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써야 좋은 작가? 적게 써야 좋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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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다작 작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아카가와 지로나 니시무라 교타로 같은 작가는 각각 500여권에 달하는 저작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인기 높은 히가시노 게이고나 미야베 미유키 등도 연평균 두 권 이상의 책을 출간하고 있다.

지난 8월 말 외신에서 흥미로운 글을 읽었다. 유명 작가 스티븐 킹이 작가의 다작에 관해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으로, 소설가의 다작(多作)에 대해 논하고 있다. 킹은 서두에서 ‘어떤 사람이 작품을 하나 더 쓸수록 덜 주목한다’는 문학비평계의 불문율을 지적했다. 그는 조이스 캐롤 오츠와 애거서 크리스티 등 수많은 훌륭한 작품을 발표한 작가들을 거론하며 좋은 작가는 좋은 작품을 많이 썼음을 주장했다.

소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합작이나 영화 시나리오의 소설화 등)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혼자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제법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이다. 다만 작가에 따라 쓰는 속도는 제각각이라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를 몇 년에 걸쳐 숙성시켜 완성시키는 작가도 있는가 하면, 신문기사에서 힌트를 얻어 두어 달 만에 두툼한 원고를 뽑아내는 작가도 있으니 소설가들의 평균 집필 속도를 따지기도 어렵다. 그런 점에서 다작을 한다는 것은 타고 난 재주에 속할 것이다.

스티븐 킹의 칼럼(뉴욕타임스 2015. 8. 27)

스티븐 킹의 칼럼(뉴욕타임스 2015. 8. 27)

최소한 장편 50편 이상 내야 다작
좋은 작가가 훌륭한 소설을 많이 쓴다면 누구에게나 환영받는다. 유명 화가가 말년에 돈이 필요하게 되자 그림을 많이 그려 작품의 희소가치가 크게 떨어졌다는 소문을 들은 일이 있지만, 한 번에 수천권씩 인쇄되는 소설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다작’이라는 말을 들으려면 얼마나 많은 작품을 써야 할까? 앞선 글에서 킹이 예를 든 것에 따르면 조이스 캐롤 오츠는 모두 50편 이상의 소설(필명으로 쓴 11편이 더 있다고 한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평생 91편의 저작을 남겼다고 한다.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라도 최소한 50권 이상의 장편소설을 낸 소설가라야 그럭저럭 ‘많이 썼다’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다작과 대척점의 위치에 있는 것은 내놓은 작품마다 호평을 받으면서도 잊혀질 만할 때쯤 작품을 발표하는 ‘과작(寡作)’ 작가일 것이다. 미국 여성 작가 도나 타트는 1992년 <비밀의 계절>을 발표해 ‘최근 50년 사이에 등장한 가장 뛰어난 미국 소설가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다음 작품 <작은 친구>는 2002년, 그리고 세 번째 작품 <황금방울새>는 2013년 출간돼 작품 하나가 나오기까지 평균 10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전형적인 과작 작가의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식인 취향을 지닌 악당 주인공(?) 한니발 렉터를 탄생시킨 토머스 해리스는 <블랙 선데이>(1975)로 데뷔한 이후 가장 최근작인 <한니발 라이징>(2006)에 이르기까지 30년간 다섯 편의 장편소설만을 발표했다. 그 역시 과작 작가에 포함될 것이다.

순문학계에서는 다작에 대해 킹이 거론한 불문율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지만, 추리소설과 같은 대중소설계에서는 상황이 좀 다르다(물론 순문학과 대중문학을 나누는 것이 과연 가치 있는 일인지 알 수 없지만). 대중오락적, 상업적인 측면을 중시하는 관점에서 다작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작품 수준이 독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가가 더욱 중요하다. 20세기 초반 <벤슨 살인사건>과 <주교 살인사건> 등으로 미국 추리문학계를 한 단계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은 S.S. 밴 다인은 ‘어떤 추리소설가도 걸작을 여섯 편 이상 쓸 수는 없다’고 주장한 바가 있긴 하다. 하지만 그것은 기준을 많이 높였을 때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스티븐 킹이 뛰어난 다작 작가로서 예를 들었던 애거서 크리스티의 팬이라면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작품을 어렵지 않게 여섯 편 이상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서구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다작 작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아카가와 지로나 니시무라 교타로 같은 작가는 각각 500여권에 달하는 저작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인기 높은 히가시노 게이고나 미야베 미유키 등도 연평균 두 권 이상의 책을 출간하고 있다.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세 자릿수의 작품을 낼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물론 많이 쓴다고 반드시 걸작이 많이 나오는 것만은 아니다. 한때 영국 서점에서 팔리는 책 네 권 중 하나가 그의 책이었을 정도로 인기가 높아 ‘스릴러의 제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에드거 월러스는 30세에 첫 작품을 낸 후 57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27년간 170권이 넘는 장편소설과 수많은 단편, 30여편의 각본을 남겼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자신의 시대를 넘어서지 못하는 평범한 작품으로만 남았다.

(왼쪽부터)조이 캐롤 오츠(앨러리 퀸 미스터리 매거진 표지), 도나 타트의 <황금방울새>표지, 애거서 크리스티(출처 : 위키피디아), 에드 맥베인(출처 : 위키피디아)

(왼쪽부터)조이 캐롤 오츠(앨러리 퀸 미스터리 매거진 표지), 도나 타트의 <황금방울새>표지, 애거서 크리스티(출처 : 위키피디아), 에드 맥베인(출처 : 위키피디아)

독자의 호응 없이는 다작 불가능
제3자의 입장에서 작가를 본다면 몇 년에 장편소설 하나씩 발표하면서 그것으로 큰 수입이 들어온다면 굳이 쉬지 않고 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87분서> 시리즈만 50편 이상 발표했던 에드 맥베인은 1980년대 초반의 어느 인터뷰에서 “사후 발표할 작품 두 편을 금고에 넣어뒀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2005년 작고 후 확인한 결과 미발표 작품은 없었다고 한다. 어쩌면 마음이 바뀌어서 미리 출간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다작을 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있다. 하나는 소설가의 능력, 또 하나는 독자의 호응이다. 소설가의 능력에는 글 솜씨와 이야기 만드는 재주는 기본이고 체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세계 최초의 장편 추리소설로 꼽는 <르루즈 사건>을 쓴 19세기의 프랑스 작가 에밀 가보리오는 신문에 쉴 새 없이 연재를 하다가 과로로 요절했으니, 무엇보다도 건강이 중요하다.

독자의 호응은 설명할 필요도 없다. 처음에는 인기가 있다가도 서서히 인기를 잃을 수도 있는 것이다. 미국의 중견 추리소설가 로렌스 블록은 “시리즈 작품이 길어지면 같은 에피소드 형태가 반복되는 일종의 매너리즘이 생길 수도 있으며, 등장인물에 대해서 할 이야기가 사라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소설을 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때로는 머릿속에서 이야기가 넘쳐나는 작가들이 있다. 스티븐 킹은 지금까지 55권의 책을 냈으며(필명 포함), 한때 1년에 4권씩 책을 출간했고, 불과 일주일 만에 장편 하나를 쓴 일도 있을 정도로 열심히 썼는데, 정직하게 말하자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한다. 그가 젊었던 시절 그에게는 수천개의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가진 것이라곤 손가락 열개와 타자기 하나뿐이었기 때문에 끊임없이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호불호는 있겠지만, 그의 작품 중 혹평을 받은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을 보면 대단한 작가임에는 틀림없다.

킹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칼럼을 마무리했다. “오츠 여사는 ‘아직 하고 싶은 이야기와 소설이 더 있다’고 한다… 나도 무척 기쁘다. 나는 그것들을 읽고 싶으니까.”

<박광규 추리소설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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