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스 음악가 비비 킹 자서전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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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 킹의 자서전에는 목화농장의 어린 노동자로 시작하여 세계적인 뮤지션이 되기까지 그가 겪었던 실로 파란만장한 인생담이 그의 음악처럼 술술 자연스런 필치로 실려 있다.

얼마 전 지인들과 맥주 한 잔 하고 있는데, 그 중 한 명이 ‘본인이 직접 겪은 무서운 이야기’를 하나씩 하자는 대단히 납량특집스럽고도 시류편승적이고도 식상하기 짝이 없는 제안을 불쑥 꺼냈다. 근데 대체 이른바 ‘무서운 이야기’ 치고 본인이 직접 겪거나 듣지 않았다고 하는 얘기가 있던가? 그리고 그런 얘기치고 어디서 한 번쯤 들어본 것 같은 얘기 아닌 것이 또 있었던가? 라는 나의 찬물 끼얹는 발언에도 불구하고, 좌중은 금세 열에 들떠서 이 ‘무서운 경험담’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무서운 이야기’ 중에 생각난 부고 소식
맞다. 실은 나는 그런 경험담을 거의 보유한 것이 없다. 귀신을 본 적도, 가위에 눌린 적도, UFO를 본 적도 없다. 숟가락도 못 구부린다. 얼마 전에는 심지어 전신에 소름이 쭉 돋을 정도로 신통력 강한 점술자를 목격하겠다는 일념 하에 마흔 군데도 넘는 점집들을 돌아다니면서 점집 답사기를 쓰기까지 했지만, 그런 점술자는 한 명도 만나보지 못했다. 만일 스티븐 킹 소설에 나 같은 인물이 등장하면 유령이나 악령들이 일제히 보이콧 할 것 같다. 저 인간은 내가 코앞에 나타났는데도 전혀 알아먹지를 못해. 대체 어쩌란 거야. 이래 갖고야 도무지 흥이 안 나잖아. 투덜투덜하면서.

[한동원의 에브리컬처]블루스 음악가 비비 킹 자서전의 매력

그런데 나의 지인이라는 사람들이 야심차게 내놓은 ‘무서운 실화’라는 것을 들어보니 그 또한 실로 한심하기 짝이 없다. 오랫동안 못 찾아뵈었던 친척분이 난데없이 꿈에 나타나서 연락을 드려봤더니 그 날 바로 돌아가셨더라, 하는, 정말이지 몸서리쳐지게 흔해 빠진 얘기가 태연히도 난무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흔해 빠진 얘기가 좌중의 격렬한 호응을 불러일으켜서, 심지어는 “얼마 전 ‘OO동 이모님 보쌈’집에 갔었는데, 그 바로 다음 날 이모님의 부고를 들어서 소스라치는 전율을 느꼈다”라는 천인공노할 만큼 조잡스런 얘기까지 무서운 얘기랍시며 등장했는데도 누구 하나 비난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이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언젠가 동물원에 갔는데, 유독 그 날만은 원숭이에게만 먹이를 주고 싶어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놀랍게도 그 시간에 잔나비 띠이신 삼촌께서 돌아가셨다더라”라든가 하는, 차마 맨 정신엔 못 들어줄 이야기들까지 맥주 김빠지는 것도 잊은 채 난무 또 난무하였던 것이다. 아아….

그런데 기껏 이 정도라면, 그래, 내게도 내놓을 게 하나 있다 싶었다. 다행히도(랄까) 주위 친지 분 얘기는 아니고, 블루스 싱어 겸 기타리스트 비비 킹(B. B. King)의 부고를 들었을 때의 일이었다. 뭐냐면, 정말이지 오랜 시간 동안 별러왔지만 별다른 이유 없이 자꾸만 미뤄오던 비비 킹의 자서전(가 그 제목이다)을 얼마 전 아무런 맥락도 없이 ‘이번에야말로!’라고 결심하며 주문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바로 다음 날 아침 뉴스에서 놀랍게도 그 양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던 것이다. 물론 이 이야기를 꺼내놓자마자 지인들로부터 찬물 끼얹길 일삼는 인간으로 다시 한 번 확실하게 낙인찍혀버리고 말았지만…. (왜! 이 얘기가 어때서!) 아무튼.

1990년, 그러니까 내가 한창 돈 없고 정보에 어둡던 학생 시절에 단 한 번 내한한 뒤로, 내 기억이 맞는다면 한 번도 한국 공연을 하지 않았던 비비 킹. 그리하여 매년 초 ‘돌아가시기 전에 올해에만큼은 기필코’를 되뇌며 인터넷에 뜬 세계 공연 일정을 뒤적거리기를 15년 넘도록 해오던 비비 킹. 그의 부고 덕분에 그닥 길지도 않은 ‘내 인생에서 기필코 한 번은 꼭’ 리스트의 한 줄이 허망하게 사라져버렸다. 하긴, 에릭 클랩튼부터 존 메이어까지 각종 친구들 및 추종자들이 모여 팔순 기념 앨범(<80>이 그 제목이다)을 내놓은 것이 벌써 10년 전의 일이니 탓할 것이라고는 오로지 나의 게으름뿐이다.

그런 사연으로 현재 마지막 남은 오징어 다리 한 짝 씹듯 천천히 아껴 읽고 있는 비비 킹의 자서전에는, 목화농장의 어린 노동자로 시작해 세계적인 뮤지션이 되기까지 그가 겪었던 실로 파란만장한 인생담이 그의 음악처럼 술술 자연스런 필치로 실려 있다. 그 중에는 음악 이론가들과 비평가들에 대한 그의 거침없는 비판도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 그의 요점은 결국 ‘이론가나 비평가들이란 거의 음악판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들과는 거의 상관없는, 이론을 위한 이론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한동원의 에브리컬처]블루스 음악가 비비 킹 자서전의 매력

그의 인생을 지배한 도박, 섹스, 역마살
나도 일단은 ‘비평가’니 ‘평론가’니 하는 호칭으로 불리고 있는 인간이다만, 그의 발언에는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른바 ‘델타 블루스’니, ‘시카고 블루스’니, ‘어번 블루스’니 하는 용어들을 고안해서 본래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경계선을 그어놓은 뒤, 음악들을 이리저리 분류해 상하고저를 멋대로 정하는 그런 일은 비단 블루스판 안에서만 존재하는 일은 아니니 말이다. 그 왜, 쿨재즈와 비밥재즈 사이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 “난 몰라. 모두들 제멋대로 내게 쿨이라는 말을 갖다 붙였을 뿐이야”라고 일갈했던 마일스 데이비스의 그 유명한 인터뷰도 있지 않은가. 결국 음악에 있어 최종적인 ‘분류 기준’이란 그저 좋은 음악과 덜 좋은 음악 정도가 가능할 뿐이다. 영화에서도. 소설에서도. 그리고 어디에서든.

하지만 이 책의 진짜 매력은 그런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훨씬 소소하고 개인적인 부분에 있다. 거장이니 전설이니 하는 호칭에 걸맞지 않게 ‘도박, 섹스, 역마살(road)’이 자신의 전 인생을 지배한 키워드라고 거리낌 없이 얘기하는 솔직함도 그렇거니와, 왕년에 과속을 하다가 치어서 죽음에 이르게 했던 강아지를 떠올리며 아직까지도 가슴 아파하는 모습도 입가에 웃음을 떠올리게 한다. 강아지 말고 당나귀를 친 적도 있었지만, 다행히도 당나귀는 벌떡 일어서더니 달아났다고. 그 일을 회상하며 ‘당나귀는 농장 일을 할 때 항상 나를 든든하게 도와주던 동물이었기 때문에’ 특히나 흐뭇해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그의 모습은 정말이지 귀엽다. 기타는 물론 소형 키보드도 족히 얹어놓을 수 있을 만큼 풍성했던 그의 뱃살만큼이나.

그런데 대체 무슨 얘기를 하다가 여기까지 왔지? 아무튼 이 두서없는 이야기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뭐든 확실히 좋은 공연이 있다면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반드시 봐두자.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고, 예술가의 인생 또한 짧으므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언젠가 기회가 닿는다면 꼭 번역해보고 싶은 비비 킹 자서전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뒤늦게나마 그의 명복을 빈다.

“몇몇 호전적인 사람들이 나를 ‘톰 아저씨’라고 비하했을 때, 나는 메드가(메드가 에버스, 1963년에 암살당한 미국 흑인 인권운동가)와 마틴(마틴 루터 킹)을 마음속에 새기고 있었다. 나는 상처받았지만 무너지지는 않았다. 나는 음악을 통해서 사람들을 화해시키는 데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나는 용기에 대한 확고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은 스타일이나 완력이나 멋들어진 정치적 구호와는 관계없는 것이었다. (중략) 메드가 에버스와 마틴 루터 킹은 두려움 없이 일했기에 우리의 존경을 받는다. 그것이 그분들이 죽은 이유다. 그리고 계속해서 살아있는 이유다.”

<한동원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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