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분노와 증오, 연민과 원망의 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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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장과 선원들 변명 일관… 1심인 광주지법은 살인 혐의를 무죄로 판단

2014년 여름의 초입, 남도의 법정에서 재판은 시작됐다.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죽어간 아이들의 영혼이 방청석 어딘가에 앉아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땀내가 뒤섞인 법정에는 분노와 증오, 연민과 원망이 뒤섞여 있었다. 거듭되는 이 재판에 4살배기 아들의 엄마이자 변호사인 최윤수 피해자 변호인이 앉아 있었다. 안산에서 버스로 내려온 세월호 유가족 옆에 앉아 아슬아슬하게 재판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들 동영상 보면서 눈물 쏟아
“저도 결혼하고 3년 만에 아이를 얻었는데 무언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일하는 법무법인의 주사무소가 안산에 있는데 그쪽 변호사들이 곧바로 참여했고, 저도 나서게 됐어요. 광주에서 재판이 있는 날이면 새벽 5시15분에 집을 나서고 밤 11시30분 들어왔어요. 이런 일이 많아지니까 아이가 분리불안을 느끼는 것 같더라고요. 친정어머니도 그렇게까지 할 일이냐고 하시고, 남편도 집이 조금씩 우울해지고 있다고 했어요.”

최 변호사가 속한 해마루는 천정배 전 법무장관 등이 만든 법무법인이다.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맞서 미쓰비시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받아낸 장완익 변호사 등이 있으며, 세월호 사건에도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형사재판에서 선장 등을 기소해 죄를 묻는 것은 검사이지만 피해자들을 돌봐주거나 도와주지는 않는다. 최 변호사를 중심으로 공익활동에 나선 변호사들은 피해자들을 1년 가까이 도왔다. 법원·검찰과의 의사소통, 피해자 진술 등 법률적인 일은 물론이고 재판 중 방청석 확보, 주차공간 마련까지 했다.

최윤수 변호사는 “세월호 선장에 대한 재판에서 피해자 법정진술을 말이나 글이 아닌 아닌 영상으로도 냈는데, 그 안에 들어 있는 아이들 모습 때문에 법정에서 울음이 터져나오고 말았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최 변호사는 다시 눈물을 터뜨렸다.  / 이상훈 선임기자

최윤수 변호사는 “세월호 선장에 대한 재판에서 피해자 법정진술을 말이나 글이 아닌 아닌 영상으로도 냈는데, 그 안에 들어 있는 아이들 모습 때문에 법정에서 울음이 터져나오고 말았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최 변호사는 다시 눈물을 터뜨렸다. / 이상훈 선임기자

“지난 1년 동안의 세월호 재판은 엄청난 감정의 충돌장이었어요. 특히 첫 번째 재판은 분노와 절망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피해자들이 법원 직원과 마찰하고, 피해자 변호사가 이를 말리고, 피고인들은 정신을 놓고 있었습니다. 재판이 계속되면서 조금씩 감정들을 추슬렀지만 숨을 꽉 참듯이 버티고 있는 것뿐이었습니다. 피고인들이 변명으로 일관하면 실신할 지경이 되고, 아이들의 동영상이 나오면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최 변호사도 느닷없이 눈물을 떨어뜨렸다. 이후로는 웃음기가 가시면서 인터뷰 내내 표정이 나아지지 않았다. 학생 부모들에게 법원이 피해자 증인 여비를 주는데, 어머니들이 그 돈을 최 변호사에게 밥사먹으라고 주었다. 하지만 최 변호사도 차마 쓰지 못하고 다시 법원 증인지원관실에 쓰라고 비품을 사서 주었다. 변호사들은 지난 1년 동안 재판날이면 중압감과 울분이 치솟아올랐다.

“형사재판에서는 피해자들이 진술하는 순서가 있는데, 보통은 글로 써 내거나 법정에서 말로 합니다. 이번 재판에서는 더욱 생생하게 전달하려고 변호사들이 동영상을 준비했어요. 사고 당시 영상부터 사고 이후 피해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단원고 8반 아이들이 사고 전에 친구, 가족들과 찍은 사진이었습니다. 재판부가 ‘미리 마지막 동영상을 보았는데, 너무나 슬퍼서 동영상 틀고 나서 재판을 마치는 말을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고 했습니다.”

재판의 핵심 쟁점은 선장 등의 살인죄 여부였다. 1심인 광주지법은 지난해 11월 승객에 대한 살인 혐의를 무죄로 판단하고 예비 죄명이던 유기치사상만 유죄로 보아 징역형을 선고했다. 구조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수난구호법 위반 혐의도 무죄였다. 이준석 선장 36년, 강원식 1등항해사 20년, 김영호 2등항해사 15년 등이었다. 광주고법 2심은 심리를 마치고 오는 28일 선고를 앞두고 있는데, 이번에도 살인죄가 인정될지가 핵심이다.

공익 변호사들, 1년 가까이 피해자 도와
“법률가로서 살인죄 무죄 판결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형량도 너무 적어 올바른 결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것은 누군가를 중형에 처해서 피해자들의 보복을 해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이준석 선장의 경우 나이가 있어서 36년형이 사실상 사형에 가까운 형량입니다. 살인죄가 인정은 승객의 목숨을 구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 도망하면 자기 목숨도 부지하기 어렵다는 선언이어서 중요합니다.”

지난 4월 7일 항소심 심리가 끝나면서 법정에서는 더 이상 진실을 밝힐 수 없게 됐다. 3심 대법원 재판이 남아 있지만 여기에서는 법적용이 적절한지만 살피게 된다. 지금까지 재판에서 드러난 세월호 침몰 원인은 복원성이 악화된 세월호가 항해사와 조타수의 잘못으로 침몰했다는 것이다. 근거는 증·개축, 과적, 평형수, 적재유 등에 관한 검찰 자문단의 시뮬레이션 보고서뿐이다. 논리적으로는 설득력이 있지만 어쨌든 가설에 불과하다.

“사고 한 달 만에 검찰이 선장을 기소하면서 밝힌 이유가 지금까지 알려지고 인정된 사고 원인입니다. 하지만 검찰이 당시 근거로 삼은 보고서에 대해서는 이를 작성한 단장조차 시간이 촉박했다고 말하고 있어요. 이 때문에 항해사와 조타수 등은 보고서 내용이 가설일 뿐이라고 싸우고 있습니다. 검찰의 주장이 유력한 가설이지만 100% 단정하기는 힘듭니다. 세월호 선체를 인양해야만 사고 원인을 확정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세월호가 침몰하고 변호활동에 참여하면서 유가족들의 가족관계증명서를 정리했다.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매일 보는 서류들이지만 그날은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아이가 외동인 집은 이제 부부만 남겨질 것이라서, 아이가 많은 집은 괴로워하며 슬퍼할 가족이 너무 많아서 가슴이 미어졌다. 바다에 빠진 아이들의 마지막은 차갑고 퍼렜을 텐데, 그 어머니들은 따뜻했던 아이의 첫 느낌을 기억할 것이었다. 재롱을 부리는 아들이 떠올랐고, 그래서 더 재판에 몰입했다.

“세월호에 있던 15명이나 되는 선원들이 비상벨조차 울리지 않았고, 해경정에 올라서도 퇴선명령이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법정에서도 유리한 부분은 상세하게 진술하고 불리한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피해자들이 진실을 알려달라고 해도 모른 체했습니다. 그런데 더 절망스러운 일은 법정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지겨우니 그만 좀 하고, 보상금 받았으면 조용히 있으라고 합니다. 처벌을 모면하려는 선장이나 선원도 아니고, 심지어 언젠가는 나도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데 어떻게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최 변호사의 마지막 말에 분노가 느껴졌다. “재판과 처벌은 이렇게 끝나가고 있지만 진실과 위로는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이범준 기자 seirot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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