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 이색 매장 ‘눈에 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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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복 매장 한가운데 고급 이발소… 여성복 매장엔 유명 빵집과 커피전문점

남성복 매장 한가운데 헤어스타일과 면도, 마사지 등을 챙겨주는 남성 전용 고급 이발소가 들어선다. 여성복 매장 사이에는 유명 빵집과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이 자리잡는다. 옷을 사다 말고 머리를 손질하거나 빵을 사먹는다니 언뜻 이해되지 않는 조합이지만 요즘 백화점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꽃집에서 술을 팔거나 카페에서 책을 함께 파는 식의 ‘복합 매장’은 유행에 민감하고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홍대 상권 등을 중심으로 이미 선을 보인 지 오래다. 매장 입점과 관리가 까다로운 백화점에서도 기존 통념을 깨는 이색 매장이 잇따라 문을 여는 것은 그만큼 변화에 대한 요구가 크기 때문이다.

롯데백화점은 지난달 말 서울 소공로 본점 5층에 패션 브랜드 클럽모나코와 바버숍(이발소)이 결합된 ‘클럽모나코 맨즈샵’을 개장했다. 의류매장과 바버숍이 한자리에서 영업하는 것은 세계 최초다. 한쪽에서는 의류와 액세서리를 팔고, 바로 옆에서는 이발과 정통 습식면도 등을 포함해 남성을 위한 맞춤 스타일 상담이 이뤄진다. 롯데백화점은 132㎡(약 40평) 규모인 이 매장의 기네스북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의류매장과 바버숍이 결합된 롯데백화점의 ‘클럽모나코 맨즈샵’. / 롯데백화점 제공

의류매장과 바버숍이 결합된 롯데백화점의 ‘클럽모나코 맨즈샵’. / 롯데백화점 제공

위스키바, 시가룸 등 남성 ‘놀이터’
백화점에 들어온 바버숍 ‘헤아’는 2013년 서울 한남동에서 문을 연 직후부터 유명했다. 1층에는 위스키바, 2층에는 시가룸과 비즈니스 센터를 마련하는 등 남성 고객을 위한 ‘놀이터’로 입소문이 났다. 이발의자 1대 가격이 1000만원이 넘을 정도로 인테리어에도 신경을 썼다. 백화점에서도 고객의 얼굴형과 체형에 맞는 가르마 비율 등 전체적인 스타일을 잡아주는 서비스는 그대로다. 주변 오피스 상권의 특성을 감안해 숙취해소 마사지(2만5000원)도 제공하기로 했다.

롯데백화점이 공들여 유명 바버숍을 유치하고 특별한 매장을 낸 것은 그만큼 남성 고객이 백화점 영업에서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롯데백화점을 찾는 남성 고객 수는 최근 5년 동안 연 평균 10% 이상 증가했다. 전체 고객 비중에서도 남성은 30% 수준까지 커졌다. 과거처럼 아내나 여자친구의 쇼핑에 어쩔 수 없이 끌려다니는 대신 본인의 취향과 개성에 따라 능동적인 쇼핑을 하는 남성이 늘었다는 것이다.

문 연 지 열흘이 채 안 됐지만 클럽모나코 맨즈샵에서 머리 손질을 맡기는 손님은 하루 20여명에 이른다. 이발 비용이 3만5000원으로 어지간한 미용실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비싼 것을 감안하면 꽤 많은 숫자다. 클럽모나코 의류 매출도 전년보다 15% 이상 늘었다. 강대석 롯데백화점 상품기획자(바이어)는 “헤어 스타일링을 받은 후 그에 맞는 의류를 추가 구매하는 고객이 대부분”이라며 “최근 남성 고객들의 ‘원스톱 쇼핑’ 트렌드를 반영한 매장 구성이 잘 맞아떨어졌다”고 설명했다.

롯데백화점 본점 4층 여성복 매장 사이에 입점한 프랑스 베이커리 ‘곤트란쉐리에’에서 고객들이 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다.  / 롯데백화점 제공

롯데백화점 본점 4층 여성복 매장 사이에 입점한 프랑스 베이커리 ‘곤트란쉐리에’에서 고객들이 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다. / 롯데백화점 제공

백화점이 단순히 물건을 사는 곳이 아니라 놀이공간, 체험공간으로서의 성격을 강화해 고객의 발길을 붙잡는다는 전략은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롯데백화점은 지난 4월 여성 의류를 판매하는 본점 2층과 4층에 각각 커피전문점 ‘폴 바셋’과 프랑스 베이커리 ‘곤트란쉐리에’ 매장을 입점시켰다. 백화점에서 의류 매장 사이에 식음료 매장이 들어가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보통 식음료 매장은 지하 1층이나 꼭대기층 근처에 푸드코트 형식으로 모여 있게 마련이다.

옷을 구경하는 중간중간 커피와 빵을 즐기며 체류시간을 늘리다 보면 구매율이 높아질 거라는 게 백화점의 계산이다. 고급 이미지가 강한 두 브랜드는 모두 여성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편이다. 실제로 폴 바셋과 곤트란쉐리에는 개점 이후 월 평균 매출이 1억원에 채 못미쳤지만 연관 구매액은 30억원에 육박하며 백화점 매출에 톡톡히 기여했다.

같은 시기 롯데백화점 분당점 1층에도 폴 바셋이 들어갔다. 보통 해외명품이나 화장품 등 고가의 잡화를 주로 취급하는 백화점 1층에 카페가 들어간 것 역시 드문 케이스였다. 규모도 165㎡(약 50평)로 제법 컸다. 이 매장의 한 달 매출은 1억5000만원이 넘는다. 여기서 커피 등 음료를 마신 고객이 백화점 다른 매장으로 이동해 상품을 구입한 금액은 26억원으로 집계됐다. 이성규 롯데백화점 매니저는 “1층 커피전문점이 분당점 매출에 10%가량을 기여한 것으로 분석됐다. 앞으로도 비슷한 매장을 발굴해 백화점 개편 때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고양시 일산 이마트타운의 생활용품 전문매장 ‘더라이프’에서는 원하는 대로 페인트 색을 조합하거나 집에 어울리는 페인트를 상담하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 이마트 제공

경기 고양시 일산 이마트타운의 생활용품 전문매장 ‘더라이프’에서는 원하는 대로 페인트 색을 조합하거나 집에 어울리는 페인트를 상담하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 이마트 제공

백화점이 이색 매장으로 손님의 눈길을 끈다면 대형마트들은 대형화·전문화된 매장으로 승부하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지난달 18일 경기 고양시 일산에 대형마트인 이마트와 창고형 할인점인 트레이더스를 한 건물에 입점시킨 ‘이마트타운’을 열었다. 총투자비 2500억원을 들인 이마트타운에는 생활용품 전문매장 ‘더라이프’와 가전 전문매장 ‘일렉트로마트’ 등 새로운 매장이 대거 들어섰다.

경기 고양시 일산 이마트타운의 생활용품 전문매장 ‘더라이프’에 들어선 목공소. 고객들은 원하는 재료와 사이즈를 선택해 자신만의 가구를 제작·구입할 수 있다. (사진 오른쪽) / 이마트 제공

경기 고양시 일산 이마트타운의 생활용품 전문매장 ‘더라이프’에 들어선 목공소. 고객들은 원하는 재료와 사이즈를 선택해 자신만의 가구를 제작·구입할 수 있다. (사진 오른쪽) / 이마트 제공

가구 맞춤 제작과 페인트 조색까지
글로벌 가구업체 이케아를 경쟁자로 삼았다는 더라이프는 3300㎡(1000평) 규모로, 매장 크기와 상품 종류에서 압도적이다. 기성품에 만족하지 못하는 소비자를 위해 원하는 재료와 사이즈를 선택하면 가구를 맞춤 제작해주는 목공소도 포함됐다. 페인트 매장에서는 원하는 대로 색을 섞어 상품을 만드는 조색도 가능하다. 규격화된 제품을 대량소비하는 대형마트의 기존 이미지를 탈피한다는 취지다.

일렉트로마트에는 드론(무인기) 체험존, 피규어 전문존, 액션캠 매장 등 성인 남성들의 취향에 맞춘 공간이 여럿 있다. 채교욱 이마트 부장은 “남자들에게 쇼핑은 지루하다는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체험과 놀이를 통해 고객층을 넓힐 수 있는 아이템을 많이 준비했다”고 말했다.

롯데마트도 지난 4월 문을 연 수원 광교점부터 매장 디자인을 대폭 개선했다. 먼저 쇼핑카트를 끌고 이동하는 동선의 너비를 기존 3.5m에서 4m로 늘렸다. 행사장으로 주로 사용하던 매장 가운데 공간도 고객 쉼터로 바꿨다. 진열 상품을 줄이더라도 편안하고 여유로운 쇼핑 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과일·채소 등 신선식품은 진열량을 절반으로 줄여 회전율을 높였다. 양과 속도로 경쟁하던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유통업체들의 이 같은 변신은 결국 떠나는 손님을 붙잡기 위한 몸부림이다. 온라인·모바일 쇼핑과 해외 직구(직접구매) 등이 일반화하면서 백화점과 대형마트 매출은 제자리걸음을 한 지 오래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고급화와 전문화, 체험 요소의 가미 등으로 차별화해야만 오프라인 매장으로 손님을 나오게 할 수 있다는 절박함이 있다”며 “고객들을 1분이라도 더 매장에 잡아두기 위한 업체들의 고민이 맛집 유치 등 새로운 아이템 개발로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규 경향신문 산업부 기자 fideli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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