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싣고 달리는 ‘행복배달 빨간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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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사소한 사물이나 사건에도 의미를 부여하기를 좋아한다.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어떤 것에 의미가 부여되는 순간, 신기하게도 그것은 종전과 다르게 보인다. 그것이 바로 상징효과다.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인식의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회’라고 불렀다.

아마도 자전거만큼 다양한 상징적 의미를 가진 물건은 없을 듯하다. 자전거의 페달은 전진, 핸들은 균형, 바퀴는 윤회 등 부속품까지 상징화됐다. 이처럼 다의적 의미를 가진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우리 생활 속에 친숙하게 녹아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다양한 의미의 변신을 해온 까닭이다. 시간의 변화와 함께 ‘인식의 전회’에 휘둘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상 첫 번째 자전거는 ‘바퀴 달린 목마’ 모양을 한 셀레리페르였다. 여기에 부여된 의미는 식상하다. 그저 ‘빨리 달리는 기계’였다. 셀레리페르은 곧 드라이지네로 변신한다. 핸들과 안장이 부착된 근대적 자전거의 모양을 갖추게 된 것이다. 다시 나무 바퀴 대신 타이어 바퀴가 부착되면서 자전거에 세상을 바꾸는 역사적 의미가 부여된다. 여성 해방이다. 자전거를 타고 여성들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치마 대신 바지를 입게 된 계기가 됐다. 자전거를 타는 것 자체가 남성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한 집배원이 지역주민에게 민원서류를 전달하고 작성법 등을 설명해주고 있다. | 우정사업본부 제공

한 집배원이 지역주민에게 민원서류를 전달하고 작성법 등을 설명해주고 있다. | 우정사업본부 제공

혁명을 부른 자전거. 그것이 얼마나 빨리 진화되고 보급됐는지는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물론 초기의 보급은 정부기관이 맡았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유럽에서 자전거 부대, 자전거 소방차, 자전거 우체부 등이 속속 등장했다. 사고 방지를 위한 자전거 교통법규가 만들어졌다. 자전거를 소유한 개인에게는 세금도 부과됐다. 부의 아이콘이었다.

자동차가 자전거의 역할을 대신하면서 자전거의 운명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가난과 고통의 상징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신문, 쌀, 막걸리 등을 배달하던 낡은 자전거를 기억할 것이다. 나라가 부강해지면서 가난의 상징은 청렴의 대명사로 바뀌었다.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국회의원이 생겼고, 그들은 부정부패하지 않은 ‘높으신 분’으로 칭송을 받았다. 대구 동구 출신 서훈 전 의원은 자전거를 타고 국회의사당에 출근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서울시장을 지낸 오세훈 전 의원도 한때 ‘자전거 의원’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이명박 정권에 들어와서는 자전거가 환경과 건강을 지키는 녹색혁명의 깃발이 됐다. 마치 지구를 구원할 수 있는 도깨비 방망이처럼.

우정사업본부가 2년여 전인 2013년 10월 자전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랑으로 달리는 기계’로 변신(?)시켰다. 집배원들이 농어촌지역에 맞춤형 민원·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행복배달 빨간자전거’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지역 사정을 잘 아는 집배원이 우편물을 배달하면서 독거노인 등 사회취약계층의 생활, 주민의 불편·위험 등을 지자체에 알려줘 지원을 받게 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이 사업 착수 2년도 채 되지 않은 지난달에 ‘행복배달 빨간자전거’ 서비스 1000건을 돌파했다. 올해에는 다치거나 위독한 주민 구조 9건, 화재 첫 발견 후 초동진압 신고 10건 등 인명과 재산을 지키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오고 있다.

자전거가 어떤 의미로 포장되든 고유의 성질은 변하지 않는다. 자전거는 좌우 균형이 잡혀야 전진할 수 있다. 적정한 속도 이상으로 페달을 밟지 않으면 햇살과 바람을 가르는 쾌감을 느낄 수 없다. 좌우 균형을 이루고 지속성장하지 않으면 행복한 사회가 되지 않는다는 교훈을 준다. 지속가능한 발전의 토대는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다.

<김경은 편집위원 jj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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