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박근혜 정권이 놓친 골든타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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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고 이후 ‘국민의 신뢰’ 얻을 수 있는 수차례 기회 외면

“빨갱이라도, 종북이라도 좋습니다. 진실을 알 수 있다면…. 왜 우리 아이들이 바닷속에 수장되었는지 알 수 있다면 무슨 소리를 들어도 좋아요. 1년이 지났는데도 달라진 게 없잖습니까.” 유가족 오병환씨의 말이다. 그는 대통령에게 존칭을 쓰지 않았다. “저도 예우를 갖춰 말하고 싶습니다. 끝까지 믿었어요. 지난 여름 여기서 노숙 농성할 때만 해도…. 이제는 늦었습니다. 나는 서민입니다. 서민이 살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어달라고 했습니다. 아들이 너무 보고 싶지만 스스로 약속했어요. 광화문에서 울지 않겠다고. 지금은 이 정부의 행태, 모습을 보고 분하고 억울해서 눈물을 흘립니다.”

3월 31일 밤은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와 선체 인양을 위한 416시간 농성’의 둘째 날이었다. 하늘에서는 속절없이 비만 내렸다. 비닐을 덮고 밤을 지새우는 오씨, 그리고 주위를 지키는 경찰. 사진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인터넷에 게시된 사진에는 “함께하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유가족들에게 절망만 남긴 이 나라가 저주스럽다”는 댓글이 달렸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세월호 특별법 정부시행령 폐기를 요구하며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다.  / 서성일 기자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세월호 특별법 정부시행령 폐기를 요구하며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다. / 서성일 기자

유가족들은 왜 박 대통령에게 ‘분노’할까
4월 2일, 오씨와 부인 권미화씨(42)는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서 삭발했다. 전날 해양수산부는 세월호 희생자 1인당 8억원(단원고 학생)에서 11억원(교사)에 이르는 배상·보험·위로금을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오씨가 말을 이었다. “…저희가 이 정부에 많은 것을 요구했습니까. 진실을 밝혀 달라고, 대한민국이 안전한 사회가 되자고 이러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돈을 요구했습니까. 그런 것 안 받아도 저는 살 수 있어요. 저희 부부는 이제 자식이 없습니다. 그래서 집사람하고 동시에 삭발했어요.”

아들 영석군(17)은 세월호가 침몰한 지 4일 후인 4월 20일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왔다. “아이의 열 손가락이 모두 시커멓게 멍이 들었습니다. 꽉 움켜쥔 채로. 팽목항에서 안산으로 구급차로 올라올 때 어떻게든 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펼 수 없었어요. 결국 그대로 화장했어요. 우리 아이뿐만 아니라 대부분이 그랬어요. 박근혜가 그것을 알까요. 알았다면 이렇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4월 7일 해양수산부에 항의하러 간 자리. 경찰은 스크럼으로 에워싸고 막아 나섰다. 부인 권미화씨는 끝내 실신해 응급실에 실려 갔다.

골든타임. 원래는 응급의학에서 쓰이던 용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에서 다친 군인이 얼마나 빨리 응급처치를 받는지에 따라 사망률이 달라진다는 개념으로 나왔다. 1시간 내에 응급처치를 받는 사람의 사망률은 10%, 2시간이면 11%… 10시간이면 75% 식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것이다. 요컨대 생존율은 최초 상처를 입은 시간으로부터 경과시간에 반비례한다는 개념이다. 골든타임 개념이 익숙해진 것은 천안함 사건과 세월호 사건 때. 세월호가 기울어지기 시작한 것은 오전 8시48분. 바로 배가 가라앉은 것은 아니었다. 52.2°로 기울어 복원력을 완전 상실한 것은 오전 9시34분이었다.

108.1°로 기울어 완전히 전복된 것은 10시17분이었다. 처음 사고가 났을 때부터 전복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1시간29분이었다. ‘에어포켓’의 존재 가능성이 이야기되었지만, 세월호에 에어포켓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세월호에 있던 사망자로부터 마지막으로 발송된 카톡 시간도 10시17분이었다. 대부분의 승객은 그로부터 수분 내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세월호 사건은 선박이 침몰한 ‘사고’이자 국가가 국민을 구하지 않은 ‘사건’이다.” 소설가 박민규씨가 세월호 ‘사건’을 정리한 ‘눈먼 자들의 국가’에 나오는 문구다. 그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세월호 사건과 사고는 전혀 별개의 사안이다.…(중략) 이것은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

사건의 책임소재를 두고 컨트롤타워 논란이 일었다.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의 책임 여부를 둘러싸고 나온 말이다. 논란이 일자 이날 박 대통령이 취한 조치가 공개됐다. 10시15분, 박 대통령은 ‘안보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단 한 명의 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 “여객선 내 객실 등을 철저히 확인해 누락인원이 없도록 할 것”을 지시했다. 22분 박 대통령은 다시 ‘전화를 걸어’ “샅샅이 뒤져 철저히 구조할 것”을 재차 지시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서면보고, 유선보고를 받고 지시를 했다지만 박 대통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모습을 나타낸 것은 이날 오후 5시15분. 중앙대책본부를 방문한 박 대통령의 일성(一聲)은 이랬다.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그들을 발견하기 힘이 드느냐?” 사건이 발생하고 9시간이 흘렀지만, 박 대통령이 제대로 된 정보를 받지 않았다는 것을 드러내는 말이다.

이튿날, 박 대통령은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체육관을 방문했다. 그는 “철저한 조사와 원인을 규명하겠다. 책임질 사람이 있으면 엄벌하겠다”고 다짐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한 실종자 가족의 휴대전화번호를 챙겨갔다. “약속이 지켜지는지 전화드려 확인해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18일 뒤인 5월 4일 진도 팽목항을 다시 방문한 박 대통령은 유족들과 비공개 면담을 가졌다. 박 대통령은 이날 유족들에게 “사고 발생부터 수습까지 무한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리고 5월 9일 박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열고 ‘해양경찰청 해체’를 선언했다.

4월 2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특별법 시행령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가진 후 삭발식을 갖는 세월호 유가족들. 세월호에서 희생된 오영석군의 어머니 권미화씨(42)가 삭발을 하면서 오열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4월 2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특별법 시행령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가진 후 삭발식을 갖는 세월호 유가족들. 세월호에서 희생된 오영석군의 어머니 권미화씨(42)가 삭발을 하면서 오열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언제든지 전화하라”던 대통령은 어디에
이미 ‘사고’는 ‘사건’으로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된 뒤였다. 국무회의, 대통령수석비서관회의 자리 등에서 사건을 언급하는 박 대통령의 발언에서 세월호 실소유자인 유병언이라는 이름이 먼저 거론되기 시작했다. 팽목항의 실종자들과 가족들의 소식은 ‘실종’되었다. 7월 22일, 세월호 실소유자 유병언은 사망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다시 1년이 지난 현재. 프레스센터에서 세월호 공대위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 기자회견문을 낭독한 이는 시민단체 대표가 아닌 주부였다. ‘엄마의 노란 손수건’ 공동대표를 맞고 있는 정세경씨(47·여)가 낭독하는 동안 ‘기자회견 체험학습’을 하러온 정씨의 아들이 등에 매달려 있었다. ‘엄마의 노란 손수건’은 지난해 4월 30일 만들어진 주부들의 자발적인 단체다. 각자가 사는 동네에 추모 촛불을 밝히는 활동을 시작으로 개인 명의 현수막 달기, 노란리본 제작 및 배포 등의 활동을 벌여 왔다. 정 대표는 “세월호 사건 이후에도 박 대통령이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골든타임’이 있었는데도 박 대통령 스스로 그것을 저버렸다”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박 대통령이 눈물을 흘리며 해경을 해체하겠다고 발표했을 때만 하더라도 국민들은 믿었다. 그런데 유병언 책임 등을 거론하며 유족들의 요구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특별법은 법치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는 등의 헛소리가 나왔다. 대통령이면 국민의 수장이 아닌가. 만 명이 아니라 단 한 명의 국민이라도 억울한 것이 있으면 풀어주고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 대통령은 상처받은 국민을 치유할 수 있는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는 자리다. 아이들이 그렇게 죽어간 것에 대해 온 국민이 추모행사를 하자, 우리가 우는 날로 하자,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재발방지 시스템을 만들자, 세월호의 아이들을 대한민국의 생명과 안전의 상징으로 만들자는 이야기를 다시 유가족을 만나 왜 할 수 없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지난 1월 1일, 을미년 새해를 맞이하여 경기도 안산 세월호 합동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이 직접 만든 떡국을 나눠먹는 ‘엄마의 밥상’ 행사를 가졌다. 가족들은 이 자리에 대통령을 초청했지만, 대통령은 오지 않았다. 대통령을 위해 차린 떡국 자리가 비어 있다. / 김영민 기자

지난 1월 1일, 을미년 새해를 맞이하여 경기도 안산 세월호 합동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이 직접 만든 떡국을 나눠먹는 ‘엄마의 밥상’ 행사를 가졌다. 가족들은 이 자리에 대통령을 초청했지만, 대통령은 오지 않았다. 대통령을 위해 차린 떡국 자리가 비어 있다. / 김영민 기자

그 뒤에도 여러 계기가 있었다. 7월 15일, 단원고 생존학생 46명이 국회까지 도보행진했다. 유가족 김영오씨의 단식이 있었고, 정호진씨 등 유가족들의 전국 순례가 있었다. 8월 14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도 계기가 될 수 있었다. 박 대통령은 공항에 직접 영접하러 나갔지만 세월호 유가족들의 활동과는 거리를 두었다. 8월 22일부터 유가족들의 청와대 앞 청운효자동 농성이 시작되었다. <주간경향>은 “‘언제든지 전화하라’던 대통령 어디 계세요”라는 제목으로 유가족들의 농성 소식을 전했다. 경찰차가 에워쌌다. ‘유가족 보호’가 명분이었다. “하지만 높은 분들로부터 우리를 봉쇄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울분이 유가족들로부터 터져나왔다. <주간경향>은 앞의 기사를 표지기사로 다루면서 ‘버선발로 뛰어나오는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을 표지 이미지로 사용했다. 추석을 맞아 안산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청와대 앞과 광화문에서 쓸쓸이 보내는 유족들을 박 대통령이 위로해줄 수는 없을까 하는 소박한 바람이었다. 정말 어려운 일이었을까.

10월 29일, 새해 예산안 시정연설을 위해 박 대통령이 국회를 방문했다. “그때 유족들의 손만 잡아줬더라도….”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이 말하는 또 하나의 골든타임 실기(失機)다. 역시 박 대통령으로서는 어려운 해법이 아니었다. 유가족들은 ‘가족참여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면담을 요구했다. 돌아온 것은 청와대 경호실의 철통경비였다. 국회 본관 앞에 오와 열을 맞춰 도열한 검은 양복을 입은 경호실 사람들 사진에 사람들은 경악했다. 유족들은 근처에도 갈 수 없었다. “…진상규명을 더 이상 늦출 수 없기 때문에 한계가 있지만 세월호 특별법을 유가족들은 수용하게 됩니다. ‘인정할 수 없지만 수용한다’는 표현이 나와요. 당시 여야가 합의한 세월호 특별법에 따르면 특별조사기구의 사무처장을 여당 쪽에서 추천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려했던 ‘틈’을 정확하게 정부 시행령안이 비집고 들어옵니다. 결국 사무처 실무조직을 장악하도록 실무 시행령안을 만들어온 겁니다.” 4월 9일 참여연대가 주최한 세월호 참사 1주기 토론회에 참석한 박주민 민변 변호사의 말이다. 그는 세월호 유가족의 법률대리인을 맡고 있다.

“그때 유족들 손만 잡아줬더라면…”
사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지난 1년, 이해가지 않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부와 대통령을 향한 강한 원망이 있을 때 성사 여부와 상관없이 막후 조율이 있는 것이 그간의 방식이다. 이를테면 2006년 천성산 공사 중단을 요구하며 지율 스님이 청와대 앞에서 단식농성을 할 때 당시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이었던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비공식적으로 지율 스님이 기거하던 통인동 집을 방문해 지율 스님의 주장을 청취하고 건강을 돌봤다. 세월호 사건에서는 전혀 그런 막후의 조정기능이 눈에 띄지 않는다. 지난해 9월, 유가족들의 청운효자동 농성장을 취재할 때 유경근 당시 유가족 대변인에게 물었다. 유 대변인은 휴대폰번호 기록을 하나 보여줬다. 5월 비공개면담 후 박 대통령이 ‘언제든지 연락하라’며 건네줬던 청와대 비서실 전화번호다. 수개월째 답이 없었다. 유 대변인이 간곡하게 보낸 문자메시지만 여럿 있을 뿐이었다. 메아리 없는 절규였다.

“완전히 불통이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의 말이다. “정부 전체가 대통령 심기 경호만 신경을 쓰는 것 같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안한다. 다시 말해 행정의 실종이다. 이번에 해수부가 만든 시행령안이 과연 해수부가 만든 것일까. 해수부 단독으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여러 차례 확인했다.” 그렇다면 누가? 박 이사는 최근 임명된 정무특보단을 지목했다. “윤상현은 말할 것도 없고, 김재원은 원내 수석부대표를 하면서 세월호와 여권 협상 때 청와대 가이드라인을 당시 이완구 대표를 제치고 받던 사람이 아니냐. 주호영 의원은 ‘세월호는 교통사고’라고 의미를 축소하던 사람이고.” 그는 김영석 청와대 해양수산비서관이 지난해 8월 해수부 차관에 임명된 것도 ‘특정 라인에 의한 작전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이것이다. 지금 세월호 사건 해법과 관련해 대통령은 국민 신뢰를 상실하고 있다. 적극적으로 진상을 규명하고 유가족과 피해자들을 위무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인데 완전히 거꾸로 가는 것이 아니냐. 오히려 돈을 거론하며 피해자들을 모욕하는 조치를 전격적으로 단행하고 있다. 국정운영 자체가 비정상이 정상처럼 되고 있으니… 내몰릴 대로 몰린 사람들이 폭발하면 누구도 걷잡을 수 없게 되는데, 이 정부는 오히려 그걸 바라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다.” 어이없는 무능과 책임회피, 무사안일과 방기로 ‘골든타임’을 놓쳐버린 것은 세월호 사고가 일어난 4월 16일 당일만이 아니다. 지난 1년 수많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세월호 해법’의 골든타임을 놓쳐버린 결과는 훨씬 거대한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경고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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