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주기 가로막은 경찰의 ‘근혜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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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1주기 범국민대회… 경찰 1만3000여명·차벽 477개 도심 촘촘히 에워싸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더 오랫동안 싸우고 싶어서 남은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우리도 하루라도 빨리 집에 가고 싶다고요.”

4월 22일 서울 광화문에서 4·16연대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폭력시위 논란이 벌어진 이전 주말의 대규모 범국민대회에 이은 2차 범국민대회 개최 및 향후 일정을 알리는 자리였다. 경찰과 집회 참석자들 사이의 충돌 분위기를 두고 한 시민사회단체 상근자와 대화를 나누던 기자에게 한 유가족이 말을 붙였다. “지난 주말에도 경찰이 해산 방송을 하면서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잖아. 돌아가긴 가야지, 집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근데 가도 가족이 없잖아요. (경찰이) 방송을 해도 그렇게 말을 하는 게 참….”

4월 24일 서울 종로1가 거리가 집회 참가자들을 막기 위한 경찰 차벽으로 막혀 있다. | 연합뉴스

4월 24일 서울 종로1가 거리가 집회 참가자들을 막기 위한 경찰 차벽으로 막혀 있다. | 연합뉴스

진상규명 메시지보다 충돌만 부각
세월호 유가족들과 집회 참가자들에게 ‘집으로’ 돌아갈 것을 종용한 건 경찰이었다. 그런데 경찰이 도리어 귀갓길을 막았다. 유가족 20명을 포함해 연행자는 100명에 달했다. 세월호 참사 1주기 이후 첫 범국민대회가 열린 지난 18일 하루만의 기록이다. 광화문·종로 일대에 세워진 차벽만 477개에 안전펜스 101개가 추가로 세워졌다. 172개 부대 경찰력이 투입됐다. 경찰이 추산한 집회 참석인원 1만명보다 많은 1만3000여명의 경찰이 서울 도심을 촘촘히 에워쌌던 것이다.

유가족과 집회 참가자들은 물론 일상적인 통행을 위해 지나던 시민들의 보행도 막혔다. 집회·결사의 자유를 침해한 위헌적 조치라는 주장이 나왔다. 경찰과 보수진영에서도 즉각 반격이 나왔다. 경찰버스 유리창을 깨고 집기를 부수는 등의 폭력시위 분위기를 성토하며 맞불을 놓았다. 정작 경찰의 인벽과 차벽에 막혀 오도가도 못하다 경찰서로 연행된 유가족들의 목소리는 묻혔다.

문제는 5월까지 이어질 대규모 집회에서 같은 논란이 반복될 소지가 크다는 데 있다. 지난 18일 범국민대회에서도 집회 참가자들과 경찰 사이의 충돌은 예정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경찰의 집회 대응용 내부문건을 보면 청와대로 이어지는 삼청동과 인사동 일대는 물론 사직로와 신문로 등 도심 전역을 통제하는 차벽 및 경찰력 배치계획은 집회 시작 이전부터 치밀하게 짜여 있었다. 겹겹이 들어선 차벽 탓에 사실상 유인되듯 태평로 일대로 들어선 시위 인원과 그들을 둘러싼 경찰력 사이에서 유가족들은 손쓸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아이고, 그래도 우리 위한다고 나온 사람들인데 우리가 뭐라 하겠어. 지금 이 상황까지 온 게 속 터질 일인 거지.” 곳곳에서 벌어진 충돌을 보며 ‘동혁 엄마’ 김성실씨는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무것도 못하게 하고 (경찰은) 들어가라고 등 떠밀기만 하니 허탈하지요.”

4·16가족협의회와 세월호국민대책회의가 주축이 돼 꾸려진 4·16연대가 고심하고 있는 것도 이 지점이다. 1주기 추모주간에 거리로 나온 시민들의 규모는 작지 않았지만 정작 참사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보다는 시위에서의 충돌양상만 부각됐기 때문이다. “2008년 촛불집회 때와는 다른 점이 있죠. 그땐 집회가 4개월 가까이 꽤 오랜 시간 지속됐어도 시민들 입장에서는 그리 오래된 문제라고 느낄 정도는 아니었는데, 지금 세월호는 어쨌든 1년이 지난 문제라 시민들의 적극적인 호응이 그때보단 덜할 수밖에요.”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앞으로의 여론전에서도 그리 유리한 입장만은 아니라고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현 정부의 지지도가 떨어져도 지지층이 결집하는 것을 보면 앞으로의 세월호 진상규명 문제는 이런 ‘물타기’를 얼마나 잘 피하느냐에 달린 것 같습니다.”

경찰 차벽 통제, 2011년 위헌 결정
경찰의 입장은 정반대다. 경찰이 다치고 장비·집기 등이 파손되는 등의 피해상황을 이례적으로 빠르게 집계해 언론에 브리핑하는 기민함을 보였다. 경찰에 따르면 경찰력 74명 부상, 차량 71대 파손, 캠코더 등 경찰장비 368점 피탈과 같은 피해가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장에서 ‘현행범으로 체포하라’는 지시가 나온 것은 엄연한 불법행위가 벌어지고 있고 과격한 시위로 경찰력의 피해도 늘어나는 상황이라 불가피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우리로선 좀 강하게 대응해도 밑질 것 없다는 계산이 있으니 그때그때 완급을 조절해가며 나서는 건데, 일단 초반에 야무지게 봉쇄해놓는 방향으로 흐른 듯하다”며 강경대응이 미리 계획된 방침이었음을 내비쳤다.

이미 헌법재판소가 2011년 경찰 차벽 통제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음에도 경찰이 차벽 사용을 멈추지 않는 것 또한 대통령 ‘심기 경호’의 일환이라는 목소리가 경찰 안팎에서도 나오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 집회에서는 처음으로 물대포와 캡사이신이 사용된 것도 이전과는 달리 한 단계 강한 진압 방침이 내려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4·16연대 측은 이번 집회에서 쓰인 진압용 캡사이신의 주성분 ‘파바(PAVA)’ 역시 인체 독성이 심각하게 우려되는 물질인데도 경찰이 아무런 법적 통제 없이 남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박주민 변호사는 “하다 못해 경찰에게 소속이 어딘지, 법을 집행하는 근거가 뭔지 물어도 그에 대한 대답은 없이 ‘공무집행 방해로 처벌하겠다’는 엄포만 들었다”며 “오히려 적법한 절차를 거친 모습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심기’도 보호하고 폭력시위 여론으로 명분도 챙긴 경찰에 비해 세월호 유가족들의 입지는 결과적으로 위축된 상태다. 4월 24일의 민주노총 총파업 대회와 5월 1일 노동절 대회에 유가족과 4·16연대 측이 적극적으로 결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당면한 우선 과제인 세월호 시행령 폐기 문제를 다루는 쪽으로 논의를 끌고갈 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노동계와 협조해 4월 25일과 5월 2일로 계획된 대규모 세월호 집회까지 이어가되 폭력시위 등 예기치 못한 불똥은 최대한 피하는 일이 급선무다.

“지난 주말 추모대회에 들려보려고 해도 경찰에 꽉 막혀 있어 그냥 돌아갔거든요. 이번에는 도보행진이 미리 신고돼 있으니까 별탈 없이 추모하러 나갈 수 있길 빌어요.” 광화문 농성장의 추모미사에 참석한 시민 장경화씨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이 더는 다치지 않게 경찰이 지켜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집회 현장에서 부상자가 속출하는 상황을 두고 유가족 김성실씨도 비슷한 말을 했다. “힘 보태주러 오신 분들, 제발 다치지만 말고 온전한 몸으로 집에 들어가요.”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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