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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에 굴복하지 않고 파리를 위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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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계에서 프랑스 테러 희생자를 추모하는 ‘Pray for Paris(파리를 위해 기도하자)’는 메시지가 쇄도했다. 또한 영국 런던 웸블리스타디움에서 예정됐던 잉글랜드 축구대표팀과 프랑스의 친선경기도 예정대로 진행됐다.

쾅! 지난 11월 13일 프랑스 축구대표팀과 독일 대표팀의 친선경기로 8만명이 운집한 축구장 스타드 드 프랑스. 전반 16분, 갑자기 폭발음이 들렸다. 양팀 선수들은 주춤했지만 경기는 계속됐다. 이슬람국가(IS) 소속 테러리스트가 경기장 진입을 시도하다 보안검색대에서 폭탄 조끼가 발각되자 자폭했다. 경기장 밖에서도 세 차례 폭발이 일어나 한 명이 숨졌다. 이날 프랑스 공연장 등 6곳에서 동시다발 테러가 발생해 129명이 숨지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는데, 테러리스트들의 표적지에 축구장도 포함됐다. 테러가 축구계마저 뒤흔든 것이다.

프랑스축구협회는 관중들을 밖으로 대피시킬 경우 또 다른 위험에 노출될 것을 우려해 경기를 끝까지 진행했다. 경기 당일 낮 호텔에서 테러 협박을 받았던 독일 축구대표팀 선수들은 경기 후에도 새벽까지 축구장에 남아 있었다. 프랑스 선수들이 축구장에 함께 남아주는 동지애를 보였다.

이날 프랑스 축구대표팀 공격수 앙투안 그리즈만(24·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은 축구장에, 그의 여동생은 바탕클랑 극장에 있었다. 바탕클랑 극장은 테러리스트들의 무차별 총기 난사로 89명이 숨진 곳이다. 다행히 그리즈만의 여동생은 무사히 탈출했다. 하지만 프랑스 축구대표팀 미드필더 라사나 디아라(30·올랭피크 마르세유)는 이번 테러로 사촌을 잃었다.

프랑스와 잉글랜드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11월 17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친선경기를 마친 후 인사를 나누고 있다. / AP연합뉴스

프랑스와 잉글랜드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11월 17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친선경기를 마친 후 인사를 나누고 있다. / AP연합뉴스

유니세프 친선경기 검은색 완장 등장
스포츠계에서 프랑스 테러 희생자를 추모하는 ‘Pray for Paris(파리를 위해 기도하자)’라는 메시지가 쇄도했다. 프랑스 축구영웅 티에리 앙리(38)는 SNS에 ‘내 마음은 모든 피해자와 지금 이 순간 괴로워하고 있을 무고한 이들과 함께 있을 것’이라고 적었다. 프랑스 프로축구에서 활약했던 디디에 드록바(37·코트디부아르)도 SNS에 ‘내 마음은 항상 파리에 있다’고 썼다. 14일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유니세프 친선경기에 출전한 박지성(34)과 데이비드 베컴(40·잉글랜드) 등은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검정색 완장을 차고 나섰다.

토마스 바흐(62·독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우리는 모두 프랑스 사람(We are all French)”이라며 스위스 로잔에 위치한 IOC 본부에 조기를 게양했다. 미국 프로풋볼(NFL) 선수들은 16일 미국 국기와 프랑스 국기를 나란히 들고 경기장을 한 바퀴 돌았다. 한국 축구대표팀도 17일 라오스와의 월드컵 예선에서 검정색 완장을 찼고, 울리 슈틸리케 감독(61)은 검정색 옷을 입고 검정색 리본을 달았다.

테러 여파로 인해 프랑스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일부 스포츠 이벤트들이 취소되거나 연기됐다. 13일부터 프랑스 보르도에서 열렸던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 시니어 그랑프리 4차대회는 취소됐다.

18일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예정됐던 잉글랜드 축구대표팀과 프랑스의 친선경기 역시 개최가 불투명했다. 하지만 프랑스 선수들은 런던으로 향했다. 사촌을 잃은 디아라와 여동생을 잃을 뻔한 그리즈만도 동행했다. 디디에 데샹 프랑스 감독(47)은 “프랑스인인 것을 자랑스러워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왔다”고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디아라는 “테러에 맞서자. 피부색·종교 등과 상관 없이 사랑·존경·평화를 위해 단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랑스와 영국은 역사적 라이벌이다. 백년전쟁 등을 치른 앙숙이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가 돼 파리를 위해 뛰었다. 잉글랜드는 경기 전날부터 ‘영국 축구의 성지’ 웸블리 스타디움에 프랑스 국기색인 청·백·적색 조명을 밝혀 프랑스를 향한 지지의 뜻을 밝혔다. 그레그 다이크 잉글랜드 축구협회장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테러에 굴복할 수 없다. 축구를 통해 프랑스 국민과 연대 의지를 표현하겠다”고 말했다. 잉글랜드 팀 주장이자 공격수인 웨인 루니(30) 역시 “테러리스트들은 세계가 결코 그들에게 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충격이 가시지 않은 독일도 동참했다. 독일은 18일 독일 하노버에서 예정된 네덜란드와의 친선경기를 강행하기로 결심했다. 요하임 뢰브 독일 감독(55)은 “이번 경기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상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축구대표팀과 네덜란드의 친선경기는 폭탄 테러 위협으로 킥오프 1시간 반 전에 취소됐다.

프랑스 개최 유로2016 강행 의지
하지만 같은 날 프랑스 축구대표팀과 잉글랜드의 친선경기는 예정대로 진행됐다. 웸블리 스타디움 관중석에서는 프랑스의 자유·평등·박애를 상징하는 삼색 카드섹션이 펼쳐졌다.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49), 윌리엄 왕세손(33)도 경기장을 지켰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아스널 사령탑 아르헨 벵거 감독(66)도 관중석에 자리했다.

관중석 곳곳에서는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적힌 프랑스 국기가 펄럭였다. 그레그 다이크 잉글랜드 축구협회장은 킥오프 전 “스포츠는 절망이 있는 곳에서 희망을 주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

잉글랜드 측은 전광판에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 가사를 띄웠다. “조국의 아들들아 일어나라… 그들이 여기까지 와서 자식과 아내의 목을 치려 한다… 무기를 들고 진군하라.” 양국 선수들은 어깨동무를 하고 프랑스 국가를 함께 불렀다. 잉글랜드 관중들과 선수들은 프랑스어로 된 국가를 부르는 게 쉽지 않았지만 함께 따라부르기 위해 노력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아스널 소속 프랑스 축구대표팀 수비수 로랑 코시엘니(30)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소속 프랑스 골키퍼 휴고 요리스(28) 역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번 테러로 사촌을 잃은 디아라가 후반 12분 교체투입됐고, 여동생을 잃을 뻔한 그리즈만은 후반 22분 교체로 나왔다. 두 선수를 향해 관중들의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잉글랜드가 2-0으로 승리했지만, 이날만큼은 승자도 패자도 없었다.

이날 웸블리 스타디움을 찾은 프랑스 팬들은 ‘전 세계에 감사한다’는 메시지를 적힌 국기를 흔들었다. 프랑스 골키퍼 요리스는 “영국 팬들에게 감사한다. 우리가 경기를 잘하지 못했지만 더 중요한 건 연대”라고 말했다.

이날 1골·1도움을 올린 잉글랜드 공격수 루니는 “모두에게 힘든 밤이었을 것이다. 특히 프랑스 선수들과 코치진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루니는 “양팀 선수들뿐만 아니라 팬들도 훌륭했다. 그들의 모습이 전 세계로 퍼졌다”며 “축구는 글로벌 스포츠다. 단지 경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가 함께 일어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축구를 통해 힘든 시간을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스포츠계는 테러에 맞서기 위해 돌아가는 시계를 멈추지 않았다. 유럽축구연맹(UEFA)은 내년 6월 프랑스에서 열리는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16)를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자케 램버르트 유로 2016 조직위원장은 “대회 개최 취소를 고려하는 건 테러리스트들에게 놀아나는 것”이라고 밝혔다. UEFA는 12월 13일 파리에서 조 추첨식을 갖는다.

프랑스 프로축구도 재개된다. 프랑스 파리 연고 프로축구팀 파리 생제르맹은 11월 22일 로리앙과의 원정경기에서 테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특별한 유니폼을 입는다. 파리 생제르맹 엠블럼 밑에 ‘Je suis Paris(나는 파리다)’라고 적힌 유니폼이다.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는 팔레스타인 테러단체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 선수단을 노리고 선수촌을 급습해 11명이 숨진 일이 있었다.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는 올림픽을 중단하지 않았다. 43년이 흘렀어도 스포츠는 테러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박린 일간스포츠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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