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지사 기념물 바로 옆에 친일파 기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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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찬양한 주요한 시비, 세종로 조선어학회 한글수호 기념탑 곁에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옆 세종로 공원 안쪽에 조선어학회 한글수호 기념탑이 서 있다. 지난해 8월 서울시가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희생된 애국선열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이 탑에는 1942년 10월 조선어 사전을 펴내려 했다는 이유로 투옥된 33인의 이름과 한글을 지키려 했던 이들의 투쟁기가 적혀 있다. 기념탑 비문에 따르면 33인 중 2명은 옥사했고, 이극로 등 5명은 모진 고문을 받다가 해방이 되고 난 이후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탑에서 약 20m 떨어진 곳에는 일제 강점기 시절 시인이자 해방 이후 국회의원을 지낸 주요한의 시비가 서 있다. 한글학회에 따르면 현재의 조선어학회 기념탑 자리에 원래는 주요한 시비가 설치돼 있었다고 한다. 평범한 기념탑으로도 보인다. 앞면에는 주요한의 ‘빗소리’란 시가 적혀 있고 뒷면에는 그의 생애가 간략히 적혀 있다. 문제는 주요한이 일제 강점기 시절 ‘마쓰무라 고이치(松村紘一)’라는 이름으로 일제를 찬양하던 친일 시인이었다는 점이다. 애국지사의 기념물 바로 옆에 친일파의 기념물이 서 있다.

정부서울청사 옆 세종로 공원에 위치한 주요한 시비의 뒷면. 그의 친일 행적에 대한 설명은 빠져 있다. | 백철 기자

정부서울청사 옆 세종로 공원에 위치한 주요한 시비의 뒷면. 그의 친일 행적에 대한 설명은 빠져 있다. | 백철 기자

백선엽·김성수 등 4명 보훈처가 관리
일제 강점기 초기 주요한은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는 등 독립운동에 투신했으나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체포된 뒤 친일파로 전향했다. 1942년 1월 발표한 ‘명기하라 12월 8일’은 1941년 12월 8일(일본 시간)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전쟁이 시작된 것을 “아세아의 붉은 태양이 세계를 비최러 떠오른 날”이라 찬양했다. 같은 시기 일제의 침략전쟁을 “한날의 광명”으로 치켜세운 ‘팔굉일우(八紘一宇)’라는 시를 발표했다. 그의 일본식 이름도 팔굉일우에서 따온 것이다. 위를 포함한 43편의 친일 작품을 발표한 주요한은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됐고, 정부기구인 친일진상규명위의 친일파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주요한 시비의 뒷면에는 그의 친일 행적이 단 한 줄도 적혀 있지 않다.

주요한 시비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의 친일파 관련 기념물이 아무런 조치 없이 유지되고 있다. 지난 4월 27일 김영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전국 곳곳에 최소 37곳의 친일파 기념물이 있으며, 이 중 9곳은 국가보훈처가 특별관리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의원은 같은 날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향후 친일진상규명위에서 결정한 친일파에 대한 기념물은 설치가 금지되며, 이미 설치된 기념물도 1년 이내에 철거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김영록 의원실은 “친일잔재 청산을 통해 역사왜곡을 방지하고 올바른 역사관을 제고하려는 것”이라며 법안 발의의 취지를 설명했다.

안홍순 광복회 회장 직무대행은 “친일 반민족 행위자 시설물은 민족정기 수호 및 후세 교육 차원에서 당연히 철거해야 한다”며 법안 발의를 환영한 뒤 “또한 정부가 발표한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의 행적을 국민교육에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보훈처가 관리하는 9곳의 현충시설은 친일파 4명(김백일, 김석원, 백선엽, 김성수)과 관련된 곳이다. 모두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다. 백선엽 장군(95)의 경우 일제시대 간도특설대에서 활동하며 조선인, 중국인의 항일 연합군을 ‘토벌?했다. 백 장군 본인도 1993년 일본에서 출간된 회고록에서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었고, 그 때문에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며 친일행위를 인정했다. 하지만 일부 보수세력은 백 장군이 한국전쟁 시절에 공적을 세운 것이 많다며 그를 친일파로 모는 것은 지나치다고 주장한다.

민족문제연구소 등 민족운동단체에서는 2010년 보훈처가 친일파로 드러난 독립운동가 19명의 서훈을 취소한 것처럼 이들에 대한 현충시설 지정을 취소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내고 있다. 이후에도 보훈처는 친일 행적이 새롭게 드러난 인물에 대한 서훈을 취소해 왔다. <주간경향>은 보훈처에 2010년 사례를 들어 위에 언급된 친일파 4인의 서훈을 취소하고, 9곳의 현충시설 지정을 취소할 수 있느냐고 질의했지만 기사 마감시간까지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처장은 “2010년 서훈 취소 당시 김성수만은 유족이 친일진상규명위 결정에 대해 제기한 행정소송의 확정판결이 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서훈 취소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래도 보훈처는 정부 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김성수 관련 시설을 현충시설에서 일단 제외시켜야 하는데, 그러기는커녕 2년 전에 고려대에 있는 김성수 동상을 추가로 독립운동 시설물로 지정했다”고 설명했다.

애국지사 기념물 바로 옆에 친일파 기념물

친일파 기념물 전국 200여 곳 ‘건재’
민족문제연구소는 김영록 의원의 법안에도 아쉬운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방 사무처장은 일제 잔재를 ‘철거’하는 것과 ‘청산’하는 것은 다르다고 말했다. “과거엔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는 것을 역사 바로세우기라고 시작했지만 지금은 후회하고 있다. 이제 몇 년 지나지 않으면 일제 강점기를 겪은 세대가 모두 사라진다. 친일 기념물들을 없애기보다 그들의 공과를 정확히 적어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는 것이 더 옳다고 생각한다.”

민문연 측에서 모범적인 일제 잔재 청산 사례로 꼽는 것이 바로 ‘이범익 단죄문’이다. 이범익은 1937년 만주성 성장 시절 간도특설대를 설치했고 이후 일제의 훈장을 받고 고위직에 오른 친일파다. 해방 이후에는 반민특위에 체포된 바도 있다. 2013년 8월 15일 강원도 지역 시민단체는 춘천시에 위치한 이범익의 영세불망비를 철거하는 대신 그 앞에 그의 친일 행적을 소개한 ‘단죄문’을 설치했다. 안홍순 광복회장 직무대행은 친일 기념물은 철거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이미 현충시설로 지정된 것에 한해서는 “현충시설로 지정할 합당한 이유가 있다면 보훈처가 계속 관리하되, 그들의 반민족 행위를 가감없이 표지판에 넣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방학진 사무처장은 김영록 의원의 법안은 친일진상규명위에서 지정한 1005명만을 대상으로 했다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된 사람이 4776명이다. 이들 중 친일진상규명위에는 이름이 들어가지 않은 3000여명이 친일파가 아니라고 할 순 없다. 또한 새롭게 친일파로 밝혀지는 사람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현재 김 의원의 법안은 정부에서 아직 인정하지 않은 친일파들에게 면죄부를 줄 여지가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자신들이 김영록 의원실과는 별도로 작성한 ‘친일행위자 기념사업 현황표’를 보내왔다. 민문연은 의원실과 달리 넓은 의미의 친일파(친일진상규명위,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된 사람과 기타 친일행위 의심자들)를 기준으로 했다. 민문연이 파악한 것만 해도 전국적으로 친일파 89명의 이름을 딴 동상, 기념비 및 각종 기념사업(행사, 대회 등)이 247건으로 나타났다. 친일진상규명위, 친일인명사전 어느 쪽에도 이름이 오르지 않은 친일행위 의심자 8명을 제외한다 해도 최소한 224건의 친일 관련 기념물이 현존하고 있는 것이다.

친일문학을 연구해온 서영인 문학평론가는 눈에 보이는 기념물보다도 친일파에 대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아주 유명한 작가 몇 명을 제외하면 누가 어떤 친일 행적을 했는지 전공자도 잘 모르는 게 현실이다. 보다 대중적인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친일파들의 행적을 깊이 있게 알리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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