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 쟁탈전’ 재벌 2·3세 총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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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서울시내 추가 허용 앞두고… 현대산업개발, 호텔신라와 합작

오는 7월로 예정된 서울 시내 면세점 추가 허용을 앞두고 새로운 사업자로 선정되기 위한 유통 대기업들의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면세점 사업은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 기존 사업군이 성장 한계에 다다른 유통업계에서 거의 유일한 ‘미래 먹거리’로 꼽힌다. 삼성과 현대, 신세계, 롯데, 한화 등 재벌가 2·3세 경영인들은 활발한 ‘합종연횡’으로 시내 면세점 유치에 공을 들이고 있다. 사업자 선정 결과는 이들 회사의 중장기 실적은 물론 그룹 경영을 이어받을 후계자로서 2·3세의 사업수완을 검증하는 또 하나의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53)은 최근 계열사 사장단 회의에서 “시내 면세점 유치를 위해 전 그룹 차원에서 나서 달라”고 지시했다. 시내 면세점 사업이 그룹의 명운을 건 중대 사업임을 계열사 전체에 총수의 발언으로 직접 확인시켜준 셈이다. 정 회장은 면세점의 설계와 내부 인테리어 도면까지 챙겨보며 사업 진행을 보고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사업자 선정이 임박하면 그동안 대한축구협회장으로 쌓아온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도 적극 활용해 유치작전을 펼 것으로 보인다.

(왼쪽부터)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 경향신문 자료사진

(왼쪽부터)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 경향신문 자료사진

용산 아이파크몰에 국내 최대 규모
현대산업개발은 지난달 12일 호텔신라와 합작법인 ‘HDC신라면세점’을 설립하고 현대산업개발이 현재 운영 중인 용산 아이파크몰 4개 층에 국내 최대 규모의 서울 시내 면세점을 짓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지난 1월 시내 면세점 유치계획을 처음 발표하며 “필요할 경우 다른 업체와 파트너 제휴도 고려하겠다”고 밝힌 지 넉 달 만에 기존 면세사업 강자인 호텔신라(신라면세점)와 연합에 성공한 것이다. 면세점 규모는 최소 1만2000㎡ 이상으로 현재 최대 규모인 롯데월드 면세점(1만1000㎡)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합작사업은 정 회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45)이 직접 주도했다. 정 회장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넷째 동생인 고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정 회장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맏딸인 이 사장과 손잡으며 자연스레 범삼성가와 현대가 2·3세들의 동업이 이뤄진 셈이다. 두 사람은 지난 3월 합작 논의를 시작해 한 달이 채 안 돼 협상을 마무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제안은 정 회장이 먼저 했다. 면세점 운영 경험이 없는 현대산업개발 입장에서 노하우와 전략 공유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관세청이 내건 시내 면세점 심사 기준 가운데 ‘경영능력’과 ‘관리역량’ 등 실무와 관련된 점수는 각각 300점과 250점으로 전체 1000점 만점의 절반이 넘는다. 현대산업개발은 이번 합작으로 약점을 보완할 수 있게 됐다.

(왼쪽부터)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 경향신문 자료사진

(왼쪽부터)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 경향신문 자료사진

호텔신라 입장에서는 용산 아이파크몰의 입지조건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었다. 강북에 몰려 있는 기존 면세점들은 시내 교통체증에 중국인 단체관광객들이 탄 버스 등의 주차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반면 아이파크몰은 강남과 강북 양쪽에서 접근이 용이하고 대형버스 100여대가 주차할 수 있는 옥외주차장도 갖췄다. 관광특구인 이태원과 용산공원·국립중앙박물관·남산공원 등과도 가깝다. KTX 호남선과 지하철 1·4호선, ITX, 경의·중앙선 등 철도로 연결된 교통 허브이기도 하다.

이부진 사장은 두 회사의 합작 면세점 프로젝트에 각별한 관심을 쏟으며 용산지역 경제활성화 방안과 문화예술 콘텐츠 시너지 전략 등 실무진에 구체적인 아이디어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합작 발표 이후 호텔신라는 하루 만에 시총이 5000억원 이상 불어나는 등 주가가 급등하기도 했다. 호텔신라 관계자는 “일본 도쿄의 아키하바라가 ‘유커(중국인 관광객)’ 특수로 부활한 사례를 용산에서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세계그룹은 3세인 정용진 부회장(47)이 앞장서 면세점사업 확장을 꾀하고 있다. 대표적 ‘유통 공룡’이면서 롯데에 비해 상대적으로 면세사업이 빈약했던 신세계는 2012년 부산 파라다이스 면세점 인수, 지난해 김해공항 면세점 개점에 이어 올해 2월에는 인천공항 면세점 입찰에도 성공하며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화 김승연 회장, 63빌딩에 설립키로
신세계그룹은 최근 ㈜신세계가 100% 출자한 별도법인 ‘신세계디에프’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면세사업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동안 신세계그룹의 면세사업은 조선호텔 면세사업부가 맡아왔다. 신설될 독립법인에 힘을 실어 시내 면세점 사업권을 반드시 따내겠다는 포부를 밝힌 것이다. 신세계는 면세점 부지로 신세계백화점 본점과 강남점을 후보로 놓고 검토를 진행 중이다.

정 부회장은 앞서 올해 그룹 투자를 사상 최대 규모인 3조3500억원으로 확정해 발표한 바 있다. 신규 사업인 면세점에도 그룹 차원의 자금력이 상당 부분 투입될 가능성이 높다. 신세계 관계자는 “서울 시내 면세점 특허를 획득하게 되면 신세계디에프를 중심으로 글로벌 진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잠재력이 큰 면세사업을 향후 그룹의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정 부회장의 의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43)은 ‘강남지역 최대 규모 면세점’ 구상으로 시내 면세점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서울 삼성동의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을 후보지로 정하고 강남 상권과의 시너지 효과를 앞세워 고품격 면세점 콘셉트로 승부한다는 전략이다.

신세계와 마찬가지로 면세사업 후발주자인 현대백화점은 합작법인을 설립해 사업권에 도전하기로 했다. 합작법인에는 여행사 모두투어의 참여가 확정됐고, 다른 중견기업들도 서너곳 정도 추가 참여를 검토 중이다. 합작은 면세점 허가 심사기준인 중소기업과의 상생 점수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정지선 회장은 최근 그룹 회의에서 “상생과 동반성장에 초점을 맞춰 면세점사업을 진행하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갤러리아백화점을 운영하는 한화는 여의도 63빌딩을 부지로 삼아 시내 면세점을 운영한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갤러리아의 시내 면세점 사업 참여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63)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김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유통 등 서비스사업 분야에서 어려운 시장환경을 딛고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도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화는 면세점 9900㎡ 규모에 63빌딩 내 쇼핑·엔터테인먼트·식음료 시설 2만6400㎡를 연계해 아시아 최고의 문화쇼핑센터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63빌딩에 면세점이 생기면 명동과 종로 등에 집중된 관광객을 분산시켜 서울 서남권 지역 발전이 가능하다는 논리도 펴고 있다. 한화 관계자는 “63빌딩 주변에는 노량진 수산시장과 선유도공원, 한강공원, 국회의사당 등 관광 요지가 많다”며 “시내 면세점이라는 새 성장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그룹 차원의 기조에는 흔들림이 없다”고 말했다.

<김형규 경향신문 산업부 기자 fideli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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