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복지서 찾아가는 복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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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동주민센터 중심 ‘복지 사각지대’ 상시 발굴·지원체계 시행

<아무도 모른다>. 1988년 일본에서 일어난 스가모 어린이 방치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다. 영화에는 출생신고도 하지 않은 4명의 아이들이 나온다. 엄마는 아이들만 남겨두고 동거남을 따라간다. 14세 장남은 엄마가 남기고 간 돈으로 동생들과 생활을 꾸려가지만, 역부족이다. 곧 엄마가 남긴 돈도 바닥나고 집의 수도와 전기는 끊긴다. 아이들은 공원에서 씻고 빨래를 한다. 점점 생활이 불가능해지는 가운데 막내마저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난다. 그러나 이러한 아이들의 처참한 생활은 영화 제목처럼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모른다’는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기초수급자들 끊임없이 모니터링
영화 <아무도 모른다>처럼 아무도 모르는 복지 사각지대에서 발생한 사건은 지금도 끊이지 않는다. 부도가 난 후 6년 동안 아빠와 공원 화장실에서 노숙을 하며 살던 화장실 삼남매 사건, 갑상선기능항진증과 췌장염을 앓다가 생활고에 시달리며 고독사한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 사망사건, 지하 셋방에 살며 수입 없이 병을 앓다 함께 번개탄을 피워놓고 자살한 송파 세모녀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아무도 모르는 비참함과 아무도 모르는 죽음은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닌 것이다.

복지라는 지원과 개입은 기본적으로 앎이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아무도 모르지 않고, 누구든 알고 있어야 하고, 언제든 발견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상시적인 발굴·지원체계를 만들고, 이것이 가능하도록 사회복지 인력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는 비슷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나왔다. 정부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복지 사각지대’를 발굴하겠다며 대대적인 일제조사를 실시했지만, 지속적인 관심이라기보다는 일회적인 행사에 그치고 말았다. 복지 사각지대에서 발생하는 비극적 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양희정 주무관이 대장암 수술을 마친 기초생활수급자 가정을 방문해 향후 지원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 독산 2동주민센터 제공

양희정 주무관이 대장암 수술을 마친 기초생활수급자 가정을 방문해 향후 지원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 독산 2동주민센터 제공

서울시의 ‘찾아가는 동주민센터’는 이 반복의 고리를 끊어내려는 실험이다. 지난 7월 1일부터 서울시는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시범사업을 실시 중이다. 동주민센터를 마을 복지의 허브로 만들겠다는 구상에서 시작했다. 먼저 구에서 주관하던 복지행정을 동으로 내려보냈다. 서울시 자치구의 인구는 많게는 60만이 넘는다. 외국으로 치면 대도시다. 구의 규모가 크다 보니 복지 대상이 누락되거나 중복되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동주민센터는 주민들과 밀착돼 있다. 동주민센터의 복지업무를 강화하면서 인력도 충원했다. 1~2명에 그쳤던 복지담당 공무원을 4~5명으로 늘렸다. 방문간호사도 채용했다. 주민들이 동사무소를 찾아와 신청을 하고 지원을 받는 기다리는 복지에서 복지담당 공무원들이 직접 주민들을 찾아가는 ‘찾아가는 복지’로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시범사업에는 13개 자치구의 80개 동이 참여하고 있다.

‘찾아가는 동주민센터’가 시행된 지 5개월이 지나고 있다. 마을의 ‘복지’에는 변화가 있었을까. 금천구 독산2동 주민센터는 지난 7월부터 ‘찾아가는 동주민센터’로 전환됐다. 독산2동 주민센터에서 사회복지를 총괄하고 있는 최미화 주무관은 “지난 5개월간의 시범사업 결과 ‘찾동(찾아가는 동주민센터)’이 아니었으면 발굴하고 다각도로 지원하지 못했을 사례들이 꽤 있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최미화 주무관 혼자서 독산2동의 모든 복지를 담당했다. 독산2동에는 기초생활수급자만 500가구, 차상위계층 및 한부모 가정 등이 500가구 있다. 최 주무관 혼자서 이들 행정을 담당하고 나아가 복지 사각지대에서 새로운 복지 수급자를 발굴하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회복지 일을 좋아해서 이 일을 시작한 것인데, 일이 많아서 적극적으로 지원을 못하니까 마음이 무거웠다.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는 주민분들에게 더 해주고 싶은 지원이 있음에도 혼자서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하다 보니 모른 척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65세 이상 어르신·0세 영아 가정 방문
김모씨(여·55)의 경우도 ‘찾동’이 아니었으면 지원하기 어려웠을 사례다. 9월 9일 독산2동 주민센터 양희정 주무관은 한 주민의 신고를 받았다. 이웃에 사는 주민이 뇌출혈인 것 같다면 긴급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신고였다. 양 주무관이 가정방문을 해보니 상태는 예상보다 심각했다. 김모씨는 술에 취해 넘어진 후 눈도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며 심한 어지럼증을 호소했고, 보행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정신과적 이상 증세도 있어 급히 병원으로 보냈다. 김씨는 25년 전부터 남편과 별거하고 유일한 혈육인 딸마저 10년 전에 세상을 떠나 같이 살고 있는 직계가족이 없었다. 생활비는 전혀 없어 의료보험료도 60개월 이상 체납돼 있었고, 월세도 4개월이 밀려 있었다. 식당에서 밥을 얻어먹고 다니며 겨우 연명하고 있었다. 이웃들의 증언에 따르면 작년까지만 해도 건강하고 정신도 온전했는데, 올해 들어 우울증 같은 정신이상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일단 연락이 끊긴 남편과의 관계를 증명해 수급지원을 받게 하는 것이 필요했다. 이웃의 증언, 주변인들의 보증, 중간에라도 남편과의 결합이 있었는지를 하나하나 확인한 후 수급을 신청했다. 그러나 수급 선정에는 두 달 이상이 걸려 그 사이에 서울형 긴급지원 생계비를 지원해주기로 했다. 양 주무관은 병원에서 퇴원한 김씨를 정신보건사회복지사와 지속적으로 방문해 입원치료가 필요함을 알리고 설득에 나섰다. 처음에는 강하게 거부하던 김씨는 설득 끝에 병원에 입원했다. 양 주무관은 “일단 치료를 마치고 오면 가까운 정신병원에서 꾸준히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자활근로를 안내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금천구 독산 2동주민센터 직원들이 목요일마다 열리는 사례관리회의에서 새로 발굴된 사례들의 지원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 독산 2동주민센터 제공

금천구 독산 2동주민센터 직원들이 목요일마다 열리는 사례관리회의에서 새로 발굴된 사례들의 지원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 독산 2동주민센터 제공

기존의 동주민센터 인력과 시스템에서는 어려웠던 일이다.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개입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서울시 복지담당 관계자는 “사회복지직 공무원들이 사실은 그런 일을 하고 싶어서 이 직업을 선택한 건데,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행정업무 하기에도 벅찼다. 기존 복지가 수급대상자들이 동사무소에 와서 신청을 하고 해당이 되면 수급자로 선정해서 지급을 하는 데 그쳤다면, 지금 시스템에서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수급대상자들을 새롭게 발굴하고 수급을 받으면서 이들의 삶이 개선되고 있는지 끊임없이 모니터링하고, 또 필요한 자원들을 찾아서 연계해 추가적인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고 말했다. 2년 전 몽골에서 온 체리안씨(가명·36)는 한국인 남편과 이혼한 후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에 왔다. 중학생 아들과 초등학생 딸, 3세 딸을 두고 있는 체리안씨는 생계급여와 주거급여를 받고 있다. 최미화 주무관은 한국 사회에 어두운 체리안씨를 지속적으로 상담하면서 필요한 지원을 연계해주고 있다. “생계급여와 주거급여로 80만원 남짓 받고 있는데, 원룸의 월세만 40만원이 나간다. 이 집도 집주인이 빼달라고 해서 새로운 집을 알아보는 중인데, 일단 구청에서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무료 중개업소를 연결해줬다. 큰아이가 학원에 다니고 싶어하는데, 학원비가 사정해서 깎은 게 15만원이더라. 학원을 보내면 당장 먹고 살 돈이 없는데도 아이가 해달라고 하니까 잘 모르고 보냈더라. 지역아동센터 센터장님과 연결해 무료로 공부방 지도를 받을 수 있는 방안을 연계하려고 한다.” 최 주무관은 정기적으로 체리안씨를 방문하면서 체리안씨가 한국에서 자립해서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방안을 상담 중이다. “‘찾동’을 하기 전에는 가정방문은 한 달에 두세 번밖에 못 나갔고, 다른 가정 방문은 보조인력들이 했다. 그러나 임시적인 인력으로 가정방문을 하는 것과 시스템에 의해 가정방문을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찾동’을 하면서 복지플래너가 5명으로 늘어나다 보니까 주민들에게 더 많은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하고 개입할 수 있게 됐다.”

주민들에 대한 개입은 각각의 사례에 맞춰서 지원된다. 매주 목요일 오후에는 ‘사례관리회의’가 열린다. 사례관리회의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빈곤이나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는 지역주민들을 어떤 방식으로 지원해줄 것인가를 논의하는 자리다. 11월 19일 열린 회의에서 최근 간암수술을 받은 수급자 양모씨(62)의 사례가 논의됐다. 양씨는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데 항암치료로 힘이 들어 식사를 하지 못한다. 최근에는 연속적으로 세 차례에 걸쳐 수혈을 받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다. 긴급상황이 발생할 수 있음에도 양씨는 복지플래너의 방문을 한사코 거부하고 있다. 자존심이 강해 혹여라도 주변 이웃이나 지인이 자신이 기초생활수급자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싫어서다. 직원들은 양씨를 자극할 수도 있으니 일단 지속적으로 신뢰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하고,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들이 먹는 영양식을 긴급지원하기로 했다.

통장님들도 복지 관점서 적극 활용
‘찾아가는 동주민센터’는 복지 사각지대를 찾고 기초수급자들에게 긴급지원을 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모니터링을 통한 개입을 하지만 이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보편적 복지를 시행한다는 차원에서 동내 65세 어르신과 0세 영아가 있는 가정은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방문한다. 방문 전에 방문해도 좋겠느냐고 의사를 타진하는데, 익숙하지 않아서 아직 거절하는 경우도 많다. 일일이 찾아가 방문하는 이유는 보편적 복지 차원에서 이들의 건강과 복지상태를 파악하는 동시에 이들의 복지욕구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함이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민간자원이 발굴되기도 하고 주민과 동주민센터 간의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공무원이 직접 찾아가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결합해 마을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것에 방점을 찍는다. 작게는 이웃의 어려운 사람을 동주민센터에 알리는 것부터 크게는 복지 자원을 스스로 나누는 것까지 마을공동체를 만드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참여는 필수조건이다. 엄인식 서울시 복지정책과장의 말이다. “단순히 복지서비스를 확대하는 것을 넘어서 궁극적으로 주민들이 이웃을 돌아보고 어려운 이웃을 발견하면 우리 동주민센터에 가서 알려주는 복지생태계를 지향한다. 물질이든 봉사든 복지 자원을 주민 스스로 나눌 수 있는 공동체 정신을 만들어가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통장님들도 이전에는 민방위 통지서 전달하는 게 주된 업무였다면 찾아가는 동주민센터를 중심으로 한 복지생태계에서는 복지적인 관점에서 일을 하시도록 유도하는 쪽으로 바꿔가고 있다.” 김현정 독산2동 주민센터 동장은 “‘찾아가는 동주민센터’는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는 것은 물론 이들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무관심한 주민들도 자연스럽게 참여하는 형태로 만들어 마을의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게 핵심이라고 본다. 자율적인 주민자치에 힘이 생기면서 반신반의했던 주민들도 서서히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시겠다고도 한다. 단시간에 확 바뀌진 않게지만, 주민들과 함께 풀어가는 과정에서 자리를 잡을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아무도 모르는’ 복지 사각지대의 비극은 마을공동체의 복원으로 해소될 수 있을까. 아직은 5개월밖에 되지 않아 많은 주민들이 낯설어 하지만, “‘찾동’이 아니었으면, 어려웠을 것”이라는 몇몇 사례들은 주민들이 참여하는 복지가 하나의 가능성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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