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아누 리브스의 ‘병맛 연기’를 아시나요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빌과 테드이 엑설런트 어드벤처>에서 그다지 스타가 될 싹수가 없어 보였던 키아누 리브스. 그의 바보같이 헤~ 하고 웄는 얼굴이 일품이다. 이 남자가 나중에 네오가 될 거라고는 차마 상상할 수가 없다!

당신에게 키아누 리브스는 어떤 이미지인지? <매트릭스>의 네오, <존 윅>의 존 윅 등 ‘간지’가 철철 넘치는 이미지로 키아누 리브스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진짜 세계를 찾아 나서는 검은 옷에 선글래스를 낀 네오가 워낙 강렬했기 때문일 테다. 그러나 벌써 10년도 넘게 지난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데굴데굴 굴렀는데, 그의 전작들을 너무나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우리에게 키아누 리브스는 연기파 배우로 인식돼 있지만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의 그는, 정말이지, 연기를, 너무나, 못했다! 영어를 모르는 초등학생인데도 와 저 사람 연기 정말 못한다, 하고 느낄 정도면 어느 정도 국어책 읽는 수준인지 아마 아실 것이다.

<빌과 테드의 엑설런트 어드벤처>에서 키아누 리브스는 절친인 빌과 ‘와일드 스탈린즈’라는 로큰롤 그룹을 하고 있는, 공부 지지리 못하는 찐따 고교생 테드로 나온다. 마음이 맞으면 늘 기타 치는 흉내를 내는 유쾌한 녀석들은 하도 공부를 못해 낙제할 경우 테드는 홀로 군사학교에 보내질 지경이 된다. 마지막 기회로 역사 구술 시험의 기회가 주어지지만 이 녀석들은 도무지 아는 게 없다. 그런데 이게 웬일? 미래로부터 자신이 700살 먹었다고 주장하는 노인이 나타나서 공중전화박스를 타임머신이라며 과거로 가라고 명한다. 아예 역사를 직접 체험하게 해 시험에 대비하게 하려는 것인데, 녀석들이 헤어지지 않고 미래에 훌륭한 음악가가 돼야 이들의 음악으로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되기 때문이다…. 말도 안 돼! 빌과 테드는 소크라테스, 칭기즈칸, 잔다르크, 나폴레옹, 베토벤 등을 죄다 만나고 현대로 데려오는데, 문명의 신기함에 푹 빠진 이들은 각종 소동을 일으킨다. 이때는 그다지 스타가 될 싹수가 없어 보였던 키아누 리브스의 바보같이 헤~ 하고 웃는 얼굴이 일품이다. 이 남자가 나중에 네오가 될 거라고는 차마 상상할 수가 없다!

영화 <폭풍속으로> 중 키아누 리브스와 패트릭 스웨이지

영화 <폭풍속으로> 중 키아누 리브스와 패트릭 스웨이지

1990년대 초 그는, 연기를 너무 못했다
이 바보 같은 녀석들이 나름대로 인기를 끌었는지, <엑설런트 어드벤처>는 3년 후 2탄까지 나온다. 서기 2691년, 악당 노몰로스는 장차 인류의 음악으로 미래를 구하게 될 빌과 테드를 처치하기 위해 가짜 빌과 테드 로봇을 만들어 1991년으로 보낸다. 그때 1991년의 진짜 빌과 테드는 상금 2000달러가 걸린 밴드 콘테스트에 참가할 준비가 한창인데…. 물론 연주는 무진장 못한다! 그런데 가짜 빌과 테드 로봇은 이들의 생활을 모두 망쳐놓는 것은 물론, 죽게 만들어버려 빌과 테드는 저승으로 가버린다! 결국 저승사자까지 자기네 밴드에 참가시키고 악의 로봇들을 처치한 빌과 테드는 시간을 뛰어넘는 능력을 사용해 악기 실력까지 무진장 늘게 만든 후 밴드 콘테스트에서 이겨버린다는 말도 안 되는 결말. 그런데 보고 있으면 키아누 리브스의 헤~ 하는 얼굴이 정말 뭐라 말할 수 없이 귀엽다. 병맛! 병맛! 레알 병맛인데 너무 귀여워!

이 사람이 불과 몇 년 후 <스피드>에서 삭발처럼 터프한 머리를 한 채 목숨을 걸고 버스 아래쪽에 붙어 폭탄을 제거하는 액션스타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할 모습이다. 그 1년 전 작품인 <폭풍속으로>에서 약간 싹수가 보인 것도 같다. 개인적으로 고인이 된 패트릭 스웨이지가 가장 멋진 모습을 보여준 영화라고 생각하는데, 그는 서핑을 즐기는 서퍼들로만 구성된 강도단의 보스다. 하지만 언제나 장난스러운 모습으로 전직 대통령 가면을 쓰고 신속 정확하게 은행을 털어 경찰도 꼼짝할 수가 없다. 키아누 리브스는 모든 일이 시들한 FBI 수사관인데 이 사건에 배속된다. 캘리포니아 해안의 광대한 파도가 몰아치는 이 지역에서 그는 매혹적인 여성 서퍼를 만나고, 그녀에게 서핑을 배우면서 파도를 타는 매력에 빠져든다. 그런데 서핑을 할 때 입는 특유의 수트? 그걸 입었다 벗는 장면을 보면, 희한하게 다리가 정말 짧다…. 이상한 웃음 포인트지만 정말 짧다…. 뭐 9가지 인종의 피가 섞였다더니 동양인의 피가 섞인 게 확실하구나, 하는 느낌…. 키아누 리브스 씨, 미안해요, 약간 친근감을 느꼈어요….

뻣뻣하고 국어책 읽듯 하는 연기는 여전하지만 남자로서 성숙함에 더해 매력이 한창 폭발하는 아름다운 시절이었던 패트릭 스웨이지가 어느 정도 커버를 해주기 때문에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당시까지만 해도 어버버버버, 하는 식으로 연기하던 키아누 리브스의 연기력이 오히려 극단적인 자유를 추구하는 패트릭 스웨이지에게 매혹되는 캐릭터로서 잘 어울리기도 했고, 당시 한창 잘나가던 가수 김원준이 생각날 정도로 미모가 반짝반짝하던 시절이었다. 훗날 <매트릭스>의 네오 의상을 보고 다리 길이를 엄청 신경 써서 제작했구나… 하고 웃은 건 아마 나뿐이겠지만. 유명한 여성 감독 캐슬린 비글로우의 이 작품은 ‘병맛’만을 추구하기에는 아까운 맛이 있다. 어렸을 때 그저 재미있는 액션 영화려니, 하고 봤던 이 영화는 커서 보니 소년으로 남아 있으려는 남자들의 분투였다.

영화 <콘스탄틴>의 키아누 리브스

영화 <콘스탄틴>의 키아누 리브스

‘병맛’을 원래 좋아하는 사람일지도 몰라
절대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남자들, 영원히 파도 속에서 거대한 파도 위에 세상의 왕이라도 된 듯 교만하게 서고, 아름다운 연인을 옆에 끼고 모닥불을 켠 채 자신들이 규칙을 만든 풋볼을 하면서 훔친 돈으로 영원히 그 바다에 남고 싶어하는. 그러나 세상은 피터팬을 가만히 두지 않는 법이다. 게다가 범죄를 저지른 피터맨이라면. 영원히 장난스러운 소년으로 남기 위해 모조리 웃는 얼굴의 가면을 쓰고 장난 같은 강도질을 계속하던 패트릭 스웨이지는 마침내 동료가 총에 맞는 순간 영원히 소년의 세계에서 추방된다. 이제 다시는 돌아갈 곳이 없게 된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까지 마다하고 사라진 그의 흔적을 집요하게 뒤쫓는 키아누 리브스의 끈덕진 추적은 소년시대를 끝내고자 하는 발버둥처럼 보였다. 패트릭 스웨이지는 말 그대로 ‘폭풍 속으로’ 사라져버리는데, 결국 영원한 소년으로 남기 위해서는 죽음과 손잡는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내가 갑자기 진지하게 나와서 화제가 ‘병맛’과 좀 멀어졌는데, 한창 세월이 지난 <콘스탄틴>을 보며 나는 슬슬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 사람이, 혹시 ‘병맛’을 원래 좋아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고. 천사와 악마까지 동원하고 지옥까지 다녀오는 그 요란한 전쟁을 그치고 마지막에 콘스탄틴이 하는 짓은 하도 담배를 피워서 때문에 다 죽게 된 자신의 폐가 악마의 복수(?)로 깨끗해지자, 아주 폼나는 자세로 피우던 담배를 튕겨서 끄는 것이 영화의 엔딩이다. 결국 하려는 이야기는 금연! 금연 캠페인을 이렇게 방대한 규모로 블록버스터로 찍을 필요가 있나! 키아누 리브스의 속마음이야 내가 알 리가 없지만, 가끔 괜히 나 혼자 가끔 그렇게 생각하고 좋아한다. 저 오빠도 병맛을 좋아할 거야. 그랬으면 좋겠다.

<김현진 칼럼니스트>

김현진의 병맛통신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