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 “큰손 유커를 모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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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백화점 중국인 고객 매년 두 배 넘게 증가… 롯데면세점 소공점 매출의 70% 차지'

결혼을 앞둔 중국인 양샤오량(30)은 지난 8월 예비신부 쉬징징(27)과 함께 한국을 방문했다. 이들의 방한 목적은 한국식 웨딩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 촬영에 앞서 커플은 서울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본점에 들러 쇼핑을 했다. 여느 예비부부처럼 예복과 예물을 구입했지만 이들의 구매내역은 ‘억소리’가 난다. 예비신랑을 위해 수입 남성복 톰브라운 매장에서 1000만원짜리 정장을 구입한 이들은 예물용으로 롤렉스 남녀 시계를 1억5000만원에 샀다.

유커(중국인 관광객)가 국내 유통업계의 ‘큰 손’으로 등극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경기침체로 내수 불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유커들의 씀씀이는 ‘제2의 내수’로까지 불리며 유통업체 실적 유지에 톡톡히 기여하고 있다.

유커의 매출 기여도는 숫자로 증명된다.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과 강남 무역센터점의 2011~2014년 중국인 고객 매출 신장률은 연 평균 141%가 넘는다. 매년 두 배 훨씬 넘게 증가한 셈이다. 같은 기간 중국인 고객 숫자도 해마다 갑절 이상 늘었다. 중국인 1인당 객단가는 2011년 98만원에서 지난해 126만원으로 뛰었다. 올해 상반기는 127만원이다.

중국인 커플이 신세계백화점이 서울 청담동에서 운영하는 명품 편집숍 ‘분더샵’에서 액세서리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 신세계백화점

중국인 커플이 신세계백화점이 서울 청담동에서 운영하는 명품 편집숍 ‘분더샵’에서 액세서리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 신세계백화점

씀씀이 러시아·일본 관광객의 5배
고객 수가 해마다 갑절씩 늘어나면서 동시에 객단가도 높아지는 것은 그만큼 구매력이 큰 중국인 고객이 많다는 뜻이다. 지난해 기준 국가별 고객 객단가를 보면 러시아 관광객은 35만원, 일본 관광객은 20만원이다. 중국인 관광객 한 명이 쓰는 돈의 20% 정도에 불과하다. 내국인 고객도 식품을 제외하면 평균 객단가가 34만원 수준이다.

매출 의존도도 커지고 있다. 서울 소공로 롯데백화점 본점의 경우 전체 매출에서 중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2013년 10.9%에서 지난해 17.2%로 크게 늘었다. 올해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의 영향으로 6~7월 큰 타격을 입었음에도 8월까지 12.8%를 기록 중이다.

중국인 단체관광객이 몰리는 면세점은 아예 유커가 먹여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일매장 가운데 매출규모가 가장 큰 롯데면세점 소공점의 경우 지난해 매출액 1조9000억원 가운데 70%를 중국인이 올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백화점과 면세점 등은 저마다 VIP 유커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1년 내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온라인과 모바일 쇼핑이 성장하고 소셜커머스, 해외직구 등이 인기를 끌면서 성장세가 둔화된 이들 오프라인 사업장으로서는 유커 확보가 사활을 건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현대백화점은 ‘큰손’ 중국인을 단골로 만들기 위해 지난 5월 ‘중국인 VIP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하루 500만원 이상 구매한 중국인 관광객을 VIP 등급으로 분류해 별도로 관리한다. 등급은 실버, 골드, 다이아몬드 등 3개로 나뉜다. 각각 500만원, 4000만원, 1억원 이상 구매해야 회원 자격이 주어진다. 이들에겐 등급별로 생일 케이크와 편지, 신년 선물, 대리주차 서비스, 리무진 콜택시 서비스, 라운지 이용 등의 혜택이 주어진다.

현대백화점 직원들이 서울 압구정동 본점에서 25일부터 시작되는 ‘코리아 그랜드 세일’행사를 앞두고 현관 앞에 외국인 고객드을 위한 안내문구를 붙이고 있다. / 현대백화점

현대백화점 직원들이 서울 압구정동 본점에서 25일부터 시작되는 ‘코리아 그랜드 세일’행사를 앞두고 현관 앞에 외국인 고객드을 위한 안내문구를 붙이고 있다. / 현대백화점

현대백화점은 중국인 중 재방문하는 손님을 25% 정도로 보고 있다. 이들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찾아와 고가의 명품 브랜드에서 의류·화장품 등 해당 시즌에 나온 신제품을 사 간다. 지난해 2억원짜리 피아제 시계를 구입한 30대 중국 여성 ㄱ씨는 지난 8월 본점을 재방문해 까르띠에 장신구류를 사는 데 4000만원을 썼다. 40대 중국 남성 ㄴ씨는 올해 본점을 네 번 넘게 방문하며 에르메스 매장에서만 약 8억원어치의 가방과 스카프 등을 구입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최근 유커 쇼핑 트렌드가 ‘묻지마식’ 브랜드 제품 구매에서 입소문과 실사용 후기를 중시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며 “전통 장인이 소량 제작하는 10년 숙성 꿀이 인기를 끄는 등 잡화나 패션에서 건강식품류까지 관심 상품군도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VIP 등급으로 분류해 별도로 관리
신세계백화점은 ‘웨딩 유커’를 사로잡아 평생고객으로 만든다는 전략을 세웠다. 신세계는 지난 9일 조선호텔, 이마트 등 그룹 계열사와 함께 중국인 예비신혼부부 두 쌍을 초대해 4박5일 동안 한국식 결혼서비스와 혼수 쇼핑의 기회를 제공하는 팸투어 행사를 진행했다. 이들은 백화점과 마트에서 예물 쇼핑을 한 뒤 메이크업을 받고 강남의 유명 스튜디오에서 웨딩 촬영을 했다. 신세계는 구매력이 높은 중국의 ‘바링허우’(1980년대 이후 출생해 물질적 풍요를 누린 20대 중반~30대 초반 세대) 고객들이 한국식 결혼문화인 ‘스드메’(스튜디오 촬영과 웨딩 드레스, 메이크업) 서비스를 선호한다는 점에 착안했다. 업계에선 해마다 1만쌍에 가까운 중국인 예비부부가 한국식 이 서비스를 체험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신세계 관계자는 “9월부터 연말까지 이어지는 중국 결혼 성수기에 맞춰 웨딩 유커 수요를 끌어들이기 위해 바이럴(입소문) 마케팅의 일환으로 행사를 기획했다”며 “한 번 고객이 되면 나중에 아기가 태어난 뒤에도 분유와 육아용품 등을 구매하러 재방문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유통업계 “큰손 유커를 모셔라”
유통업계 “큰손 유커를 모셔라”

갤러리아 명품관은 외국인 컨시어지 서비스로 중국인 단골 고객을 관리하고 있다. 전담 직원이 일대 일로 손님을 따라다니며 통역과 상품 설명은 물론 맛집 등 여행정보까지 제공하는 컨시어지 서비스는 2009년 일본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시작됐다. 지금은 전담 직원 13명 중 10명이 유커만 상대한다. VIP 손님을 응대하는 직원들은 대부분 베이징대, 칭화대 등 중국 명문대 출신이다.

롯데백화점은 이달 초 중국의 파워 블로거 3명을 초청해 백화점과 롯데아울렛 등에서 2박3일 동안 무료 쇼핑 여행을 시켜줬다. 이들 블로거는 중국 현지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팔로어 수가 40만명에 이른다. ‘얼리 어답터’들의 쇼핑 후기를 통한 홍보효과를 노린 것이다. 롯데백화점은 이달 말부터 명동지역 30여개 호텔과 연계해 투숙하는 중국인에게 롯데백화점 할인쿠폰 등을 증정하는 지역 마케팅도 펼칠 계획이다.

롯데면세점은 중국인 관광객을 직접 불러들이는 방식을 고수한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의 약 20% 이상을 롯데면세점이 직접 유치했다. 롯데면세점은 중국 현지에 8개 사무소를 운영하며 인센티브 관광을 포함한 단체관광객을 모으고 있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를 개설해 40만명이 넘는 회원을 확보하는 등 현지화 전략도 병행하고 있다.

<김형규 경향신문 산업부 기자 fideli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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