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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도 30년 전에 파탄주의로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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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책주의는 사실상 우리나라 유일… 독일은 민법으로 파탄주의 명시

세계적으로 파탄주의 없이 유책주의 이혼제도만 쓰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사실상 유일하다. 미국·독일·프랑스 등 대부분의 나라가 파탄주의를 인정하고 있다. 우리 유책주의의 모델인 일본도 이미 30년 전에 파탄주의로 바꾸었다.

우리나라 유책주의는 1952년 일본 최고재판소의 ‘엎친 데 덮친 격’ 판결을 모방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일본 최고재는 “책임이 있는 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인정하면 잘못이 없는 배우자는 엎친 데 덮친 격이 된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다가 1985년 유책주의에서 파탄주의로 입장을 바꾸었다.

사회의 변화와 요구를 반영해 책임있는 배우자의 이혼청구도 인정키로 한 것이다. 당시 제시된 세 가지 기준은 ‘상당 기간 별거 중일 것’ ‘미성년 자녀가 없을 것’ ‘피고가 정신적·사회적·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 아닐 것’이다. 이후 거듭된 판결을 통해 구체적인 기준이 만들어졌다. “최근 하급심 판례 등을 보면 ‘상당 기간’의 기준이 10년 안팎”이라고 일본 오르비스 법률사무소의 이정규 일본변호사는 설명했다.

서구에서는 대부분 나라가 파탄주의를 인정한다. 영국에서는 1973년 만들어진 이혼법 제1조 제1항에서 ‘이혼의 청구인은 혼인이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되었음을 근거로 이혼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파탄주의를 규정하고 있다. 런던에 있는 영국고등법원. / Creative Commons Attribution-Share Alike 2.0 Generic

서구에서는 대부분 나라가 파탄주의를 인정한다. 영국에서는 1973년 만들어진 이혼법 제1조 제1항에서 ‘이혼의 청구인은 혼인이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되었음을 근거로 이혼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파탄주의를 규정하고 있다. 런던에 있는 영국고등법원. / Creative Commons Attribution-Share Alike 2.0 Generic

미국 일부 주는 귀책사유 이혼도 혼용
현재 서구의 거의 모든 나라가 혼인생활이 파탄에 이른 경우 이혼토록 허가한다. 1969년에 영국이, 1975년에 프랑스, 1976년에 독일이 파탄주의를 채택했다. 유책주의가 법정에서 지독한 사람으로 만들어 감정을 악화시키고, 위증을 만연시킨다는 이유였다. 사회적으로 봐도 부부관계가 완전히 파탄되어 회복될 전망이 없는데 법으로 묶어두는 것이 무익하다는 주장이 우세했다. 차라리 이혼을 시키는 것이 분쟁을 종식시키고 사실상의 가족관계를 만든다는 의견이었다.

구체적으로 독일은 민법에서 파탄주의를 명시하고 있다. 독일민법 제1566조 등에서는 ‘부부가 3년 이상 별거한 경우에는 그 원인에 관계없이 혼인이 파탄된 것으로 보아 이혼을 허용한다’고 정하고 있다. 독일법원은 부부의 파탄을 객관적 별거상태로만 인정한다. 국가가 부부의 사생활까지 살펴 실제로 파탄이 있었는지 판단하지 않는다.

미국은 1969년 캘리포니아주를 시작으로 1985년까지 모든 주에서 파탄주의 이혼을 도입했다. ‘화해할 수 없는 차이’ ‘회복할 수 없는 파탄’ ‘일정 기간 별거’ 등이 이혼 사유다. 일부 주에서는 정신병, 혼인 동의능력 부족과 같은 귀책사유 이혼도 함께 쓰고 있다. 일정한 별거기간이 이혼의 청구조건인 경우도 있고, 이혼의 충분조건인 곳도 있다. 이혼을 청구하기 위한 별거기간은 60일에서 5년까지 다양한데, 6~18개월이 가장 많다.

프랑스는 자유이혼을 막기 위해 1804년 나폴레옹 민법에서 유책주의를 도입했다. 하지만 유책주의 이혼의 폐혜를 인정해 1975년 파탄주의로 대폭 전환하는 법개정을 단행했다. 유럽 다른 나라와 달리 프랑스에서는 파탄이혼이 유일한 제도는 아니라는 게 특징이다. 파탄상태를 부부가 인정하면 되는 승낙이혼, 2년 이상 별거의 경우 가능한 변질이혼, 상대방에게 책임 있을 때 제기하는 유책이혼 등이 있다.

<이범준 기자 seirot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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