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세월호는 아직도 ‘안산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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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향소·동네촛불·기억저장소 등으로 추모… 지역경제 침체로 인한 갈등도

안산시청 앞에는 지난해 9월부터 지금까지 자리를 지켜온 세월호 천막이 있다. 화랑유원지 분향소와 더불어 세월호를 상시적으로 기억하는 공간이다. 분향소가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공간이라면, 세월호 천막은 안산지역 시민사회의 본부라고 할 수 있다. 이곳을 중심으로 안산 각지의 지하철역에서 정부의 특별법 시행령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캠페인이 이어지고 있다.

4월 8일 천막을 지키던 민주노총 조합원 정진학씨는 “처음부터 구조문제, 특별법, 인양문제로 시끄럽더니 지금은 특별법 시행령이 또 말썽을 일으키고 있다. 1년 가까이 천막 앞에서 수요일 저녁 동네 촛불을 이어오고 있는데, 시행령 폐기와 온전한 세월호 인양이 될 때까지 그만둘 수는 없다”고 말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집단 삭발식을 치른 지난 2일, 단원고와 가까운 고잔동 현대아트빌라 상가 3층에는 416 기억전시관이 문을 열었다. 평범한 사람들도 부담 없이 세월호 참사를 기념하고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이다. 9일까지 하루 평균 30여명이 다녀갔다.

4월 8일 경기도 안산시 고잔동 416 기념전시관의 모습. / 백철 기자

4월 8일 경기도 안산시 고잔동 416 기념전시관의 모습. / 백철 기자

많을 때는 하루 300명 분향소 찾아
전시공간의 하늘색 벽에는 세월호 희생자 56명의 방 사진이 붙어 있다. 비슷한 나이 또래들이라 그런지 방의 구성은 비슷하다. 방 중앙에 책걸상이 있고, 책장에는 여러 가지 문제집이 꽂혀 있다. 책상 한편에는 아이들의 손때가 많이 묻었을 컴퓨터가 있다.

그래도 자세히 뜯어보면 조금씩 방 구성이 다르다. 어떤 방은 두 아이가 사용한 듯, 의자가 2개 놓여져 있다. 음악을 좋아하던 아이 방에는 기타나 키보드가, 패션에 관심이 많던 아이 방에는 수많은 옷이 걸려 있는 옷걸이가 있다. 하늘색으로 벽을 칠해 하늘의 별이 된 세월호 희생자들을 상징화했고, 전시장 한가운데에는 이불이 두껍게 쌓여 있다.

김종천 416 기억저장소 사무국장의 설명에 따르면 이 이불은 세월호 가족들이 진도체육관에서 시작해 노숙농성 때마다 가지고 다녔던 이불이다. 김 사무국장은 “그동안 세월호 가족들이 서명운동부터 시작해서 단식, 노숙농성, 행진, 삭발 등 안 해본 일이 없다. 지난 1년간 진실을 밝히기 위한 풍찬노숙을 상징하기 위해 전시회 가운데에 이불을 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임기현 기억저장소 활동가는 “희생자 부모들이 하늘색으로 벽이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배를 탄 느낌이라는 말을 많이 했다. 물속에 아이들이 있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참사 당시가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참사 1년, 분향소, 동네촛불 천막, 기억전시관까지 세월호 참사는 안산시의 일부다. 올해 5월 열릴 안산 국제거리극축제에서도 세월호 참사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 올라간다. 바로 옆 도시에만 가도 보기 힘든 세월호 리본과 현수막이 안산시 구석구석에서 나부끼고 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장기화 이후 안산시 내부를 가로질렀던 갈등이 완전히 해소된 건 아니다. 지난해 가을 지역경제 활성화에 방해가 된다며 세월호 현수막을 떼어냈던 일부 안산시 상인들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감정이 좋지 못하다. 당시 현수막을 떼낸 경험이 있다는 고잔신도시 상가 상인 ㄴ씨는 “세월호 참사 이후 가게 문을 닫고 가정파괴로까지 이어진 상인들이 많다. 한참 전에 배를 건져내기로 이야기가 오갔는데 아직도 그걸 안 하니까 부모들이 삭발까지 하고 나서지 않나. 솔직한 마음으로 49재도 한참 전에 지났는데 학부모들이고 정치권이고 그만 좀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광수 안산발전협의회 기획본부장은 세월호 이외의 다른 안산시 현안이 관심을 받지 못하면서 지역사회 내에서 불만이 누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본부장은 “우리나 세월호 희생자들이나 다 같은 시민이다. 우리 동네에도 희생 학생이 6명이나 있다. 그런데 안산시장부터 다들 세월호에만 관심이 있고, 유흥상가와 공단이 몰락하고 있는 데에는 관심을 두지 않으니 답답해 하는 것”이라며 “안산에서까지 세월호 이야기를 그만하자는 목소리가 나온 데에는 안산시민들을 외면한 중앙과 지역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

세월호 활동가들도 안산 지역사회가 세월호를 둘러싼 갈등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걱정한다. ‘갈등’의 골은 생각보다 깊다. 단원고가 위치해 있고, 희생 학생 81명이 살았던 고잔동에서도 세월호 유가족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4월 8일 저녁 7시 안산시청 앞에서 세월호 선체인양을 요구하는 촛불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 백철 기자

4월 8일 저녁 7시 안산시청 앞에서 세월호 선체인양을 요구하는 촛불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 백철 기자

갈등 줄이려 공동체 운동 벌여
김종천 사무국장은 “얼마 전 단원고 희생 학생 어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다. 분식점에서 떡볶이를 먹고 계셨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나타나 ‘왜 8억원씩 받았으면서 아직도 세월호 타령이냐’고 허공에 대고 호통을 치셨다고 하더라. 자신을 알아보고 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어머니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가게를 나오셨다고 한다.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온 동네지만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역사회의 갈등과 상처를 아물게 해 줄 공동체 운동도 이제 막 첫걸음을 시작했다. 기억저장소 공동체 준비팀은 지난해 11월부터 고잔동에 사는 유가족들을 중심으로 기억전시관 인근의 416 기억저장소 사무실에서 모임을 이어왔다. 12월부터는 마을사람들끼리 세월호 희생 학생의 생일잔치를 해주는 등 매주 정기적인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김 사무국장은 “현재 시스템은 한 다리만 건너면 알 법한 사람들이 사는 공간에서도 피해자에 대한 공격이 이뤄지는 나쁜 시스템이다. 최소한 피해자들의 삶이 파괴되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취지로 공동체 운동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난지역이었던 안산은 아직 완전히 재난을 딛고 일어서지 못했다. 갈등의 골도 메워지지 않았다. 그래도 관계의 회복과 사회적 연대의 씨앗들이 뿌려지고 있다. 유가족과 긴밀한 관계를 이어나가게 된 이웃 및 사회복지사들의 자발적인 움직임들, 그것이 슬픔의 도시 안산에서 찾은 작은 희망이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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