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올림픽은 환경파괴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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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련, 설악산에 케이블카와 4성급 호텔 건립 등 국립공원 개발 추진

평창동계올림픽은 ‘돈 먹는 올림픽’에 이어 국립공원을 훼손하는 ‘환경파괴 올림픽’으로 기록될까.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속내대로 이뤄진다면 그런 오명을 뒤집어쓸 가능성이 크다. 평창올림픽위원회와 강원도민의 의도와 다르게 말이다. 기자가 입수한 전경련의 ‘평창동계올림픽을 활용한 강원도 산지관광 활성화방안’에는 전경련의 국립공원 개발전략이 잘 나타나 있다. 전경련은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설악산에 케이블카와 4성급 호텔을 짓고, 이를 계기로 주요 국립공원에 이런 시설을 확충하려는 전략을 밝히고 있다. 최경환 경제팀은 이런 전경련의 구상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를 비롯해 문화체육관광부, 환경부, 국토교통부 등은 앞장서서 관련 보호장치를 잇달아 무력화시키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강을 ‘녹조라떼’로 만들었다면 박근혜 정부는 ‘산을 반토막 낸’ 정권으로 기록될 참이다.

“노약자·외국인 등 새 관광객 유입시킬 것”
7월 16일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는 새누리당 염동열 의원과 전경련이 공동 주최한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지속성장 방안 마련 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주제발표자로 나선 이승철 민·관 합동 창조경제추진단장은 전경련이 작성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강원도 산악 개발에 대한 구상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활용한 강원도 산지관광 활성화 방안-올림픽 특구 지정 및 활용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를 보면 설악산과 가리왕산 등 강원 5개 산악지역에 대한 산지관광 모델이 제시됐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국립공원 산 정상에 대규모 호텔을 개발하는 것이다. 설악산의 경우 오색에서 끝청까지 ‘오색케이블카’를 건설한 뒤 산 정상부 케이블카 인근에 2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4성급 호텔과 레스토랑을 짓자고 했다. 호텔 좌우로는 산악자전거(MTB)와 4륜바이크(ATV) 코스가 만들어진다. 산 중턱에는 펜션도 지어진다. 오색케이블카가 양양군 등에서 주장해 온 친환경케이블카 건설로 끝나지 않고, 결국은 산 정상과 중턱을 파헤치는 대규모 개발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7월 16일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이 국회 헌정기념관 강당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7월 16일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이 국회 헌정기념관 강당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전경련은 보고서에서 “숙박시설과 케이블카의 관광시설 확충은 노약자, 외국인 등 새 관광객을 유입시킬 것”이라며 “숙박, 식사, 체험활동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가 제공되면서 지역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식으로 개발될 때 전경련이 추정한 개인당 1박2일 비용은 18만2500원이다. 호텔산장 숙박에 8만원, 산 정상 레스토랑 식사에 3만9000원, 산림테라피 5만원, 케이블카 입장료 1만원, 설악산 입장료 3500원 등이다. 보고서는 “지금은 대피소 취침과 식사(라면, 햇반, 커피) 등에서 돈을 쓸 때 1인당 3만6000원밖에 안 쓴다”며 “기존 대비 1인당 지출이 약 5배 정도 증가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가리왕산 정상에도 레스토랑 건설이 제안됐다. 스키와 MTB 코스로 개발하기 위해 곤돌라와 리프트를 세 군데 이상 건설한 뒤 정상 인근에 레스토랑을 짓겠다는 것이다. 여름에는 MTB로, 겨울에는 스키로 활용하면 1인당 여름에는 1박2일에 29만원, 겨울에는 27만원을 소비하게 된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산 정상 호텔과 식당 개발이 가능하게 된 것은 정부가 관련 규제를 없애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표고 50% 이상(산 중턱에서 산 정상까지), 경사도 25도 이상에는 호텔을 지을 수 없도록 한 규제를 없애겠다고 밝혔다.

산 정상 호텔 건설은 최경환 경제팀의 역점사업이다. 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취임 직후인 지난해 8월 12일 6차 투자활성화 대책에서 ‘산지관광특구제도’ 도입을 발표했다. 특구로 지정된 지역은 산지관리법, 산림보호법, 자연공원법 등 관련법의 규제를 일괄 해제하겠다고 밝혔다. 경사도 25도, 표고 50% 초과 지역 개발도 허용하겠다는 내용이 이때 나왔다. 설악산과 남산에 추가 케이블카를 허용하겠다고도 했다. 당시 정부는 보도자료에 전경련 보고서에 있던 스위스의 호텔 사진 자료를 그대로 실었다. 제안자가 누구인지를 가늠케 하는 ‘흔적’을 남기는 실수를 저지른 셈이다.

1년이 지난 지난 7월 9일 8차 투자활성화 대책에서는 한층 더 진보된 ‘산악관광진흥구역’ 도입방안이 발표됐다. 보전산지, 요존국유림(생태계 보전, 상수원 보호를 위해 보존할 필요가 있는 국유림), 백두대간보호지역 중 완충구역 등에서도 호텔과 골프장, 리조트를 지을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고 했다. 특히 3만㎡ 이상 대규모 사업자만 개발을 허용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대규모 자본이 있는 대기업들만 허용하겠다는 것으로, 개인 영세사업자의 진입을 사실상 막았다. 대기업 특혜는 또 있다. 사업자는 개발부담금, 대체초지조성비, 농지보전부담금, 대체산림조성비 등을 감면받는다. “산악관광 개발이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대기업에 이윤 몰아주기에 불과하다”(녹색연합 배보람 정책팀장)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강원도 산업(山業)단지 조감도 / 자료 : 전국경제인연합회

강원도 산업(山業)단지 조감도 / 자료 : 전국경제인연합회

지리산과 한라산도 케이블카 건설 주장
전경련은 산지규제를 풀기 위해 박근혜 정부 초기부터 로비를 펴왔다. 전경련은 지난 6월 12일 열린 토론회에서 “산악규제를 풀면 일자리 18만개가 생긴다”며 규제를 풀어줄 것을 요구했고, 문화체육부는 “덩어리 규제를 일괄 해소하기 위해 특별법을 준비하고 있다”고 답했다. 발표 시기가 문제였다. 정부와 전경련은 눈치만 봤다. 이때 터진 것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였다. 메르스 사태는 국민들에게는 공포였지만 전경련에는 기회였다. 전경련은 6월 28일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로 타격을 입은 관광산업을 살리기 위해 산악개발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정부에 건의했다. 전경련과 정부의 이 같은 찰떡 공조에 “최경환 경제팀은 전경련의 세종지점”이라는 비아냥을 시민사회단체로부터 받았다.

환경부는 “국립공원은 개발을 할 수 없도록 해놨기 때문에 설악산 정상에 호텔을 짓는다는 전경련의 안은 현실성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환경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다. 평창동계올림픽이 있기 때문이다. 전경련 보고서는 “올림픽은 지금까지 제도에 막혀 못했거나 타 지역과 형평성 논란 등으로 추진이 어려웠던 사업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강조했다. 덕유산 국립공원 케이블카는 1997년 무주-전주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위해 제정된 특별법으로, 왕산 마리나 사업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요트경기장 건설을 위한 국토부의 규제완화로 건설이 가능했다. 보고서는 “올림픽특구를 산업(山業)특구로 지정한 후 시범운영을 하고, 이를 기반으로 전국으로 확대해 파급효과를 증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즉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설악산을 먼저 개발한 뒤 지리산, 한라산 등으로도 확대하자는 것이다. 실제 지리산과 한라산도 케이블카 건설 주장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위원은 “규제완화를 할 때는 투자효과와 함께 규제완화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함께 산출해야 하지만 최근 투자활성화 계획에는 이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경향이 짙다”며 “특히 환경 규제완화는 부정적 외부효과(직접적인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은 경제주체들이 피해를 입는 것)가 큰 만큼 실제 이득이 얼마나 되는지, 그 이득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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