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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에서]‘드론 페이퍼’

딴 나라 이야기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한창이던 10월 15일, 어쩌면 역사적인 사건이 될지도 모를 문건을 한 미국 인터넷 언론이 폭로했다. ‘드론 페이퍼’. 미국이 무인비행기 드론을 활용해 벌이는 ‘드론 전쟁’에 관한 비밀 문건이다. 보도 언론은 <인터셉트>라는 인터넷 매체다. 기억하는가. 2년여 전 에드워드 스노든이 폭로한 국가안보국(NSA) 불법 대량 정보수집을 보도한 언론인 글렌 그린월드를. 어쨌든 <인터셉트>가 ‘암살복합체’라는 이름으로 보도한 총 10건의 관련기사는 오바마 행정부 드론 전쟁의 민낯을 보여준다. 암살복합체라는 이름은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이 퇴임연설에서 경고한 ‘군산복합체’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드론 전쟁은 백악관, 중앙정보국(CIA), 국방부, 합동특수전사령부(JSOC) 등이 수행하고 있다.

미국의 드론 전쟁은 9·11테러 이후 14년 동안 계속되고 있지만 오바마는 전임자 부시보다 드론을 더 선호해 왔다. 미군의 희생을 줄이면서도 효과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어서다. 드론 페이퍼는 그동안 알려진 드론 전쟁의 비인간적이고 비효과적인 점을 재확인시켜 준다. 오바마는 2013년 5월 ‘미국인에게 지속적이고 즉각적인 위협’이 되는 경우에만 드론 공격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지침을 발표했다. 하지만 국방부 보고서에는 지침과 달리 ‘미국의 이익이나 미국인에게 위협’이 되는 경우로 확대 적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드론 공격 대상자의 정보를 얻는 데 활용되는 ‘시긴트’도 믿을 만하지 못하고, 공격 자체도 정확하지 않다는 사실도 공개됐다. 일례로 2012년 1월부터 13개월 동안 아프간 북동부에서 수행한 드론 공격으로 200여명이 사망했는데, 이 가운데 의도한 목표물은 35명에 불과했다. 약 90%는 무고한 희생자라는 얘기다. 물론 미국은 민간인 희생을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하고 있지만.

드론 페이퍼라는 이름만 보면 40여년 전 세상을 뒤흔든 ‘펜타곤 페이퍼’를 떠올릴 수 있겠다. 1971년 군사분석전문가 대니얼 엘스버그가 베트남전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주류 언론 <뉴욕타임스>에 공개한 국방부 비밀문서를 말한다. 미국이 베트남전 군사개입을 강화하는 구실로 삼은 통킹만 사건이 조작된 것으로 드러나 반전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반면 드론 페이퍼는 비주류 언론이 보도해서인지 거의 조명을 받지 못했다.

아닌 게 아니라 신문과 방송으로 해외 소식을 접하는 독자라면 이 뉴스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민간 통신사 <뉴스1>을 제외하고는 국가 기간 통신사를 자임하는 <연합뉴스>는 물론 일간지와 방송사 어느 곳도 보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딴 나라 이야기여서인가. 어쩌면 드론 페이퍼를 대하는 언론의 태도는 전쟁을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을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무관심과 외면 속에 역사적 방관자가 돼가고 있는 우리 말이다. 드론의 실상에 무감각해진다면 언젠가 드론에서 우리를 향해 테이저건이나 실탄이 날아올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믿지 않게 될 것이다.

<조찬제 편집장 / helpcho65@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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