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낀 밤길 떠도는 인생, 쉴 곳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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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원의 에브리컬처]안개 낀 밤길 떠도는 인생, 쉴 곳은 어디일까

떠난 기차는 오늘의 막차. 현재 시각은 밤 열두시 반. 플랫폼과 역사의 불빛을 제외하고는 주변은 칠흑같이 어둡다. 나와 함께 기차에서 내린 승객들이 모두 역을 빠져나가자, 역사(驛舍)의 문이 닫힌다. 플랫폼에는 나밖에 남지 않았다.

줄리언 반즈의 ‘실화’ 소설인 <용감한 친구들(Arthur & George)>은 멋진 소설이다. 일단 줄거리는 이렇다. ‘편견과 악의에 찬 누명을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한 조지 에들지라는 사무변호사가 그 유명한 셜록 홈즈 시리즈의 작가 아서 코난 도일 경의 도움을 받아 끈질기고 담대한 싸움 끝에 결국 자신의 결백을 입증, 영국 사법사상 최초로 항고법원이라는 제도를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줄리언 반즈는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흔히 취하게 마련인 ‘진보주의풍’ 설교와 진부한 영웅담이라는 함정을 과연 대가다운 솜씨로 피하면서도 두 주인공들의 매력과 신조, 그리고 인간적인 갈등과 모순을 절묘한 밸런스로 써내고 있다. 주최 측의 카피문구 그대로 한 번 손에 잡으면 놓기 어려울 정도로 재미있고, 양적으로도 넉넉한 소설이니 여름휴가 아이템으로 더할 나위 없겠다.

막차에서 잘못 내려 홀로 남은 이방인
그런데 이 소설에서 ‘아서(즉, 코난 도일)’에 관한 상당히 인상적인 일화 하나가 나온다. 코난 도일은 유명인사가 된 뒤 이런저런 행사들의 주빈(主賓)으로 초청되는데, 그 중엔 ‘강한 남자 선발대회’도 있었다. 이 대회에서는 남자다움과 근력 모두에서 출중했던 한 랭카셔 남자가 우승 트로피인 황금상패를 받는데, 그 날 밤 거리로 나선 코난 도일은 팔뚝 밑에 황금상패를 낀 채 안개 낀 밤거리를 혼자서 어슬렁거리고 있는 그 우승자를 발견한다. 아서가 다가가 사정을 물으니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는 내일 아침에 있는데, 그 때까지 여관에 머물 돈이 없어 거리나 돌아다니면서 시간을 보내려고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아서는 즉각 그 청년을 호텔로 데리고 가 투숙시킨다.

이 에피소드가 왜 그리 인상적인가 하면 ‘팔 아래 황금상패까지 끼고 있지만, 주머니에 돈 한푼 없이 동 틀 때까지 혼자 가스등을 밝힌 거리를 걷기로 마음먹은 남자’의 정경과 심정이 내겐 더할 나위 없이 절절하게 와 닿았기 때문이다.

사연인즉 이렇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의 봄이었다. 나는 유럽 배낭여행을 돌던 중 인도로 넘어가기로 결심, 파리에서 델리행 비행기를 예약했다. 가뜩이나 가난한 배낭 여행자인데다 예정에도 없던 항공료 지출이었던 터라 가장 저렴한 비행기를 예약했다. 이 비행기 시간에 맞추려면 출발 전날 공항행 막차를 타고 공항에 가서 공항 로비에서 잠을 자며 비행기를 기다려야 했다. 대개의 배낭족들이 그러는 것처럼.

거기까진 좋았다. 문제는 내가 떠나기 직전, 같은 숙소에서 머물던 배낭족 친구들이 나의 성공적 인도여행을 기원하는 깜짝 환송파티를 열어줬다는 것이었다. 이 파티에서 예기치 않게 많은 술을 급히 마시게 된 나는 깜빡 기차에서 졸아버리고 말았다.

뭔가 심상찮은 인기척에 화들짝 눈을 떴을 때, 주위의 모든 승객들이 객차에서 내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차내 방송에서는 ‘샤를 드골 공항’이라는 단어가 연신 들려온다. 깜짝 놀란 나는 황급히 짐을 챙겨들었다. 그리고 간신히 기차가 출발하기 전 객차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응? 그런데 뭐라고?

출발?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보니, 목적지인 샤를 드골 공항 역은 기차의 종착역이다. 그런데 ‘출발’이라니?

그랬다. 그만 목적지에서 한 역 일찍 내려버렸던 것이다.

떠난 기차는 오늘의 막차. 현재 시각은 밤 열두 시 반. 플랫폼과 역사의 불빛을 제외하고는 주변은 칠흑같이 어둡다. 나와 함께 기차에서 내린 승객들이 모두 역을 빠져나가자, 역사(驛舍)의 문이 닫힌다. 플랫폼에는 나밖에 남지 않았다. 인적은 완전히 끊겨버렸다. 간간이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뿐.

때는 초봄. 따뜻했던 낮과는 달리 새벽이 되니 입김이 날 정도로 기온은 급격히 내려간다. 이대로 플랫폼에서 밤을 새야 할 판이다. 뭐, 그건 그럭저럭 할 수 있겠지만 비행기 시간은 어쩌란 말인가?

그 때, 어둑한 플랫폼 반대편 끝에서 뭔가 시커먼 형체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SWAT 풍의 검은색 유니폼으로 무장한, 키가 거의 190㎝는 돼 보이는 남자와 그 남자만큼이나 커다랗고 사나워 보이는 개였다. 경비원이 역 순찰을 도는 중이었던 것이다. 이제 이 플랫폼 벤치에서도 쫓겨나는 건가? 이 한밤중에 이름도 모를 프랑스 교외마을 어디서 시간을 보내야 하나?

다가온 경비원 청년의 얼굴은 유니폼만큼이나 검었다. 갈색이 아닌 진짜 검은색 얼굴. 모르긴 해도 프랑스령 아프리카 식민지였던 나라(말리라든가 세네갈이라든가)에서 이민을 왔거나 이민 2세일 것이다. 나는 영어로 상황을 설명했지만 그는 전혀 영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하여 나는 그런 상황에 언제나 그랬듯, 수첩을 꺼내들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기차, 시계, 막차시간, 비행기, 비행기 탑승시간, 드골 공항. 그러는 동안 그의 옆에 선 검은 색 경비견은 연신 뜨끈한 콧김을 내뿜고 있었다.

흑인 경비원 친절로 무사히 인도로
다행히도 경비원 청년은 상황을 이해한 것 같았다. 그는 프랑스어로 뭔가를 중얼거리더니 나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고는 개와 함께 앞장서서 걸었다. 그가 걷는 방향은 역사 방향이 아니라 그 반대쪽의 플랫폼이었다. 그 방향에는 아마도 통근자들이 주로 차를 세우는 곳인 듯, 서너 대의 차만 듬성듬성 서 있는 주차장이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어두운 거리와 어둠뿐.

청년이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주차장 한쪽 구석에 세워져 있는 하얀색 차 앞이었다. 한 눈에도 버려진 폐차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앞 유리창은 깨져 있었고, 뒷유리에는 판자가 대어져 있었다. 판자에는 붉은 스프레이로 커다란 낙서가 써져 있었다.

끔찍한 소리를 내며 열린 녹슨 차문을 연 경비원 청년은 뭔가 말하며 차 안쪽을 가리켰다. 차 안쪽은 겉모습과는 달리 꽤 깨끗했다. 뒷자리에는 제법 따뜻해 보이는 담요까지 놓여 있었다. 머뭇거리는 나를 향해 청년은 두 손을 모아서 한쪽 귀에 대고는 고개를 기울여보였다. 만국 공용어. 청년은 나에게 첫차가 올 때까지 눈을 붙일 잠자리를 마련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뭔가 감사하고 싶었지만 아는 불어라고는 봉쥬흐, 그리고 메흐씨 정도뿐이었다. 문득 배낭 속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생각났다(그 당시는 디카조차 흔치 않은 시절이었다). 나는 카메라를 꺼내 청년과 개의 사진을 찍었다. 그를 위해 한 장. 나를 위해 한 장. 청년은 내가 사진 밑 공백에 적은 한글이 처음 보는 글자인 듯 무척 신기해했다. ‘감사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그 말의 의미를 그가 알 리는 없었지만, 그래도 충분했다. 이미 이해해야 할 것은 모두 이해됐으니까.

다시 순찰을 돌기 위해 역으로 돌아가면서 청년은 그 역만의 공항행 첫 차 시간을 알려줬다. 그 시간은 무척 빠듯하긴 했지만, 비행기 시간에 간신히 맞출 수 있을 정도는 됐다. 덕분에 나는 다음 날, 무사히 델리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그리고 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다.

종종 그 경비원 청년을 떠올리곤 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결국 인생이란 안개 낀 밤길을 혼자 떠도는 누군가와, 그에게 씌워주는 지붕에 관한 문제가 아닐까 하고. 그것이 고급 호텔의 객실이 됐든 버려진 고물차의 뒷자리가 됐든 말이다.

<미생>의 대사 ‘시련은 셀프’를 진통제처럼 입에 달고 사는 지금의 우리에게조차.

<한동원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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