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와 객석이 함께 부른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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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인권콘서트, 투쟁 현장의 릴레이 격려 영상메시지 인상적

“5시30분에 ‘인권콘서트 희망만찬’이라고 사전 행사가 장충동체육관 인근 음식점에서 열리거든요. 그때 오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일정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윤용배 2015 인권콘서트 공동집행위원장이 답했다. ‘희망만찬’ 자리에서 이날 무대에 설 사람과 객석에 앉을 사람들이 섞여 식사를 했다. 이야기꽃이 핀다. 벽에 붙은 희망만찬 깃발이 자꾸 떨어진다. 식사도 안 하고 말없이 자리를 지키던 최헌국 촛불교회 목사가 티커를 가지고 와 붙였다.

날은 금방 어둑해졌다. 장충체육관 입구에는 불 밝힌 부스가 즐비했다. 밀양과 청도의 송전탑, 세월호 4·16가족협의회, 이석기 내란음모사건 구명위원회….

행사 시작시간이 다가오자 주최자도 아닌데 조바심이 났다. 과연 꽉 채울 수 있을까. 1990년대 열린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 행사 땐 장충체육관 2층 꼭대기까지 가득 찼다. 언젠가의 공연에서 대마초에 대해 농담하던 가수 전인권씨의 말이 떠올랐다. 그때와 다르다. 출연진도 관중석의 사람들도.

12월 1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2015 인권콘서트’ 참석자들이 인권현안들을 담은 깃발을 들고 ‘광야에서’를 합창하고 있다. / 정용인 기자

12월 1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2015 인권콘서트’ 참석자들이 인권현안들을 담은 깃발을 들고 ‘광야에서’를 합창하고 있다. / 정용인 기자

다행히 드문드문 2층 객석까지 관중이 들어왔다. ‘백남기 농민 살려내라’는 피켓을 든 사람들이 2층 정중앙 무대를 차지했다. “안개가 가득 찼네요. 분위기 좋은데요, 저희 나올 때는 안 뿌려주셔도 됩니다.” 사회는 윤희숙 한국청년연대 대표와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이 맡았다. <주간경향> 1153호 인터뷰 당시 과거 재야단체 문화행사 단골 사회자 ‘민주대머리’ 박철민씨와 최광기씨는 안 나오냐고 물었더니 김덕진 국장은 “언제 적 이야기를 하시느냐”며 웃었다. 관중들은 윤희숙·김덕진 콤비의 사회에도 이미 익숙한 듯했다. 기자 뒤에 앉은 낯 모를 중년여성들이 “덕진씨 살 많이 빠졌네”라고 자기들끼리 농조로 말했다.

오프닝 무대인 청년들의 춤에 대해 사회자들은 “모든 분들이 아는 노래에 맞춘 것”이라고 했다. 무한궤도의 ‘그대에게’였다. 흰색 와이셔츠와 검은색 청바지. 손에는 보랏빛 손수건. 안무는 전형적으로 대학교 응원단 안무. ‘응답하라 1988’의 영향일까. 아니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뜬 가수 신해철씨에 대한 오마주일까.

최신 민중가요 따라부르는 20대들
9인조 스카밴드 ‘킹스턴 루디스카’의 공연은 처음 접하는 무대였다. 사회자에 따르면 “쌍용, 용산, 강정마을에도 어디든 초대를 하면 달려간 참여파 그룹”이라고 했다. 흥에 겨운 관중들은 앞으로 쏟아져나와 기차놀이를 했다. “감기가 걸렸는데 지독하고 오래간다”고 말한 가수 이은미씨는 관중석을 누비며 ‘서른 즈음에’를 관객과 함께 열창했다.

옆좌석에 앉은 20대 친구들은 킹스턴 루디스카의 공연 때 앞으로 뛰어나가 기차놀이를 하더니 사이사이 흘러나오는 비교적 ‘최신’ 민중가요들을 열심히 따라 불렀다. 그런데 손병휘, 이정열, 이지상씨 등이 다시 뭉쳐 공연한 ‘노래마을’의 대표곡들은 생소한 듯 눈만 말똥말똥 뜨고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서로에게 고통뿐일지라도/벗이여 어서 오게나/고통만이 아름다운 밤에….” 앞으로 좀 더 좋은 세상이 온다면, 이런 행사자리 말고 ‘가요무대’와 같은 공중파 방송에서도 노래마을을 만날 수 있을까.

콘서트의 절정은 광화문 지하도 장애인철폐투쟁 농성장, 인권위 전광판 위 농성 노동자, 강정, 생탁, 성소수자 등 한국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싸우는 ‘약자’가 다른 약자를 호출하면서 ‘힘내세요’라고 격려하는 영상메시지였다. “저항하는 자, 인간이다”, “양심수에게 자유를”은 이날 행사장에서 반복해 울려퍼진 구호다. 행사는 예정시간보다 40분 넘게 늦어졌지만 사람들은 쉽게 흩어지질 않았다. 날씨는 더 추워졌지만 삼삼오오 모여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주변엔 그들이 내뿜은 입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묘하게 따뜻한 광경이었다. 다시 내년을 기약하며.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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