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지에 몰린 플라티니, FIFA 회장 선거 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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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티니가 갑자기 궁지에 몰린 것은 최근 수사에서 블라터 회장에게 2011년 2월 200만 스위스프랑(약 24억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스위스 검찰은 이 자금의 전달 시기와 성격을 의심하고 있다. FIFA회장 선거를 두 달 앞둔 시점에 돈이 전달됐다.

“살다 보면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때가 온다.”

미셸 플라티니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60·프랑스)은 지난 7월 국제축구연맹(FIFA) 209개 회원국에 편지를 띄웠다. 당시만 해도 세계 축구를 이끄는 수장 자리에 출마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는 문구로 가득했지만, 2개월여 지난 요즘엔 자신의 군색한 처지를 변명하는 내용으로 새롭게 읽힌다. FIFA 비리를 수사 중인 스위스 검찰의 칼끝이 제프 블라터 현 FIFA 회장(79·스위스)을 넘어 플라티니의 심장까지 겨누고 있는 탓이다.

5월 29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FIFA 총회에서 미셸 플라티니 유럽축구연맹 회장(오른쪽)이 제프 블라터 FIFA 회장의 연임이 확정되자 손을 맞잡고 있다. / AFP연합뉴스

5월 29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FIFA 총회에서 미셸 플라티니 유럽축구연맹 회장(오른쪽)이 제프 블라터 FIFA 회장의 연임이 확정되자 손을 맞잡고 있다. / AFP연합뉴스

10년 지나 받아 석연치 않은 고문료
영국 공영방송 BBC는 지난 9월 29일 스위스 검찰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해 “플라티니가 FIFA 부패의혹에 점점 엮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카엘 라우버 스위스 검찰총장은 “플라티니는 참고인과 피의자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고 말했다. 라우버 검찰총장의 발언은 최근 “난 정보 제공 차원의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았을 뿐”이라며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했고, 그 어떤 범죄혐의와도 관련이 없다”는 플라티니 회장의 해명을 반박한 것이다. 9월 25일 스위스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플라티니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피의자 신분으로 바뀔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플라티니가 갑자기 궁지에 몰린 것은 최근 수사에서 블라터 회장에게 2011년 2월 200만 스위스프랑(약 24억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스위스 검찰은 이 자금의 전달 시기와 성격을 의심하고 있다.

FIFA 회장 선거를 두 달 앞둔 시점에 돈이 전달됐다. 당시 선거에서 블라터 회장은 유력한 라이벌인 플라티니가 선거를 포기한 덕에 4선에 성공했다. 플라티니는 이 돈에 대해 “1999년부터 2002년까지 FIFA 기술고문으로 일한 대가를 당시 FIFA 재정상태가 좋지 않아 (9년이 지나) 뒤늦게 받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FIFA가 매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는 재정보고서를 살펴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2002년 FIFA 재정보고서에 따르면 FIFA는 1999년부터 2002년 사이 1억1500만 스위스프랑(약 1414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고작 200만 스위스프랑이 없어 9년 뒤에 지급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스위스 검찰은 필요에 따라 스위스 니옹에 있는 UEFA 본부를 수색할 수 있다는 의견까지 내놨다.

플라티니가 수사 대상에 오르면서 내년 2월 FIFA 회장 선거를 앞둔 표심도 흔들린다. 플라티는 209개 회원국이 1표씩 행사하는 이 선거에서 아프리카(54표)를 비롯해 유럽(53표), 아시아(46표), 북중미·카리브해(35표), 오세아니아(11표) 등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어 당선을 확신했던 터. 그러나 영국 가디언은 “플라티니가 FIFA 윤리위원회의 조사를 받게 될 것”이라며 차기 회장 출마도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고 보도했다. 현 회장이 부패의혹으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힌 상황에서 차기 회장까지 같은 상황을 겪을 경우 FIFA 전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구 퇴출된 잭 워너 전 FIFA 부회장처럼 플라티니도 FIFA 윤리위원회의 중징계를 받을 수 있다는 얘기마저 흘러나온다.

궁지에 몰린 플라티니, FIFA 회장 선거 요동

알리 왕자 급부상, 정몽준은 반전 노려
당장 플라티니의 본진 격인 유럽에서 진실을 밝히라는 해명 요구가 쏟아지고 있다. 지난 7월만 해도 “플라티니 회장은 FIFA 개혁의 적임자”라고 했던 카를로 타베치오 이탈리아 축구협회장은 “사법절차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끝까지 지켜볼 것”이라고 입장을 바꿨고, 그렉 다이크 잉글랜드 축구협회장은 “현재 불거진 의혹이 완벽하게 조사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플라티니의 열렬한 지지자로 분류됐던 볼프강 니어스바흐 독일 축구협회장도 “아직 플라티니를 지지하지만, 이번 의혹에 정말 문제가 있었는지 면밀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측근이 떠나는 악재도 겹쳤다. AP통신에 따르면 플라티니의 비서실장인 케빈 라무어는 무기한 휴직을 신청하고 사무실을 떠났다. UEFA 측은 “이미 몇 달 전에 9월 말 휴직을 하기로 합의가 된 사안이고, 휴직기간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애써 의미를 축소했지만 FIFA 회장직 선거를 불과 4개월여 남겨둔 시점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태인 셈이다.

플라티니가 흔들리면서 경쟁자들은 환한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FIFA 회장 선거에 재도전 중인 알리 빈 알 후세인 요르단 왕자(40)가 대표적이다. 그는 플라티니가 검찰 조사를 받았다는 소식이 흘러나오자 “내가 FIFA 수뇌부의 부패를 해결할 수 있는 안전한 선택지”라며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요구는 FIFA의 신뢰를 회복하도록 만들어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축구계도 알리 왕자를 주목하고 있다. ‘반 블라터’ 성향의 인물일 뿐만 아니라 실적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알리 왕자는 지난 5월 FIFA 회장 선거에서 블라터 현 회장에게 1차 투표에서 73-133으로 완패하자 2차 투표를 포기했다. 플라티니와의 표싸움에서도 약세가 점쳐졌지만, 최근 분위기가 달라졌다. 여론 정보에 누구보다 민감한 베팅업체들이 당장 플라티니를 예상 당선자 1순위 자리에서 지우고 그 자리에 알리 왕자의 이름을 올려놓은 게 그 증거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베팅업체 ‘윌리엄힐’은 플라티니의 당선 가능성을 3분의 1로 줄여 배당률을 새로 책정했고, 또 다른 베팅업체 ‘라드브록스’는 알리 왕자의 당선 확률을 25%에서 64%로 크게 올렸다.

군소후보로 분류됐던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64)도 연일 플라티니를 비판하면서 반전을 꿈꾸고 있다. 정몽준 명예회장은 “플라티니도 수사 대상에 올랐다는 사실에 슬픔을 느낀다”며 “FIFA에 비상대책기구 설립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자신의 순수성과 개혁을 강조해 세몰이를 꿈꾸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정몽준 명예회장의 텃밭인 아시아 무대를 이미 알리 왕자에게 뺏긴 전력이 있어 실질적인 표대결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낮다는 평가가 나온다.

<황민국 경향신문 스포츠부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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