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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 1년, 그 잔혹한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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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1주기 동행의 기록… “바로 오늘 이 순간에도 분노와 절규, 통곡이 넘쳐흐른다”

4월 15일 밤 10시, 제주도 출장차 세월호를 탔다가 37살에 생을 마감한 이은창씨의 첫 제사가 지내졌다. 칠순이 다 된 부모가 제사상을 차렸다. 생전에 아들이 좋아했던 약과와 수제비, 파운드 케이크와 커피가 제사상에 올랐다. 7살 손녀가 놀랄까봐 아들의 영정사진은 올리지조차 못했다. “엄마, 나도 배 타고 제주도 가다가 물에 빠지면 하늘나라 가는 거지, 아빠 만날 수 있는 거지”라고 묻던 손녀가 아빠의 제사상에 절을 하던 순간, 이은창씨의 어머니는 흐느낌이 새어나올까봐 입을 막았다. 손녀가 돌아간 후에야 비로소 어머니는 아들의 영정사진을 붙잡고 오열했다. “자식이 부모 제사를 지내야 하는데 내가 거꾸로 자식 제사를 지내니, 사는 게 고문”이라던 어머니의 절규는 동이 터 오르도록 그칠 줄을 몰랐다.

세월호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둔 4월 15일 세월호가 잠겨 있는 사고해역을 방문한 한 유가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이준헌 기자

세월호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둔 4월 15일 세월호가 잠겨 있는 사고해역을 방문한 한 유가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이준헌 기자

국민 마음 읽지 못하는 불통의 대통령
어머니의 통곡이 계속되던 4월 16일 새벽, 단원고 2학년 5반 건우 엄마 노선자씨는 팽목항을 향해 출발했다. 둘째 아들 건우를 잃고 공황장애가 더 심해져 버스도, 사람 많은 곳도 무섭고 힘들기만 하기에 다른 유가족들과 동행하지 못하고 하루 늦게 길을 나선 터였다. ‘쓰러지지 말자, 쓰러지는 그 순간 아들을 기억할 수 없다’는 마음 하나로 버텨온 365일. 진도에 가까워질수록 세월호에 갇힌 건우가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인 채 심장이 타는 절망감으로 엄마를 찾고 부르고 있었을 시간’을 함께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미안함이 심장을 짓눌렀다. “건우야, 엄마 왔어.” 큰소리로 외쳤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다. 검푸른 바다만 바라보다 어제처럼 생생한 1년 전 그날들에 발을 동동 구르며 흐느끼다 돌아오던 길. 박근혜 대통령을 태운 차가 반대편 차선으로 엇갈려 지나갔다. “언제나 국민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불통의 대통령이구나, 혼자만의 대통령 놀이를 하는구나!”

엄마의 비통한 말을 오늘도 대통령은 듣지 못했나 보다. ‘진상규명을 가로막는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이하 시행령) 폐기’, ‘온전한 세월호 인양’, ‘실종자 시신 수습’을 요구하며 추모식조차 취소해야 했던 유가족·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안산 합동분향소가 아닌 팽목항을 찾은 걸 보면. 대통령이 온다는 소식에 유가족·실종자 가족들은 정부에 대한 분노와 항의의 표시로 팽목항 분향소의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떠나버렸다. 모두 떠난 곳, 주검이 돼서야 가족들과 만날 수 있었던 그 길목, 방파제 앞에서 대통령은 죽은 이와 산 자들을 모욕하는 세월호 1주기 대통령 담화를 발표했다.

“이제 선체 인양을 진지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상규명과 관련해서는 국회에서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되었고, 이에 따라 민·관 합동 진상규명 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하여 곧 추가적인 조사가 진행될 것이다”, “가신 분들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그분들이 원하는 가족들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고통에서 벗어나셔서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시기를 바란다.”

4·16 가족협의회가 4월 16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정부합동분향소에서 열릴 예정이던 세월호 참사 1주년 합동추모식을 취소했다. 박근혜 대통령 자리에 우비가 놓여져 있다. / 김창길 기자

4·16 가족협의회가 4월 16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정부합동분향소에서 열릴 예정이던 세월호 참사 1주년 합동추모식을 취소했다. 박근혜 대통령 자리에 우비가 놓여져 있다. / 김창길 기자

경찰, 추모객 향해 캡사이신 쏘아 대
마지막 1분 1초까지 ‘시행령 폐기’, ‘즉각적인 선체 인양’이라는 대통령의 답을 기다리던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의 입에서 탄성과 야유가 쏟아졌다. “침몰한 배를 인양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한 게 지난 9월이었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가 9명이나 되는데 지난 8개월 동안 정부는 도대체 뭘 한 거냐.” “내 새끼가 왜 죽었는지는 알아야 죽어서라도 애 얼굴을 보지 않겠냐. 그걸 밝히려고 만든 특별법인데 그걸 가지고 장난을 치고서는. 내가 이런 나라에서 우리 아이를 낳고 키웠다니….” “우리한테 일상이 어딨어? 우리 애가 왜 그렇게 허무하게 갔는지 알기 전까지는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는 게 우리의 일상이야. 진실을 알고 나서도 나한테는 18년 동안 살아왔던 일상은 내가 죽는 날까지 없어….”

마지막까지 아이가 애타게 불렀을 이름 엄마, 아빠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가자”고 외쳤다. “배 버리고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친 선장이랑 대통령이 뭐가 달라. 대통령이 국민을 버렸는데, 그 따위 대통령 우리도 필요 없어.” “1년 동안 속았으면 충분해, 더 이상 속을 수 없어.” 미안한 부모에서 부끄러운 부모까진 될 수 없다는 발걸음들이 서울시청을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평일에, 날씨까지 스산한데 많이들 모일까?” 애끊는 부모의 마음을 천개의 바람이 되었다는 아이들이 전한 걸까? 부산, 대구, 대전은 물론 충북 옥천까지 전국 100여곳에서 열린 추모행사마다 많이들 모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서울시청과 광화문도 4월 16일 오후 내내 노란리본을 달고 꽃을 들고 온 추모 인파로 북적거렸다. 부모의 손을 잡고 함께 나온 어린아이부터 일흔 노인까지, 시민들은 긴 줄을 마다하지 않고 광화문에 마련된 분향소에 헌화했다. “너무 슬퍼서 어젯밤부터 울었다”던 여고생들도 그 시간을 함께해 주었다. 7시가 되자 5만의 인파가 서울시청 앞에 운집했다. 2학년 3반 예은이 아빠 유경근씨가 무대에 올라 “잊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지켜주신 시민들에게 감사하다”고, “함께 걸어주셨기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걸어가겠다”고 말했다. 행사가 끝나고 밤이 깊어갔지만 모여든 사람들은 쉽사리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러곤 아이들에게 꽃 한 송이씩 놓고 가겠다며 광화문 분향소로 향했던 유족들과 함께 그 길을 걸었다. 진정한 애도와 추모는 사회적 진실과 정의를 세우기 위한 행동 없이는 실현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었을 게다. 이 길이 우리 모두를 사람의 세계로 이끄는 행진임을 알기 때문이었을 게다. 경찰은 추모객들을 향해 캡사이신을 쏘았고, 10명의 추모객을 연행했다. 한 유가족은 갈비뼈가 부러져 병원에 후송됐다. 엄수되어야 할 추모의 장은 경찰의 폭력으로 아수라장이 됐다. 경찰이 차벽과 경찰버스로 철통같이 막아버린 광화문 사거리에는 “오늘이 기일인데 꽃 한 송이조차 영정에 놓을 수 없는 거냐. 여기가 사람 사는 세상이냐”는 울부짖음이 오랫동안 울려퍼졌다.

길이 막힌 곳을 뚫고 돌아 유족들이 광화문 현판 아래 모였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 함께한 시민들을 경찰이 연행하려 들자 유가족들이 스크럼을 짜고 시민을 지켰다. 침낭도, 음식도, 하물며 볼일조차 허락되지 않아 엄마들이 서로를 에워싸고 볼일을 봐야 하는 모욕적인 상황이 계속됐지만 유가족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러곤 경찰이 에워싸 세상과 고립시킨 노상감옥에서 세월호 1주기의 밤을 보냈다. “너무 추워요. 근데 배 안에서 우리 미지는 더 춥고 두려웠겠죠.” 2학년 1반 미지 아빠 유해종씨는 미지를 기억하는 힘으로 새벽을 맞았다.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킨다.

세월호참사 1주기인 4월 16일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 합동분향소에서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이 조문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세월호참사 1주기인 4월 16일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 합동분향소에서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이 조문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정의 세우지 못했기에 발생한 참극
이것은 고작 하루의 기록일 뿐. 지난 1년 세월호 참사 작가기록단으로 살면서, 유가족들의 곁을 맴도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알았다. 세월호참사 생존자, 유가족, 실종자 가족으로 살기엔 지난 365일, 그 하루하루가 너무 잔혹한 시간들이었다는 걸. 누군가는 비통한 투사가 될 수밖에 없었고, 누군가는 결국 정신을 놓았고, 또 누군가는 세상과 인연을 끊고 대문을 걸어 잠갔다. 지난 1년 우리 사회가 기억도, 진실도, 정의도 바로 세우지 못했기에 발생한 참극이었다. 참사는 2014년 4월 16일이 아니라 바로 오늘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다는 걸, 당신에게 꼭 말하고 싶었다. 믿지 못하겠다면 지금 청와대 앞에, 광화문에, 안산 합동분향소에, 팽목항에 가보시라. 이 모든 곳이 팽목항이다. 이곳에서 언어로는 채 담아낼 수조차 없는 분노가, 절규가, 통곡이 넘쳐흐른다.

침몰하는 세월호에 타고 있는 것처럼 두렵다던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이 지금이 시행령 폐기, 세월호 인양의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제발 도와달라”고 외친다. “살고 싶다. 살려 달라”고 외친다. 국민을 버리고 대통령만 탈출한 국가에서 울려퍼지는 그 절박한 구조요청에 당신이 꼭 응답해주길. 우리 모두 인간으로 살기 위해.

<유해정 4·16 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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