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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행정처가 판사 교육기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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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지방의원직 상실 부당” 판결 후 언론 대응방향 등 지시 문건 논란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는 초엘리트 판사 37명이 따로 모여 있다. 2015년 전국의 판사가 2800여명이니 1.5%에도 못 미치는 정예다. 이곳의 이름이 법원행정처인데, 상고심을 하는 대법원과는 다른 조직이다. 대법원 청사를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H자로, 가운데 몸통에 두 바퀴가 붙은 모양이다. 가운데 몸통이 대법원, 서래마을 방향의 바퀴가 법원도서관, 서초대로 방향의 바퀴가 법원행정처다.

이 조직은 힘이 세다. 넘버 원인 처장은 대법관 가운데 한 사람이 맡는데, 대법원장 후보 1순위다. 넘버 투인 차장은 고등법원 부장판사인데, 대법관 1순위다. 행정처 판사가 되는 것은 사법부, 법조계, 나아가 대한민국의 핵심임을 입증한다. 행정처 근무는 실력에 경험을 더해 능력을 비약적으로 증폭시킨다. 이들은 이후 김앤장 법률사무소 송무팀의 주력이 되고, 다시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발탁된다.

이런 법원행정처에서 최근 사고가 났다. 지난 11월 25일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통진당 지방의원 행정소송 결과 보고’라는 문서가 당일 전주지방법원 출입기자들에게 배포됐다. 전주지법 공보판사가 이날 선고된 어느 판결을 설명하려다 실수를 저질렀다. 전주지법 공보판사는 판결을 어떻게 설명할지 몰라 법원행정처 홍보심의관실에 문의했고, 홍보심의관실에서는 다시 사법정책실에 의견을 구했다. 이후 반대방향으로 문건이 내려오다가 기자들 손에까지 들어갔다.

박병대 법원행정처장이 지난해 3월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수석부장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박 처장은 “법원이 하는 수천, 수만 건의 판결 중 0.1%, 0.01%의 판결, 아니 단 한 건의 판결이라도 정의와 형평의 관념에 반한다는 비판을 받는다면 사법작용 전반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결정적 타격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강윤중 기자

박병대 법원행정처장이 지난해 3월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수석부장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박 처장은 “법원이 하는 수천, 수만 건의 판결 중 0.1%, 0.01%의 판결, 아니 단 한 건의 판결이라도 정의와 형평의 관념에 반한다는 비판을 받는다면 사법작용 전반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결정적 타격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강윤중 기자

기자들에게 문건 잘못 배포돼 알려져
이 문건이 만들어진 과정을 추적해 보면 이렇다. 지난해 12월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을 해산하고 통합진보당 국회의원들의 의원직도 없앴다. 지역대표 3명과 비례대표 2명 모두였다. 이후 선거관리위원회가 지방의회 의원 가운데 비례대표의 의원직을 박탈했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3명, 기초의원 비례대표 3명이다. 정당이 해산하면 비례대표는 직을 잃는다는 공직선거법 192조 4항에 따른 것이었다. 그래서 통합진보당 소속 기초의원 지역구 31명은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다.

의원직을 잃은 통합진보당 전 국회의원 5명과 전 비례대표 지역의원들이 행정소송을 냈다. 국회의원들은 “헌재가 의원직 상실 여부까지 판단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했고, 비례대표 지역의원들은 “선거법에서 말하는 해산은 자발적 해산이지 비자발적 해산은 아니므로 우리는 해당이 안 된다”고 했다. 그리고 지난 11월 12일 국회의원 사건을 맡은 서울행정법원이 “헌재가 이미 선고했으므로 법원이 재판할 거리가 아니다”라며 각하했다.

이 무렵 법원 일부에서는 서울행정법원 판결이 잘못됐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걸 그렇게 재판하면 어떡합니까. 법률상태의 변경을 선언하는 것을 형성판결이라고 하는데, 당연히 법원의 권한이에요. 통합진보당 사람들의 의원직을 유지하는지 잃는지는 헌재가 판단할 게 아니에요. 당연히 법원이 판단할 몫이라고 판단해주고, 그 다음에 의원직을 날리든 말든 했어야죠.”

이로부터 열흘이 조금 지난 11월 25일 전주지법은 판결을 내놨다. “(국회의원을 포함한 모든) 비례대표의 정당 해산에 따른 의원직의 상실 여부는 법원이 판단한다. 통합진보당 해산은 선거법이 예정한 경우가 아니므로 (우리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지역의원) 비례대표는 의원직이 유지된다”고 선고했다. 판결이 선고되자 전주지법 공보판사가 법원행정처에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런 요청과 지원이 일상적으로 있는 일인지, 사안이 민감해서인지는 알 수 없다.

4쪽짜리 이 문건은 세 부분으로 돼 있다. 개요, 판결 선고 결과, 향후 대응. 핵심인 향후 대응은 ‘대(對)언론 대응’과 ‘법관 대상 헌법교육 시 활용’으로 나뉘어 있다. 하지만 대다수 언론은 문건을 보도하지 않았다. 일부 보도한 곳도 “대법원과 헌재가 밥그릇 다툼을 한다”거나 “헌재가 상실시킨 통합진보당의 의원직을 살려냈다”는 피상적이고 진영논리에 바탕한 비판이었다.

그렇지만 일선 법원에서는 행정처에 대한 비판이 터져나왔다. “서울 판결과 전주 판결이 정반대다. 앞으로 고등법원 거쳐서 대법원으로 올라갈 사안이다. 그런데 왜 한 쪽을 지지하는 지침이 나오는지, 그리고 그걸로 판사를 교육한다니. 판사는 2800명 각자가 법률과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하는 헌법기관이다. 왜 행정처에서 판사들을 가르치겠다는 건가.” 어느 고등법원 부장판사의 지적이다.

이렇게 하면 검찰과 다른 게 뭐냐는 고등법원 부장판사도 있었다. “헌법재판소와의 관계가 있다고 해도 행정처가 나서서 이러는 것은 곤란하다. 법원이라는 데가 이런 의견, 저런 의견이 있는 곳이다. 법원행정처가 특정 사안에 대해 이렇게 하면, 마치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됐다고 검찰 수뇌부가 난리치는 것과 뭐가 다르냐. 사법부는 단일한 조직이 아니다. 내부의 재판의 독립이 매우 중요하다. 교육이라니. 당장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부터 교육 대상이 되나.”

11월 25일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통진당 지방의원 행정소송 결과 보고’라는 제목의 문서. 이 문건은 세 부분으로 돼 있다. 개요, 판결선고 결과, 향후 대응. 핵심인 향후 대응은 ‘대(對)언론 대응’과 ‘법관 대상 헌법교육 시 활용’으로 나뉘어 있다.

11월 25일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통진당 지방의원 행정소송 결과 보고’라는 제목의 문서. 이 문건은 세 부분으로 돼 있다. 개요, 판결선고 결과, 향후 대응. 핵심인 향후 대응은 ‘대(對)언론 대응’과 ‘법관 대상 헌법교육 시 활용’으로 나뉘어 있다.

“법관의 독립은 어떻게 되느냐”
문건이 왜 나왔는지부터 알아야 한다고 지방법원 부장판사는 말했다. “처음에는 그냥 통합진보당 비례대표를 살려내는 결정이니까, 보수신문에서 공격할 것에 대한 지침 정도인 줄 알았다. 그런데 판사들을 교육한다니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심의관이 돌발적으로 만들어낸 것은 아니라고 본다. 지침이 있으니까 생산되는 거 아니겠나. 그렇다면 결국 처장에게 보고를 했거나 보고할 문건 아니겠나.”

법원행정처 내부를 잘 아는 심의관 출신 판사에게 물어봤다. “법원행정처가 선거 등 주요 사건의 경과를 파악하도록 대법원 예규에 있다. 국정감사에서도 답해야 하고, 그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문제는 전국 법원에 판결에 대해서는 대법원의 판결로 통일하게 돼 있다. 행정처가 교육으로 하는 게 아니다. 행정처에서 ‘이게 맞느니 저게 맞느니’ 하면, 법관의 독립은 어떻게 되느냐. 이런 시스템은 우리 법이 예정한 것이 아니다. 요즘 행정처가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행정처 측은 일종의 해프닝이라고 해명했다. “서울행정법원과 전주지법에서 다른 판단이 나온 것에 대한 비판을 방어할 논리를 구상해본 것이었다. 완결된 문서가 아니었다. 초안에 불과한 미완성 문건이 작성자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외부에 공개된 것이다. 위에도 보고되지 않은 문건이다. 급하게 작성한 구상 수준의 문건을 두고 행정처의 일상적인 일로 확대하는 것은 곤란하다. 문건에 나오는 법관 교육도 토론을 말하는 것이었다.”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도 언론과 법원 내부가 조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법조를 담당하는 한 신문사 기자의 말이다. “2009년 터진 신영철 사건을 기억해 보자. 야간 옥외집회 금지조항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심사 중이었지만, 법원장이 일단은 재판을 빨리하라는 메일을 보낸 일이었다. 사실 신 대법관이 말한대로 나중에 위헌이 나면 모두 재심으로 무죄를 받을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런데도 재판을 재촉하는 게 부당하다며 대법관에서 사퇴하라는 말이 나왔었다.”

그렇게 보면 지금 상황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 건은 법관을 교육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언론이 조용하다. 이제 돌이켜 보면 당시 이른바 진보언론이 주목한 것은 법관의 독립이 아니라, 미국 쇠고기 문제에 관한 진영논리였다. 지금은 주체가 별로 도와주고 싶지 않은 통합진보당이니 조용히 있는 것 같다. 보수언론에서 문제 삼는 것도 법관의 독립이 아니지 않나.”

판사들은 갈수록 말을 잘 듣는 분위기다. “대법원에서 법률해석을 정리한 실무 제요, 대외비 편람을 만들어서 판사들한테 뿌린다. 책장에 한 가득이다. 그걸 펴놓고 재판을 한다. 물론 판사가 사실관계만 확정하면 법률해석은 기존의 판례를 참고한다. 이 부분은 어쩔 수 없다. 그런데 행정재판은 다르다. 행정기관이 내린 처분이 제각각이라 직접 법률판단을 해야 한다. 그런데 행정처가 교육을 하겠다는 것이다. 요새 젊은 판사들은 이런 점에 문제의식이 없다. 순치되고 있다.” 어느 지방법원 부장판사의 얘기다.

행정처 앞세운 대법원장의 과도한 권한
행정처를 앞세운 대법원장의 과도한 권한이 문제의 근원이라고 많은 판사들은 말했다. “판사들이 지금처럼 숨죽이고 아무 말 못하는 이유가 뭐겠냐. 우리나라는 대법원장이 전국의 판사들을 절반씩 나눠 매년 인사를 한다. 당사자들은 2년에 한 번씩 인사를 당한다. 이런 나라가 없다. 한 나라 판사의 인사권을 한 사람이 쥐고 흔드는 나라가 어딨냐.”

사법후진국으로 불리는 일본을 제외하면 외국에서는 법관을 인사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한동안 지역 법관의 비율을 높였으나, 지난해 이른바 황제노역 사건을 계기로 10년 만에 폐지했다. “황제노역이 문제라면 그런 경우가 서울에 10배는 더 많았다. 언론에서 엉뚱하게 지역 법관을 문제 삼았고, 대법원이 발 빠르게 지역 법관을 없애지 않았느냐.” 법원행정처 내부에 정통한 어느 판사의 설명이다. 법원행정처는 최근 상고법원이 통과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지자, 고법판사 재배치를 비롯한 새로운 인사방안을 내놨다.

법조계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판사들의 발언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이 때문에 대법원이 견제되거나 정화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올해 추진된 상고법원안에 대해 일선 판사들은 반대인 경우가 많았지만 공개적으로 의사를 표명한 경우는 한두 사람뿐이다. 막강한 대법원장의 권한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전국 단위의 평판사 모임이 없다. 그래서 판사들은 대법원장에게나 법원행정처에 의사를 전달하지 못한다.

취재에 응한 다수의 판사들은 인사권을 장악한 대법원장이 행정처를 앞세워 사법부를 이끌어가는 이런 시스템을 끝내야 한다고 했다. “우리 사법부는 군사정부 시절을 거치면서 독립을 심각하게 침해받았다. 1987년 개헌 이후 사법부가 정치권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법원장에게 권한을 일임하는 제도를 세웠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벌써 30년이 되면서 오히려 부작용을 낳고 있다. 사법부의 독립은 대법원장의 독립이 아니라 법관들의 독립이 되어야 한다. 법관들이 말을 잘 듣는 착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외국의 법원행정처는 어떨까

우리나라 법원행정처의 모델은 일본 최고재판소 사무총국이다. 우리나라와 거의 비슷하다. 일본에서도 사무총국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와가쓰마 사카에 전 도쿄대 교수 등은 “젊어서 사무총국에 들어가는 초엘리트들만이 일선 재판소와 이곳을 오가면서, 최고재판소 국장(법원행정처 실국장)·지방재판소 소장(지법원장)·고등재판소 장관(고법원장)을 차지하고, 종국에는 최고재판소 판사(대법관)가 된다”고 지적했다. 논픽션 작가인 야마모토 유지 역시 “사무총국에서 가꾸어진 인맥은 현장으로 돌아가도 강력하게 작동하며, 사무총국은 제왕학을 철저히 가르치고 있다”고 자신의 저서에서 강하게 비판했다.

반면 사법 선진국 독일에서는 법원행정에 원심력이 작용한다. 기본적으로 중앙과 지방으로 분산돼 있고, 여기에 각급 의회를 비롯한 사회세력들이 참여한다. 게다가 법원 조직도 행정법원·재정법원·노동법원·사회법원 등으로 나뉘어 있어 구심력이 더 적다. 또 독일 기본법 97조 2항은 법관의 독립을 위해 전보인사를 금지시키고 있다. 특정 법원 법관으로 임명되면 퇴직 때까지 한 법원에서만 근무할 수 있다. 내부의 압력이나 간섭에서 법관의 독립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유럽의 다른 나라 사법부도 독일과 비슷하다. 프랑스는 법관 평가를 직급별 판사 대표로 구성된 승진심사위원회에서 하는데, 임기가 정해져 있으며 연임도 금지된다. 이밖에도 대통령과 사법관들로 구성된 최고사법관회의를 둬 행정부의 간섭과 법원의 독주를 동시에 막아내고 있다. 스페인에도 행정처와 비슷한 조직이 있지만 최고법원과 분리돼 있고 판사 아닌 행정관료가 일을 한다.

미국은 법관이 선출직이라 독자적 사법행정에도 문제제기가 없다. 그럼에도 법원행정에 변호사·의회·시민으로 구성된 사법협의회가 주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1940년대 이후로 대부분 주대법원에서 법관이 아닌 관료(court administrator)가 대법원장을 보좌하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법관의 독립을 강조해 판사 각자가 자기 법정을 책임지고 재판을 주도해 왔다.


<이범준 기자 seirot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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