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직전 선거구 획정 ‘고질병’ 언제 고치나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16대부터 총선 때마다 반복… 인구비례에 맞지 않는 선거 계속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국민들의 투표와 실제 국회의원 의석수가 일치하지 않는 대표적인 나라다.

정치학자들을 대상으로 한 지난 7월 참여연대의 설문조사에서 대다수는 시급한 정치개혁의 과제로 비례대표 확대와 의원수 증가를 꼽았다. 하지만 국회의원 의석수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지역구에서도 민의가 제대로 대변되지 못하는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한국의 지역구는 수도권이 과소 대표되고, 농어촌지역이 과대 대표되는 양상을 보여 왔다. 이정섭 전북대 쌀삶문명연구원 전임연구원의 2012년 연구에 따르면 이런 현상은 도농 격차가 커진 최근에 불거진 문제가 아니라 수십년간 지속된 문제다. 이 연구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 이후 실시된 1963년 제6대 총선부터 지역간 불균형 현상이 나타났다고 진단한다. 야당이 강세를 보인 수도권에는 적은 의석수를 배치하고, 여당인 공화당이 압도적 지지를 받는 영남권에 많은 의석수를 배치하는 식으로 선거구가 획정됐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지역간의 불균형은 1995년까지 계속된다. 이촌향도 현상이 본격적으로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선거구 획정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1973년 9대 총선부터 1992년 14대 총선까지 인구가 가장 많은 선거구와 적은 선거구의 편차는 4.6~5.8대 1에 이르렀다.

7월 27일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이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공직선거법 심사소위에서 의사봉으로 개회를 선언하고 있다.  / 권호욱 기자

7월 27일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이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공직선거법 심사소위에서 의사봉으로 개회를 선언하고 있다. / 권호욱 기자

산적한 현안 50일 이내 처리 쉽지 않아
1996년 15대 총선을 1년여 앞두고 구성된 선거구획정위는 “평등선거의 원칙과 의원들의 국민 대표성을 보장하겠다”며 선거구 최소 인구 7만명, 최대 인구 30만명의 기준을 제시했다. 과거보다 아주 조금 나아진 수준이다.

1995년 12월 헌법재판소는 이 획정안을 위헌으로 결정하고, 인구수 편차를 4대 1 이내로 조정할 것을 주문했다. 결국 최종적인 15대 총선 선거구 획정은 총선을 3개월도 채 남기지 않은 1996년 1월 24일에 확정됐다.

이후 매번 총선 때마다 선거 직전에 선거구 획정이 확정되는 일이 반복됐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선거구획정위는 매년 총선 1년 전까지(20대 총선은 예외적으로 6개월 전까지) 선거구 획정안을 국회의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이후 국회에서의 토론을 거쳐 획정안이 확정된다.

그러나 위헌 판결을 받기 전 15대 총선 선거구획정위를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이런 원칙을 지킨 적이 없었다. 16~18대 총선 때는 획정안 자체가 총선을 두 달여 남기고 국회 본회의에 넘어왔다. 19대 총선 때는 선거 5개월 전인 2011년 11월 선거구 획정안이 제출됐으나, 축소 대상 지역구 의원들의 반발로 선거를 한 달여 앞둔 2012년 2월 27일에 수정된 획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현재 선거구를 획정하는 법적인 잣대는 공직선거법 제25조다. 해당 조항은 다섯 가지 기준(인구, 행정구역, 지세, 교통, 기타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법적인 기준이 추상적인 데다가 선거구 획정위가 그동안 국회 산하에 있어 국회의원들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선거구 획정위가 안을 만들어 와도 국회에서 자기 입맛대로 고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시간이 더욱 지체됐다.

18대, 19대 국회에서 선거구획정위원을 지낸 손혁재 수원시정연구원장은 국회가 획정위의 결론을 무시한 사례를 이야기했다. 손 원장은 “2011년에 인구가 상한선을 초과한 8곳은 분구하고, 하한선에 미달한 5곳은 통합하는 획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국회에서 무시됐다. 획정위가 통합 대상으로 했던 5곳은 단 1곳도 통합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의원 정수를 늘리지 않기 위해 꼼수를 쓴 정황도 있었다. 손 원장은 “경기도 수원시와 충남 천안시는 인구 상한선을 넘었지만 선거법을 바꿔 분구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공직선거법은 같은 구·시·군에 속한 행정단위는 가급적 선거구를 나누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2011년 국회는 ‘구’라는 규정을 ‘자치구’로 바꾸고 경기도 수원시, 충남 천안시의 선거구를 기묘하게 획정했다.

2012년 1월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정개특의 회의장 앞에서 일부 지역주민들이 선거구 분구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2012년 1월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정개특의 회의장 앞에서 일부 지역주민들이 선거구 분구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의원 정수 문제 전향적으로 검토 필요”
현재 수원시 병 선거구는 인구수를 맞추기 위해 수원시 팔달구에 권선구 일부를 갖다 붙였다. 광역단체인 서울특별시에 속한 강남구는 자치구지만, 기초단체인 경기도 수원시에 속한 권선구는 자치구가 아니다. 원칙대로라면 인구 35만명에 달하는 수원시 권선구는 2개의 선거구로 나눠야 한다. 하지만 국회의원 정원을 맞추기 위해 일부 동을 팔달구에 붙인 것이다.

이 외에도 평등선거에 어긋나는 선거구 획정 예시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지난해 기준으로 대전광역시의 인구는 약 155만명이며, 울산광역시는 약 117만명이다. 하지만 배정된 의석수는 똑같은 6석이다. 광주광역시의 인구는 약 149만명이지만 8석이 배정돼 있다.

기초단체이기는 하나 경기도 수원시는 울산광역시와 인구가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의석수는 4석에 불과하다. 반면 경기도 안산시는 올해 7월 기준으로 인구수가 70만여명이지만 선거구 수는 수원시와 같은 4곳이다.

지난해 헌재 결정으로 손봐야 할 지역구도 한두 군데가 아니다. 최대·최소 인구 선거구의 격차를 2대 1로 했을 경우 경기도 16곳, 인천광역시 4곳, 서울특별시 3곳의 선거구가 상한 인구를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텃밭에는 하한 인구수를 미달한 선거구가 많았다. 경상북도 6곳, 전라북도 4곳, 전라남도 3곳, 부산광역시 2곳의 선거구를 조정해야 한다.

20대 총선 선거구 획정 법정 시한은 오는 10월 13일이다. 하지만 위에 언급된 산적한 현안을 50일 이내에 다 처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정치가 민의를 대변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헌재는 세 차례에 걸쳐 인구 편차를 조정하라고 결정했다. 1995년에는 4대 1, 2001년에는 3대 1, 지난해에는 2대 1의 기준을 제시했다.

박대규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에 따르면 헌재의 지속적인 선거구 획정 기준 결정은 헌법 41조 1항에 따른 것이다. 헌법 41조 1항은 국회의원 선거의 4대 원칙(보통, 평등, 직접, 비밀)을 서술한 것이다.

물론 일부 헌법재판관들은 지역 대표성 등을 감안해 도시 선거구와 농어촌 선거구를 분리하자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이는 늘 소수의견에 그쳤다. 지난해 10월 30일 발표된 헌법재판소의 공직선거법 위헌 확인 결정문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국회를 구성함에 있어 국회의원의 지역 대표성이 고려돼야 한다고 할지라도 이것이 국민 주권주의의 출발점인 투표가치의 평등보다 우선시될 수는 없다. 특히, 현재는 지방자치제도가 정착되어 지역 대표성을 이유로 헌법상 원칙인 투표가치의 평등을 현저히 완화할 필요성이 예전에 비해 크지 아니하다.”

손혁재 원장은 의원 정수를 300명으로 고정한 상태에서 지역구를 맞추다 보니 필연적으로 잡음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손 원장은 “인구비례로 선거구를 획정하면 도시 선거구는 계속 늘어나고 농촌 선거구는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다. 표의 등가성을 중시하다 보면 지역 대표성을 확보하는 문제가 어려워진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원 정수 문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회 정개특위 여태 뭐하고 있었나

지난해 10월 헌법재판소는 현행 최대 1대 3으로 돼 있는 국회의원 선거구 인구 편차를 1대 2로 조정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헌재 결정에 따라 선거구 재획정이 불가피해졌다. 여기에 불합리한 한국의 선거제도를 전반적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여론의 목소리도 거세지면서 국회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를 설치했다.

올해 3월 18일 문을 연 정개특위에서 여야 의원들은 선거구 획정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정치개혁의 성과를 내자는 데 의견 일치를 봤다. 선거구 획정 문제는 생각보다 빨리 결정될 것처럼 보였다. 정개특위가 설치되기 이전인 올해 1월 여야 원내지도부는 국회 산하에 있던 선거구획정위원회를 국회 외부의 독립기구로 설치할 것에 합의했다. 정개특위에서도 이미 2차 회의 때 선관위 산하에 선거구획정위를 두자는 논의가 있었고, 선거구획정위에서 안을 결정하면 국회에서 그대로 수용하자는 방향으로 토론이 진행됐다. 6월 19일 공직선거법 개정이 통과되면서 선거구획정위의 독립이 법적 근거를 갖추게 됐다.

개정된 공직선거법에 따라 선거구 획정위원을 추천해야 했다. 여야의 합의로 7월 13일 선거구획정위원 9명이 확정됐다. 20대 총선의 경우 오는 10월 13일까지 선거구 획정을 마무리해야 한다. 선거구획정위는 실무적인 기간을 감안하면 늦어도 8월 13일까지는 국회에서 선거구 획정 기준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밝혔다.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 방식은 현행 공직선거법 25조에 규정돼 있다. 현행법은 “인구·행정구역·지세·교통 기타 조건을 고려”한다는 추상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정개특위 공직선거법 심사 소위원회는 좀 더 명확한 기준을 마련해 선거구획정위에 제시할 예정이다.

일부 여당 의원들은 헌재 결정 대신 농어촌의 특수성을 이해해달라는 발언을 이어갔다. 지난 7월 17일 소위 회의에서 경대수 새누리당 의원은 “지자체 수나 면적에 따른 인구 하한 편차에 예외규정을 두자, 농어촌지역 의원들이 여러 발의를 했는데, 헌재 결정에 논의 대상이 안 된다고 단정하고 넘어가는 게 옳은지”라고 발언했다. 같은 당의 여상규 의원도 같은 자리에서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했다. 여 의원은 아예 전남, 경남의 농촌지역 도시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여 의원은 “역사성이나 지세, 교통이나 생활권이나 이런 것하고는 동떨어진 그야말로 게리맨더링”이라고 주장했다. 동료 의원들이 “구체적인 지역구는 선거구획정위에서 조정한다”고 제지했지만 여 의원의 발언은 그치지 않았다.

결국 정개특위는 선거구획정위가 제시한 8월 13일까지 의원 정수와 선거구 획정기준을 결정하지 못했다. 선거구획정위는 자체적으로 일단 획정작업에 돌입한다고 선언했다.

물론 정개특위의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공직선거법 개정을 통해 국회가 아닌 선관위 내에 선거구획정위를 설치할 수 있게 됐다. 또한 법적으로 국회가 선거구획정위의 안을 수정 없이 표결에 부치도록 했다. 재·보궐선거를 연 1회로 바꾼 것이나, 선거기간 인터넷 실명확인제를 폐지한 것, 지역감정 조장 발언을 처벌할 수 있게 하는 방안도 마련됐다.

하지만 정치개혁의 핵심 과제에 대해 정개특위는 답을 내놓지 못했다. 한국은 주요 선진국 중 국민의 투표와 당선자의 불일치가 가장 심한 나라에 속한다. 그리고 학계에서는 이를 해소하기 위해 의원 정수 확대, 비례대표 확대 등 여러 가지 방안을 내놓았다. 일부 야당 의원들도 같은 의견을 제시했지만 대다수의 정개특위 위원들은 ‘국민정서’를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심지어 8월 20일 정개특위는 현행 300명의 의원 정수를 유지하려고 시도했다가 심상정 정의당 의원의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결국 여야 원내지도부는 이날 만나 8월 말로 예정된 정개특위 활동시한을 11월 15일까지 연장하기로 합의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