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기지 건설로 쫓겨난 ‘차고스인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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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고 가르시아 섬의 미군기지 건설은 차고스인들에게는 비운의 시작이었다. 1968~1973년까지 2000명이 강제이주됐다. 비밀해제된 문건과 2010년 위크리크스의 외교문서 폭로, 이주민들의 목소리를 통해 당시의 ‘어두운 실상’이 드러났다.

40여년 전 미군기지 건설로 이역만리 타국으로 강제이주된 디에고 가르시아 섬 원주민 차고스인들의 비원의 영구 귀향은 이뤄질 수 있을까. 인도양의 한가운데에 있는 작은 섬 디에고 가르시아. 영국령 인도양식민지(BIOT)인 그곳에는 태평양의 괌 기지와 함께 가장 중요한 미군 해외기지가 있다. 1971년 건설 당시 ‘캠프 저스티스’로 불리다 2006년 ‘캠프 선더 코브’로 이름이 바뀌었다. 기지 이름과 달리 그곳에는 미군기지 건설로 쫓겨난 차고스인들의 고통과 한이 서린 이야기가 있다. 냉전이 한창이던 1960~1970년대 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1000㎞ 이상 떨어진 모리셔스와 세이셸 군도로 강제이주되면서 삶의 뿌리가 뽑혔다. 아무런 보상금도 없이 낮선 이국의 처참한 빈곤 속에 내던져진 것이다. 그때부터 인간다운 삶을 위한 보상과 영구 귀향을 위한 투쟁이 시작됐다. 미미한 수준이지만 보상은 쟁취했지만 영구 귀향은 사막의 신기루처럼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강제이주 40여년이 지난 올해 들어 이들은 어느 때보다도 영구 귀향의 꿈에 부풀어 있다. 오매불망 귀향을 위해 흘려온 차고스인들의 ‘40년 눈물’은 멈출 수 있을까.

2006년 디에고 가르시아를 방문한 차고스인들이 조상의 묘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미군은 방문자 수를 매년 15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 NPR방송 웹사이트 캡처

2006년 디에고 가르시아를 방문한 차고스인들이 조상의 묘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미군은 방문자 수를 매년 15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 NPR방송 웹사이트 캡처

차고스인들의 비운의 역사는 미국이 이들의 삶의 터전 디에고 가르시아에 군기지 건설을 계획하면서 시작됐다. 디에고 가르시아는 60개 섬으로 이뤄진 차고스 군도에서 가장 크다. 아프리카 동부 탄자니아로부터 3500㎞, 인도 남쪽에서 1800㎞, 호주 서부에서 4700㎞ 떨어져 있어 미국이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 정책을 펴는 데 최적의 전략적 요충지라 할 수 있다. 냉전시대 전 세계를 기지화해온 미국이 이를 놓칠 리가 없었다. 이곳에 활주로와 군항 등을 설치해 걸프전과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전쟁 때 B2, B52 폭격기의 출발기지로 활용했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9·11 테러 이후 테러 용의자를 비밀리에 감금한 비밀감옥을 운영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기지 건설 아이디어는 1950년대 미 해군에서 군무원으로 일하던 스튜어드 바버가 냈다. 미 행정부는 바버의 제안에 따라 영국 정부에 모리셔스로부터 디에고 가르시아를 분리해 별도로 BIOT로 관리하도록 설득했다. 양국은 비밀리에 협상을 진행한 끝에 1966년 12월 30일 협정을 체결했다. ‘미국이 2016년까지 50년간 임대하되 만기 2년 전인 2014년까지 합의할 경우 기간을 20년 연장한다(2036년 12월 30일)’는 내용이다. 계약조건은 기지 사용료로 미국이 영국에 매년 1달러를 내는 대신 영국이 미국산 폴라리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도입할 때 1400만 달러를 깎아준다는 것이었다. 협상은 두 나라 의회에까지 비밀에 부쳐졌다. 의회 비준을 피하기 위해 정식 조약 대신 각서 교환 형식으로 진행됐다.

2011년 <치욕의 섬(Island of Shame): 디에고 가르시아에 관한 미군의 비밀 역사>를 펴내 디에고 가르시아에 숨겨진 비밀을 폭로한 미 아메리칸대학의 인류학 교수 데이비드 바인은 지난 15일 톰디스패치에 기고한 글에서 “이 기지를 통해 미국은 중동과 동아프리카, 인도, 호주, 인도네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괌 기지와 더불어 미국의 가장 중요한 해외 기지”라고 평가했다.

괌 기지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기지
미군기지 건설은 차고스인들에게는 비운의 시작이었다. 1968~1973년까지 2000명이 강제이주됐다. 비밀해제된 문건과 2010년 위크리크스의 외교문서 폭로, 이주민들의 목소리를 통해 당시의 ‘어두운 실상’이 드러났다. 당시 미국 관리들은 이 섬이 ‘청소되고(swept)’ ‘살균되기(sanitized)’를 원했다. 영국 관리들은 차고스인들을 ‘타잔’이나 ‘프라이데이’로 불렀다. 프라이데이는 소설 <로빈슨 크루소>에 나오는 식인종 출신의 흑인으로, 모두 인종차별적 용어다. 미군이 차고스인들을 강제이주선에 태우기 전에 기르던 개 1500마리를 한 곳에 모은 뒤 주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독가스로 살해하고 사체를 불태운 사실도 드러났다. 2004년 차고스인들의 비운을 담은 다큐멘터리 <국가 훔치기(Stealing a Nation>를 만든 호주 출신 탐사보도 전문 언론인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인 존 필저는 당시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하나의 비극과 범죄를 통해 한 시스템이 민주주의 얼굴을 한 채 어떻게 작동하는지와 어떻게 세계가 강력한 정부의 이익을 위해 운영되는지, 정부가 어떻게 국민을 속이는지를 알 때가 있다”고 썼다.

공중에서 본 디에고 가르시아 섬과 미군기지. 미국은 아프리카와 중동, 아시아 전략을 펴는 데 최적의 전략적 요충지인 인도양 한복판에 자리한 이 섬에 1971년부터 활주로와 군항을 설치해 걸프전과 아프가니스탄·이라크전쟁 때 활용했다.  / 블로그스팟닷컴 웹사이트 등 캡처

공중에서 본 디에고 가르시아 섬과 미군기지. 미국은 아프리카와 중동, 아시아 전략을 펴는 데 최적의 전략적 요충지인 인도양 한복판에 자리한 이 섬에 1971년부터 활주로와 군항을 설치해 걸프전과 아프가니스탄·이라크전쟁 때 활용했다. / 블로그스팟닷컴 웹사이트 등 캡처

삶의 터전을 빼앗긴 차고스인들의 투쟁은 강제이주 직후부터에 시작됐다. 모리셔스 이주자들은 완전 귀향과 최소한의 재정착 조건을 요구하며 5차례의 단식농성 끝에 작은 집과 좁은 경작지, 성인 1인당 6000달러의 정착금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1997년부터는 영국 정부를 상대로 법적 투쟁을 시작했다. 2000년 이후 법원으로부터 ‘강제이주는 불법’이라는 판결을 받아냈지만 영국 정부는 불복하고 이들의 영구 귀향을 막을 조치를 강구했다. 2002년 시민권을 쟁취해 1000여명이 영국으로 이주하는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영국 정부는 2010년 4월 1일 차고스 군도 일대를 어로행위가 금지되는 해양보호지역(MPA)으로 지정했다. 생태계 보전이 명분이었지만 차고스인들의 영구 귀향을 막기 위한 조치였음이 2010년 12월에 공개된 위키리크스 외교전문에서 드러났다. 당시 런던 주재 미국대사관의 정치담당 참사관은 “MPA 지정은 사실상 차고스인들이나 그들의 후손들이 재정착하는 것을 막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장기 수단일 것”이라고 적었다. 차고스인들은 유럽 인권재판소에 MPA 지정을 무효화하는 소송을 냈지만 2013년에 패배했다. 하지만 유엔 상설중재재판소(PCA)는 지난 3월 영국의 일방적인 MPA 지정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결정했다.

디에고 가르시아 섬과 미군기지. 이 섬의 위치도와 미군기지 모습.  / 블로그스팟닷컴 웹사이트 등 캡처

디에고 가르시아 섬과 미군기지. 이 섬의 위치도와 미군기지 모습. / 블로그스팟닷컴 웹사이트 등 캡처

유럽의회·영국 의원들 영구 귀향 지지
차고스인들이 귀향에 희망을 갖는 근거는 유엔의 결정과 함께 지난 1월에 나온 다국적 컨설팅 기업 KPMG의 타당성 보고서다. 영국 정부의 의뢰로 만든 보고서는 차고스인들이 섬으로 귀환할 수 있을까에 대한 특별한 제안을 담고 있다. 보고서는 재정착 비용으로 3년간 6400만 파운드가 들 것으로 추산했다. 영국 정부는 지난 3월까지 차고스인들의 재정착 여부에 대한 결정을 내리려고 했으나 철회했다. 영국 외교부는 당시 “보고서는 재정착이 어떻게 이뤄질지와 잠재적인 비용에 관해 여전히 근본적인 불확실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한 작업이 진행 중이며, 5월 선거 이후에 결정이 이뤄질 수 있다”고 밝혔다. 총선이 끝난 지 40여일이 지났지만 영국 정부는 감감무소식이다. 영국과 미국이 차고스인들의 재정착, 즉 영구 귀향을 꺼리는 이유로는 각각 돈과 안보를 들 수 있다. 차고스인들의 재정착 지지 운동을 벌여온 영국 방송진행자 벤 포글은 가디언에 “재정착 비용 6400만 파운드는 잘못을 시정하는 비용으로는 대양의 물 한 방울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미국은 “미군기지 주변에 지역주민들이 사는 것은 위험하다”는 억지 논리를 편다. 디에고 가르시아 기지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고, 전 세계 수백 곳 미군기지가 거주지에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다만 미국은 모리셔스와 세이셸, 영국에 흩어져 있는 차고스인들에 대해 1년에 15명씩 디에고 가르시아 방문을 허용하고 있다.

차고스인들은 유엔 PCA 결정 등을 바탕으로 이번주에 MPA 지정 취소를 요구하는 상고를 영국 대법원에 낼 예정이라고 바인은 전했다. 유럽의회와 아프리카연합, 많은 영국 의원들도 이들의 영구 귀향을 지지하고 있다. 미 국방부는 반대하지만 국무부가 결국 공존을 허용할 것이라고 가디언이 고위 외교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오랫동안 차고스인들의 재정착을 위해 노력해온 데이비드 스녹셀 전 영국 모리셔스 최고행정관은 NPR 방송에 “만약 미국이 반대했다면 영국에 타당성 조사를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가장 그럴듯한 시나리오는 섬에서 시범적으로 재정착을 실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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