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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정치권, 말로만 재벌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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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법안 처리 미뤄 실천의지 안 보여… 국민연금 주주권 적극 활용해야

롯데그룹 ‘왕자의 난’을 계기로 여야가 일제히 재벌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고 나섰다. 재벌과 관련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정치권은 재벌개혁을 약속했다. 하지만 실제 개혁이 이뤄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심의 눈초리가 여전히 매섭다.

새누리당은 2012년 대선에서 경제민주화 공약을 통해 “성장의 과실이 일부 계층에 집중되면서 성장잠재력을 해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공약 중 재벌기업의 신규 순환출자 금지, 공정거래위의 전속고발권 폐지 등은 현실화됐다. 하지만 경제민주화 공약 자체가 폐기됐고, 골목상권 보호를 위한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의 실효성 제고 등은 지켜지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공약에서 대기업 총수 일가의 불법행위에 대해서 사면권 행사를 제한하겠다고 했지만, 광복 70주년 8·15 특사에 재벌 총수를 포함시킬 것이라는 말이 끊이지 않는다.

2012년 대선을 한 달 앞둔 11월 19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경제민주화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2012년 대선을 한 달 앞둔 11월 19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경제민주화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정경유착을 넘어 정경일체로”
현재 정부와 여당은 재벌기업의 ‘순환출자’를 문제삼고 있다. 그러나 이는 핵심이 아니라는 분석이 나왔다. 8월 6일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 교수)는 “순환출자가 재벌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라며 “순환출자만이 아니라 다단계 출자에서도 적은 자본으로 많은 회사를 지배하는 효과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공정거래위에 따르면 2013년 10만여개에 가까웠던 재벌의 순환출자 고리가 올해 6월 기준으로 400여개로 줄어들었다. 경제개혁연대는 대신 전자투표제, 집단소송제 등 소액주주의 주주권을 강화하는 방안과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들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그동안 정치권의 재벌개혁 목소리는 주로 야당에서 먼저 나왔다. 새정치연합은 올해 2월 삼성그룹 오너 일가의 승계 문제를 겨냥한 일명 ‘이학수법’을 대표 발의했고, 2013년 7월에는 재벌그룹의 내부거래를 규제하는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하지만 재벌개혁 법안의 대부분은 국회에 잠들어 있다.

19대 국회 개원 직후인 2012년 7월, 김영주 새정치연합 의원 등 126명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재벌그룹 내의 순환출자를 원천적으로 금지할 뿐만 아니라, ‘다단계 출자’를 방지하는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 등을 담고 있다. 하지만 3년이 다 되도록 국회 정무위 법안심사소위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금산분리 완화 등 재벌 지주회사에 대한 규제를 푸는 개정안을 발의했고, 김학현 공정거래위 부위원장은 올해 4월 국회 정무위에 출석해 “제한적으로 기업 투자 활성화에 효과가 있다고 입증되는 것은 완화해 주자는 입장”이라고 발언했다.

정부가 정말 재벌개혁 의지가 있다면, 보건복지부 산하의 국민연금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서정욱 변호사(전 청와대 미래기획위원)는 “주요 기업에 10% 가까운 지분을 갖고 있는 국민연금만큼 재벌을 견제할 세력은 없다”고 지적했다. 500조원이 넘는 기금을 가진 국민연금도 현 정부 들어 반대 의결 비율을 10%까지 높였다. 그러나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대해 찬성하고, 한전부지를 10조원에 매입한 현대차 사내이사 선임안에 반대하지 않는 등 문제적인 의결권 행사도 여전하다. 서 변호사는 “국민연금이 과거보다 적극적인 의견개진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 삼성건처럼 말도 안 되는 결정도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최요한 경제평론가는 “경제성장론에 경제민주화가 잡아먹혔고, 정경유착을 넘어 정경일체로 가는 상황”이라며 “새정치연합 등 야당도 재벌개혁을 좀 더 강하게 밀어붙여 새누리당과 정부가 조금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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