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의장국’ 꿈꾼 인권탄압국 사우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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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후진국 사우디의 뻔뻔함을 보여주는 뉴스 두 가지가 드러났다. 하나는 유엔인권이사회 차기 의장국을 노렸다가 중도에 포기했다는 소식이다. 다른 하나는 이달 초 인권이사회 후원으로 인권 관련 정상회의를 열었다는 사실이다.

지난 6월 7일(현지시간) 이슬람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한 블로거에게 태형 1000대와 징역 10년형을 확정한 사우디아라비아 대법원의 선고는 전 세계의 공분을 샀다. 하지만 이는 인권탄압의 대명사인 사우디의 실체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인권후진국 사우디의 후안무치와 뻔뻔함을 보여주는 뉴스 두 가지가 곧바로 언론을 통해 드러났기 때문이다. 하나는 사우디가 유엔인권이사회(UNHRC) 차기 의장국을 노렸다가 중도에 포기했다는 소식이다. 다른 하나는 사우디가 이달 초 인권이사회 후원으로 인권 관련 정상회의를 열었다는 사실이다. 사우디는 샤리아(이슬람 율법)라는 이름으로 태형과 신체절단형, 참수형까지 자행하는 악명 높은 인권탄압국이다. 그런 사우디가 인권이사회 의장국을 꿈꾸고, 인권 관련 정상회의를 열었으니 국제인권단체의 반발과 비난은 당연했다.

올해 들어 5월 말까지 89명 참수형
스위스 언론 트리뷴 드 주네브는 지난 8일 인권이사회 차기 의장국이 되기 위한 로비를 벌여온 사우디가 이를 철회했다고 보도했다. 현재 인권이사회 의장국은 독일로, 임기는 올해 말에 끝난다. 사우디의 인권이사회 회원국 선출 자체를 반대해 온 제네바에 있는 인권단체 유엔워치의 힐렐 노이어 사무총장은 “좋은 소식”이라면서도 “여느 때보다 더 많은 참수형을 자행하고 있는 이슬람 근본주의자 사우디 왕정은 여전히 인권이사회 회원국이다”라고 말했다. AFP통신의 자체 집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5월 말까지 사우디에서 참수형에 처해진 사람은 외국인을 포함해 89명에 이른다. 지난해 전체 참수자가 87명이었던 점에 비춰보면 가파른 상승세라 할 수 있다. 노이어 사무총장은 “2013년 사우디가 인권이사회 회원국이 되려는 것에 우리가 항의했을 때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어떤 이유로 한마디의 반대도 하지 않았는지가 진짜 문제”라고 말했다. 2013년 사우디가 세 번째 회원국이 되는 것을 두고 논란이 있었으나 미국과 EU가 묵인한 사실을 꼬집은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사형 집행인이 악명 높은 공개 참수형을 준비하고 있다. 사우디는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올해 들어 사형 집행 속도를 높이고 있다. AFP통신이 자체 집계한 결과 5월 말까지 참수자는 89명으로, 지난해 전체 참수자 87명을 넘어섰다. / 러시아투데이(RT) 방송 웹사이트 캡처

사우디아라비아 사형 집행인이 악명 높은 공개 참수형을 준비하고 있다. 사우디는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올해 들어 사형 집행 속도를 높이고 있다. AFP통신이 자체 집계한 결과 5월 말까지 참수자는 89명으로, 지난해 전체 참수자 87명을 넘어섰다. / 러시아투데이(RT) 방송 웹사이트 캡처

인권이사회는 전 세계의 인권을 보호·증진시키기 위해 2006년 출범한 유엔 최고 인권기구다. 하지만 9년 동안 중국이나 러시아, 쿠바, 파키스탄, 베네수엘라 등과 같은 국가의 인권탄압과 관련해 결의를 채택하거나 조사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어 허수아비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지역별로 5개 그룹으로 나눠 유엔 회원국 가운데 47개국을 선출한다. 회원국은 3년 임기를 두 번 연속으로 할 수 있다. 사우디는 2006~2009년, 2009~2012년에 이어 2013년부터 회원국에 선출됐다. 2013년 사우디가 다시 회원국이 되는 것을 두고 논란이 있었으나 미국은 반대하지 않았다고 유엔워치는 전했다. 유엔워치는 당시 “사우디 원유 정치의 힘”을 그 원인으로 꼽았다.

사우디가 차기 인권이사회 의장국을 노린다는 사실이 알려진 때는 한 달 전이었다. 유엔워치가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사우디가 “2016년 의장국은 아시아 그룹이 돼야 한다는 로비를 벌이고 있다”고 주장했고, 트리뷴 드 주네브는 지난달 11일 이를 확인했다. 이후 영국의 인디펜던트와 러시아의 러시아투데이(RT) 방송, 미국의 독립언론 컨소시엄뉴스 등 일부 언론이 이를 보도했으나 대다수 언론들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침묵했다. 당시 유엔워치를 비롯한 국제엠네스티 등 인권단체들은 “방화범에게 소방대장을 맡기는 격”이라며 반발했다. 유엔워치의 노이어 사무총장은 “인권이사회의 신뢰성에 못을 박는 결정타가 될 것”이라면서 서맨사 파워 미국 유엔대사와 페데리카 모게리니 EU 외교안보 고위대표에게 반대해 줄 것을 촉구했다. 국제엠네스티 대변인도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인디펜던트는 사우디 정부가 이 같은 보도가 나오기 며칠 전 사형 집행인 8명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낸 바 있다고 전했다.

사우디 인권탄압의 대표적 희생자인 블로거 라이프 바다위와 그의 구명을 호소하는 국제엠네스티 포스터.  / 국제엠네스티 웹사이트 캡처

사우디 인권탄압의 대표적 희생자인 블로거 라이프 바다위와 그의 구명을 호소하는 국제엠네스티 포스터. / 국제엠네스티 웹사이트 캡처

미국·EU, 사우디 인권탄압에 눈감아
사우디가 인권이사회 후원으로 이슬람회의기구(OIC) 인권 정상회의를 개최한 사실은 지난 8일 사우디 가제트의 보도로 드러났다. 회의는 지난 3~4일 제다에서 열렸다. OIC는 이란, 시리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포함해 이슬람 율법체제를 운영하고 있는 57개 이슬람 국가로 구성된 최대 이슬람기구다. 이 회의에는 인권이사회 요아킴 뤽커 의장도 참석했다. 뤽커 의장은 개회 성명에서 “종교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종교적 편협과 폭력은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인권 도전의 하나”라고 말했다. 회의 참석자들은 인권이사회 결의 16/18을 비롯해 종교에 기인한 폭력과 차별에 대처하는 조치들을 채택했다고 사우디 가제트는 전했다. 하지만 유엔워치의 노이어 사무총장은 뤽커 의장이 회의에 참석한 데 대해 “국제사회가 잘못된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사우디의 인권탄압은 악명이 높다. 사우디는 국왕이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알라가 내려준 샤리아를 집행하고 국민 복지를 위해 필요한 사항을 위해 규율을 제정할 뿐이다. 샤리아와 규율이 충돌할 때는 샤리아가 우선한다. 살인이나 신성모독, 이슬람 신념 거부, 반역, 요술행위, 마약 밀매, 동성애의 경우 사형(참수형 포함)에 처한다. 간통은 태형 또는 투석형, 절도는 손을 자르는 신체절단형, 음주와 명예훼손은 판사의 재량에 따라 태형 등 엄벌에 처하고 있다. 지난 7일 이슬람 모독 혐의로 사우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10년에 태형 1000대를 확정받은 블로거 라이프 바다위가 대표적인 사례다. 바다위는 인터넷 블로그를 만들어 활동하다 2012년 6월 체포됐다. 1심에서 징역 7년과 태형 600대를 선고받았지만 항소심은 오히려 징역 10년·태형 1000대로 상향해 선고했고, 대법원은 이를 확정한 것이다. 태형 1000대를 한 번에 집행하면 아무도 살아날 수 없다.

사우디 정부는 꼼수를 부렸다. 매주 50대씩 20주간 매질을 하기로 한 것이다. 첫 태형 50대는 지난 1월 중순 제다에서 공개적으로 시행됐으며, 그 후 바다위의 건강상의 이유로 연기됐다. 샤리아를 집행하기 위해 ‘하이아’라고 부리는 종교경찰도 운영하고 있다. 규모는 3500~4000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은 도로를 순찰하며 옷차림새나 남녀간 엄격한 분리, 하루 5번 하는 예배인 살라트 등 이슬람 교리에 어긋나는 일을 단속한다. 위반자를 감금하거나 질책하거나 가게 문을 닫게 할 수 있는 권한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 국무부는 사우디를 미얀마, 중국, 에리트리아, 이란, 북한, 수단, 우즈베키스탄과 함께 ‘국제종교자유법(IRFA) 하에서의 특별우려국(CPC)’으로 분류하고 있다.

사우디는 최근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로부터 금지된 집속탄(cluster bomb)을 예멘에서 사용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사우디는 아랍 동맹국들과 미국의 지원 아래 예멘 정부를 장악한 시아파 반군을 물리치기 위해 지난 3월 하순부터 군사작전을 벌이고 있다. 집속탄은 한 개의 폭탄 안에 또 다른 소형 폭탄들이 들어 있는 무기다. 소형 폭탄들 가운데 상당수가 터지지 않고 불발상태로 남아 있다가 나중에 민간인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비도덕적이라는 지적을 받아왔으며, 2010년 8월 집속탄 사용 금지조약의 발효로 사용이 금지됐다.

사정이 이런데도 스웨덴을 제외한 국제사회가 사우디의 인권탄압에 눈을 감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중동에서 경찰국가 역할을 해온 무시할 수 없는 지정학적 지위와 원유, 그리고 자국의 국익 때문이다. 마곳 발스트룀 스웨덴 외교장관은 지난 3월 바다위 탄압에 항의해 “독재국가” “중세적 수법” “언론자유 탄압”이라고 소신발언해 양국간 외교 갈등을 일으킨 바 있다. 하지만 스웨덴이 인권탄압국에 무기 수출을 중단하지 않고 있다는 비난에 그는 이렇게 변명했다. “평화를 원하면서 동시에 무기를 생산하는 국가는 도덕적 딜레마에 빠지게 마련이다. 우리는 이 같은 모순 속에서 살아야 하고, 딜레마를 잘 다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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