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한국형 의료시스템, 아픈 만큼 성숙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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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증유의 사태는 계속되고 있다. 병원 내 감염을 넘어 지역사회 감염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 메르스 사태다. 6월 중순에 이르러 증가세가 주춤해졌다는 평가도 나왔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장마철이 시작되는 6월 하순부터는 잦아들 것이라는 예측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그러면 그것으로 끝난 것일까. 메르스 사태로부터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어낼 것인가.

메르스 사태는 중동 여행을 다녀온 1번 환자가 5월 20일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시작됐다. 6월 12일 오전 6시를 기준으로 정부가 발표한 확진자 120명 중 34명이 그가 입원했던 평택성모병원에서 전염되었다. 평택성모병원 확진자 중 현재까지 마지막으로 밝혀진 이는 53번 환자다. 그는 5월 26일부터 28일 동안 평택성모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2차 확산 거점은 삼성서울병원이었다. 14번 환자는 5월 13일에서 19일까지 평택성모병원에 입원했다가 최초 메르스 감염자인 1번 환자에게 감염되었다. 20일 퇴원했지만 다음날 다시 고열 증세를 보여 재입원했고, 25일부터는 경기도 병원들을 전전했다. 5월 27일 서울을 찾은 14번 환자는 호흡곤란으로 구급차를 탔고, 삼성서울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메르스 감염검사를 받고 격리조치가 된 후 확진 판정을 받은 것은 5월 30일이었다. 비교적 젊은 나이의 14번 환자(35·남)는 슈퍼 전파자다.

확진자 중 그로부터 전염된 것으로 6월 12일 파악된 사람은 총 63명이다. 대부분의 환자는 병원 내 감염자다(119번 즉, 평택경찰서 경사(남·35)의 경우 지역사회 감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지만, 질병관리본부는 현재 평택성모병원에 5월 22일부터 28일까지 입원했던 52번 확진자(여·54)가 다시 찾은 평택박애병원에서 5월 31일 체류하는 과정에서 전염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근본적인 의문은 이것이다. 치료를 위해 찾은 병원에서 왜 이들은 메르스에 감염되었을까.

6월 11일 서울 성동구 왕십리역에서 성동구보건소 관계자들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방지를 위해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6월 11일 서울 성동구 왕십리역에서 성동구보건소 관계자들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방지를 위해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한국의 독특한 간병문화가 원인?
이론적으로 바이러스 전염은 기하급수적으로 일어난다. 흔히 다음의 예시로 ‘기하급수적’이라는 것은 설명된다. A라는 바이러스가 1분당 둘로 자기증식이 이뤄진다고 가정하자. 밀봉된 병 안에 A 바이러스 한 개체를 넣고 증식 속도를 관찰했다. 예를 들어 오후 1시 정각에 병 안에 바이러스가 가득 찼다면, 바이러스가 병의 절반을 차지한 시간은 언제일까. 수학 관련 대중강연에서 흔히 제시되는 퀴즈다. 답은? 12시59분, 즉 1분 전이다. 우려대로 지역사회 감염이 일어났다면 팬데믹(대유행)은 피할 수 없다. 지난 6월 10일, 미국 뉴욕타임스는 ‘한국에서의 메르스 확산 경로’에 대한 보도를 내놓았다. 기사는 “한국은 국민 대다수가 인터넷을 사용하며 거의 모두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세계에서 가장 기술적으로 앞선 나라 중 하나”라고 전제했다. 그럼에도 한국이 ‘2012년 메르스가 처음 사우디에서 발견된 이래 가장 심각한 발병지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뉴욕타임스는 다음과 같이 진단하고 있다.

“한국인은 흔히 대형병원 의사가 가장 실력이 뛰어나다고 여기고, 이 때문에 대형병원은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더 큰 병원으로 옮기기 위해 인맥 등 갖은 수단을 동원하기도 한다. 응급실은 환자와 환자 가족, 간병인으로 가득 차 있고, 환자 가족은 종종 병실에 머물며 환자의 땀을 닦아주고, 요강을 비우며, 시트를 갈아주기도 한다. 문제는 이들이 모두 감염에 노출된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독특한 대형병원 선호와 간병문화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일견 타당한 지적이다. 그러나 한 번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거꾸로 다른 나라는? 대형병원에 최고의 전문의가 있지 않다는 말일까. 독특한 간병문화를 거론하는 것은 결국 의료현장에서 위생상태나 관념이 (후진국마냥) 떨어진다는 말일까.

아닌 게 아니라 그런 비난이 있었다. 앞서 거론한 1번, 14번 등 슈퍼 전파자의 행동에 대한 비난이 있었다. 자신이 중동 사우디아라비아에 다녀왔다는 것을 숨겼다(1번)든가, 메르스가 창궐한 평택성모병원에 입원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았다(14번)는 것과 같은 비난이다. 사실에 기초한 비난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엄밀한 조사가 필요한 부분이다. 반면, 그들이 병원을 전전할 때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기침을 했다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진단한 의사들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대립각을 세웠던 삼성서울병원 의사(35번 환자)도 응급실에서 진단할 때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그는 14번 환자를 진단하지 않았고 옆 병상의 환자를 돌봤을 뿐이다). 감염 초기 14번 환자는 병원에서 병원으로 시외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지역사회 전염이 발생했을 수도 있다. 아직 규명되지 않은 부분이다.

6월 10일, 삼성서울병원 응급실 앞에 메르스 의심 환자가 방호복을 입은 119 구급대원들에게 실려왔다.  / 이준헌 기자

6월 10일, 삼성서울병원 응급실 앞에 메르스 의심 환자가 방호복을 입은 119 구급대원들에게 실려왔다. / 이준헌 기자

훨씬 전부터 붕괴되었던 의료공급 시스템
“확진자들은 메르스 감염 피해자다. 피해자들을 때리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핵심은 한국의 잘못된 의료전달체계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의 말이다. 우 위원장도 의사다.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보는 걸까. “지역거점 공공병원이 하나도 없었다. 평택에는 모두 6개 병원이 있다. 그 중 공공병원은 하나도 없다. 다 민간이다. 바로 옆 안성에도 없다. ‘안평맘’이라고 안성·평택에 거주하는 엄마들 커뮤니티가 있는데 그분들이 믿을 만한 공공병원 추천을 요청했다. 안성·평택뿐 아니라 화성에도 없고, 그 동네에는 하나도 없으니 말을 꺼내기도 면구스러웠다.” 역시 앞으로 면밀히 검토해 봐야겠지만, 1차 확산지가 된 평택성모병원의 대응도 잘못된 것은 맞다. 확진자가 나온 후 병동 전체를 격리해야 하는데 병실만 격리했고, 8층에 있던 환자들을 7층으로 내려보내는 식으로 대응했다. 7층 병실에 자리가 없는 사람들은 다시 다른 병원으로 이동하면서 메르스가 확산됐다. “만약 그 동네에 공공병원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우 위원장의 가정이다. “처음에 역학조사관이 한 명이라도 들어갔다면 결과는 지금과 천지차이였을 거다. 민간병원만 있으니 거기(평택성모병원)가 허브가 되어버린 것이다.”

14번 환자는 병원을 전전하다 병세가 악화되자 삼성서울병원으로 구급차를 타고 갔다. 우 위원장은 “한국에서 응급실은 응급환자를 받는 곳이라기보다 3차병원 대학병원 입원의 통로가 되어버린 지 오래”라고 덧붙였다. “14번도 평택성모병원에서 지정해서 간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알아서 간 것이다. 경증환자에서부터 암환자까지 하루에 몇백 명이 드나드는데 응급실에 환자 혼자 오는 것이 아니다. 응급실이 사실상 ‘입원실’이 되어 문병 오는 사람까지 드나든다. 응급실 병상 수 이상의 사람들이 항상 모여든다. 병상뿐 아니라 움직이는 카트 위에도 다 누워 있고 거기에다 매트리스를 깔거나 이불을 깔고 누워 있는 ‘도떼기시장’이 되어 있는 것이다.” 대형병원 응급실이 사실상 ‘대학병원 입원 통로’가 되어 있다는 것은 기존 환자의 진단 이송절차인 1차(의원급), 2차(중소병원급), 3차 지역거점 공공병원의 시스템에 구멍이 있었다는 뜻이다. 이재호 가톨릭의대 교수는 환자가 알아서 병원을 찾아 옮겨다니는 것을 두고 ‘환자의 의료 쇼핑’이라는 말을 썼다.

“원래는 비영리이지만 의료서비스가 상품화되어 있는 현실에서 병원이 경영되려면 환자 진료를 가급적 많이 하고 검사도 많이 해야 한다. 교과서적인 진료를 할 경우 초진환자라면 30분 이상 할애해 이야기를 청취해야 한다. 계산해 보라. 물리적 시간 자체가 그럴 경우 하루에 40명 이상 진료할 수 없다. 그대로 했다가는 망할 수밖에 없다. 한 환자당 10분 진료시간이 고작이다. 이번 메르스 최초환자의 경우도 상담시간이 적으니 여행 갔다 왔다는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다. 열 나면 감기인 모양, 이런 식으로 기계적으로 처방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의료진 탓으로 돌릴 수 없다. 한국의 의료시스템이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다. 반면 환자 입장에서는 차도가 없으니, 기왕이면 더 잘 고칠 것 같은 전문가를 찾아 전전하는 것이고.” 의료 쇼핑이 성공하지 않을 경우 종착지는 앞서 뉴욕타임스가 언급한 것처럼 대형병원이다.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우리가 반드시 짚어야 할 것은 우리나라 최고의 병원이라고 하는 삼성서울병원에서 가장 많은 전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주호 보건의료산업노조 전략기획단장의 말이다. 이미 한국의 의료시스템 붕괴는 대형병원에서 끝나지 않았다. 대형병원 중에서도 더 상위의, 서울에 소재한 ‘빅5’에 대한 선호로 나타났다. ‘빅5’ 리스트는 포털 검색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신촌세브란스, 서울성모병원이다. 이들 병원이 이른바 ‘빅5’를 형성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90년대 이후다. 각각 현대와 삼성이라는 재벌과 관련이 있는 서울아산병원과 삼성서울병원은 대학병원이나 지방의 대형병원들의 규모와 돈벌이 경쟁의 롤모델이 되었지만 게임이 되지 않았다. 계속되는 이 단장의 말. “오죽하면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암환자가 있는데, 자기 소원이 삼성병원의 모 유명 의사에게 가서 진찰이라도 받아보면 좋겠다는 것이다. 지방에 있는 국립대 중 전남대가 암진료 1등을 했다고 하는데, 그쪽 분들이 풀이하는 이유가 재미있다. 광주에 KTX가 늦게 들어와서 어쩔 수 없이 지역에 머물러 진료나 투자를 하다 보니 우연히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KTX를 도입한 명분이 지역 균형발전이나 지역 불균형을 해소하겠다는 것이었는데, 거꾸로 서울로 몰리는 현실이 그대로 의료체계에도 반영되어 있다.” 한국에서 감염내과 인력과 장비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서울병원이 역설적으로 14번 환자를 매개로 메르스가 전국으로 퍼지는 핵심 허브 역할을 한 ‘비밀’, 그 내적 메커니즘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대형병원, 그것도 빅5에 몰리는 현상은 언제부터 나타났을까. 대한민국의 의료시스템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보건의료노조가 펴낸 책 <대한민국 의료혁명>에 실린 표를 보면 공공병원은 해방 전 75.1%에 달했다. 민간병원과 역전이 일어난 것은 1966년. 다시 1977년 국민건강보험이 도입되고, 특히 1989년 전국민 의료보험 실시 후 부족한 병상을 민간 규제완화로 해소하면서부터다. 1990년대 초·중반 무렵부터 시작한 ‘빅5-대형병원’의 의료시장 독식 현상은 개인병원들의 줄도산으로 이어졌다. 환자들이 쏠리면서 대형병원의 진료환경도 악화되었다. 보건단체나 노조 등이 주장하는 간호인력의 근무환경 악화, 만성적 부족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병원 전체 매출액에서 인건비 지출이 50%로 상당히 높은 편이다. 병원 입장에서 수익을 내려면 두 가지다. 과잉진료·검사를 하거나 인건비를 줄이거나다. OECD 대비 간호사 인력이 4분의 1밖에 안 되는 현실은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다.” 앞의 뉴욕타임스 기사로 돌아가 보자. 환자의 가족이 사실상 간호사의 역할을 대체해 ‘간병’하는 것은 한국의 아름다운(?) 미풍양속인가 아니면 후진적인 비위생적 문화인가.

6월 7일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중강당에서 열린 삼성서울병원의 메르스 관련 입장표명 기자회견 도중 기자들이 마스크를 착용한 채 취재를 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6월 7일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중강당에서 열린 삼성서울병원의 메르스 관련 입장표명 기자회견 도중 기자들이 마스크를 착용한 채 취재를 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각자도생’하라는 뒷북 긴급재난 메시지
이재호 교수는 “일차의료, 예를 들어 주치의 제도가 있었더라면 메르스가 지금과 같은 양상으로 확산되었을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환자 개인의 사적 정보는 배제된 현재의 ‘1분 진료’가 아닌 평상시 지역에서 환자의 병력을 관리하는 일차의료(primary care)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졌다면 환자가 대형병원에 스스로 가기 전에 걸러졌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현재의 의료시스템 개혁은 중요한 시사점을 갖는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을 공약으로 내세운 데 이어 지난 대선에서 야권은 ‘무상의료’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이런 의료시스템과 제도개혁이 병행되지 않는 한 무상의료는 현재의 대형병원-빅5 선호로 갈 수밖에 없는 의료영리화와 결합해 더 악무한적인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크다.

메르스 사태는 어떻게 정리될까. 이주호 단장은 “아직은 메르스를 잡는 것이 가장 큰 과제이기 때문에 잠복해 있지만 여권 인사들 사이에서는 이번 사태의 교훈을 전염병 전문병원 설립으로 퉁치려 하는 움직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다시 처음의 문제의식으로 돌아간다면, 이번 메르스 사태로부터 대한민국은 어떤 교훈을 얻었을까.

지난 토요일, 집에서 쉬고 있던 기자의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국민안전처가 발송한 ‘긴급재난문자’였다. 내용은 “메르스 예방수칙 1. 자주 손씻기, 2. 기침, 재치기 시 입과 코 가리기…” 등이었다. 6월 6일은 최초 확진자가 나온 지 16일 후다. 뒷북이다. 국민들은 폐쇄 SNS나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메르스가 발생한 병원정보 리스트를 교환하고 있었다. 이튿날,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대통령이 진작에 공개하라고 했었다며 병원 리스트를 공개했다. ‘뒷북 지적’과 관련, 국민안전처 이성호 차관은 6월 11일 국회에 출석해 “그 내용을 모르는 국민은 없지만 가장 중요한 실천이 안 돼 그것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보낸 것”이라고 해명했다.

일차의료연구회의 전 회장이었던 이재호 교수는 이번 메르스 사태뿐 아니라 지난 2009년과 2010년 신종플루 사태 때도 ‘전 국민 주치의 제도가 있었더라면 대유행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문건을 썼다. 문건을 검토하다보니 인상적인 대목이 있다.

영국 국가보건서비스(NHS)의 신종플루 정보 페이지와 당시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의 ‘신종플루 안내’ 페이지다. 한국의 안내 페이지 국민행동요령은 ‘외출 후나 대중이 많이 모이는 장소를 다녀오신 후에는 반드시 손을 씻고…’와 같은 개인이 취할 행동에 맞춰져 있다. 예방접종 안내, 보건소 등 거점약국 현황, 홍보물 등의 카테고리로 되어 있지만, 신종플루에 대한 전문적인 정보는 찾기 어렵다. 반면 NHS의 페이지는 긴급연락처와 함께 초기 화면에서 신종플루와 관련한 최신 전문정보에서 각 언어별 정보 리플렛까지 한 번 클릭으로 다운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의 ‘신종인플루엔자 안내’ 페이지는 현재 찾아볼 수 없다.

메르스 확진 환자와 감염 의심자가 증가추세인 5일 서울 대학로 서울대병원 메르스 스케치.  / 이준헌 기자

메르스 확진 환자와 감염 의심자가 증가추세인 5일 서울 대학로 서울대병원 메르스 스케치. / 이준헌 기자

사라진 2009년 신종플루 정보
“공공성의 핵심은 신뢰다. 투명성 제고가 신뢰의 바탕이다. 재난 과정에서 국가가 신뢰를 얻으려면 투명성은 필수적인 부분이다. 예를 들어 미국 카트리나 재난의 경우 발단에서 처리하는 과정을 정말 디테일하게 성역 없이 조사를 해 공개해 놓았다. 상원과 하원에서는 수백 번의 청문회를 거쳤고, 그 과정도 모두 공개되어 있다. 그 수준이 어느 정도냐 하면, 카트리나가 지나간 한 지역에서 쓰레기를 수거해야 하는데, 왜 수거가 안 되었고, 자원봉사자 동원은 왜 실패했는지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그것을 기초로 시스템을 고치는 것에 적용하는 것까지 다 세세하게 기술해 놓았다. 지금도 그때 제작된 방대한 분량의 카트리나 백서는 인터넷에 다 공개돼 있다. 카트리나 사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접근해 자세히 볼 수 있다. 거기에 비해 지난해 우리가 겪은 세월호는 어떤가.

‘급회전하다가 배가 넘어졌다’는 식의 사고의 직접적 원인만 나와 있다. 그것을 야기한 시스템 문제는 아직도 베일에 가려져 있고….” 구혜란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교수의 말이다. 그는 올해 출간된 <세월호가 우리에게 묻다: 재난과 공공성의 사회학>의 필자로 참여했다. 앞서 언급한 신종플루 사이트만 안 남아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시 언론 보도를 보면 ‘신종플루 백서’도 발간되어 있는데, 보건복지부나 질병관리본부의 ‘검색’을 통해서 그 자료를 찾아볼 수는 없다. 지금 만들어진 메르스 포털은 과연 언제까지 남아 있을까. “이번 사태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지난해 세월호와 똑같다는 것이다. 국가도 없고, 자기가 스스로 알아서 살 길을 찾아야 한다. 필수 구조장비도 다 민간에 맡기고, 그게 세월호 때 벌어진 일이다. 도대체 누가 지휘하는지도 모르겠고…. 이걸 의료분야, 이번에 메르스 사태에 적용하면 그대로 되풀이되는 일이다.” 우석균 위원장의 말이다.

이번 메르스 사태를 접하며 인간이 부른 환경 변화가 인수공통전염병 확산을 부채질한다는 지적이 있다. 현재의 대량생산 소비풍조를 벗어나지 않는 한 ‘위험사회’는 지속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맞는 말이다. 더 치명적 독성과 전염성을 지닌 코로나 바이러스라든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변종은 앞으로도 더 나올 수 있다. 문명사적 비판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번 대한민국에서 메르스 창궐은 한국의 왜곡된 의료전달 시스템과 제도가 만들어낸 한국형 국가 의료재난이다. 공공의료의 복원, 제도 변화가 우선돼야 한다. 이번 메르스 사태가 그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을까. 그러길 바랄 뿐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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