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전략가에게 듣는다-새정치연합에게 필요한 것은 뭐?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40대 25.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10%가 넘는 지지율 격차는 이제 고착화됐다. 새정치연합은 선거마다 백전백패다. 선거에 질 때마다 야당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구조를 가리킨다. 그러나 양극화, 취업난 등 야권에 유리한 사회문제가 한국 사회에 산적해 있는데 기울어진 운동장 탓은 자기 정당화에 불과하다는 비판이다. 4·29 재·보선을 앞두고 성완종 리스트가 터지면서 새누리당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새정치연합의 지지율이 올라 양당이 비슷한 지지율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상대의 실책에 지지율은 올라갔을망정 새정치연합이 스스로 잘해 지지율을 올리지는 못했다. 새정치연합은 선거에서 질 때마다 ‘혁신’과 ‘환골탈태’를 말했다. 하지만 더 이상 그 말을 신뢰하는 유권자는 없다. 재·보선 패배 이후에도 여전히 계파싸움에 몰두해 있는 새정치연합에 필요한 전략은 무엇일까. 이상일 아젠다넷 대표, 정상호 서원대 교수, 최태욱 한림대 교수에게 야권이 가야 할 방향에 대해 물었다.

새정치민주연합 확대간부회의 / 연합뉴스

새정치민주연합 확대간부회의 / 연합뉴스

“일상 벗어난 ‘운동권 정치’ 바꿔야”
이상일 아젠다센터 대표, 야당 동력 끌어올릴 콘텐츠 강화 지적

Q 4·29 재·보선에서 야권이 패배한 원인을 분석한다면.
“표면적으로는 야권 후보들의 분열이다. 그러나 선거의 흐름을 보면 야권 분열이 봉합이 된다고 해도 야당이 다음 선거에서 기존보다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운동권 정치’라고도 표현되는데, 새정치연합은 일상정치에서 너무 벗어나 있다. 이번 재·보선에서 변수가 됐던 야권연대나 호남민심 등의 이슈를 제거하더라도 야당이 정치를 대하는 스탠스를 바꾸지 않으면 다음에도 다수 유권자들의 공감을 얻기가 힘들 것으로 본다. 이렇게 말하면 새정치연합은 우리도 민생정당이고 정책정당이라고 항변을 한다. 그러나 재·보선이 끝나고 나온 문재인 대표의 공식 논평을 보자. 논평은 새정치연합이 성완종 리스트로 촉발된 국민의 분노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다고 사과한다. 새정치연합은 국민의 편에 서서 국민의 분노를 대변하는 동지라는 시각으로 유권자를 바라본다. 운동권적 시각이다. 그러나 새정치연합은 10년 정권을 잡았고, 국가를 운영했던 세력이다. 반독재 민주화 투쟁 시절의 야당의 의미와는 다르다. 유권자들이 야당을 바라보는 시각도 그때와 달라졌다. 분노는 국민이 하면 된다. 정부·여당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은 야당이 말하지 않아도 국민들이 안다. 야당은 분노하는 국민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선택받기 위해 내것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그동안 전체 당의 자원이나 노력을 얼마만큼 할애했는지 의문이다.”

이상일 아젠다센터 대표 / 아젠다센터 제공

이상일 아젠다센터 대표 / 아젠다센터 제공

Q 을지로위원회 등 사회·경제적인 이슈를 밀어붙여 정책화하려는 의지도 있었다.
“정책·민생 이야기를 하긴 한다. 그러나 ‘우리도 이런 것에 관심 있습니다’라는 알리바이 수준이라고 본다. 성완종 리스트, 이런 것 터질 때마다 정책이나 민생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을지로위원회 2주년 됐다는 기사가 얼마 전에 보도됐다. 의원 40여명이 갑을관계를 시정하고 개선하는 데 많은 일을 했더라. 이 활동을 2년이나 계속했구나라는 걸 기사를 통해 알았지 야당이 공식적 채널을 통해 이를 적극적으로 알렸던 기억이 별로 없다. 민생정책이 말로 한두 번 한다고 내것이 되는 것이 아니다. 몇 개 법안을 만들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를 집요하게 끌고가서 실제 상품으로 만들고, 이를 국민들이 이해해야 비로소 야당의 것이 되는 것이다.”

Q 당내에서는 을지로위원회 활동이 당에 급진적 이미지를 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집토끼/산토끼, 좌클릭/우클릭 논쟁이다.
“약자, 비정규직 문제에 천착하면 과격하게 보이기 때문에 당내 중심의제로 가져가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내부에서 있다고는 하더라. 내부의 논쟁에 동의하지 않는다. 좌클릭/우클릭 논쟁을 할 게 아니라 정책을 구체적으로 내놓고 이 정책이 합리성을 띠고 있느냐는 논쟁을 해야 하는데 안 하고 있다. 정책 부문에서 좌클릭/우클릭을 논할 수준이 못 된다는 것이다. 그저 사안을 풀어가는 방식이 급진적이냐, 아니냐로 싸울 뿐 콘텐츠 문제가 아니다.”

Q 지금 새정치연합에게 필요한 것은 일상정치에 기반한 사회·경제적 의제를 끌어내는 것인가.
“그렇다. 야당이 더 나은 선택이라는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한다. 정말 국민들이 좋아하는 것을 깊이 천착해내는 작업들이 없으면 진보성향의 유권자들은 여당을 선택하지는 않겠지만, 투표 자체를 포기해버릴 것이다. 여권의 패착에 기댈 게 아니라 스스로 끌어올릴 동력을 찾아야 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극복하는 방법도 사회·경제적 이슈를 강화하는 것이다. 야당의 주장대로 기울어진 운동장은 실재한다. 안보이슈에 충실한 장·노년층의 비율이 점점 커진다. 그러나 야당이 노력해도 안 되는 구조는 아니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50대 초·중반과 후반의 여론이 상당히 차이가 있다. 50대 초·중반은 야당이 흡수할 수 있는 영역이다. 선거 때마다 안보이슈보다 사회·경제적 이슈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야당이 콘텐츠를 강화하면 해볼 만한 싸움이다.”

Q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당조직의 강화가 필요할 것 같다.
“그렇다. 구조적인 문제가 굉장히 크다. 정당 자체가 개인 소속원들의 총합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승리할 수 있다. 현재 야당은 그런 식의 정치를 외면하고 있다. 야당은 차기 대선에서 인물후보군에 앞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계파 투쟁이 계속된다면 인물의 우위만 가지고 선거의 승리를 담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개인이 정당을 뛰어넘는 힘을 갖는 시기는 끝났다. 현 박근혜 대통령이 마지막이라고 본다. 대선을 몇 차례 치르면서 유권자들도 개인이 뛰어나거나 역량이 있다고 해서 혼자 국가를 이끌어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학습했다. 기왕이면 호감이 가고 좋은 가치를 표방하는 후보를 선호하겠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지지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후보를 둘러싸고 있는 정치세력이 어떤 안정감을 주느냐가 중요해졌다. 새정치연합이 지금처럼 간다면 어떤 후보가 나오든 차기 대선에서 후보의 가장 큰 약점은 정당이 될 것이다. 친노패권주의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친노패권주의 그 자체는 별 문제가 없다. 정당에서 강한 힘을 가진 한 정파가 있고 이들이 당에서 지지를 얻을 수 있으면 된다. 문제는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친노가 정말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친노패권주의 논란은 안 나왔다. 그런 파워가 없기 때문에 지분의 문제가 나오는 것이다. 야당의 계파문제는 한쪽이 다른 한쪽을 완전히 눌러 완벽하게 우위에 서거나 아주 오랜 협상을 통해 상당히 정교한 틀을 만들지 않는 이상 해결되기 어렵다.”

Q새정치연합이 새누리당에게 배울 점이 있다면.
“보수가 갖는 본능적인 긴장감이다. 새누리당은 2012년보다 어려운 선거를 치르기는 할 것이다. 그런데 작년 지방선거를 보자. 제주도 원희룡 지사, 경기도 남경필 지사가 공천된 것을 보면 새누리당은 지방선거에서 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있었다. 원희룡 지사나 남경필 지사는 박근혜 대통령과 사이가 좋지 않다. 그럼에도 원희룡 지사의 경우 경선 논란까지 극복해가면서 당에서 공천을 줬다. 만약 야당이 같은 입장이었다면 그런 공천을 할 수 있었을까라고 묻는다면 회의적이다. 정권재창출이라는 목표가 있으면 반목하는 사이라 해도 목적의식을 공유하고 가는 힘이 새누리당에는 있다. 어떤 DNA 차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야당이 배워야 할 점이다.”

“야권지지층 투표장으로 유인해야”
정상호 서원대 교수, 육아·보육 등 생활정치 의제 발굴 강조

정상호 서원대 교수 / 이상훈 선임기자

정상호 서원대 교수 / 이상훈 선임기자

Q 4·29 재·보선에서 야당이 패배한 원인을 분석한다면.
“구조적인 관점에서 짚어보자. 후기산업화 단계의 특징 중 하나는 정치참여의 방식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투표참여가 핵심이었다면, 후기산업화 단계에서는 비선거참여 시민행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광장과 촛불이 대표적인 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는 여권 지지층은 투표로 정치참여를 하고 야권지지층은 광장으로 나가는 것이다. 야권 성향 유권자들이 점점 더 비선거 이슈에 반응하기 때문인데, 그렇다면 야당은 이들을 어떻게 투표장으로 견인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광장, 촛불로 주기적으로 표출되는 이들의 정치참여를 야당이 투표현장으로 연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 연결하는 고리를 못 찾아내는 것이다. 참여전략, 동원전략이 나와야 하는데 야당은 이를 놓친 채 친노·비노의 문제의 틀에 갇혀 있다. 문제의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

Q이들을 견인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비선거 이슈에 반응하는 야권 성향 유권자층 중에 대표적인 집단이 여성 유권자다. 조사를 해보면 젊은 여성 유권자들을 중심으로 탈물질주의 및 진보지수가 가장 높게 나타난다. 새로운 야당 지지층으로 엄청난 지지층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들을 투표현장으로 견인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문화적 측면에서 자유주의자이며 개인주의를 체득한 집단으로 볼 수 있다. 이를 생활정치 동맹 같은 의제로 묶어내야 하는데 야당이 이를 못하고 있다.”

Q생활정치라면 사회·경제적 약자를 대변하는 의지를 뜻하나.
“야당의 을지로위원회는 갑을이라는 사회·경제적 관계 속에서 사회적 약자 문제를 다뤘다. 이는 전통적 프레임이다. 이것과 여성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한 생활정치 의제는 다르다. 생활정치 의제는 예컨대 육아나 보육 의제다. 오히려 새누리당이 이런 의제에 대해 탄력 있게 대응한다. 야당은 오히려 경직돼 있다. 20대 여성들에게 맞는 주택정책이라든지 이런 의제 정책을 전혀 발굴해내지 못하고 있다. 역대 대선을 보면 보수가 의제 선점 능력이 더 뛰어났다. 재미있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 그리고 차기 대선주자로 꼽히는 김무성 대표는 선거를 굉장히 진보적으로 치르고 있다. 통상적으로는 그 반대다. 클린턴이나 오바마 등 진보가 대선을 진보적으로 치르고 집권을 보수적으로 하는데, 한국 정치에서는 보수가 선거를 진보적으로 치르고 집권을 보수적으로 한다. 의제 선점에서 계속 밀려 자연적으로 표출되고 있는 시민행동을 야당이 투표장으로 끌어내지 못하면 야당은 계속해서 패배할 수밖에 없다.”

Q야권 성향 유권자층을 투표장으로 견인하기 위해서는 이들에게 맞는 의제가 필요하다는 건데, 이 또한 결국 정당조직의 문제가 해결돼야 하지 않나.
“그렇다. 지금 야당이 자꾸 혁신위원회 같은 것을 만들면서 위에서부터 조직하는 방식을 선택하는데, 이것은 실효성이 없다. 지금 해야 할 것은 핵심당원들, 골수지지자들, 기초의원, 자치단체장 등 강력한 지지자 그룹 등이 참여하는 전국적인 풀뿌리 원탁회의 같은 것을 만드는 것이다. 과거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도민 정상회의라는 것을 했는데, 이러한 것을 통해 풀뿌리를 조직화하고 새로운 의제를 발굴해 분위기를 쇄신했다. 지금 야당에서는 안경환 교수, 조국 교수 등을 거론하면서 혁신위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사실 그렇게 만들어진 혁신위에서 나올 이야기는 뻔하다. 대표적인 게 물갈이론, 40대 기수론 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게 대안세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개혁적 영남 후보든 시민단체든 재야든 한국 사회에서 조직화된 대안세력은 소진됐다. 어디에서 어디로 물갈이할 것인가라고 물었을 때 답이 안 나온다.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 야당 복원을 위한 풀뿌리 전당대회와 같은 일종의 흐름을 만들면 어떨까. 한 번도 해보지 않았는데 그런 식으로 접근해서 아래로부터 조직화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Q아래서 조직화를 한다고 해도 위에서의 계파 갈등은 어떻게 해야 하나.
“이번 선거에서 문제로 드러났던 게 호남정치, 친노의 영남패권주의인데, 사실 이는 야당의 인구통계학적 집권전략이 낳은 불가피한 산물이다. 호남 출신 야권 후보로는 집권이 불가능하다 보니 득표력이 높은 영남 후보를 자꾸 발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인구통계학적 집권전략이 권력을 분산하는 합리적 준거점이 되어야 하는데 야당에서는 그것이 안 되고 있다. 야당은 앞으로도 영남·수도권 후보를 배출할 수밖에 없고, 현재 친노 대 비노로 드러난 이 대립구도는 이 구조가 소실되지 않는 한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권력의 공유방식, 무엇보다 공천방식을 시스템화해야 하고, 호남정치 자체가 혁신을 해야 한다. 호남에서 전국적인 인물 경쟁력이 있는 후보가 배출되어 당내에서 경쟁하고 승리하는 구도로 가야 한다.”

“정치 개혁하려면 기득권 버려야”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선거제도 개혁 주장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이상훈 선임기자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이상훈 선임기자

Q왜 야당은 선거에서 연전연패할까.
“‘75%의 룰’이라는 게 있다. 양당제 국가에서는 75% 정도 확률로 보수파가 집권한다는 것이다. 여러 학자들이 2차 대전 이후 60년 정도의 선거 결과를 토대로 통계를 낸 결과다. 어느 정도 산업화가 진행된 나라에서는 자연스레 분배와 복지 문제가 정치 의제로 오르게 되고, 이런 곳에선 중산층과 중도층이 결정권을 가진다. 이들이 보기에 진보 쪽이 집권하면 복지를 위한 세금 증가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보수에 투표하는 성향이 있다. 또한 새누리당이 새정치연합보다 훨씬 정당답다. 새정치연합은 호남 외에는 단단한 기반이 없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호남보다 인구가 훨씬 많은 영남이라는 지역 기반이 있고, 기득권층이라는 사회적인 기반을 형성하고 있다. 반면 새정치연합의 사회적 기반이 누구인지 분명치 않다. 안정적인 사회적 지지그룹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앞으로도 야당에 선거가 계속 불리할 것이라고 본다. 이제는 총선에서 제1당이 단독 과반수를 하는 게 제도적으로 정상상태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Q평소 선거제도 개혁을 이야기해온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 한국의 정치구조는 정당이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소선거구제에서 1표만 더 얻으면 되는 1등 뽑기만 하다 보니 양 진영에서 1등을 많이 낼 수 있는 힘센 쪽만 살아남는다. 이념을 내세우는 군소정당은 결국 퇴출된다. 지역을 근거로 한 양대 정당이 독과점 체제를 형성하다 보니 정책보다는 인물 중심의 정치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유럽의 8대 복지국가(스웨덴, 독일, 네덜란드 등)는 예외없이 비례대표제를 중심으로 한 다당제, 연정형 권력구조를 갖고 있다. 합의제 민주주의가 가능한 방향으로 선거제도를 바꿔야 평범한 사람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이론적·경험적으로 증명됐다.”

Q구체적인 선거제도 개혁방안은 무엇인가.
“개인적으로는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선호하지만 현실적으론 지난 2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내놓은 안이 좋다고 생각한다. 비례대표 의석을 100명으로 확대하고, 6개 권역별로 독일식 비례대표제와 비슷한 선거를 하자는 재미있는 발상이다. 당시 학자나 언론인들이 선관위 안을 가지고 2012년 총선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원래 결과에 비해 득표율과 실제 의석 비율이 좀 더 일치했다. 정책과 이념을 강조하는 정당이 부상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Q‘75% 룰’에 따르면 현재 새정치연합도 선거제도 개편에 찬성해야 하는데, 특별히 그런 움직임은 안 보인다.
“원칙적으로 정당은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만든 자발적 결사체다. 정당은 그 정책기조가 확실해야 하고, 자신들의 이념에 부합하는 사회적 기반 위에서 자신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의사를 대변하는 조직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새정치연합은 정당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념적으로 공유하는 목표가 없고, ‘당선’만이 유일한 공통분모다. 새정치연합 정치인들은 오랫동안 자신의 지역구를 가꿔 왔다. 선거제도가 바뀌면 자신들의 정치적 자산이 무력해질 위험성이 있고, 당 전체로 봐도 최소 2등이 보장된 양당체제에서 선거제도 개혁에 나설 유인이 없다. 대신 개헌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많아 보인다. 대통령의 꿈을 가진 정치인이 아니라면 사실 대통령 권력을 분산시키자는 내용의 개헌은 자신의 기득권과 무관하다. 선거제도를 바꾸고 정치를 개혁하려면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그 가능성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Q1990년대 중반 뉴질랜드, 일본 등에서 비례대표가 강화되는 선거제도 개혁이 성공했다. 당시 사례에서 배울 점은 무엇인가.
“정치학에 ‘정치 기업가’라는 개념이 있다. 여기서 기업가란 오직 돈을 벌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다. 대중이 원하는 새로운 물건이나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창조적인 사람을 말한다. 이걸 정치영역으로 가져온 게 정치 기업가다. 정치 기업가들은 그동안 없었지만 유권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과 제도를 만들어서 널리 알리고, 그걸로 유권자들의 열망을 조직해서 실제 개혁을 성공시키는 사람이다. 뉴질랜드의 경우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로 성공적인 개혁을 이뤄냈다. 여기에 선거제도개혁연합이라는 ‘정치 기업체’가 역할을 했다. 여기엔 기성 정치인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활동가, 학자, 언론인들이 몇 년에 걸쳐 긴밀한 협조를 한 끝에 소선거구제에 대한 시민들의 공분을 이끌어내고 결국 제도개혁을 성공시켰다. 한국에서는 2000년에 있었던 낙천·낙선운동이 제도보다는 정치인 개개인을 겨냥하기는 했지만, 형식적으로는 성공적인 정치 기업체라고 할 만하다. 이런 사례에서 배워야 한다.”

<박송이 기자 백철 기자 psy@kyunghyang.com>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