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지주회사 전환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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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의 ‘삼성생명법’ 여당이 반대… 여당의 ‘금융지주회사법’ 야당이 반대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원내대표임에도 불구하고 정무위의 법안심사소위원회 위원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원내대표가 되면 상임위 관련 여러 직책을 내려놓는다. 이 원내대표가 정무위 법안심사소위 위원직을 내려놓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무위 법안심사소위는 금융 관련법을 다루는 정무위의 법안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길목이다. 이 원내대표의 ‘숨은’ 뜻은 딱 하나다. 자신이 지난해 발의한 일명 ‘삼성생명보험법(보험업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것이다. 이 원내대표 측은 “이 원내대표는 지금 정무위 법안소위에 상정된 보험업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뜻을 강하게 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험업법 개정안은 7월 임시국회에서 21일과 22일 법안 소위에 올려질 예정이다.

제1야당의 원내대표가 ‘집념을 갖고’ 밀어붙이는 법안이 통과될 것인지는 관심거리다. 무엇보다 이 법이 국회에서 통과된다면 7월 17일 주주총회에서 논란 끝에 승인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보다 더 폭발적인 위력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보험업법 개정안은 보험사의 자산운용 비율 산정 기준으로 ‘취득가액’ 대신 ‘공정가액’(시가)을 적용하도록 하는 법안이다. 이 원내대표는 지난해 법안을 발의하면서 “보험업만이 취득원가가 아닌 가액 기준으로 한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의 지분 7.21%를 보유하고 있다. 보험업법에 따르면 보험사는 자사 계열사에 대한 유가증권 보유액을 보험사 총자산의 3% 이내로 해야 한다.

7월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삼성물산 임시 주주총회에서 제일모직과의 합병계약 안건을 놓고 주주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7월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삼성물산 임시 주주총회에서 제일모직과의 합병계약 안건을 놓고 주주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보다 더 위력
삼성생명보험법이 통과된다면 삼성생명은 삼성전자를 포함한 자사 계열사의 주식 중 한도인 3%만 남겨두고 모두 처분해야 한다. 삼성그룹의 순환출자 구조에 폭풍이 들이닥치게 되는 셈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관계자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으로 삼성그룹이 삼성물산의 삼성전자 지분 4.06%를 더 확보하더라도 보험업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삼성생명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 7.21% 중 상당 부분을 내놓아야 한다”면서 “합병의 효과가 반감될 뿐 아니라 삼성전자 지배에 대한 고리가 크게 약해지기 때문에 삼성그룹은 억지로라도 지주회사 체제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고 말했다. 삼성의 순환출자구조가 크게 흔들리게 되고 결국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지주회사 체제라는 것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보험업법만 통과시키면 삼성이 지주회사 체제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국회에서 과연 이 법이 통과될 수 있느냐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정무위 한 관계자는 “야당 의원들은 찬성하고 있지만 여당 의원들이 반대하고 있어 통과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법안소위 위원장인 김용태 의원(새누리당)은 “보험업법 개정안은 통과가 불가능하다고 본다”면서 “이 법이 통과되면 삼성 지배구조가 깨지면서 엘리엇 사태보다 더 심각해진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새누리당 의원들의 의견을 알 수는 없지만 나는 이 법에 대해 반대한다”고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김 의원은 법 문제 이전에 현실 문제를 거론했다. 김 의원은 “이 법이 통과되는 순간 삼성생명 주식은 반이 아니라 반의 반토막이 날 수도 있다”면서 “주주들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외부에서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5월에도 참여연대와 경제개혁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4개 단체는 기자회견을 열어 보험업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 단체는 “자산운용 비율에 관한 보험업법 규제의 취지가 삼성 총수 일가의 그룹 지배 편의 하나를 위해 왜곡돼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삼성생명의 한 관계자는 “금융위에서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시민단체의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밝혔고, 우리도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 정무위에는 삼성 지배구조에 관련해 삼성에 불리한 법만 발의돼 있는 것이 아니다. 삼성에 유리한 법도 있다. 2012년 새누리당 김상민 의원이 발의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은 지난해 12월 법안소위에 상정됐다.

“여야 빅딜하지 않는 한 통과 힘들다”
이 법안은 ‘현실성 있는 금산분리 제도의 도입을 위해서 금융회사의 소유는 인정하되, 금융자본과 산업자본 사이의 출자관계 등 자본의 이동을 차단하기 위하여 중간금융지주회사 제도를 도입한다’고 적어놓았다. 삼성그룹의 예를 들면 삼성물산(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회사)이 지주회사가 되고, 그 밑에 삼성생명이 중간금융지주회사가 돼 관련 기업을 거느리게 된다. 지금 삼성그룹은 금산분리 때문에 이런 지주회사 체제로 갈 수 없다. 그래서 이 법안은 기업이 소유구조가 단순하고 투명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정비한다는 것이다.

이 법안에 대해 법안소위 위원장인 김용태 의원은 “지배구조는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지만 기업이 예측가능한 경영을 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면서 “다양한 체제의 안정구조를 만들기 위해서 이 법안(김상민 의원 발의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중간금융지주회사에 관한 법을 만든다고 해서 삼성이 지주회사 체제로 갈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지주회사로 가는 물꼬는 터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삼성생명의 한 관계자는 “지배구조는 회사가 결정할 일이고, (국회가) 제도와 법을 만들어 유도할 수 있고 지원할 수 있지만 특정 회사에 지배구조를 강요할 수는 없다”면서 “삼성생명은 중간금융지주회사에 대해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야당과 시민단체는 이 법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야당의 한 관계자는 “이 법안은 야당으로서는 절대적으로 들어줄 수 없는 법”이라고 잘라 말했다. 경실련 재벌개혁위원회 위원인 박상인 교수는 “이 법안은 삼성특혜법”이라면서 “순환출자가 문제가 많으니 지주회사 체제로 가라는 것인데, 결국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전자와 생명을 함께 소유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 교수는 “지주회사로 가도록 정책적으로 유도할 수 있지만 금산분리 원칙은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는 삼성물산 합병 이후 삼성의 향후 시나리오에 주목하고 있다. 복잡한 고리를 가졌던 삼성그룹은 ‘새 삼성물산’이 삼성생명과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구조로 단순화됐다. 하지만 순환출자구조를 버리고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많다. 증권가의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같은 핵심 계열사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이런 저런 합병을 하고 있지만 삼성이 굳이 지주회사 체제로 갈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면서 “중간금융지주회사법과 같은 법이 통과되기 어려우니까 당분간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삼성생명법이 삼성그룹을 지주회사 체제로 억지로 가게 만드는 법이라면, 중간금융지주회사법은 삼성을 지주회사 체제로 유도하는 법이다. 두 법안이 7월 임시국회의 정무위 법안소위에서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한 법안은 여당에서 반대하고, 다른 법안은 야당이 반대하기 때문에 통과가 힘들 것으로 보인다. 한 야당 관계자는 “여야가 빅딜을 하지 않는 한 두 법이 모두 통과되기는 힘들다”며 “하지만 삼성생명법과 맞바꿀 만한 법이 없다”고 말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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