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LG ‘세탁기 전쟁’ 제2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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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사건’ 이후 양사 새 제품의 신기술 놓고 날선 비판

우리는 ‘적대적 공생’이라는 말을 간혹 쓴다. 상대방을 적대시하는 작업을 통해 자신의 존재 이유를 부각시키는 방편이다. 삼성과 LG 또한 엇비슷하다. 그러나 간혹 위험한 수준을 넘나들곤 하는데, 이런 때 서로는 물론 지켜보는 소비자도 불편하다.

지난해 9월 독일 베를린에 삼성전자 양판점의 세탁기 문짝 파손을 놓고 벌어진 삼성전자와 LG전자 간 다툼이 7개월 만인 올해 3월 말 ‘공식 화해’로 마무리된 듯하다가 최근 혁신적 세탁기를 내놓으며 전선을 옮겨왔다. 자존심을 건 세탁기 경쟁의 지휘자는 윤부근 삼성전자 소비자가전부문 대표이사(62)와 조성진 LG전자 H&A사업본부장(59)이다. 둘 다 2012년에 가전부문 수장을 맡은 뒤 국내는 물론 세계 가전명가 자리를 놓고 치열히 맞붙었다. 특히 윤 사장은 취임 후 “가전제품에서도 1등을 하자”고 공세적으로 나서면서 둘 사이 갈등을 예고했다.

(왼쪽부터)조성진 LG전자 H&A사업본부장, 윤부근 삼성전자 소비자가전부문 대표이사

(왼쪽부터)조성진 LG전자 H&A사업본부장, 윤부근 삼성전자 소비자가전부문 대표이사

트윈워시에 버블샷 애드워시로 맞불
가전에서 전통의 강자는 시장점유율 선두를 지켜온 LG다. 윤 사장이 이끄는 삼성이 근래 품질을 높이며 바짝 따라붙자 신경전이 뜨거워졌다. 양사 모두 사내에서 가전의 중요성이 부각되자 이들의 경쟁심에 기름을 더 끼얹은 꼴이 됐다.

‘고졸 신화’로 일컬어지는 조 사장은 7월 ‘트윈워시’라는 새로운 세탁기를 선보였다. LG전자 관계자는 “아이 옷이나 속옷처럼 섞어 빨기 싫어서 빨랫감을 나눠 큰 세탁기를 두 번 이상씩 돌리는 번거로움과 시간·전력·물 낭비라는 문제의식에서 착안한 제품”이라고 소개했다.

LG전자 ‘트롬 트윈워시’

LG전자 ‘트롬 트윈워시’

연구팀은 일반 가정집에서 따로 빨고 싶어하는 용량이 약 3.5㎏으로 크지 않은 점을 감안했다. 자체 조사한 결과로는 소비자의 약 60%가 속옷이나 물이 잘 빠지는 옷감을 분리 세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어린 자녀를 둔 소비자들은 약 80% 정도가 분리 세탁을 한다고 답했다.

그 결과 LG전자는 기존 드럼세탁기 아래에 작은 통돌이형 세탁기를 덧붙인 2중 구조 제품을 고안해냈다. 탈수할 때와 같이 좌우로 흔들리게 되는 통돌이 세탁기의 진동을 최소화하기 위해 자동차 서스펜션 같은 기술도 넣었다. LG전자 관계자는 “하단의 트롬 미니워시는 별도로도 구할 수 있다”며 “기존 LG 드럼세탁기 아래에 붙여서 쓸 수 있게 크기를 맞췄다”고 설명했다. 트롬 트윈워시 출고가는 230만~280만원대, 하단 트롬 미니워시 출고가는 82만원대다.

삼성전자 ‘버블샷 애드워시’

삼성전자도 새 제품군으로 LG 따라잡기에 속도를 냈다.

삼성전자 ‘버블샷 애드워시’

삼성전자 ‘버블샷 애드워시’

삼성이 지난달 시판한 ‘버블샷 애드워시’는 작은 창문인 ‘애드윈도우’를 채용해 세탁물을 간편하게 추가할 수 있게 만든 드럼세탁기다. 세탁·헹굼·탈수 등 작동 중에 ‘일시정지’ 버튼을 눌러 애드윈도우만 열어서 세탁물을 추가하고 다시 돌리면 된다. 배수가 되지 않는 상태에서 문을 열 때 세제 거품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일도 피할 수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물과 세제가 절약되는 것은 물론 시간까지 줄여 준다”고 자랑했다.

애드윈도우는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기 전에는 열리지 않도록 설계됐다. 작동 중에 문이 열리면 세탁물이 튀어나올 수도 있고, 어린이 등의 안전사고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빨래 투입구는 아이가 문을 열고 머리를 집어넣을 위험도 있어서 머리 크기보다 작게 만들었다.

삼성전자 측은 “기존 드럼세탁기에 세탁물 추가 기능이 있는 제품도 있지만, 세탁물이 많으면 문으로 물이 넘치지 않도록 배수하고 다시 급수하므로 시간과 물, 세제를 낭비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애드워시 모델은 17㎏, 19㎏, 21㎏ 세 가지 용량별로 169만9000∼249만9000원이다.

삼성 세탁기의 혁신은 앞서 2013년부터 추가된 물을 안 쓰고 말리는 ‘무수건조’ 기술에서도 나타났다. 빨래 말릴 때 물이 더 쓰인다는 사실을 아는 소비자는 적다. 기존 드럼세탁기는 세탁통에 찬물을 닿게 해 물방울로 응결시켜 밖으로 배출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빨래를 건조한다.

삼성전자는 물방울로 응결시키는 과정 없이 밖으로 습한 공기를 배출하는 동시에 별도 흡입구로 건조한 외부 공기를 불어넣어 빨래를 말리는 ‘무수건조술’을 개발했다. 이번 애드워시 모델에도 적용됐다. 삼성전자 측은 “자사 모델과 비교해 보니, 기존 드럼세탁기 방식보다 52ℓ(3㎏ 세탁물 건조 시)의 물을 아낄 수 있고 건조시간도 절반으로 줄었다”고 밝혔다.

앞서 올해 1월 삼성전자는 빨래판 일체형 세탁조 뚜껑인 ‘빌트인 싱크’와 전용 급수 시스템인 ‘워터젯’을 적용해 애벌빨래부터 본세탁까지 한번에 하는 ‘액티브 워시’ 통돌이세탁기도 선보였다.

삼성-LG ‘세탁기 전쟁’ 제2라운드

미국시장에서 양사 엎치락뒤치락
LG와 삼성은 각자가 내세우는 기술을 놓고도 서로 비방한다. 삼성의 애드워시 세탁기를 겨냥해 LG 조 사장은 지난달 독일에서 “우리는 세탁물 추가 버튼이 별도로 존재해서 그걸 누르면 5~7초 사이에 문이 열리고 동작하는 게 애드워시와 같다”며 “삼성이 왜 조그만 문을 달았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LG전자 측은 “삼성 세탁기는 구조상 세탁물을 추가하는 데 시간이 우리보다 더 걸려서 별도의 작은 문을 만든 것 같다”고도 했다.

전시문 LG전자 세탁기사업부장도 지난달 21일 창원에서 삼성의 액티브워시 세탁기에 대해 “버킷(양동이)을 하나 올려놓은 게 무슨 기술이냐”며 “우리는 1981년에도 내놓은 제품”이라고 깎아내렸다. 반면 삼성 관계자는 “LG가 드럼세탁기 아래에 작은 통돌이를 하나 더 붙인 게 뭐가 혁신적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양사는 대표적 드럼세탁기 시장인 미국에서 접전을 펴고 있다. 스티븐슨컴퍼니의 시장조사 결과 매출액 기준으로 올해 상반기 전체로는 LG가 선두(24.3%)를 지켰지만, 2분기는 삼성이 22.3%로 LG(21.8%)를 근소하게 따돌리고 1위로 올라섰다. 2006년 미국에 드럼세탁기를 내놓은 지 9년 만에 처음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지난해 9월 독일에서 벌어진 한 사건으로 양측은 비판의 날을 더 세우게 됐다. 독일 IFA 전시회를 앞두고 삼성전자의 양판점에 있던 드럼세탁기의 돌쩌귀(경첩)가 부서졌다. 이는 ‘공교롭게도’ 경쟁사 제품을 만져본 LG전자 조 사장이 다녀간 뒤였다.

삼성은 조 사장이 문짝을 세게 눌러 파손한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LG도 삼성 직원이 증거를 조작했다고 맞고소했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리됐다. 양측의 낯 뜨거운 비난전은 올해 3월 권오현 삼성전자 대표이사와 구본준 LG전자 대표이사 등 최고경영자의 합의문 발표로 일단락된 모양새가 됐다. 다만 명예훼손, 업무방해 측면은 고소 취하가 됐지만 재물손괴에 따른 형사사건 측면에서 재판은 진행 중이다. 양측은 숨죽여 재판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 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9부(재판장 윤승은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5차 공판에서 독일 국적의 C씨(28)는 검찰 측 증인으로 나와 “LG전자 임직원이 방문할 당시 여러 사람이 세탁기 도어를 직접 열어 보는 것을 목격했다”면서도 “조 사장이 세탁기 도어를 누르는 것을 직접 본 것은 아니다. 얼굴을 일일이 기억하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조 사장 측 변호인은 “조 사장의 행동으로 세탁기가 파손됐다고 볼 근거가 없다”고 반론을 폈다.
이번 사건의 결말이 어떻게 날지는 더 지켜볼 일이지만, 조 사장 일행이 삼성 세탁기 문을 누르는 장면은 LG전자가 해명한 유튜브 동영상 속 CCTV 장면에도 나온다.

LG 측은 “세탁기 전문가인 조 사장이 안전이나 내구성 확인 측면에서 문을 여닫고 눌러보는 건 자연스런 행동이었다”고 적극 설명했다. 문에 무거운 옷감을 올리거나 간혹 아이들이 올라앉기 때문에 튼튼히 만들어야 한다는 게 LG 측의 설명이다. 삼성 세탁기 문의 경첩이 조 사장의 점검 때문에 부러졌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이 대목은 서로 불필요한 자존심 경쟁으로 부추겨진 면도 크다.

만에 하나 ‘고의성 없이’ LG전자 일행 탓에 삼성의 제품이 부서졌다면 깨끗이 사과하면 될 일이다. 세탁기 문짝을 눌러보는 건 전문가로서 납득할 만한 일이라는 게 전자업계 관계자의 일반적 평이다.

이후 삼성전자는 세탁기 경첩을 더 튼튼한 재질로 교체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히려 이번 사건으로 삼성이 교훈을 얻은 셈이니까 손해본 장사가 아니다. 서로가 진실이나 품질개선이라는 핵심은 애써 외면한 채 상대방 깎아내리기에 치중한 것은 주객이 뒤바뀐 꼴이다.

양측이 신경전을 펴는 것은 최근 세계 전자업계 현실과 맞물려 해석되기도 한다. 삼성은 주요 수입원이던 스마트폰 부문에서 수익률이 떨어지며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LG는 스마트폰에서 재미를 못 보고 전반적으로 위기에 놓였다. 결국 양사 모두 가전사업에 상당한 무게가 가해지는 상황이라면 앞으로도 이런 진흙탕 싸움을 종종 봐야 할 수 있다. 소비자들은 선의의 경쟁을 기대할 뿐, 누가 무슨 욕을 하는지는 별로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지친 소비자들은 대체재를 찾게 된다.

2010년대 들어 더 치열해진 신경전

삼성과 LG는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TV 등의 품질을 놓고 툭하면 설전을 펴는가 하면, 기술유출 따위를 이유로 소송전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둘의 관계를 ‘견원지간(개와 원숭이 사이)’이라고 부르는 것도 영 틀린 말이 아니다.

2010년대 들어 양측 다툼은 더 치열해졌다. 가전제품은 물론 TV 등에 쓰이는 디스플레이 기술을 놓고서도 한치 양보 없는 비판이나 소송에 나서고 있다. 보다 못한 정부가 중재에도 나섰지만 화해는 잠깐뿐이었다.

2011년에는 3차원(D) TV 기술방식을 놓고 비방했다. 김현석 삼성전자 부사장(현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은 기자들에게 “권영수 LG디스플레이 사장이 ‘패시브(LG의 3D 기술) 방식도 풀HD’라고 했다는데, 그의 밑에 있는 엔지니어가 ‘정말 멍청한 XX들’밖에 없는 거 같다”고 비난했다. 권 사장도 틈만 나면 삼성의 액티브 3D 방식을 비판했다.

이듬해에는 디스플레이 기술유출 건으로 소송전이 벌어졌다. 검찰은 2012년 5월 삼성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기술을 유출한 혐의로 LG디스플레이 본사를 압수수색해 임직원들을 대거 기소했다. 삼성은 LG디스플레이를 상대로 기술 사용을 금지해 달라는 영업비밀 침해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이에 LG디스플레이 측은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를 상대로 특허침해 금지 및 손해배상 소송으로 응수했다.

삼성, 엘지는 900ℓ급 대형 냉장고가 유행하자 용량을 놓고도 맞고소를 했다. 삼성전자가 2012년 7월 900ℓ ‘삼성 지펠 9000’을 세계 최대라고 발표하자, LG전자가 보름 만에 910ℓ 냉장고 ‘디오스 V9100’으로 ‘세계 최대’ 타이틀을 빼앗아 버렸다. 삼성은 ‘냉장고 용량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유튜브 동영상까지 올려 LG 냉장고 용량이 실제보다 적다고 물고 늘어졌고, LG전자는 100억원대 소송을 냈다. 정부가 중재에 나서서야 2013년 9월 소송을 취하했다.

TV 화질 경쟁도 종종 싸움거리가 됐다. 초고화질(UHD) 화소를 놓고 삼성은 LG의 ‘RGBW 방식’ 패널을 평가절하했다. TV 화면은 적색(R)·녹색(G)·청색(B) 3원색 비율을 조율해 화소를 만든다. RGBW는 하위픽셀 일부를 흰색(W)으로 바꿔 밝기를 높였다. RGBW 패널은 흰색 화소를 활용해 같은 전력에서 밝기가 60% 개선되고, 같은 밝기에서는 전력을 30% 줄여준다. 비싼 UHD TV 가격을 떨어뜨리기엔 RGBW 패널이 효과적이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10월 UHD 패널 점유율 28.1%로 삼성을 누르고 1위 자리에 올랐다.

이를 눈 뜨고 당할 삼성이 아니었다. 박동건 삼성디스플레이 사장은 LG디스플레이의 RGBW를 “중국 UHD TV에나 들어가는 보급형 패널”이라고 깎아내렸다. 이에 황정환 LG전자 TV개발담당 전무는 지난달 독일 전시회에서 “LG전자의 RGBW 패널은 국제표준기관에서 4K 해상도를 인정 받았다”고 반박했다.

TV 패널 다툼은 시장이 열리고 있는 OLED로도 옮겨왔다. 삼성전자는 지난 1월 “최선의 선택은 OLED가 아닌 SUHD”라고 주장했다. 반면 LG 관계자는 “삼성의 SUHD는 일반 LCD의 업그레이드 버전일 뿐이며, 차원이 다른 OLED와 비교 자체가 안 된다”고 폄하했다.

이런 앙숙관계는 삼성, LG를 세계 유수의 브랜드로 성장시킨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종종 소비자들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품질 다툼도 좋지만 국내 시장에서도 가격경쟁이나 하라는 게 다수 소비자들의 요구다.

전병역 기자 junby@kyunghyang.com


<전병역 기자 junb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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