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에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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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유통업체 중심 행사에 전통시장은 ‘구색 맞추기’...홍보·준비 부족으로 성과 못 거둬

지난 10월 17일 기자가 찾은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길음 전통시장에는 ‘길음시장 블랙프라이데이 이벤트’라는 현수막이 군데군데 걸려있었다. 시장 한가운데에서는 이벤트 진행자가 행사 홍보에 한창이었다. 2만5000천원 이상 구매 고객 중 50명에 한해 5000원짜리 상품권을 지급한다고 했다. 줄을 선 사람은 두 명뿐이었다. 이벤트 진행자는 “토요일인데도 불구하고 사람이 많이 없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김성주 길음시장 상인회장은 “15일부터 22일까지 블랙프라이데이 행사를 하지만 평소에 오는 손님들만 온다”며 “단골손님들이 오는 김에 행사에 참여하는 거지 새 손님은 없는 편”이라 말했다. 동대문구에 있는 약령시장도 마찬가지다. 약령시장 상인회 김경태 사무국장은 “우리 시장도 15~22일 블랙프라이데이 행사를 하는데, 손님 수가 늘긴 늘었지만 그 손님들이 블랙프라이데이 행사 때문에 찾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10월 17일 서울 성북구 길음시장에 블랙프라이데이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 이주연 인턴기자

10월 17일 서울 성북구 길음시장에 블랙프라이데이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 이주연 인턴기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 행사가 27일 전통시장 행사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전통시장의 블랙프라이데이 행사는 산업통상자원부와 기획재정부가 공동으로 기획·홍보해 지난 1일부터 15일까지 백화점과 대형마트, 편의점 등 대형유통업체를 중심으로 진행된 것과 달리 10월 1일부터 27일 사이에 원하는 기간을 7일 단위로 전통시장이 자체적으로 정해 진행됐다. 참여한 전통시장은 전국에서 200곳, 서울은 41곳이었다.

하지만 전통시장의 블랙프라이데이 행사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우선 홍보 부족 탓을 들 수 있다. 실제로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근처에 설치된 전광판의 블랙프라이데이 영상광고에는 전통시장을 소개하지 않고 있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마케팅지원실 관계자는 “원래 전통시장은 산업자원부에서 진행하는 블랙프라이데이 행사에 해당되지 않았는데, 뒤늦게 전통시장도 함께 참여하라는 안내를 받았다”며 “전통시장은 개인사업장의 모임이기 때문에 대형 유통업체와 달리 행사를 진행하려면 참여를 수렴하는데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서비스경제과 도종록 사무관은 “기획단계에서 전통시장은 비슷한 시기에 자체 세일행사가 많아 참여시킬지 말지 고민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전통시장을 포함하는 결정이 대형유통업체보다 1~2주 정도 늦어져 안내가 조금 늦게 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뒤늦게 결정되다 보니 준비할 시간도 부족했다. 참여 신청은 산업자원부가 개설한 블랙프라이데이 홈페이지를 통해 하도록 되어 있으나, 팩스를 통해 공문으로 내는 경우도 있다. 신청은 승인이 나야 운영지원비를 받을 수 있다. 약령시장의 경우는 소상공인진흥회에 참여 신청을 하고 행사 시작 예정 기간 하루 전에 승인이 나는 바람에 급하게 450만원~500만원가량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다. 약령시장 김 사무국장은 “사실 준비기간도 부족했지만 우리의 경우 10월 5일부터 행사를 시작했는데, 행사 시작 전날인 10월 4일에서야 승인이 났다”며 “진행이 어려웠던 결정적 이유는 아니지만 이미 블랙프라이데이 행사는 10월 1일부터 시작한 마당에 김이 빠지는 느낌이었다”라고 덧붙였다. 동작구에 있는 남성시장도 행사 시작일 3일 전에 승인이 났다. 행사 시작일이 지난 5일이었던 강동구 성내 전통시장의 경우 전화를 통한 구두 승인은 이틀 전인 3일에, 공식 승인서는 행사 당일에 받았다. 소상공인진흥공단의 참여 신청 독려도 특정 전통시장에만 한정됐다. 강서구 방산재래시장 관계자는 “우리의 경우는 소상공인진흥회에서 먼저 전화가 와 신청을 했지만 몇몇 시장의 경우는 이런 안내가 없어 뉴스를 보고 신청하기도 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길음시장 입구에 내걸린 블랙프라이데이 행사 내용을 설명하는 현수막. 앞에선 이벤트 진행자가 방문객들에게 홍보를 하고 있다. / 이주연 인턴기자

길음시장 입구에 내걸린 블랙프라이데이 행사 내용을 설명하는 현수막. 앞에선 이벤트 진행자가 방문객들에게 홍보를 하고 있다. / 이주연 인턴기자

그러다 보니 행사 시작이 늦어지는 경우도 생겼다. 강북구 수유전통시장은 비교적 늦은 14일부터 시작했다. 상인회 관계자는 “매해 진행되는 행사였다면 준비하는 기간을 예측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갑작스레 진행한 행사라 상인들과 일정이나 할인율을 협의하느라 시작이 늦춰졌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금 이미 관광공사 등이 만든 한국방문위원회의 ‘코리아그랜드세일’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겹칠까봐 날짜를 비교적 늦게 잡았다”면서 “늦게 잡다 보니 블랙프라이데이 효과는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통시장만의 블랙프라이데이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약령시장 상인회 김 사무국장은 “이왕 행사를 한다면 차라리 전통시장은 기간을 구분해 진행했으면 더 나았을 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아동학과 교수는 전통시장과 백화점의 경우 같이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시기를 조절해 따로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전체적으로 따져 방문객 총수가 늘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블랙프라이데이와 같은 행사를 하면 소비자들이 백화점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통시장 블랙프라이데이’를 어떻게 개최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입장이 엇갈린다. 방신재래시장 상인회 관계자는 “행사가 다음에 진행될 때는 대형유통업체보다 2주 정도 일찍 시작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면 수유시장 상인회 관계자는 “블랙프라이데이 분위기를 타서 같이 진행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소상공인진흥회 마케팅지원실 관계자도 방문객 유입이 늘어난 만큼 따로 하는 것보다는 행사의 목적을 전통시장 신규 손님 확보라고 한다면 차라리 같이 하는 게 좋다는 입장을 밝혔다.

상인들의 입장이 엇갈리는 까닭은 실제 효과에 대한 조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소상공인진흥공단에서 밝혔듯이 애초에 블랙프라이데이 행사에 전통시장은 계획에 없었다. 약령시장 상인회 관계자도 “급하게 참여하는 식으로 추진하다 보니 전통시장에서의 소비촉진 효과를 다양하게 고려할 시간이 없었다”고 말했다. 대형마트의 유통구조와 전통시장의 유통구조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도 간과됐다. 이상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원래 외국에서 시작한 블랙프라이데이 행사의 취지는 공급자 입장에서 쌓인 재고를 처리해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한편 수요자 입장에서는 싼 값에 사게 하는 것인데, 대부분 소매 중심의 전통시장의 경우 대량의 재고가 남지 않는 구조라 재고정리 취지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11월 4째주 목요일 다음날)는 행사를 통해 재고를 정리한 뒤 다시 크리스마스 시즌을 준비하는 유통구조다. 이 교수는 “대부분 전통시장은 소매업으로 이뤄져 있어 처리해야 할 재고가 대량으로 남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애초에 블랙프라이데이의 취지와 맞지 않다”고 덧붙였다.

대기업 중심의 내수촉진 정책의 들러리로 전통시장이 동원되다 보면 이러한 문제점은 내년에도 반복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어떻게 말할까. 산업부 도 사무관은 “전통시장은 사실 추석 기간에 맞추어 여러 세일 행사가 있고, 전통시장만의 특성이 있기 때문에 이 기간에 축제나 다양한 행사와 함께하는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블랙프라이데이 시기를 유통업체와 전통시장 구분하기보다는 내년부터는 참여 전통시장 수를 올해 200여곳에서 500여곳으로 늘리도록 하고 지원금을 더 많이 지급하는 방식으로 추진할 것”이라며 “세부 방침은 올해 연말까지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주연 인턴기자 juyeon1214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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