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대선 사조직, 이번에도 ‘눈 가리고 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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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3일, 그리고 160일. 11월 9일 기준으로 각각 19대 대통령선거(2017년 12월 20일)와 20대 국회의원선거(2016년 4월 13일)로부터 남은 날짜 수다. 여의도 국회 앞 주요 당사 주변 빌딩건물은 지금이 대목철이다. 하루가 다르게 ○○국민포럼, ××연합 등의 패찰이 새로 붙고 있다. 미래, 선진, 희망과 같은 긍정적 가치와 비전을 담은 단어들의 조합이다. 모임 이름은 없지만 번듯한 양복차림의 남자들이 드나드는 사무실도 있다. 어느 날 갑자기 폐쇄돼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 보니 소문만 무성하다. <주간경향>은 다가오는 선거철을 앞두고 명멸하는 정치 사조직, 외곽조직의 실태를 짚어봤다.

“민리민안이라고 혹시 아십니까.” 새누리당 내부 사정을 꿰고 있는 한 인사의 말이다.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을 하던 인사가 나가 만든 단체인데, 당 주변에서는 김무성 대표 쪽 사조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 단체 주변을 뒤져 보면 재미있는 것들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이 인사는 덧붙였다. 찾아 보니 이 ‘조직’은 한창 확장 중이다. 정식 명칭은 민리민안국민연합(이하 ‘민리민안’)이다.

10월 18일 일요일, 이 단체의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지부’는 ‘민리민안산악회’를 만들고 창립기념 등반대회를 부산 가야공원에서 열었다. 1000여명이 참여했다. 산악회 플래카드를 보면 부산의 한 병원이 후원한 것으로 되어 있다. 10월 31일에는 강원도에서, 9월 14일에는 광주광역시 총괄지부 발대식도 열렸다. 지난 5월 13일에는 해외동포협의회 아시아총연합회도 태국 방콕에서 창립식을 열고 발족했다. 김무성 연관설과 관련해 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는 이종혁 전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을 알고 있는 한 공공기관장은 이렇게 덧붙였다. “무대(김무성 대표)가 2012년 총선 때 공천에서 탈락해 야인(野人)이던 시절, 같이 등산도 자주하면서 가까워진 사이로 알고 있다.”

“우리와 선거는 절대로 결부시키지 말라. 우리는 그런데 관심을 가지고 얼쩡거리는 사람은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종혁 민리민안 공동대표의 말이다. 그는 “대선이나 총선 관련이라면 우리는 해당사항이 없다”면서도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대선을 이틀 앞둔 2012년 12월 17일,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 산본중심상가에서 열린 박근혜 후보의 유세 현장. 박 후보가 유세장에 들어와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박민규 기자

대선을 이틀 앞둔 2012년 12월 17일,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 산본중심상가에서 열린 박근혜 후보의 유세 현장. 박 후보가 유세장에 들어와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박민규 기자

우후죽순 생기는 ‘친선도모’ 사조직들
그는 “민리민안은 말 그대로 국민을 이롭게(民利), 국민을 평안하게(民安) 하자는 뜻으로 만들어진 봉사조직에 불과하다”며 “정당이나 대선, 총선 등 선거에 일절 관여하지 않고 나라가 잘되고 국민을 위해 제대로 될 수 있도록 하는 시민의 순수한 봉사운동을 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 대표는 “김무성 대표와 관련이 있다”는 부분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나는 지난 대선 때 정무특보를 하고 대선캠프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사람이다.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돕고 싶은 마음이 있는 사람이다. 비정당 조직으로서 공통된 부분이 있다면 보수주의, 합리적 보수주의의 원칙과 같은 우리 나름대로의 철학과 기조를 갖고 있다. 차기 후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민리민안뿐 아니다. 찾아 보면 한반도통일산악회, 한반도미래정책포럼, 미래희망여의도포럼 등의 봉사단체, 싱크탱크를 표방한 단체들이 우후죽순격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당장은 친목도모·자원봉사 등을 표방하고 있지만 2017년 치러지게 될 19대 대선을 겨냥한 정치활동도 시작되고 있다. 미래희망여의도포럼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부친이 일제강점기 때 젊은 처녀를 위안부로 보내는 ‘보국대’ 활동을 7년간 한 적이 있다”는 등의 내용을 SNS를 통해 유포해 박원순 서울시장 측으로부터 11월 초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했다.

기자가 궁금한 것은 이것이다. 대선 시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각종 사조직들이 활동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대통령 후보들은 그 사조직이 연 행사에 참여해 축사를 하기도 한다. 이것은 선거법 단속 대상이 아닐까. 일부는 처벌 받기도 하지만 꼬리자르기에 불과하다. 모임과 연관된 핵심 인사는 대선 이후 승승장구한다. 대마불사(大馬不死), 대통령선거를 위한 조직이기 때문? 2007년 이명박 캠프의 전신이었던 동아시아연구원, 박영준의 선진국민연대가 그랬다. 2012년 박근혜에게는? 서강대 출신 금융계·공대 출신 인사들이 주축이 된 서강바른포럼과 1970년대 학생운동 출신이 주축이 된 포럼동서남북, 그리고 국민희망포럼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단체는 대통령선거 훨씬 이전부터 발족하여 전국조직을 갖추고 활동해 왔다. 이들 단체의 ‘중앙모임’은 모두 여의도 국회 주변에 자리잡고 있었다.

대선 8일 전이던 2012년 12월 11일. 의혹의 시선이 서울 강남구 역삼동 스타우스 오피스텔 607호에 쏠렸다.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가 ‘대선 댓글공작’을 벌인 곳이다. 취재진과 야당 관계자들이 모여들었지만 김씨는 40시간 동안 문을 걸어잠그고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대치’가 벌어진 곳은 그곳뿐이 아니었다. 12월 13일 여의도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선관위 직원들이 들이닥치자… ‘나 잡히면 안 되는데’, 라며 (정명숙씨가) 안절부절못하는 것이었다. 29층 2호에 앉아 오도가도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몰려든 취재진과 대치한 시간은 대여섯 시간 동안이었다. 슬리퍼만 신고 21층 3호로 내려오게 한 뒤, 메리어트 호텔 앞에서 내 주머니에서 10만원을 꺼내 쥐어주고 택시 타고 도망가게 해주었다.” 여의도 에스트레뉴 임대업자 정혜정씨(62·여)의 말이다. 이곳에는 서강바른포럼, 포럼동서남북이 개설한 불법선거운동 사무실이 있었다. 탈출에 성공한 인사는 모 유력 정치인의 보좌관 출신으로, 양 단체의 사무총장 역할을 하던 정명숙씨(51·여·주부)였다. 두 단체의 불법대선운동과 관련해서 단체 대표 등 3명은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 선고를 받았다.

2012년 대선 직전인 12월 14일, 서울시 선관위가 여의도 에스트레뉴 빌딩의 불법선거 사무실을 급습해 압수한 증거물품들. 그러나 당시 새누리당과 외곽조직은 이 건물의 13개 사무실을 임대하고 있었고, 또 압수수색 전 관련 자료를 대부분 폐기한 일이 있었던 사실이 이 건물 임대인과의 분쟁과정에서 최근 밝혀졌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2012년 대선 직전인 12월 14일, 서울시 선관위가 여의도 에스트레뉴 빌딩의 불법선거 사무실을 급습해 압수한 증거물품들. 그러나 당시 새누리당과 외곽조직은 이 건물의 13개 사무실을 임대하고 있었고, 또 압수수색 전 관련 자료를 대부분 폐기한 일이 있었던 사실이 이 건물 임대인과의 분쟁과정에서 최근 밝혀졌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불법대선운동 관련자 해외도피 후 귀국
2013년 11월에 있었던 선고공판에서 정명숙씨는 ‘소재파악이 안 된다’는 이유로 기소중지 처분을 받았다. 임대업자 정혜정씨에 따르면 정명숙씨는 그 후 해외로 도피, 미국과 캐나다를 거쳐 지난해 한국으로 돌아와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포럼동서남북과 서강바른포럼 등의 ‘불법 대선활동’의 전모는 지난 6월 임대업자 정씨가 당시 자신의 건물을 임대해 사용한 뒤 임대료를 지불하지 않아 관여된 인사들을 고소하면서 드러났다. 당시 <시사저널> 등이 이 사실을 크게 다룬 적이 있다. 정씨는 성기철 당시 포럼동서남북 회장, 송재국 서강바른포럼 회장(현 케이티샛 대표이사), 서병수 당시 새누리당 사무총장(현 부산시장), 김상민 당시 박근혜 후보 청년특보(현 국회의원), 조동원 당시 새누리당 홍보기획본부장 등을 고소했다. “선관위가 닥치기 며칠 전부터 문서 파쇄기가 동원됐다. 여러 비닐 보따리가 나왔다.” 임대업자 정씨의 말이다. 실제 새누리당 홍보기획팀, 청년캠프, 서강바른포럼 SNS팀 등이 약 13개의 사무실을 쓰고 있었지만 선관위가 압수수색을 한 곳은 1개 사무실에 불과했다. 임대업자 정씨는 자신이 도피를 시켜준 정명숙씨로부터 금전 입출입 장부도 맡아 보관하다가 대선이 끝난 후 포럼동서남북 측에 돌려줬다고 말했다. “A4용지에 영수증을 붙인 서류뭉치들이었다. 주로 누구와 만나 얼마만큼 먹었다는 밥값 영수증이 대부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자료 등은 2013년 불법선거운동 공판에 제출되지 않았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의 또 다른 대표적 외곽단체 ‘국민희망포럼’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기자는 2012년 대선 전부터 대선 이후까지 여러 차례 여의도 국회 앞 대하빌딩 7층에 자리잡은 이 단체의 사무실을 방문한 적이 있다. 2014년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당시엔 서청원 의원이 주도하는 산악회 ‘청산회’가 이 사무실 건너편에 입주해 있었다. 10월 21일 다시 대하빌딩을 방문했다. ‘국민희망포럼’은 거기 없었다. 대신 박준영 전 전남도 지사·최인기 전 의원 등이 주도하는 ‘신민당 창당준비위원회’가 자리잡고 있었다. “모르겠다. 우리가 이 사무실을 쓰게 된 것은 별써 몇 개월 전인데….” 신민당 관계자의 말이다.

국민희망포럼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 단체가 발족한 것은 2008년 4월, 총선 직후다. ‘사회계층간 격차 해소’,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지역사회 내 다양한 자원봉사 조직들과 유연한 네트워크 구축’, ‘국민들의 선진 시민의식을 높이기 위한 국민교육 활동 전개’ 등을 설립 취지로 하고 있다. 포럼 활동을 보면 대선을 앞둔 2012년 10월 16일, 이 단체 산하의 ‘국민희망 청년포럼’이라는 단체가 SNS팀을 발족하고 임명장을 수여한 일이 기록돼 있다.

지난 대선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중앙선거대책위원회가 발급한 국민네트워크본부 특보 임명장. / 경향신문 자료사진

지난 대선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중앙선거대책위원회가 발급한 국민네트워크본부 특보 임명장. / 경향신문 자료사진

2012년을 보낸 뒤 활동은 뜸해졌다. 2013년 활동 소식에는 서대문구에서 연탄 지원활동을 한 기록이 남아 있다. 연탄 지원활동은 2014년도에도 한 차례 더 이뤄지는데, 2013년과 비슷한 장소로 보여진다. 2014년도에는 덕유산에서 자연보호 활동도 진행해 총 2건의 활동이 기록되어 있다. 2015년도 3월엔 서대문구 연세대 뒷산인 안산의 둘레길에서 쓰레기 줍기 봉사활동을 한 것으로 되어 있다.

앞서 2012년 SNS팀 발대식 자료를 보면 이성헌 새누리당 서대문갑 위원장이 이 단체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2013년과 2015년에 이 단체가 봉사활동을 한 지역은 이 위원장의 지역구다.

지난 10월 5일, 국세청에 등록된 이 단체의 ‘연간 기부금 모금액 및 활용실적 명세서’를 보면 2014년 1월부터 이 단체는 월 1577만원부터 3095만원까지 목적사업비 및 일반관리비로 썼다. 건물임대료와 상근자 월급을 제외하면 거의 활동이 없는 셈이다. 명세서에 첨부되어 있는 연간 기부금 모금액 및 활용실적은 0원으로 되어 있다. 박 대통령 임기 3년차가 되면서 거의 활동이 흐지부지된 셈일까.

‘국민희망포럼’은 대선 후 어떻게 되었나
“대통령으로서 끗발이 가장 좋을 때가 언제인지 아는가.”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시절, 새누리당 외곽의 한 사조직에서 핵심 직책을 맡았던 ㄱ씨의 말이다. “인수위가 끝나고 취임식을 할 때다. 그 뒤부터는 지속적으로 힘이나 권한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지난 3월, SBS는 “‘박 정부 2년’, 각계에 안착한 국민희망포럼 낙하산”이라는 취재파일 기사를 내보냈다. 박근혜 정부 2년 동안 공공기관에 낙하산으로 임명된 임원들의 경력자료를 받아 살펴보니, 해당 공기관 임원의 전문성과 관련 없는 봉사단체 경력이 자주 발견된다는 것이다. 이 취재파일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취재팀이 처음부터 국민희망포럼의 존재에 주목한 건 아니다. 우리가 희망포럼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공공기관 경영공시 사이트 알리오였다. 우리가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의심이 드는 임원 경력에서 ‘희망포럼’이라는 이름이 자주 발견된 것이다.” SBS가 기사를 통해 공개한 ‘희망포럼’ 인사는 총 13명이다.

그런데 이 ‘희망포럼’들 중 여의도에 사무실을 뒀던 국민희망포럼과 엄밀하게 관련이 있는 사람은 김영도 한국토지주택공사 감사, 오일영 국민생활체육회 이사, 서준영 그랜드코리아레저㈜ 이사, 김종만 공무원연금공단 감사 등 4명이다. 이들이 국민희망포럼에서 맡았던 직책은 각각 상임이사(18대 대선 박근혜 캠프 특보단), 스포츠포럼(18대 대선 캠프 직능본부장), 운영위원(친박연대 수석 부대변인), 사무총장이다. 나머지 9명은 충북희망포럼, 광주전남희망포럼 대표 등의 직책을 가지고 있다. 국민희망포럼 관계자는 “충북이나 광주전남, 광진 등 지역에 있던 희망포럼과 국민희망포럼은 별개 조직”이라고 말한다.

실제 한국전력공사 감사로 간 안흥렬 서울희망포럼 대표의 경우, 국민희망포럼과 조직적 불화를 겪고 사무실도 여의도에 별도로 잡아 운영했다. 다시 말해 국민희망포럼과 서울희망포럼 등의 단체는 지부관계가 아니라 별개의 조직이었다는 설명인 것이다.

공공기관 낙하산에 희망포럼 출신자들
국민희망포럼 사무실은 올해 충정로로 옮겼다. 공교롭게도 역시 이성헌 위원장의 지역구인 서대문구다. 국민희망포럼 관계자는 사무실 공개를 거부했다.

문제는 남는다. 포럼동서남북은 2014년 ‘범국민 안보의식 강화와 왜곡된 역사의식 재정비’라는 명목의 비영리 민간단체 사업을 벌이며 행정자치부 민간협력과로부터 5700만원을 지원받았다. 2013년 이 단체의 대표가 불법선거운동 등의 혐의로 사법처리를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지원사업 대상에 선정됐다. 게다가 사업계획서는 허위로 작성됐다. 사무실을 빌려준 정씨는 “행안부에 서류 제출하는 데 필요하다고 해서 월세를 내고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400만원을 내고 있다는 가짜 월세계약서에 도장을 찍어줬다”고 말했다. 비영리민간단체 지원법 13조는 ‘사업계획서에 허위의 사실을 기재하거나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보조금을 교부받은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국민희망포럼 역시 2009년 3월 31일 지정기부금 단체로 지정됐다. 역시 행정자치부 민간협력과다. 지정기부금 단체 지정과 관련된 법의 시행령에는 단체의 지정요건으로 “단체나 단체의 대표자가 지정기부금 단체로 지정되기 전년이나 당해 연도에 해당 비영리법인의 명의 또는 그 대표자의 명의로 특정 정당 또는 특정인에 대한 선거운동을 한 것으로 권한 있는 기관이 확인한 사실이 없을 것”이라고 명시돼 있다. 다시 말해, 정치와 관련된 자원봉사조직은 지정기부금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같은 논리가 노사모의 돼지저금통에 적용돼 위법판결을 받은 바 있다. 언론 보도를 보면 2012년 대선을 한 달 앞두고 국민희망포럼은 마중물여성연대 등 다른 단체와 함께 새누리당 당사에서 박근혜 후보 지지 기자회견을 여는 등 명백한 정치적 활동을 한 전력이 있다. 대선 전해인 2011년부터 박 후보는 국민희망포럼의 지역조직 행사에 참여해 인사말을 하는 등의 활동이 여러 건 언론 보도로 남아있다. 그런데도 국민희망포럼은 2009년부터 올해까지 6년간 지정기부금 단체로 지정받아 활동해 왔다. 지정기부금 단체 지정은 6년이 지나면 재신청 등록을 해야 한다. 국민희망포럼은 지난 10월 말 다시 행자부에 재지정 신청을 한 상태다.

선관위는 왜 불법활동을 방치할까
지정기부금 지정단체를 총괄하고 있는 정부 부처는 기획재정부 법인세제과다. 법인세제과 핵심 관계자는 “지정기부금 단체와 관련한 업무를 보는 인원은 한 명에 불과해 사실상 관련 부처가 심사한 내용을 올리면 서류상 검토로 승인해주는 것”이라고 말하며 책임을 승인해준 행정안전부와 선관위로 돌렸다. 선관위는 “법 위반과 관련해 구체적 사실에 대한 요청이 있을 때 선관위는 유권해석을 내리는 역할을 할 뿐이며, 문제가 있을 때 사법당국에 고발 등 조치를 취하는 쪽은 관련 승인을 내준 기관”이라고 밝혔다.

포럼동서남북 비영리 민간사업을 지원해준 행자부 민간협력과 쪽은 “지원서류가 허위로 되어 있었는지는 당시 임대업자와 단체 양쪽이 사인한 서류가 있었기 때문에 적법한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며 “만약 부정한 방법으로 국가보조금을 받은 것으로 판명난다면 고발·환수조치를 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국민희망포럼 지정기부금 단체 지정과 관련해 담당 사무관은 “<주간경향>의 지적을 받고 현재 선관위 측에 공문을 통해 선거법 위반 사실이 있는지 알아봐달라고 요청한 상태”라며 “다만 법 관련 조항이 문제를 삼고 있는 시기가 ‘지정 전해나 당해 연도’이기 때문에 2014년과 2015년에 특정인에 대한 선거운동이나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활동이 없었다면 법적으로 재신청 대상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애초의 의문은 이것이었다. 대선 시기, 유력한 대권후보 외곽단체의 활동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집권에 성공한 뒤 외곽단체 출신 인사들은 그 공으로 공공기관 임원의 자리를 얻게 된다. 대한민국에서 공공연하게 이뤄지는 출세 루트다. 선관위와 같은 기관은 왜 사실상 불법인 이들 단체의 활동을 방치하는 것일까. 선관위 공보실 관계자는 “우리로서는 법을 근거로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공직선거법 87조에 근거해 위법 여부를 살펴본다”며 “법 적용대상에 해당하지 않으면 단체가 선거운동을 하는 것에 대해 특별하게 제한하거나 막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 법 87조 2항은 ‘누구든지 선거에 있어서 후보자의 선거운동을 위하여 연구소, 동우회, 향우회, 산악회, 조기축구회, 정당의 외곽단체 등 그 명칭이나 표방하는 목적 여하를 불문하고 사조직, 기타 단체를 설립하거나 설치할 수 없다’고 못 박고 있다. 한마디로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결론이다.

주요 대권주자 사조직 ‘소문만 무성’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익숙한 통화연결음이다. 새마을 노래다. 여의도 주변에서 ‘반기문 조직’을 담당하는 핵심 인사로 알려진 인사의 통화연결음이다. 새마을과 반기문?

기자에게 이 번호를 건네준 정치권 인사는 그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보여줬다. “결심만 남았다-애향심이 깊어 충청이 부르면 출마?” 한 타블로이드 매체의 보도 제목을 오려 붙인 내용이다. 새마을 깃발을 배경으로 반기문 총장과 박근혜 대통령이 손을 잡고 있는 그림도 있다. “아… 지금 시점에서는 (말하기) 곤란한 거 아닌가. 반 총장도 그렇고, 대통령도 지금 시점에는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이 인사의 말은 아직은 모임을 공식화할 단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제일 중요한 것은 미래를 위해서나 국가를 위해서, 또 남북통일을 위해 제일 적합한 인사가 누구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혹시 동생 반기상씨나 친인척과 관련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대선이든 어디든 친인척이 정치에 관여하면 곤란하다”며 “기자님이나 저나 대한민국의 발전에 제일 적절한 인물이 누군지 생각을 하고 싹을 키워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선거 사조직과 관련한 ‘소문’은 거의 검증이 불가능하다. 그럴 듯한 실체가 거론되고, 유력인사 결합설이 솔솔 흘러나오지만 막상 검증하려면 손가락 사이에 흘러내리는 모래처럼 흩어질 뿐이다. 소문은 후보자의 지지율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인다. 즉, 지지율이 높을수록 소문도 많다. 2015년 11월 현재, 관련 소문이나 실제 표면화된 움직임이 제일 많은 쪽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쪽이다. 야권에서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안철수 의원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문재인 대표는 ‘노사모’ 내지는 ‘친노’와 같은 오래된 비공식 지지조직이 있어서인지 의외로 ‘소문’은 적은 편이다. 대선 출마 여부와 관련해 박원순 시장의 공식 입장은 “서울시장 잔여임기를 충실히 한다”는 것이다. 서울시장으로서 그의 임기는 2018년 6월 12일까지다. 대통령선거 이후다. 공식 워딩을 해석하자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주변 인사들이 전하는 이야기는 다르다. “박 시장은 이미 대통령선거 출마를 두고 장고에 들어갔다.” 한 핵심 주변 인사의 평가다. 업무 틈틈이 박 시장은 핵심 측근 인사들과 야간산행을 한다. 이른바 ‘희망산악회’라는 이름이 붙은 이 산행은 매월 첫째 주 토요일에 진행해 왔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는 많은 내밀한 이야기가 오간다. “…박 시장의 속내까지는 알 수 없지만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 출마선언할 때를 생각해 보면 된다. 그 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박 시장에게 서울시장 출마를 권했지만 거부하다가 백두대간 종횡 산행을 하면서 마음을 바꾸지 않았느냐.”

박 시장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의사결정 자문그룹’의 층은 두껍다. 6월포럼 등 시민사회그룹뿐 아니라 아름다운재단 등 비영리단체(NPO) 활동을 통해 맺어진 각계각층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그가 결심을 했을 때 참여할 인맥으로 거론된다. 1994년에 창립된 참여연대 활동가 출신으로 지난 20년간 사회 각계각층에 진출해 있는 인사들도 일단 출마 결심이 서면 언제든지 결합할 수 있는 인재풀로 평가되고 있다.

후보자와 사조직은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

자원봉사단체 ‘민리민안산악회’의 창립기념 등반대회가 지난 10월 18일 부산 가야산에서 열렸다.  / 민리민안국민연합 페이스북

자원봉사단체 ‘민리민안산악회’의 창립기념 등반대회가 지난 10월 18일 부산 가야산에서 열렸다. / 민리민안국민연합 페이스북

“이렇게 보시면 된다. 후보 직계들이 보고서를 생산해 올리는 조직이 있다. 그리고 그 후보의 참모가 꾸리는 게 있다. 그 경우 어느 선까지 보고가 이뤄지느냐, 애매하다. 자기들이 만들어서 한다고 하는데 후보로서는 OK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걸리면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으니까. 결국 자생적이라고 보기는 힘들고, 자가발전하는 형태로 꾸려들 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또 누구 선이냐를 알아보려면 안에서 깊게 체크를 해봐야 한다. 자금 전달 구조를 알아야지만 누구 라인인지 알 수 있다.” 전 새누리당 중앙당 핵심 당직자 ㄴ씨의 말이다. 자생적은 아닌데 자가발전하는 형태? 그는 이렇게 부연했다. “노사모 같은 진보 쪽 조직을 보면 어느 정도 자생적인 면이 있다. 하지만 보수는 100% 돈이다.” 활동비용은 대부분 명함을 팔고 직책 팔아 마련된다. “집권 후 한 자리를 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지역에서 원하는 것은 감투다. 하다못해 민주평통자문위원이라도 달아주면, 지역에서는 그게 위세가 되니까. ‘나 누구 안다’고. 평통이 대통령 직속기구 아닌가.”

“역사학계의 90%는 좌파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이 발언은 지난 10월 18일 새누리당 중앙위원회 산악회 자리에서 나왔다. “산악회가 사실 사조직의 원조다.” 한 유력 정치인의 보좌관 출신인 정치권 인사 ㄷ씨의 말이다. 그 역시 주민조직의 수단으로 산악회를 애용해 왔다. “산악회라고 하지만 사실 산 타는 건 1~2시간에 불과하다. 나머지 일정은 다음날 새벽까지 술 마시는 것이다. 술 마시고 인사하고 사업도 하고, 서로 연결도 시켜주고 네트워크도 만들고…. 들어가는 돈은 스폰서가 내도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 산악회의 강점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조직 수단으로 ‘산악회’를 애용하는 이유다. 10·11월은 산악회 조직의 정점을 이루는 시기다. 등반 순서는 보통 서열대로 이뤄진다. 중심이 되는 인물이 선두에 서고, 그 다음 측근이 다음에 서서 올라가는 식이다. “…꼭 명함 한 장 받으려고, 사진 한 장 찍으려고 기웃거리는 사람이 있다. 다 찍어준다. 조금 잘 돌아가는 산악회는 ‘사진 찍지 맙시다’라며 자체 단속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 출발할 때 단체사진만 남긴다. 당 대표 같은 사람과 둘이 찍은 사진으로 속칭 ‘광파는 사람’들이 생길 수 있으니까.”

휴대폰 녹음기능을 끄는 것 역시 불문율이다. 산행을 하거나 뒤풀이 자리에서 ‘까놓고 하는 말’이 기록으로 남아 화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후보자로서는 선거 사조직이 필수불가결한 것일까. <주간경향>이 접촉해본 정치권 인사들의 답은 이렇다. “솔직히 선거에서 사조직은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와 비슷하다. 모양새는 공식 선거조직이 더 크지만, 선거운동의 힘과 조직과 돈은 사조직에서 나온다. 사실 대선으로 가는데 사조직이 없으면 못 간다.”(ㄷ씨) “솔직히 산악회 나가는 사람들은 50~60대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사실 구태다. 유력 대선주자와 찍은 사진, 대권주자로부터 받은 임명장을 이 사람들은 신주단지처럼 모신다. 그것을 자신의 힘자랑 수단으로 삼는다. 그게 한국의 정치 수준을 답보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계기라도 봉사활동 같은 것이 계속 유지된다면 좋은 일일 것이다. 대부분 그런 식의 권력놀음에 단맛을 들인 사람들이 선거 때만 되면 간판을 바꿔달고 다른 것을 만들고, 유력주자를 중심으로 이합집산을 거듭한다. 결국 최소한의 사회참여라는 긍정적 효과마저 날려버리는 후진적 행태를 답습하는 것이 문제다.”(ㄴ씨)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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