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우편번호 알고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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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1만원, 6.46%, 60주, 18곳, 6만1970가구….

최근 한 신문에 게재된 기사에서 나오는 숫자다. 눈치 빠른 독자는 짐작할 것이다. 폭발하는 전셋값 상승 현상을 보여주는 수치들이다. 원고지 4장 정도의 짧은 기사 한 꼭지에도 꽤 많은 숫자가 인용됐다. 우리가 숫자에 적지않은 영향을 받으면서 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좋든 싫든,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숫자의 지배를 받는 세상에 살고 있다. 숫자는 삶의 기본 요소가 됐다. 아니 모든 생활이 숫자로 표시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숫자는 인격이 된다. 출생과 함께 부여 받은 후 평생을 함께해야 하는 주민등록번호는 곧 인격과 결부된 고유번호다. 주민등록번호만 안다면 웬만한 개인 신상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름과 나이, 주소는 물론 그의 재산이 얼마인지도 알 수 있다. 그래서 주민등록번호 도용은 인격 침해에 해당한다. 주민등록번호처럼 비밀보장(?)이 되지 않는, 공개적이면서도 비인간적인 숫자도 있다. 아니 비인간화를 조장하는 숫자라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일지 모르겠다. 번호로 불리는 사람들에게 부여된 수인번호다. 그들에겐 인격이 없다. 그저 숫자일 뿐이다.

경북지방우정청 및 동대구우체국 직원들이 지난 7월 29일 다음달 1일부터 5자리로 바뀌는 우편번호의 빠른 정착을 위한 길거리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 우정사업본부 제공

경북지방우정청 및 동대구우체국 직원들이 지난 7월 29일 다음달 1일부터 5자리로 바뀌는 우편번호의 빠른 정착을 위한 길거리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 우정사업본부 제공

숫자는 인격을 판단하는 이상의 수단으로도 작용한다. 숫자가 생활의 지표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때 숫자는 사람을 줄세운다. ‘평등수치’라는 ‘시쳇말’이 한 예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 중산층이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숫자라고 한다. 남녀평등, 사회평등 같은 사회적 정의를 얘기하는 용어가 아니다. 아파트 평수나 학교 석차를 나타내는 등수가 그것이다. ‘평등수치’처럼 숫자가 현실을 측정하는 잣대가 되는 경향이 농후해지고 있다. 삶의 질보다는 숫자 자체의 의미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성공 지향주의 혹은 결과 중시 현상이 짙어지는 것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하지만 ‘숫자에 갇힌 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한 상징조작된 숫자도 있다. 주로 창작분야에서 활용하는 편이다. 그 대표적인 예는 조지 오웰의 작품 <1984>이다. 이 소설의 첫머리는 “4월, 날씨가 쌀쌀하고 화창한 어느 날이었다. 벽시계가 13시를 알리고 있었다”로 시작한다. ‘4’(잔인한 4월)와 ‘13’(블랙 타임)은 통상적으로 불길한 숫자로 여긴다.

그게 작가의 의도다. 이 숫자는 빅브라더에 의해 통제 받는 강압적 사회를 상징한다. 현대사회의 윤리문제를 신랄하게 다룬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작품 <1Q84>는 <1984>의 이복동생쯤 된다. ‘Q’는 일본식 발음으로 큐다. 큐는 숫자 9를 의미한다. ‘<1Q84>=<1984>’인 셈이다. 오웰이 <1984>를 완성했던 1948년의 사회악이 통제사회였다면 무라카미가 <1Q84>를 쓴 2010년은 윤리해체사회라고 작가들은 보고 있는 것이다.

작품을 통해 보여주는 상징적 숫자는 인간성 회복을 요구한다. 그것은 인간생활을 보다 윤택하게 하는 도구로서 숫자의 의미를 찾는 작업일지도 모른다. 상징 속에서만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도 ‘인간적인 숫자’가 있다. 우편번호, 전화번호, e메일 주소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소통의 상징이다.

우정사업본부가 지난 8월 1일부터 도로명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우편번호를 도입했다. 시행된 지 거의 세 달이 지났다. 류일광 우정사업본부 사무관은 “새로운 우편번호를 숙지하고 집배 동선을 효율화하기 위해 집배원들이 많은 고생을 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아직 새로운 우편번호 사용량은 90%를 넘지 못하고 있다”며 아쉬움을 표시했다. 새로운 우편번호를 익히기 위해서라도 깊어가는 가을밤, 부모님, 연인, 친구에게 보내는 한 통의 편지를 써보자. 세상과 어울리고 사람과 마음을 나누는 편지 한 통이 숫자에 사랑을 담는 방법이 될 것이다.

<김경은 편집위원 jj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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