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묻고, 따지고, 검열하는 ‘참! 야박한 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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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고로 자살한 송파구 ‘세 모녀 사건’ 이후 정부는 복지사각지대를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빈곤층이 체감하는 현실은 정반대다. ‘부양의무’와 ‘근로능력’이라는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대며 수급권을 박탈하기도 한다. 빈곤층에 대한 복지를 ‘도덕적 해이’의 시각으로 검열한다면 세 모녀 사건은 현재 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아줌마, 일 안 하신다면서요?” 김지선씨(가명)는 구청 직원의 윽박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거 다 불법이에요. 민·형사상 처벌 받을 줄 알고 계세요.” 구청 직원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온 김씨의 사진을 찍으며 말했다. 공포로 눈앞이 캄캄해졌다. 수급자격이 박탈되면 아들과 어떻게 살지? 김씨는 넋이 나간 채로 그대로 길바닥에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다.

김씨는 아들과 단둘이 산다. 남편은 아들이 초등학교 때 죽었다. 혼자 남은 김씨는 몸이 아파 일을 할 수 없었다. 기초생활수급 가정이 됐다. 월 80만원 남짓으로 모자가 살았다. 아들은 공부를 잘했다. 어려운 형편에도 열심히 공부하는 게 기특하고, 미안했다. 참고서라도 몇 권 사주고 싶었다. 사정을 잘 아는 동네 식당 주인이 식당이 바쁠 때 나와 설거지나 허드렛일을 해 보겠느냐고 했다. 몸이 아파 몇 시간씩 할 수 없으니 주말이나 평일 저녁에 잠깐씩 일을 했다. 그렇게 해서 번 돈이 한 달 20만원. 그 돈으로 아들에게 문제집과 책을 사줄 수 있어 좋았다. 그걸 누군가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를 한 모양이었다. 구청 직원들이 김씨가 일하는 곳을 찾아왔다. 김씨에게 다시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라고 했다. 수급자격은 유지됐으나 수급비는 20만원씩 차감됐다. 김씨가 벌었던 돈만큼 정부는 수급비를 압류해간 것이다.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함께 찾아주세요!’ 2014년 2월, 서울 송파구 반지하방에서 세 모녀가 자살했다. 생활고가 원인이었다. 보건복지부는 복지 소외계층 전국 특별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나섰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2011년 4월 공중화장실에서 생활하는 세 남매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자 그때도 정부는 복지 소외계층을 찾겠다며 전국 일제조사를 실시했다.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겠다’는 것은 큰 사건이 있을 때마다 정부가 내거는 약속이다. 하지만 빈곤층이 체감하는 현실은 정반대다. 담당 공무원들은 마른 수건을 쥐어짜듯 부정수급자를 찾고 ‘부양의무’와 ‘근로능력’이라는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대며 수급권을 박탈하기도 한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지역 주민들이 희망구호 쌀을 받기 위해 줄지어 서 있다. / 연합뉴스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지역 주민들이 희망구호 쌀을 받기 위해 줄지어 서 있다. / 연합뉴스

공무원에 근로 ‘걸린’ 기초생활수급자
지난 9월 7일, 국회에서는 ‘맞춤형 개별급여 시행 한 달, 문제점과 개선과제’를 주제로 한 토론회가 열렸다. 맞춤형 개별급여는 소위 ‘세 모녀법’이라고 불리는 개정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다. 2014년 12월 개정돼 지난 7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주요 문제점으로 부양의무제와 근로능력평가제가 꼽혔다. 부양의무제는 부양의무자가 일정 소득 이상을 벌면 수급을 받을 수 없는 제도다. 근로능력평가제는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일할 능력이 있다고 평가받게 되면 수급을 못 받거나 일을 하는 것을 조건으로 조건부 수급을 받는 제도다. 이 제도들이 적용하는 기준이 현실성이 없어 벼랑 끝에 내몰린 빈곤층이 수급을 받지 못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부양의무제와 근로능력평가제는 빈곤층 ‘복지 검열’의 두 기둥이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이 제도는 ‘국가 정책의 방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국정 과제로 내걸면서 첫 번째 과제로 부정수급 근절을 꼽았다. 그 일환으로 2013년 10월부터 국민권익위원회, 보건복지부, 노동부, 여성가족부가 함께 ‘정부 합동 복지부정 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2014년 1월 국민권익위원회는 “절반이 넘는 국민이 부정수급 사례를 직접 목격하거나 안 것으로 나타났다”는 설문조사를 발표했다. 응답자의 57.3%가 ‘주변에서 부정수급 사례를 보거나 알게 된 적이 있다’고 응답했고, 그 중 ‘저소득분야(기초생활생계비, 한부모지원 등)’가 34.9%로 가장 많았다는 내용의 조사였다. 이 조사는 빈곤층의 수급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형성했다.

그러나 실제로 현실에서 저소득층의 부정수급은 얼마나 될까. 국민권익위원회는 신고센터 설립 100일을 맞은 2014년 1월, 100억원에 이르는 복지 부정 금액을 대대적으로 적발했다고 홍보했다. 그러나 이들이 낸 성과보고서를 보면 100억원 중 97억8000만원은 병원 사무장과 사회복지시설 등 기관의 비리에 의한 것이었다. 빈곤층에서 기초생활수급비를 부정수급했다가 적발된 돈은 7000만원에 불과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김윤영 외 지음, 북콤마) 김지선씨(가명)처럼 수급비에서 차감당한 사례도 적발된 빈곤층 부정수급에 속할 것이다.

2014년 2월 생활고로 자살한 세 모녀가 남긴 메모 / 서울지방경찰청 제공

2014년 2월 생활고로 자살한 세 모녀가 남긴 메모 / 서울지방경찰청 제공

정부의 ‘복지 검열’은 빈곤층에게는 생사의 갈림길이다. 부양의무제와 근로능력평가에 걸려 수급 자격을 박탈당한 빈곤층은 삶보다 죽음을 가깝게 여긴다. 기초생활수급이 유일한 삶의 끈인 이들이다. 부양의무제로 기초수급 자격에서 탈락한 윤선영씨(가명·62)도 마찬가지다. 윤씨는 이의신청을 준비 중이다. 만약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남은 선택은 노숙밖에 없다. 사실 죽음을 떠올리는 일도 낯설지 않다. 윤씨는 남편과 둘이 산다. 4년 전만 해도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20년 동안 남편은 한 동네에서 성실하게 부동산업을 하며 지역에서 신뢰도 쌓고 재산도 제법 모았다. 남편이 갑자기 이유도 모를 정신병에 걸리면서 삶은 내리막길로 곤두박질쳤다. 남편이 습관적으로 절도를 하기 시작했고, 재판하고 합의금을 마련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가세는 기울어졌다. 과거 남편이 투자를 하면서 진 빚도 갚아야 해서 생전 사업이라고는 해본 적 없는 윤씨는 혼자서 부동산을 정리하고 집을 팔아 돈을 갚아 나갔다. 아들 부부 역시 이 과정에서 본인 명의 집을 팔아 부모님의 빚 갚는 데 보탰다. 아들은 아들대로 다시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느라 빚을 지게 됐고, 그 과정에서 며느리와 관계가 나빠졌다. “며느리는 이제 내 전화를 받지 않는데, 내 생각에는 그게 현명한 일일지도 모른다. 저희들 가정이라도 지켜야지 우리까지 신경쓰다가는 두 집 모두 풍비박산이 난다.” 보증금 300만원에 월 25만원 월세 지하방에 살고 있는 윤씨는 이사온 지 두 달이 됐지만 두 달 넘게 세를 내지 못하고 있다. 남편은 혼자서는 생활을 하지 못해 일을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 보증금도 완납하지 못하고 월세도 두 달이나 체납되면서 집주인이 윤씨의 손목을 잡고 동주민센터로 데리고 갔다. 다행히 긴급지원 신청이 돼서 3개월 동안 69만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첫 달 받은 돈으로 바로 밀린 월세 50만원부터 갚았다. 그러나 긴급지원은 가능하지만 기초생활수급 자격은 안 된다는 게 동사무소의 답변이었다. 이제는 연락도 안 되는 아들과 며느리가 소득이 있기 때문이었다. 윤씨는 “담당 공무원은 연락 단절로 볼 수 없다고 하는데, 엄마로서 이 얘긴 꼭 하고 싶다. 나 때문에 아들 가정을 깨지게 할 수도 없고, 나 때문에 빚도 많이 졌는데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아요 민생보위복지상담소 상담활동가는 “부양의무자의 소득이 조금 늘었다면 부양 무능력자였다가 부양 능력자로 전환돼 바로 기초수급에서 탈락이 되는 경우도 있다”며 부양의무제가 기초수급생활자의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적용되고 있는 문제를 지적했다. “연락이 뜸하다가도 자녀들이 명절 때 연락을 하는 경우도 있고, 이들이 명절 때 10만원씩 용돈을 주고 갈 수도 있다. 자녀가 돈을 주지 않는다고 했는데, 1년에 두 번이나 용돈을 주지 않느냐며 적발하는 경우도 있다.” 담당 공무원들은 수급자들의 이런 사실까지 어떻게 알까. 복지 검열은 정책뿐만 아니라 담당 공무원 및 지역사회에까지 퍼져 있었다. 이아요 활동가에 따르면 부정수급의 상당수가 주변에서 신고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빈곤층이 밀집해 있는 임대아파트나 쪽방촌의 경우 수급자가 아닌 빈곤층이 수급자를 감시하고 고발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수급비로 생활이 어려워 몰래몰래 조금씩 일을 하는 분들도 있다. 그런 분들을 아예 나와서 지켜보는 주민들도 있고, 임대아파트에서는 동장이나 반장이 묻는 경우도 있다.” 빈곤층에게 기초생활수급비가 생사를 가르는 일이다 보니 상대적 박탈감 또한 심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 사회복지사는 “기초생활수급 조건이 까다로워 복지가 필요함에도 받지 못하는 분들이 많아 이를 둘러싸고 빈곤층 사이에서 아비규환이 일어나는 셈”이라고 말했다.

[표지이야기]묻고, 따지고, 검열하는 ‘참! 야박한 복지’

“아들 가정까지 깨지게 할 수는 없다”
복지 검열은 근로능력평가에도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 근로능력평가는 2010년에 도입됐다. 평가기관이 2012년에 국민연금공단으로 넘어가면서 평가는 더 엄격해졌다. 근로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수급이 끊기거나 조건부 수급으로 바뀐다. 조건부 수급은 일을 한다는 조건으로 수급을 하는 것이다. 이아요 활동가는 “기초생활수급자들에 대한 근로능력평가는 기본적으로 이들이 일할 의지가 없는 나태한 국민이라는 인식을 깔고 있다”고 말했다.

쪽방촌에 거주하는 박정석씨(가명·58)는 요즘 “조금이라도 몸이 성할 때 아버지 곁으로 가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한다. 박씨는 선천적으로 다리에 장애가 있다. 심하지는 않았다. 젊었을 때는 자동차부품 공장에서 일했다. 일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조금 불편한 것 빼고는 괜찮은 삶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 전까지는 말이다. 박씨는 정리해고됐다. 일할 때 문제가 되지 않았던 장애가 다시 일자리를 찾으려니 문제가 됐다. 어렵게 재취업한 중소기업 공장에서 하는 일은 허드렛일이었다. 물론 비정규직이었다. 월급도 처우도 형편없었다. 그래도 일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마저 2년 후에 해고됐다. 어느덧 박씨에게 남은 선택은 노숙밖에 없었다. 노숙을 하다 계단을 헛디뎌 굴렀다. 그때부터 장애가 악화됐다. 제때 치료받지 못한 다리는 시간이 갈수록 뒤틀렸고, 허리통증도 점점 심해졌다. 2012년 박씨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일하러 나가지 않으면 수급이 끊기니까 이번 달부터 구청 화장실 청소일을 하세요.” 그러나 박씨는 조건부 수급자다. 얼마 전 장애등급이 떨어지면서 일반 수급자에서 조건부 수급자가 됐다. 조건부 수급자는 ‘일을 해야 한다’는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언제든 수급이 끊길 수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담당공무원으로부터 일하라고 연락이 온다. “화장실 청소를 할 수 있으면 진작에 했겠지. 나도 내가 벌어서 살고 싶어. 화장실 청소 못한다니까 그 다음에는 공원에 가서 풀을 뽑으라고 하대. 난 다리 때문에 앉았다 일어났다도 할 수가 없어.” 당뇨와 당뇨합병증 및 고혈압을 앓고 있는 박씨는 얼마 전부터 복용하던 약을 끊었다. 수급이 끊기면 살아갈 방법이 없다. “장애가 더 심해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건강하고 괜찮을 때 갔으면 좋겠다.”

쪽방촌 골목 / 김정근 기자

쪽방촌 골목 / 김정근 기자

박영아 공감 공익법무법인 변호사는 “근로능력평가는 수급자를 떨어뜨리기 위한 방안이다. 평가를 국민연금공단이 실시하면서 근로능력이 있다고 평가하는 사례가 세 배 가까이 늘었다”고 말했다. 무리한 근로능력평가는 죽음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난해 8월 사망한 심정현씨(가명)의 경우가 그렇다. 고속버스 운전사였던 심씨는 10년 전 동맥에 이상이 생겨 큰 수술을 받았다. 수술 비용으로 가세는 기울었고, 수술 후 심씨는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심씨와 아내는 둘 다 근로능력이 없는 일반수급 가구로 판정받았다. 그러나 2012년부터 근로능력평가가 강화되면서 반 년에 한 번씩 진단서를 떼오라는 압박이 이어졌다. 2013년 말 심씨를 찾아온 국민연금공단 직원은 심씨를 보고 ‘건강하시다’는 말을 꺼냈고, 2014년 근로능력 1급 판정을 내렸다. 심씨는 조건부 수급자가 돼 일을 하지 않으면 조건불이행으로 수급에서 탈락될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심씨는 두 달 교육을 받고 고용센터와 연계해 지하주차장 미화원으로 취업을 했다. 그러나 취업 후 두 달 만에 심씨는 일터에서 쓰러졌다. 이식 받은 혈관을 타고 온몸에 세균이 퍼져 식물인간이 된 심씨는 한 달 반 만에 사망했다. 박영아 변호사는 애초에 심사가 잘못됐다고 말했다. 근로능력평가는 의학적 평가와 활동능력 평가 두 가지로 이뤄진다. 심씨는 의학적 평가에서 1단계 평가를 받았다. “1단계는 질환이 치유됐고 안정 시에 무증상이라는 것만 보고 평가를 한 셈이다. 계단만 걸어도 바로 호흡이 곤란한 상황이었는데, 이런 기초적인 것조차 간과한 것이다. 활동능력 평가에서 점수가 좀 낮게 나왔지만 의학적 평가에서 1단계가 나오면서 일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은 것 같다.” 심씨가 병원에 있다는 것을 안 국민연금공단 측은 부랴부랴 활동능력 평가의 점수를 더 낮춰 일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들이 수정한 항목은 알코올 의존성이 있다는 것. 그러나 심씨는 술은 입에도 대지 않던 사람이었다.

송파세모녀 위령제 / 박민규 기자

송파세모녀 위령제 / 박민규 기자

근로능력평가로 ‘수급자 밀어내기’
김윤영 사무국장은 이러한 ‘수급자 밀어내기’의 정책기조로는 빈곤층의 권리보장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9월 7일 토론회에는 보건복지부와 국토교통부의 담당 공무원(주거급여 담당)들도 토론자로 참석했다. 이들의 발언은 수급자를 밀어내고 이들을 검열하는 정책당국의 인식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ㄱ사무관은 “복지 관련 언론 기사가 나가면 댓글을 통해 국민들의 생각을 파악할 수 있다. 더 줘야 한다는 분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는 분들도 많더라. 적정 복지수준에 대해서는 사회적 공론화가 더 이뤄져야 하지 않느냐는 원칙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ㄴ사무관은 “주거급여를 수급자에게 직접 주지 않고 공공임대주택의 경우 LH나 SH 등 임대인들에게 바로 지급하는 것은 실제 주거비 급여 외의 목적에 사용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함이다”라고 말했다. 이 담당자는 ‘주거비 급여 외의 목적’의 예로 ‘술판을 벌인다’는 발언을 해 참석자들의 강한 비판을 받았다. ㄷ사무관은 “어느 정도 일을 할 수 있으면 일을 해서 성취감을 느끼는 게 가만히 돈을 받는 것보다 낫다. 활동능력 평가는 국민연금공단으로 이관됐는데, 지역주민들에 대한 온정적 판단이 개입될까봐서다”라고 말했다. 복지가 검열을 기반으로 할 때 빈곤층에 대한 복지는 최소화될 수밖에 없다.

빈곤은 특별한 불행이 아니다. 삶의 한 고비에서 발을 잘못 디뎠을 때 누구나 만날 수 있는 재난이다. 송파 세 모녀가 그랬고, 한순간에 중산층에서 빈곤층이 된 윤선영씨도 그랬다. IMF라는 재난에 휩쓸린 박정석씨도 마찬가지다. 부양의무를 회피하거나 일할 의지가 없다는 ‘도덕적 해이’의 시각으로 이들을 검열할 때 세 모녀 사건은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현실과 동떨어진 공무원들의 인식

“과연 수급자 중 수급비를 받아 술을 먹느라 수급비를 날리고 임대료를 못 내시는 분이 몇 명인가? 직장인 중 월급이 자동적으로 임대인에게 이체가 되는 경우가 있는가? 그럼 사무관님은 월급 중 집세가 자동으로 임대인에게 이체가 되고 있나?” 방청석에서 나온 질문자의 목소리는 높고 격앙돼 있었다. 이 질문은 토론회에 참석한 국토교통부의 한 공무원을 향해 있었다. 증언자로 참석한 수급자도 낮고 떨리는 목소리로 불쾌한 감정을 전했다. “수급자들이 수급비를 받아 술을 마신다는 인식이 수급자 입장에서는 많이 불편하다.” 문제가 됐던 발언은 맞춤형 개별급여 중 주거급여에 대한 토론을 하다 나온 것이었다.

9월 7일 국회에서 열린 <맞춤형 개별급여 시행 한 달, 문제점과 개선과제> 토론회. 토론자로 참석한 김선미 성북주거복지센터 센터장은 현재 시행되고 있는 주거급여의 문제점을 짚었다. 김 센터장에 따르면 주거급여법 7조 4항은 임차료의 지급대상에 대해 명시하고 있다. 그 중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하는 수급자의 경우 주거급여는 LH 혹은 SH 등의 지방공기업이 지정한 계좌로 지급하도록 돼 있다. 민간임대주택의 경우에도 주거급여 수급자가 3개월 이상 연체할 경우 ‘집주인의 신고’에 의해 급여 지급을 중지하고 ‘집주인’의 신청에 의해 집주인이 임차급여를 직접 수령하도록 하는 조항이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수급 당사자의 동의를 구하는 조항은 없다. 당사자의 선택권, 자기결정권은 어디에도 없는 셈이다.” 김 센터장은 주거급여에서 수급 당사자의 결정권을 아예 배제해버린 점을 지적했다.

이에 대한 담당 공무원의 답변. “대부분 수급자의 경우 집에서 술판을 벌이고 이런 게 있었는데 지금은 임대료가 바로 들어가서 훨씬 더 좋다는 이야기도 있다.”

수급자들의 현실과 동떨어진 공무원의 인식에 참석자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송파 세 모녀의 사례를 들어 담당 공무원을 반박했다. 송파 세 모녀도 임대료와 가스비가 연체됐다. 세 모녀 사례에서 보듯 수급자의 임대료 연체는 부정적인 생활방식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절박한 생존의 문제다. 빈곤을 나태한 생활방식의 문제로 인식하는 한 빈곤현장과 빈곤정책의 괴리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반박의 목소리가 거세자 담당 공무원은 다만 한 수급자의 말을 옮긴 것뿐이라며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과했다.

그러나 이날 토론회에서 공무원들의 발언은 연이어 비판의 화살을 맞았다. 보건복지부 소속 ㄴ사무관은 부양의무제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부양의무제는 국민정서와도 상통한다며 그 근거로 2014년 통계청 사회조사를 제시했다. 통계에 따르면 응답자의 17%가 ‘부모 스스로 해야 한다’, 31%는 ‘가족이 해야 한다’, 37.4%는 ‘가족과 정부·사회가 같이 해야 한다’고 답했다. 한 사무관은 “이런 설문조사가 전체 의사를 대변하는 건 아니겠지만”이라면서도 ‘정부·사회가 모든 짐을 지어야 한다’는 4.4%밖에 나오지 않았다며 가족 부양에 더 많은 여론이 기울어져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기초생활 수급에 적용되는 부양의무제에 부모 부양에 대한 일반적인 통념을 등치시킬 수 있을까. 이처럼 막연한 국민정서에 기대 부양의무제를 존치시켜야 한다는 의견은 국회에서도 제기됐다. 국회 회의록에 따르면 2013년 6월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을 두고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산하 소위원회에서 보건복지부 차관은 “사회의 기반 자체가 가족의 부양의무를 기준으로 한다”고 발언해 야당 의원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이 차관은 “저희가 형법에도 보면 존속 유기가 있지 않습니까? 자기 부모를 돌보지 않았을 때는 형법상의 징역이라든지 1500만원의 벌금에 처하는 그런 경우도 있는데요”라고 말했다. 유재중 새누리당 의원도 동의하듯 “부양의무자 폐지는 법적으로는 잘 모르는데, 우리 상식적으로 내려오는 부모 부양이라는 사회적 인식을 크게 훼손하기 때문에 부양의무자 폐지라는 것은 너무 전향적이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통계에 따르면 부양의무자 제도로 수급을 받지 못하는 빈곤노인이 10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담당 공무원과 정치인의 말은 현장의 다급한 외침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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