금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케냐와 탄자니아 사이 국경은 있지만 마사이족에게는 모두 자신들의 땅일 뿐이다. 서양 식민세력들이 아프리카인들을 마구잡이로 ‘사냥’한 시절에도 노예화하지 못한 것이 마사이족이다. 마사이족은 노예상인들에게 붙잡기만 하면 ‘죽거나 죽이거나’ 했다. 그런 그들에게 마사이 마라 국립공원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하는 것은 어쩌면 큰 의미가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적도에 위치한 이곳은 지구온난화로 인해 사막화, 이상기후 등이 심각해지고 있다. 가뭄이 길어지고 목축지도 준다. 코끼리 보호가 강화되면서 초지는 더욱 감소했다. 게다가 케냐 인구는 최근 50년 동안 세 배가 늘었다. 도시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는 등 생활방식도 달라졌다. 일부 마사이족은 농부가 됐지만 다수는 여전히 유목생활을 하고 있다. 가축을 살리기 위해서 국립공원으로 넘어갔다고 마사이족을 무조건 나무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과거 케냐 정부는 집도 주고, 우물도 파줄 테니 과거 생활방식을 버리라고 마사이족에게 요구했다. 그러나 마사이족은 요지부동이었다. 마사이족은 영국의 지배를 받을 때도 자기 문화를 지켰고, 지금도 그렇게 살길 원했다. 결국 케나 정부는 마사이족을 관광상품으로 만들었고, 최근까지도 매년 100만명 안팎의 관광객이 마사이족을 보러 왔다. 케냐 정부가 마사이족에게 과거처럼 살기를 허용하는 대신 돈을 벌었고, 그 일부를 마사이족에게 줬다. 마라 자연보호단체(MC) 등 비영리 야생동물보호단체도 피해를 보상해줬다.

지난 5일 독극물을 먹고 괴로워하고 있는 사자. / BBC 화면 캡처

지난 5일 독극물을 먹고 괴로워하고 있는 사자. / BBC 화면 캡처

사람과 야생의 갈등… 매년 100마리 사살
그러나 사파리 관광도 침체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국가 수입도 줄었고 야생동물 보호단체의 경영도 힘들어졌다. 맹수가 늘어 가축 피해는 증가했지만 보상은 더뎠다. 밀렵 등으로 사자 개체수도 더욱 줄었다. 결국 케냐 정부는 사자 사냥을 불법으로 간주하고 감시에 나섰다.

케냐 정부로부터 더 이상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 마사이족도 가만 있을 수 없었다. 가축을 보호하기 위해 사자 사냥에 다시 나설 수밖에 없었다. 독극물 사용도 점차 증가했고 다른 동물들도 피해를 봤다. 지난 8월 미국 <뉴욕타임스>는 동물 사체에 독을 바른 탓에 이를 먹는 ‘자연의 청소부’ 대머리수리 개체수가 급감해 멸종위기에 몰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마사이 마라 국립공원에서 목축을 하는 모세스 쿠이오니는 “땅이 나눠졌고 마을들이 도시화되면서 마사이족이 살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들고 있다”며 “사람과 야생의 갈등이 큰 위협이 됐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이 같은 갈등으로 죽은 사자는 매년 최소 100마리 정도로 추산된다. 한 외신은 “사자는 기본적으로 인간과 함께 살 수 없다”며 “케냐 정부가 마사이족이 국립공원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지 않으면 사자 수는 계속 줄어들 것”이라고 전했다.

사자를 보호하려니 마사이족이 피해를 보고 마사이족을 봐주려니 사자가 죽는 게 현 상황이다. 게다가 기후변화, 도시화 등으로 야생동물이 살 수 있는 서식지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야생동물이 죽어가는 데 대해 국제적인 비난은 거세지고 있지만, 인간과 야생이 땅을 공정하게 공유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게다가 야생지역에서 사는 원주민은 대부분 가난하고 맹수들의 공격에 취약하다. 이 같은 현실이 무시될 경우 발생하는 게 맹수에 대한 원주민의 복수다.

해결책은 무엇일까. 불변의 대원칙은 모두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공간이 재분배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착민, 농부, 가축, 야생동물이 사는 지역을 완전히 분리하는 정책이 검토돼야 할 때가 됐다. 그동안 비판받아온 국립공원 수입 분배 문제도 바로잡혀야 한다.

‘더컨서베이션닷컴’은 “이번에 사자들이 무자비하게, 불법적으로 죽임을 당한 사건은 마사이 마라의 생태계 보존방식이 야생동물을 위해서도, 사람을 위해서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유명한 사자가 죽어서 관심이 조금 더 높아졌을 뿐 이전에도 사자들이 계속 죽었다”며 “장기적인 플랜을 세우지 못한다면 인간과 야생 간 갈등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 국제부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