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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예방 컨트롤타워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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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모녀 사건’ 같은 일 벌어져야 호들갑… 정치권 관심 적어 일회성 대책에 그쳐

2014년 3월 20일 국회에서는 <빈곤퇴치와 자살예방 대책 마련을 위한 긴급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한 달 전인 2월 26일 ‘죄송합니다’라는 메모와 함께 마지막 월세만 남긴 채, 반지하방에서 목숨을 끊은 세 모녀 사건의 재발을 막자는 취지에서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성곤 의원의 주최로 이례적으로 여야 국회의원이 모두 참여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를 비롯, 유재중 의원, 안효대 의원이 참여했다. 토론회에서는 생활고 비관 자살자를 중심으로 청소년·빈곤노인 등 빈곤자살에 대한 전방위적인 토론이 진행됐다.

관련 예산 연 30억, 일본은 매년 3000억
1년 6개월이 지난 지금, 빈곤퇴치와 자살예방에 대한 국회의 대책은 어느 만큼 진전됐을까. 현장에서는 ‘세 모녀 사건’ 이후 이런저런 법안들은 나왔지만, 실제로 사각지대를 줄이는 효과는 없었다고 말한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현재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 사각지대 발굴을 위한 법안 등이 나오긴 했는데, 그러나 사실 미사여구만 나열하고 근본적인 해결은 방치한 수준이다. 최근 2~3년 사이에 기초생활수급자 20만명이 줄었다. 그리고 최근에 세 모녀법인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해서 수급자를 12만명으로 늘린다고 하더라. 이게 늘렸다고 볼 수 있는 것인가. 실적 부풀리기하는 것 아닌가.”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여전히 까다롭다. 툭하면 부정수급 논란으로 급여자격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세 모녀 사건’은 여전히 발생 가능한 사건인 셈이다. ‘세 모녀 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불 붙듯이 일어나던 의원들 또한 후속조치가 없다. 김성곤 의원실 측에 따르면, 이후 당 차원에서 이와 관련한 정기 모임을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관심을 보인 의원은 새정치연합 129명 의원 중 4명뿐이었다. “당내에 ‘세 모녀 사건’ 이후 이러한 자살을 방지하는 대책모임을 만들려고 했는데, 각 의원실에 공문 등으로 제안을 했지만 반응은 소수였다. ‘세 모녀 사건’ 같은 일이 벌어지면 당장에 불은 붙는데 그게 이어지지가 않더라.” 김성곤 의원실 관계자의 말이다. 사각지대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는 높았지만, 국회의 움직임은 일회적이고 이벤트성에 그친다.

2014년 3월 빈곤사회연대·장애인공동행동 등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송파 세 모녀 등 가난으로 죽어간 이들을 추모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2014년 3월 빈곤사회연대·장애인공동행동 등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송파 세 모녀 등 가난으로 죽어간 이들을 추모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자살’은 정치권에서 관심이 없는 주제다. 지난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하루 평균 40명이 넘지만 자살예방 관련 예산은 연 80억원에 불과하다. 이는 일본과 대조된다. 일본은 매년 3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한다. 2003년 인구 10만명당 자살사망률이 40.1명이었으나 2012년에는 자살사망률이 31.1명으로 줄었다. 일본이 자살사망률을 줄일 수 있었던 데에는 2006년 수립된 자살예방기본법이 있다. 일본은 자살예방기본법에 근거해 2007년부터 제1차 자살종합대책을 추진하였고, 2012년부터 제2차 자살종합대책을 수립했다. 제2차 자살종합대책은 2012년부터 2017년까지 5년 동안 추진될 예정이다.

한국도 자살예방 5개년 종합대책을 세운 바 있다. IMF 사태 이후 정부가 자살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자살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책은 세웠지만 성과는 없다. 2004년 실시된 1차 종합대책은 국가 주도하에 체계적인 대책을 세우고자 했다는 의의는 있으나 결과적으로 자살률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실패했다. 박형민 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기본적인 정책이 개인 중심의 정신보건사업에 한정돼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자살의 원인은 정신질환 외에 급변하는 사회·경제적 환경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 개인과 사회의 변화를 위한 지원체계 마련이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 2006~2012년 통계청의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10대를 제외한 전연령대에서 경제적 어려움이 자살충동을 유발하는 가장 큰 원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1차, 2차 종합대책에도 자살률 안 줄어
이후 2008년에는 제2차 자살예방 종합대책이 세워졌다. 1차에서 부족했던 사회·경제적 지원방안이나 사회·환경 개선 등의 방안이 대책에 포함됐다. 그러나 제2차 종합대책에도 불구하고 자살률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박 연구위원은 2차 대책이 실패한 이유로 자살위험 관리를 책임질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점을 들었다. 대책이 종합적이고 광범위하게 마련된다고 하더라도 컨트롤타워가 없다보니 예산의 확보, 인력자원의 확충 등 사업을 지속하고 강화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의 주된 업무이기는 하지만, 보건복지부의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교육부, 노동부 업무들이 같이 협력해서 일을 해야 하는데 보건복지부가 힘이 없다. 자살예방 5개년 계획에 상위의 거버넌스가 필요하지 않을까, 자살예방위원회 같은 것은 부처간의 실질적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마저 3차 자살예방 종합대책은 진행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2013년 6월에 2차 종합대책이 종료됐다. 3차 종합대책은 2년 전에 만들어졌어야 하지만 현재까지도 진척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종합적인 컨트롤타워 없이 진행되다보니 자살예방대책은 ‘세 모녀 사건’ 등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우선순위 없이 중구난방으로 제시되고 있다. ‘세 모녀 사건’ 후 열린 <빈곤퇴치와 자살예방 대책 마련을 위한 긴급 정책토론회>에서는 ‘지역구에서 자살자가 한 명 생길 때마다 국회의원 및 지자체 단체장 급여를 100만원씩 삭감해야 한다’는 정책제안까지 나왔다. 정부와 국회가 손놓고 있다 보니 구호적이고 선언적이고 감정적인 대책들만 나열되고 있는 셈이다. 2014년 10월 자살예방행동포럼이 주최한 자살예방정책 대토론회에서 이구상 서울시 자살예방센터 부센터장은 정부의 자살예방대책에 우선순위가 없다고 말했다. “실무자로서 2004년과 2008년에 발표된 자살예방 종합대책 이후로 국가가 갖고 있는 중·장기적 관점의 자살예방정책 방향성을 확인하거나 중·장기 계획에 따라 순차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자살률 1위라는 오명에도 이러한 상황이 10년째 반복되고 있는 이유는 자살에 대해 한국 사회가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박지영 상지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같은 토론회에서 한국 사회가 정말로 자살문제를 사회적 위기라고 인식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단순히 OECD 국가 내 1위라는 순위에서 비롯되는 수치심과 경각심으로 가볍고 즉흥적인 대처를 마구 내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자살률 감소라는 근본적인 목적을 달성할 의지가 있느나는 의문이 들게 만드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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