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미래부 ‘가짜 수료증 장사’한 김흥기 교수에 1억원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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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창업포럼 상임의장에서 ‘댓글부대’ 회장까지 미래부와 창조경제 농락

국정원 출신 인사가 정부기관과 장·차관까지 동원해 중국과학원(CAS) 한국분원장 행세를 하며 ‘가짜 수료증’ 장사를 했다는 보도(<주간경향> 1150호)가 나간 후 특허청, 중소기업청, 미래창조과학부는 급박하게 움직였다. 국정원 ‘댓글부대’ 의심을 받는 용역업체 회장 출신의 김흥기 카이스트 겸직교수가 중국과학원 이름을 팔아 2013년 9월 서울 강남에 중국과학원 지식재산 최고위과정을 개설할 때 후원기관으로 이들 기관 이름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특허청과 중소기업청은 내부 파악 결과 후원기관으로 참여한 게 사실로 드러나자 애꿎게 발명진흥회를 물고 늘어졌다. 발명진흥회에서 2013년 중국과학원과 한림원을 공동 주최기관으로 공문을 보내는 바람에 자신들이 후원기관으로 참여하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공문을 발송했던 발명진흥회 직원은 “정말 억울하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2013년 6월쯤 김 교수가 찾아와 ‘특허청, 중소기업청과 얘기해서 다 세팅이 됐으니 발명진흥회는 그냥 절차상 필요한 공문만 하나 보내면 된다’고 해서 별다른 고민없이 공문을 보낸 것뿐”이라고 했다. 특허청과 중소기업청이 이미 김 교수와 사전에 짜고 모든 일을 다 벌여놓고 이제 와서 엉뚱하게 힘 없는 산하기관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는 뉘앙스였다.

2013년 11월 1일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글로벌창업정책포럼 창립식. 미래부가 주관한 이 행사에서 김흥기 교수는 상임의장으로 선임됐다. / 관련 블로그

2013년 11월 1일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글로벌창업정책포럼 창립식. 미래부가 주관한 이 행사에서 김흥기 교수는 상임의장으로 선임됐다. / 관련 블로그

창조경제 관련 민간포럼 최고 자리에
특허청과 중소기업청이 발명진흥회와 티격태격하는 사이 미래창조과학부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김 교수가 최고위과정 2기 때부터 미래부 글로벌창업정책포럼을 후원기관으로 추가하기는 했으나 미래부 차원에서 승인 결정을 한 적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미래부는 <주간경향> 보도를 통해 김 교수의 사기극 전모가 드러난 지난 2일 보도 해명자료를 배포하고 조경식 대변인이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김 교수가 요청을 하기는 했으나 내부 검토를 거쳐 후원기관 승인은 하지 않기로 한 게 확인됐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는 후원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김 교수가 중국과학원 이름을 도용했느냐에 대해서는 별도로 판단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미래부는 김 교수가 중국과학원 이름을 도용해 1인당 교육비가 600만원이나 하는 최고위과정을 2년간 운영하면서 ‘가짜 수료증’ 장사를 한 것에 대해 정말 아무런 책임이 없을까.

<주간경향> 취재팀의 확인 결과 김 교수는 중국과학원 최고위과정을 개설하기 직전 미래부에 접근해 박근혜 정부 주요 실세들의 명단을 보여주며 글로벌창업정책포럼을 제안하고 스스로 상임의장이 됐다. 미래부가 공식 후원기관으로 참여만 하지 않았을 뿐 온갖 기관 등을 돌아다니며 ‘창조경제’를 팔아 사기극을 벌일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실제 글로벌창업정책포럼 상임의장은 김 교수가 2012년 대선을 전후해 지식·재산분야 전문가로서 자신을 ‘이미지 메이킹’하며 얻어낸 온갖 직함 가운데 최고의 ‘전리품’이라 할 수 있다.

그가 회장으로 있는 은평타임즈는 2011년 12월 모스크바 국립대에서 김 교수가 명예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했으나 그는 주로 행정대학원 초빙교수로 행세했다. 명예박사도, 초빙교수도 날조된 것으로 드러났지만 지식재산분야 전문가로 포장하는 데는 기왕이면 이학박사보다 행정대학원 초빙교수 직함이 그럴싸해 보인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그는 2011년 6월 특허청 감사자문위원, 같은 해 9월 국가지식재산 전문위원, 2012년 6월 국무총리실 자체평가위원회 민간위원을 거쳐 마침내 2013년 11월 글로벌창업정책포럼 초대 상임의장 자리에 오른다. 모스크바 국립대의 날조된 약력을 바탕으로 지식·재산분야 전문가로 승승장구하다 마침내 창조경제 관련 민간포럼의 최고책임자가 된 것이다.

당시 포럼 구성 명단을 보면 김 교수 밑에 수석 부위원장으로 미래부 국장, 실무위원회 위원장은 미래부 방송통신기반과 과장이 배치됐다. 공동의장으로는 이기주 인터넷진흥원장, 박수용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원장,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된 김성수 성주그룹 회장이 포진했다. 명예원장에는 3선 경력의 박진 전 새누리당 의원, 고문은 미래부를 관할하는 국회 상임위 위원장인 새누리당 한선교 의원이, 자문위원장은 좌승희 전 한국경제연구원(KERI) 원장이 위촉됐다. 운영위원회 실무위원회 부위원장은 KT, CJ, 포스코 등 대기업 전·현직 임원이나 부장급 중견간부들이 임명됐다. 한마디로 정·관·재계를 아우르는 화려한 멤버들이 김 교수가 상임의장으로 있는 글로벌창업정책포럼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김 교수는 어떻게 무명의 인사에서 짧은 시기 미래부에서 주관하는 창조경제포럼의 상임의장이 될 수 있었을까. 2013년 글로벌창업정책포럼이 만들어진 과정을 보면 미래부는 철저하게 김 교수에게 이용당한 측면이 강하다.

글로벌창업정책포럼 창립식 당시 김흥기 교수가 앉았던 헤드테이블. 왼쪽에서 부터 박수용 정보통신산업진흥원장, 미래부 최재유 제2차관(당시 정보통신방송정책실장), 이기주 인터넷진흥원장. 박진 전 의원의 명패가 보인다. / 관련 블로그

글로벌창업정책포럼 창립식 당시 김흥기 교수가 앉았던 헤드테이블. 왼쪽에서 부터 박수용 정보통신산업진흥원장, 미래부 최재유 제2차관(당시 정보통신방송정책실장), 이기주 인터넷진흥원장. 박진 전 의원의 명패가 보인다. / 관련 블로그

포럼 창립식에 미래부 국장 등 대거 참석
2013년 8~9월 사이 처음 김 교수를 만나 포럼 구성을 논의했던 미래부 산하 정보통신산업진흥원 ㄱ팀장에 따르면 글로벌창업정책포럼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실상 김 교수가 주도한 작품이었다. 그는 “미래부에서 글로벌 벤처 창업붐을 민간으로 확산시키는 방안을 놓고 고민을 하던 2013년 8~9월께 김 교수가 먼저 포럼 구성을 제의해 왔다”며 “포럼 참여인사 명단도 대부분 김 교수가 먼저 짜서 가져왔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명단을 받아보고 이 정도 레벨이면 우리도 원장님이 직접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원장님이 공동의장을 맡게 됐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결국 글로벌창업정책포럼은 김 교수가 먼저 제안하고 구성진까지 대부분 그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다.

포럼 창립기념식도 2013년 11월 1일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성대하게 진행됐다. 당시 포럼에는 미래부 국장과 과장 등이 대거 참석했고, 시기만 문제일 뿐 제2차관 임명이 확실시되던 최재유 정보통신방송정책실장이 직접 축사를 했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 ㄱ팀장은 “김 교수가 불러준 명단에 나오는 쟁쟁한 인사들이 실제 포럼에 참석한 것을 보고 ‘정말 인적 네트워크는 좋은 분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 포럼의 실무운영위원장을 맡았던 미래부 담당 과장도 “이 정도 네트워크라면 포럼이 잘 굴러가겠구나 하는 믿음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래부 실무자들의 기대와 달리 글로벌창업정책포럼은 창립식만 성대하게 열렸을 뿐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다.

당시 포럼에 맡겨진 가장 중요한 역할은 창업부터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하는 이른바 ‘본(Born) 글로벌’ 벤처 창업붐의 민간 확산이었다. 포럼에서 상임의장으로 선임된 김 교수도 “국내 고용창출 중심의 논의를 확장해 ‘본 글로벌’ 창업을 위한 사회·문화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정책 제안을 도출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포럼의 향후 활동방향으로 정례 세미나를 열어 글로벌 창업 촉진 로드맵, 성과 지표 개발, 글로벌 창업지원체계 등 10개 세부과제별로 정책보고서를 만들어 관계부처에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의 야심찬 포부와 달리 실제로 그 후 1년간 포럼이 남긴 성과는 거의 없었다. 글로벌포럼에서 실무운영위 간사를 맡았던 한 인사는 “발족하고 나서 세미나가 한 번 있어서 간 것 같은데, 그 이후로는 뭘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포럼의 실무운영위원장을 맡았던 미래부 과장은 자신의 위촉 사실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실제 세미나는 1년 동안 세 번밖에 열리지 않았고, 전문가들이 모여서 정책방향을 논의하기보다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의 청년들을 모아놓고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식이었다. 장소도 김 교수가 운영하는 지식센터 빌딩에서 진행됐다.

부실한 정책연구보고서에 예산 집행
하지만 미래부는 이 같은 유명무실한 포럼의 유지를 위해 1년간 1억원의 예산을 지원했다.

미래부는 <주간경향>이 1억원 예산집행 내역을 요구하자 세미나 활동이 부실한 점을 의식한 듯 예산은 주로 정책연구보고서를 만드는 데 사용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책연구보고서도 부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2013년 4500만원, 2014년 5500만원의 예산이 지원된 정책연구용역 논문 10여편은 대부분 30~50페이지 분량으로, 편당 100만~200만원의 세미나 발제자료 수준을 넘지 못했다. 그나마 일부 논문은 제목에 ‘초안’이라고 써놓거나 문서작성 파일 시점이 2012년으로 기록돼 있었다. 도저히 억대의 용역보고서로 보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미래부도 나중에 문제가 될 것을 의식한 듯 2014년에는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주관으로 공개입찰을 통해 정책연구용역 사업자를 선정하도록 했다. 하지만 입찰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제한경쟁 입찰로 진행됐고, 낙찰자는 김 교수 개인기업인 지식센터였다. 지식센터 직원의 부탁으로 영문도 모른 채 30쪽짜리 보고서를 제출한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처음에 100만~200만원 정도를 제시해 그건 너무 적다고 했더니 조금 올려준 것 같은데, 큰 돈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1억원의 포럼 예산이 미래부의 간섭에서 벗어나 사실상 김 교수 개인 쌈짓돈처럼 사용된 것이다.

김 교수는 이처럼 포럼 활동에는 적극적이지 않으면서 예산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한편 포럼 상임의장이라는 타이틀에도 상당히 집착한 듯이 보인다. 당시 포럼 운영에 간여했던 미래부의 한 직원은 “포럼에 미래부 국장이나 과장 이름이 들어가 있으니 민간기업이 볼 때는 김 교수가 마치 미래부를 움직이는 엄청난 인물처럼 느껴졌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김 교수는 온갖 강연, 행사에 참석해 연설을 하거나 칼럼을 쓸 때 글로벌창업정책포럼 상임의장으로 본인을 소개했다. 지난해 10월 군인·경찰관·소방관들을 대상으로 하는 제2회 대한민국 호국대상 시상에 미래부 글로벌창업정책포럼상이 제정될 정도였다. 심지어 그는 미래부에 포럼을 사단법인으로 만들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김 교수는 글로벌창업정책포럼에서 활용한 인맥을 2013년 9월 개설한 가짜수료증 장사를 한 중국과학원 최고위과정에도 그대로 동원했다. 포럼 명예의장과 자문위원장, 운영위원을 맡았던 박진 전 의원, 좌승희 전 한국경제연구원장, 박경식 미래전략정책연구원장이 중국과학원의 강사로 위촉된 것이다. 미래부 공무원들 역시 최재유 정보통신방송정책실장과 이성복 국장을 수강생으로 참여시켰다. 최 실장이 방송통신정책, 이 국장은 과학기술정책 라인을 대표하는 인맥이라는 점에서 김 교수는 미래부의 양대 산맥을 모두 자신이 운영하는 최고위과정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KTL 예산 배정에도 미래부가 큰 역할
특히 최 실장이 지난해 제2차관으로 승진하면서 김 교수가 운영하는 최고위과정은 정보기술(IT)·통신 벤처 CEO들의 집중적인 주목을 받게 됐다. 미래부 내부사정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최 차관은 이명박 정부 때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물러나면서 방송통신정책 라인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살아남은 인물로, 오래전부터 방송통신을 관할하는 제2차관을 예약한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최 차관이 2013년 9월 중국과학원 최고위과정 1기 수강생으로 등록한 상황에서 같은 해 11월 글로벌창업정책포럼 창립식에서 미래부를 대표해 축사를 한 것은 김 교수 입장에서는 ‘신의 한 수’였다. 물론 최 차관은 자신과 김 교수를 특수한 친분관계로 해석하는 시도에 선을 그었다. 그는 “축사는 예정된 분이 사정이 생겨서 대신 한 것에 불과하고 중국과학원 과정은 동료 중 한 명이 괜찮은 프로그램이라고 같이 듣자고 해서 간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의도와 상관없이 최 차관을 비롯해 미래부 전체는 김 교수가 창조경제 대표주자로 자신을 ‘이미지 메이킹’하는 데 철저하게 이용당한 셈이다.

특히 ‘댓글부대’ 용역업체로 의심을 받고 있는 그린미디어가 지난해 7월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으로부터 15억원의 예산이 배정된 글로벌기술정보 용역사업자로 선정된 데도 미래부가 큰 역할을 했다. 지난해 1월부터 근 1년간 김 교수는 50여 차례에 걸쳐 그린미디어에서 발행하는 글로벌이코노믹에 각종 칼럼과 인터뷰를 제공하면서 항상 미래부 글로벌창업정책포럼 상임의장이라는 직함을 사용했다. 지난해 3월부터 김 교수가 진행하는 파워인터뷰의 두 번째 초청인물도 당시 미래부의 이상목 제1차관이었다. 신문을 발행한 지 2년밖에 되지 않고 유사 용역실적도 전무한 그린미디어가 KTL의 용역사업자로 지정된 데는 김 교수와 미래부의 이 같은 특별한 인연이 어떤 형태로든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KTL 입장에서는 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창조경제와 미래부 쪽에 엄청난 인맥을 갖고 있는 김 교수가 그린미디어 지면에 자주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그린미디어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그린미디어가 KTL에 제출한 회사의 조직표를 보면 사장 위의 회장이 모든 업무를 총괄하는 형태로 돼 있었다. 누가 봐도 사장은 ‘바지’에 불과하고 실제 회장은 따로 있다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했다. 결국 예상대로 김 교수는 지난해 12월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취임식을 하고 회장에 등극했다.

국정원 출신으로 무명의 벤처기업가였던 김 교수가 불과 2년 만에 미래부 글로벌창업정책포럼 상임의장에서 중국과학원 한국교육원장을 거쳐 ‘댓글부대’ 회장이 되는 과정은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 하지만 감독과 제작진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김 교수 사기극에 동원된 정부기관들은 여전히 그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있고, 김 교수는 지난 4일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까지 열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이래저래 ‘김흥기 드라마’는 단순 사기극으로 막이 내려질 것 같지 않은 분위기다.

<강진구 경향신문 기자 kangj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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