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사법개혁, ‘감옥국가’ 오명 벗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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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1970년대부터 ‘대량투옥(mass incarceration)’이 형법의 중요한 원칙으로 자리잡았다. 많이 잡아들여 되도록 오래 감옥 안에 가두는 것을 범죄예방을 위한 최선의 방법으로 여겼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대량투옥 원칙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감옥에 들어갔다. 지난 7월 16일 오클라호마주 엘리노 연방교도소. 찰스 사무엘스 연방교도소 관리국장이 독방구역으로 대통령을 안내했다. 대통령은 ‘123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사무엘스 국장이 123호의 회색 철문을 열자, 대통령은 내부를 찬찬히 둘러봤다. 흰색 와이셔츠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올린 오바마 대통령은 독방에서 나와 취재진 앞에 섰다. “이곳에 있는 재소자들은 내가 과거에 했던 것과 비슷한 실수를 한 젊은이들입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나에겐 실수를 만회할 만한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이고, 이들에겐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날 그는 교도소를 방문한 미국 최초의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미국 감옥 재소자 수 221만명 넘어
오바마 대통령은 왜 감옥에 갔을까. 그의 교도소 방문은 오바마 정부가 임기말 역점과제로 꼽고 있는 사법개혁을 강조하기 위한 이벤트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14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 연례회의에 참석해 ‘고장난(broken)’ 사법시스템을 고치겠다고 밝혔다. 그날 오바마가 미국 사법체계에 제기한 문제는 크게 두 가지 질문으로 요약된다. ‘죄를 지은 사람들을 더 많이 더 오래 가두면 사회는 더 안전해지는가’ ‘교도소를 나온 사람들은 미국 사회의 정상적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 모두 수십년간 지속된 미국의 사법·교정 원칙의 중심을 찌르는 질문이다.

살인죄로 기소돼 18년간 복역한 뒤 무죄로 풀려난 앤소니 그레이브스가 2010년 석방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독방 형벌 시스템 개선에 앞장서고 있는 그레이브스는 오바마 대통령의 사법개혁안 발표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 AP연합뉴스

살인죄로 기소돼 18년간 복역한 뒤 무죄로 풀려난 앤소니 그레이브스가 2010년 석방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독방 형벌 시스템 개선에 앞장서고 있는 그레이브스는 오바마 대통령의 사법개혁안 발표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 AP연합뉴스

미국은 1970년대부터 ‘대량투옥(mass incarceration)’이 형법의 중요한 원칙으로 자리잡았다. 많이 잡아들여 되도록 오래 감옥 안에 가두는 것을 범죄예방을 위한 최선의 방법으로 여겼다.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흑인시위를 잠재우기 위해 시작된 이 원칙은 1990년대 빌 클린턴 정부부터 미국 형법의 상징이 됐다. 클린턴 대통령은 1994년 한 사람이 세 번 이상 유죄평결을 받으면 무기징역을 선고하도록 의무화하는 ‘삼진아웃제’ 법안을 통과시켰다. 경제불황과 사회불안으로 급증하는 범죄를 수습하기 어려웠던 클린턴 정부가 택한 극약처방이었다. 시행 초기 수치상 범죄발생률이 줄어들면서 법안은 큰 효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대량투옥이 범죄예방에 거의 효력이 없다는 연구결과들이 연이어 발표됐다. 특히 감옥을 나온 사람들의 60%가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량투옥정책은 새로운 기록을 만들었다. 미국을 세상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가두고 있는 나라로 만든 것이다. 2015년 국제교정연구소(ICPS)에 따르면 미국 재소자 수는 221만7000명이다. 미국 인구는 전 세계 인구의 5% 정도이지만, 재소자 수는 전 세계의 20%를 넘어섰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지난 16일 21년 전 자신이 너무 쉬운 길을 택했다고 인정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 법은 좋은 법이 아니었다”며 “경미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까지도 너무 오래 교도소에서 인생을 보내게 됐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량투옥 원칙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마약범죄자들의 경우 비폭력사범들까지도 의무적으로 징역을 살게 하는 제도를 재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 연방교도소 재소자의 48%가 마약사범일 정도로 미국 감옥은 마약범죄자들로 가득차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엘리노 연방교도소 방문 때 비폭력 마약사범 6명을 직접 만나 45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과거 회고록에서 젊은 시절 마리화나와 코카인에 손댄 사실을 고백한 오바마 대통령은 “젊은 날 실수를 저지른 이들에게 두 번째 기회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도소 내부생활도 개혁 대상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우선 독방감금제 개선을 지시했다. 미국 교도소에는 1980년대부터 독방 시설이 광범위하게 이용되고 있다. 처음에는 살인 등 중범죄를 저지른 이들에게만 적용됐지만 차츰 일반 범죄자들까지 독방에 수감하는 일이 늘면서 비판이 제기돼왔다. 독방은 최소 23시간에서 며칠, 몇 년씩 갇히게 되는데 독방에 있는 동안에는 감옥 안의 교정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없고 면회도 받을 수 없다. 독방시스템 폐지를 요구하는 미국 내 인권활동가들과 의사들은 독방에 갇힌 재소자들이 심각한 고립감을 느끼며 우울증, 분노조절장애, 자해충동에 시달린다고 주장한다. 재소자들을 상담하고 있는 정신분석전문의 테리 쿠퍼 박사는 “재소자들이 독방에서 나올 때 그들은 완전히 망가져있다”며 “영구적인 손상을 입는다”고 말했다. 살인죄로 기소돼 유죄판결을 받고 18년 동안 복역하다 무죄로 풀려난 앤소니 그레이브스는 수감기간 중 16년을 독방에서 보냈다. 그는 “독방은 한 인간의 삶에 대한 의지를 꺾기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지금 독방시스템 개선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 사람을 23시간 동안 혹은 며칠, 몇 년 동안 가두는 것이 과연 우리 사회를 더 강하고 안전하게 만드느냐”며 로레타 린치 법무장관에게 독방수감제의 오남용 실태를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 사회를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범죄가 일어나기 전에 미리 막는 것”이라며 “범죄가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은 많은 시민들에게 평등한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죗값을 다 치르고 나온 사람들에게는 투표권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고, 가족의 투옥으로 무너진 가정의 아이들에게도 교육받을 권리와 직업을 가질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법개혁 가장 큰 걸림돌은 돈
오바마 대통령이 던진 사법개혁안은 2016년 미 대선에서도 주요 화두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사법개혁을 위해 의회에 초당적 협력을 당부했다. 클린터 전 대통령이 자신의 법안을 ‘실수’라고 인정한 것 역시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선 힐러리 클린턴 전 장관의 도전에 힘을 실어주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오바마표 사법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은 공화당이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사법개혁안을 발표할 때 사법개혁에 협조적인 공화당 의원들의 이름을 줄줄이 언급했을 정도로 양당은 현행 사법체계개혁에 일정 부분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문제는 돈이다. 미국을 ‘감옥국가’라 부르는 것은 단순히 감옥과 재소자 수가 많아서가 아니다. 감옥이 미국에서 중요한 ‘사업’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범죄가 급증하고 재소자들이 넘쳐나면서 미국 정부는 1980년대부터 민간이 운영하는 교도소를 허가했다. 1983년 1월부터 운영하기 시작한 미교정협회(CCA)와 GEO 그룹은 미국 민간교도소 운영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교도소 사업으로 연간 수십억 달러의 이윤을 보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CCA와 GEO 그룹이 교정시설을 부동산투자시설로 판매하기 시작한 사실을 전하며 “교도소가 새로운 투자대상이 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교도소 운영의 상당부분을 민간에 의존하고 있는 미국 정부는 민간교도소들의 로비를 받아 투옥률을 높이며 ‘수익원’인 재소자들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공급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뉴욕타임스는 21일 ‘오바마가 재소자 수를 줄이기 어려운 이유’라는 분석기사에서 “죄수들의 상당수는 연방정부가 아닌 각 지방정부가 관리하는 재소자들”이라며 “각 지방정부의 교도소 운영체계와 비용운영은 모두 독립적이기 때문에 개혁안이 영향을 미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2012년 자료를 보면 전체 비용 중 98.8%가 주정부와 기타기관에서 부담한 것이고 연방정부 예산은 1.2%에 불과했다. 오바마 정부가 원칙을 제시하고 개선을 촉구할 수는 있지만, 개별 교도소와 교정시스템에서 실제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돈’의 산을 넘어야 한다는 뜻이다.

<장은교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ind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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