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재벌 승계 ‘막장 드라마’ 반복된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돈은 피보다 진한 역대 경영권 분쟁, ‘왕자의 난’에서 ‘시숙의 난’까지

롯데가의 경영권 분쟁이 한국 사회를 흔들고 있다. 연로한 창업자와 두 아들이 얽힌 가족 간 경영권 분쟁은 한국 재계에서 낯선 풍경이 아니다. 21세기가 시작된 지 15년이나 지났지만 한국 재벌들은 아직 20세기 경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비아냥도 나온다.

한국 재벌의 후진적 경영은 오너경영에서 비롯됐다. 총수의 말 한마디가 곧 이사회의 결정이었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삼성·현대·SK·LG·롯데·GS·현대중공업·한진·한화·두산 등 국내 10대 그룹 총수가 보유한 상장 계열사 지분율은 평균 0.25%에 불과했다. 적은 지분율은 오너의 리더십이 훼손될 때면 여지없이 경영권 위기를 불러왔다. 경영자 교체 시기 때마다 기업들이 분쟁을 겪은 이유다. 30대 재벌 오너 중 77세 이상 고령자가 10여명이 넘는다.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재벌들의 막장 드라마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 “롯데는 2세 승계의 종결편이고, 3세 승계 드라마는 삼성이 이제 막 시작했다”고 말했다. 2000년대 이후 논란이 됐던 역대 경영권 승계 분쟁을 짚어봤다.

정몽구, 정주영, 정몽헌(왼쪽부터) 현대 3부자가 나란히 테이블에 앉아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정몽구, 정주영, 정몽헌(왼쪽부터) 현대 3부자가 나란히 테이블에 앉아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현대그룹-‘왕자의 난’(2000년)과 ‘시숙의 난’(2006년)
2000년 3월 발생한 현대그룹의 ‘왕자의 난’은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의 원조격이다. 등장인물은 연로한 창업자(정주영 명예회장)와 두 아들(차남 정몽구, 5남 정몽헌)로, 롯데와 똑같다. 정 명예회장이 병환이 깊어 일선에서 물러나자 두 아들은 그룹의 공동회장이 됐다. 그런데 정몽헌 회장이 아버지의 대북사업을 이어받으며 그룹경영 전면에 나서자 문제가 생겼다. 정몽구 회장은 2000년 3월 14일 정몽헌 회장의 최측근인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을 고려산업개발 회장으로 좌천시키며 선수를 쳤다. 다음날 동생 정몽헌 회장은 형의 결정에 반발하며 이익치 회장의 인사를 보류시켰다. 이어 3월 24일 현대 구조조정위원회가 형인 정몽구 회장을 파면시켰다. 3월 27일에는 현대그룹 사장단들의 모임인 현대경영자협의회가 5남인 정몽헌 회장을 단독 회장으로 승인했다. 정몽구 회장은 아버지 정 명예회장이 재가했다는 서류를 공개하며 반박에 나섰다. 정몽헌 회장은 와병 중이던 정 명예회장을 기자회견장까지 불러세워 단독 회장을 확약받는다. 결국 왕자의 난은 정몽헌 회장의 승리로 돌아갔다. 그는 현대가의 적통을 잇는 현대건설, 현대상선, 현대전자 등 연매출 80조원 규모의 26개 계열사를 소유하게 됐다. 형인 정몽구 회장은 자동차를, 3남 정몽근 회장은 현대백화점을, 6남 정몽준 회장은 중공업을 가져가면서 현대가는 분리됐다.

하지만 뒷이야기는 대반전이다. 정몽구 회장의 현대차그룹과 정몽준 회장의 현대중공업그룹은 순항했지만, 정몽헌 회장의 현대건설과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반도체)는 부실경영으로 채권단에 넘어갔다. 여기에 대북송금 특검까지 연루되면서 정 회장은 자살한다. 그룹은 아내인 현정은 회장이 이어받지만 캐시카우였던 현대상선까지 상황이 나빠지면서 다시 흔들린다. 정주영 명예회장의 동생이자 금강고려화학(현 KCC)의 정상영 명예회장은 “현대그룹을 현가에게 줄 수 없다”며 현대그룹 인수에 나서면서 ‘시숙의 난’으로 확대됐다. 2006년 현대그룹이 지주회사 격인 현대엘리베이터의 우호지분 40%를 확보하면서 분쟁은 일단락됐다.

금호그룹-왕자의 난(2009년)
고 박인천 금호그룹 회장의 3남 박삼구, 4남 박찬구 회장이 갈등을 겪으면서 금호그룹은 금호아시아나그룹과 금호석유화학으로 갈라섰다. 금호그룹은 2006년 대우건설, 2008년 대한통운을 인수하면서 재계 8위까지 오른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로 그룹에 유동성 위기가 닥치자 대우건설 재매각을 추진한다. 이 과정에서 박찬구 회장은 자신이 맡은 금호석유화학이라도 살리겠다며 분리경영을 추진한다. 당시 총수였던 박삼구 회장은 동생 박찬구 회장을 대표에서 해임하며 동반퇴진을 선언했다. 이 과정에서 양측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비방전을 펼쳤다.

금호그룹은 형제간의 우애가 특히 좋아 ‘형제경영의 모범’이라고 불렸다. 박인천 창업주의 장남인 박성용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1996년 회장직을 차남인 박정구 회장에게 넘겨줬다. 박성용 회장은 “65세가 되면 경영권을 동생에게 물려주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고, 이를 실행했다. 회장이 자발적으로 경영권을 넘긴 것은 유례없는 일이었다. 차남인 박정구 회장이 급작스레 사망하자 경영권은 3남인 박삼구 회장에게 넘어갔다. 하지만 어려워진 그룹 상태는 형제 간의 우애도 갈랐다. 3남에서 4남으로는 경영권이 이어지지 못하고 그룹은 쪼개졌다.

2005년 7월,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이 서울 강남구 KBO건물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05년 7월,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이 서울 강남구 KBO건물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두산그룹-‘형제의 난’(2005년)
그룹 회장이 동생들을 내부고발하는 유례없는 ‘왕자의 난’이었다. 두산그룹도 형제가 공동경영하는 전통이 있었다. 하지만 2005년 사달이 난다. 장남인 박용곤 명예회장은 차남인 박용오 회장에게 “경영한 지 10년쯤 됐으니 그룹 회장직을 3남 박용성에게 넘기라”고 요구했다. 두산은 장남 박용곤, 차남 박용오, 3남 박용성, 5남 박용만 등 4인의 공동경영체제로 운영돼 왔다. 하지만 박용오 회장은 이를 거부하며 두산산업개발을 떼줄 것을 요구했다. 두산산업개발의 경영권을 확보하면 두산그룹을 지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차기 그룹 회장으로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이 발표됐다. 박용오 회장은 5월 21일 기자회견을 열어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과 박용만 부회장이 수천억원에 달하는 비자금을 조성해 유용하고 해외 밀반출을 해오다가 최근 본인에게 적발됐다”며 “그러자 서로 공모해 일방적으로 (나를) 명예회장으로 발표하는 등 도덕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을 했다”며 반격에 나섰다. 그러면서 “용성·용만 두 형제가 엄청난 비리를 저지르고도 반성하기는커녕 형을 회장직에서 축출하고 모함하는 작태를 연출했다”고 주장했다.

형제들을 고발한 박용오 전 회장은 이 사건으로 가문의 분노를 샀고, 결국 제명됐다. 박용오 전 회장은 성지건설로 복귀를 시도하지만 여의치 않았고, 2009년 11월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효성그룹-‘왕자의 난’(2014년~)
차남이 큰형을 배임 및 횡령으로 고소하면서 시작된 전쟁이다. 조석래 회장의 차남인 조현문 전 부사장은 7월 22일 “수백억원의 회삿돈을 횡령하고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배임)로 형 조현준 사장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조현문 전 부사장이 고발한 두 회사는 효성그룹 계열사인 트리니티에셋매니지먼트와 신동진 등이다. 형 조현준 사장과 동생인 3남 조현상 부사장이 각각 최대 주주로 있는 곳이어서 형과 동생을 겨냥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효성 내부에서는 조현문 전 부사장의 고발에 대해 “그룹 후계구도에서 배제되자 앙심을 품은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됐다.

조현문 전 부사장은 2013년까지 효성중공업 PG장(사장)으로 그룹의 중공업 부문을 맡았다. 하지만 2013년 초 모든 직함을 내려놓고, 효성지분도 처분하면서 효성 경영권 경쟁구도에서 멀어졌다. 조 전 부사장 측은 “고발한 두 회사의 지분을 보유한 주주로서 응당한 문제제기를 했다”는 입장이지만,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효성의 경영권은 예상치 못한 곳으로 튈 수도 있다. 이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에 배당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관련기사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