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앞에 선 ‘모래시계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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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4선에 당대표 지냈지만 정치적 배경 없는 비주류… 최대 정치적 위기

1993년 5월 21일, 서울지검 청사에 박철언 의원이 들어섰다. 박철언 의원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고 했던 노태우 정권의 황태자였다. 박 의원은 슬롯머신 업자 정덕일씨로부터 5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박 의원은 청사 로비에서 “진실은 반드시 밝혀지리라 믿는다” “검찰의 양심을 믿는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박 의원 지지자들은 “정치보복 중단하라”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박 의원을 신문한 주임검사가 바로 홍준표 검사였다. 홍 검사는 박 의원에 대해 “박 선배님”으로 부르며 깍듯이 예우했지만 결국 박 의원을 구속기소했고, 박 의원의 정치생명도 끝이 났다.

이 사건으로 국민적 인기를 얻은 홍 검사는 ‘모래시계 검사’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그로부터 22년이 흐른 5월 8일 오전 10시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 들어섰다. 그가 모래시계 검사로 박철언 의원을 세웠던 바로 그 자리에 이번엔 그가 섰다. 홍 지사는 분홍색 셔츠에 그가 좋아하는 빨간 넥타이를 맸다. 22년 전에는 검사였던 그가 이날은 피의자 신분으로 바뀌었다. 혐의는 그가 기소했던 박 의원과 다르지 않았다. 박 의원은 슬롯머신 업자로부터 돈을 받았고, 홍 지사는 건설업자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홍준표 경남지사가 피의자 신분으로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 들어서고 있다. | 이석우 기자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홍준표 경남지사가 피의자 신분으로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 들어서고 있다. | 이석우 기자

직설적인 화법으로 ‘저격수’ 별명
홍 지사는 “검찰에 소명하러 나왔다”고 했다. 그는 자신 있게 말하며 웃어 보였지만 표정은 굳어 있었다.

박 의원이 그랬던 것처럼 홍 지사 역시 정치인생에서 최대 위기에 직면한 것은 분명하다. 그것도 그를 모래시계 검사로 만들었던 것과 똑같은 뇌물사건이 이제 그의 정치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홍준표 지사는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2011년 당대표 선거를 앞두고 1억원을 수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성 전 회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힘 있는 정치인들 간에 오갔던 불법적인 금전거래를 고발했다. 홍 지사는 성 전 회장의 리스트에 올라 있었다. 돈 전달자를 자처하는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의 진술로 구체적인 정황도 나오고 있다. 검찰은 성완종 전 회장의 지시로 한장섭 전 경남기업 부사장과 윤승모 전 부사장 등을 거쳐 홍 지사에게 1억원이 전달된 것으로 보고 있다. 2011년 6월 윤승모 전 부사장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홍 지사를 만나 1억원을 건넸고, 이를 홍 지사의 보좌관이 들고 갔다는 것이다. 1억원 수수가 단순히 정치자금법 위반이 아니라 대가성을 전제로 한 뇌물수수 혐의, 공직선거법 위반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새누리당 공천을 원했던 성완종 전 회장이 당대표 선거에 나섰던 홍준표 지사에게 공천을 대가로 돈을 건넨 것 아니냐는 것이다. 홍 지사는 이와 관련한 혐의를 일절 부인하고 있지만 검찰은 면죄부를 주기 위해 소환하지는 않는 법이다. 한 발만 삐끗해도 천 길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벼랑 끝에 그가 서 있다.

그는 비주류 정치인이다. 주류에 끼지 못했다. 정치인들은 주류에 끼어 세를 모으고 자기 몸집을 불리고 대를 잇는다. 그에게는 그런 정치적 배경이 없었다. 4선에 당대표까지 지냈지만, 친이·친박 어느 쪽으로도 분류되지 않았다. 한때 그는 친이계 ‘성골’이었다. 2006년 지방선거 전까지 말이다. 당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후보를 지원했다. 그 후로 홍준표 지사와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로 등을 돌렸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 홍준표 지사도 출마했다. 출마 선언에서 그가 들고 나온 것은 이명박 후보의 정책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였다. 그는 ‘한반도 대운하’가 환경 대재앙을 불러올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 후로 홍 지사는 어느 계파에도 속하지 않고 계속 ‘마이웨이’였다. 새누리당 핵심 관계자는 “홍준표 지사가 확실하게 크려고 했다면 이명박 정권에서 컸어야 하는데 결국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대선후보급 정치인이 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비주류였던 그의 또 다른 별명은 저격수였다. 직설적인 화법으로 상대당을 공격했다. 그의 저격은 순간적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는 했으나 번번이 사실과 어긋난 공격일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예가 ‘아방궁’ 논란이다. 그는 지난 2008년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지낼 당시 국정감사 점검회의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에 대해 “웰빙숲 조성은 쌀 직불금 파동에 버금가는 혈세 낭비의 대표적 사례”라며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 집 앞에는 주차할 데도 없다. 노 전 대통령처럼 아방궁을 지어서 사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그의 저격수 활동에 대해 “그의 저격수 활동이 당을 곤란에서 구해주거나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본인 자신에게는 결국 부정적인 이미지로 남을 수밖에 없다. 저격수는 결국 불쾌한 감정을 자극하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다가서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확장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라며 “정형근 전 의원, 김진태 의원 등 검사 출신에 저격수 정치인들이 많은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진주의료원 폐업·무상급식 중단 논란
비주류 저격수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홍준표 지사는 4선에 당대표까지 지내고 차기 대권까지 노리고 있었다. 여기에는 그의 배경이 한몫 했다. 홍준표 지사는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뛰어난 머리 하나로 검사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거기에다 정의로운 검사였다고 알려져 있다. 박철언 의언을 사법처리하며 얻은 ‘모래시계 검사’라는 별명은 그의 정치적 자산이자 배경이자 상표였다.

별다른 백그라운드 없는 그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주자로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도 ‘모래시계 검사’라는 이미지가 크게 작용했다. 당대표에 도지사를 지낸 그의 마지막 남은 도전은 대권이었다. 그는 대선을 보고 뛰었다. 진주의료원 폐업, 경상남도 무상급식 중단 등은 여의도에서 멀어진 홍 지사가 중앙정치에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 메시지였다. 그러다 성완종 리스트가 터져나왔다.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것 자체가 그에게 치명적이다. 그가 ‘모래시계 검사’로 알려졌기에 더욱 그렇다. 돈을 받는 것은 비주류 홍준표가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새누리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비주류 홍준표에게 돈문제는 치명타라고 말했다. 계파 없는 그의 정치적 힘이 모래시계 검사 출신이라는 에피소드에서 나오는 만큼 돈문제는 그의 이미지에 치명적인 생채기를 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홍준표 지사는 성완종 회장이 자살하면서 쓴 일방적인 메모는 반대심문권이 보장돼 있지 않기 때문에 무조건 증거로 사용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내세우며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지만, 정치권에서는 홍 지시가 정치적으로 벼랑 끝에 몰렸다는 분석이다.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홍준표 지사 선에서 성완종 리스트 사건이 마무리되기를 바라고 있다. 성완종 리스트에 올랐던 8명 대부분이 현 정부의 유력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줄소환 사태가 벌어질 경우 내년 총선과 후년 대선에서 악재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이완구 총리는 이미 사표 내면서 일단락됐고, 관심도는 홍준표 지사에게 집중돼 있다. 구체적인 정황, 증언, 액수 등이 다 있어 검찰이 세게 붙을 것 같은데, 나머지 허태열 전 비서실장, 김기춘 전 비서실장, 이병기 비서실장의 경우 너무 오래됐거나 정황이 구체적이지 않아서 실체가 없다. 이완구 총리는 김이 빠졌고, 검찰 수사도 홍준표 지사에게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모래시계 검사’의 성공 스토리는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아직 결말은 나오지 않았다. 지루한 법정 싸움이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할 것 같다. 해피 엔딩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법적이든, 정치적이든.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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