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락하는 중국 증시의 ‘허약 체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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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과도한 부양으로 너무 빨리 꽃 펴… 금융시장의 뿌리깊은 구조적 문제도

중국 증시의 대폭락이 우려를 낳고 있다. 혹자는 이 현상을 1929년 대공황의 전조와 비교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중국 내부에서는 정치권이나 경제학계, 언론 모두가 별 특별할 것 없다는 미지근한 반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서방의 시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중국 지도부가 정치적 부담을 우려해 일부러 모르는 체하고 있다’ ‘언론을 통제하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내고 있기도 하다.

주가 폭락에 대한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8월 25일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공식 웹사이트에 게재한 “중국 경제성장이 질적 측면에서 개선되고 있다”는 정도다. 증시가 주관심사일 수밖에 없는 경제지의 논조는 거시경제 하강의 압박이 커 상장기업의 이윤확보 능력이 의심받고 있고, 지난주 미 증시 폭락과 글로벌 증시 약세의 영향을 피할 수 없었다는 정도다(중국증권망).

중국이 증시에 대해 이런 반응을 내놓으며 내심은 몰라도 최소한 겉으로는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렇다면 정말 증시의 대폭락이 중국에 끼치는 영향이 과연 중국 내부의 목소리처럼 한정적일까. 이 문제의 종합적인 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중국 증시가 가진 깊은 속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중국 증시의 대폭락으로 세계 시장의 우려를 낳고 있다. 중국의 한 증권사 객장에서 노동자가 주식 전광판을 고치고 있다. / 연합뉴스

중국 증시의 대폭락으로 세계 시장의 우려를 낳고 있다. 중국의 한 증권사 객장에서 노동자가 주식 전광판을 고치고 있다. / 연합뉴스

기관투자가 비중 적어 안정성 떨어져
지금 중국 증시의 가장 큰 문제는 “너무 빨리 꽃이 피었다”는 것이다. 중국 증시가 공식 출범한 게 1990년이다. 중국의 다른 제도들과 마찬가지로 제한적 시장에서 그나마 본격적인 시장화가 시작됐다고 판단되는 증권법이 정식 발효된 것이 1999년이다. 중국 증시는 역사상 최고점인 6124(상하이종합지수)를 찍으면서 고속 성장해 왔다. 중국 경제가 지난 40년간 고속 성장한 것을 감안하면 이는 크게 놀라운 수치가 아니다. 하지만 중국 증시 성장의 궤적을 살펴보면 2008년 올림픽을 앞두고 실물경제와는 동떨어지게 비정상적으로 성장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문제는 이것이 단순한 세계적 규모의 행사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 아닌 중국 정부의 과도한 증시 부양의 결과라는 것이다. 중국 정부의 개입이 시장 발전과는 동떨어진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면서 중국 증시는 너무 일찍 봉오리를 피웠다. 결국 이 후유증이 중국 증시의 5000대 벽을 만들면서 지금의 굴곡을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중국 증시의 또 하나의 문제는 기관투자가 비중의 절대적 부족이다. 이는 중국 증시의 안정성을 꾸준히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다. 여기에 중국 경제에서 아직은 가장 큰 부문인 국영기업에 대한 중국 정부의 지속적인 통제가 주식시장에서도 엄연히 살아있는 ‘보이는 손’으로 작용한다는 점도 장기적으로는 중국 증시 성장의 악재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은 종합적으로 중국 증시에서 외국계 큰손의 영향력을 그들의 투자수준보다 배가시키게 만든다. 특히 상하이 증시와 홍콩 증시의 상호교류 정책인 ‘후강퉁’ 실시 이후 외국계 큰손의 영향력은 중국 증시에서 무시 못할 실체가 됐다. 이는 중국 증시를 세계 경제 흐름에 극도로 민감하게 만들고 있다. 중국 주가 대폭락의 배후를 외국계 자본의 이탈에서 찾는 중국 언론의 관점은 여기에 기인한다(텅쉰증권).

하지만 이런 상황이 중국 증시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설명해 주기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중국 증시의 속살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관투자가가 아닌 중국 일반 사람들의 투자 형태와 방식에 대해 보다 가까이 접근해 봐야 한다.

지난 7월의 중국 통계에 따르면 보유주식 가치가 1000만 위안(약 18억원) 이상인 투자자는 28% 감소했으나 10만 위안(1800만원) 이하의 투자자는 8% 증가했다. 프랑스 크리디리요네 증권의 프란시스 청의 표현을 빌리면 “시장을 이끌고 있는 큰손 투자자들은 증시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중국 증시에서도 큰손들은 시장의 흐름을 잘 타고 개미들만 손해를 보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 주가지수가 4% 이상 폭락한 지난 8월 21일 안후이성 푸양시의 한 증권사 객장에서 한 여성 고객이 주식시세표를 쳐다보고 있다. / 연합뉴스

중국 주가지수가 4% 이상 폭락한 지난 8월 21일 안후이성 푸양시의 한 증권사 객장에서 한 여성 고객이 주식시세표를 쳐다보고 있다. / 연합뉴스

문제는 이런 경향이 단순히 시장을 이해하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 금융시장의 뿌리 깊은 구조적 문제와 결합돼 있다는 것이다. 중국 유수의 증권사들이 큰손들에 대해 평균 이자율 이상의 수익을 비공식적으로 보장해 준다는 건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비밀 아닌 비밀’이다. 중국 증권사의 특성상 현 단위의 지사나 그 아래 영업소들은 독립채산제로 운영된다. 이들에게 큰손 유치는 영업소의 존폐를 좌우하는 문제다. 이 구조에서는 대형 증권사의 수익률은 곧 투자유치 능력일 수밖에 없고, 이는 큰손 불패의 신화를 유지해야 하는 절박한 이유로 작용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중국 증시의 큰손들이 평균 이윤율 정도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여기서 중국만큼이나 긴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 사금융 시장과 큰손들의 화학적 결합에 따른 중국 특유의 주식 블랙마켓이 형성된다.

다단계 성격의 주식 블랙마켓 번창
중국인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이 구조를 간단히 설명하면, 먼저 물주가 계좌당 100만 위안을 선투자해 주식 투자 희망자를 모집한다. 투자자는 물주의 계좌 액수에 해당하는 100만 위안을 투자해 총 200만 위안으로 주식투자를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투자수익이 발생할 경우 물주는 일일 결산을 통해 수익액의 40%를 당일 징수한다. 이 과정에서 투자자가 손실을 봐 계좌 잔액이 100만 위안이 되면 물주는 계좌를 동결하고 거래는 종결된다. 이 단순하지만 치명적인 사금융 시스템이 중국 증시를 떠받치는 실제적인 세력이다(이들은 곧 중국 대형 증권사의 주 고객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거대 물주들은 내부자 정보의 유통, 큰손의 시장 장악력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사업 규모를 키워나간다. 여기에 중국 특유의 지연·혈연에 바탕을 둔 ‘관시문화’가 합쳐진다. 투자자 유치에서 다단계 경향까지 띠게 되는 이 비밀스러운 사업은 날로 번창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복합적인 중국 증시의 민낯은 결국 중국 경제 전반에 몇 가지 비극적인 상황을 만연시키며 중국 증시의 건강한 성장을 방해하고 있다. 먼저 중국의 고도성장을 이끌어 온 대중적 기반인 저축-부동산-주식으로 이어지는 부 축적의 선순환 구조가 붕괴된다. 이 붕괴의 최대 피해자인 일반 서민들의 목줄을 더욱 죄는 것은 이런 시장 구조에 대한 중국 관료사회의 몰이해, 혹은 무관심이다. 이런 상황은 복합적으로 중국 시장에 대한 특히 증시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는 중국이 그 경제규모에 걸맞은 국제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 방해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40여년간 유례가 없는 고속 성장을 해왔다. 하지만 이 성장에는 온갖 탈법과 불법의 그늘이 존재한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세계가 중국을 우려하는 데는 이 그늘에 대한 불안감이 전제돼 있다. 이는 명백히 중국 스스로가 풀어야 할 문제다. 중국 지도부가 목이 터져라 외치는 부패 방지의 시작은 권력이 아닌 경제로부터 찾아야 한다. 이것이 지금 중국이 세계에 대해 풀어야 할 첫 번째 숙제이다.

<강현구 세한대 글로벌비즈니스학과 교수 1917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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