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고의 미식가 탐정은 네로 울프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네로 울프 시리즈를 쓴 렉스 스타우트는 <네로 울프 요리법>이라는 요리책을 저술할 정도로 요리에 대해 높은 식견을 가진 작가이다. 로버트 파커가 창조한 탐정 스펜서 역시 요리에 일가견을 가졌다.

요즘 방송에서 ‘요리하는 남자’가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데, 사실 직접 요리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즐거운 일임과 동시에 귀찮은 일이기도 하다.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해서 먹는 것과는 달리 직접 재료를 다듬어야 하고, 조리하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시간이 부족하거나 하루 종일 돌아다니느라 피곤한 사람, 특히 분주한 탐정에게 적합한 것 같지는 않다.

셜록 홈즈는 요리하는 데 관심은 없었지만, 매 끼니를 해결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었다. 베이커 거리에 있는 그의 사무실은 다행히 오피스텔 같은 곳이 아닌 하숙집이었기 때문이다. 홈즈는 하숙집 관리인인 허드슨 부인의 음식 솜씨에 대해 “다양하진 않지만 스코틀랜드 여자 못지않게 아침식사를 잘 차려준다” (<해군 조약>(1893))고 칭찬한다.

요리하는 한니발 렉터. | 드라마 <한니발>에서

요리하는 한니발 렉터. | 드라마 <한니발>에서

하숙집에서 끼니 해결한 셜록 홈즈
린지 데이비스의 작품 <실버 피그>(1989)에 등장하는 마르쿠스 디디우스 팔코는 홈즈보다 대략 1800년 앞선 제정로마 시대에 살았던 정보원(탐정 역할을 하지만 아직 그런 명칭이 없었다)인데, 역시 독신으로 요리하기보다는 차려주는 대로 받아먹는 스타일이다. 다행히 어여쁜 여성을 집으로 데려왔을 때 싱싱한 정어리밖에 없자 벌꿀과 향신료를 섞은 소스를 만들어 대접할 정도의 센스는 있다.

20세기로 넘어와도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다. 로렌스 블록이 창조한 사립탐정 매튜 스커더는 가족과도 헤어져 호텔에서 혼자 살아간다. 알코올 중독자인 그는 대부분의 식사를 거리의 저렴한 식당에서 해결한다. 연인인 일레인과 만날 때는 고급스럽고 분위기 있는 식당을 택하긴 하지만 직접 요리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동양에서는 어떨까? 거창하지는 않지만 직접 요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독신 탐정이 있다. 노리즈키 린타로의 작품에 등장하는 노리즈키 린타로(작가와 이름이 같은 아마추어 탐정)는 경찰 간부인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 식사는 대개 바깥에서 해결하지만 아침식사 준비는 종종 한다. <또다시 붉은 악몽>(1992)에서는 아버지와 손님을 위한 아침식사로 샐러드, 치즈와 시금치를 넣은 오믈렛, 바삭하게 구운 베이컨과 토스트, 그리고 통조림 수프를 끓여 대접한다. 이 정도면 웬만한 숙박업소 수준의 솜씨라고 할 만하다.

역시 일본 작가인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달리의 고치>(1993)에 등장하는 범죄학자 히무라 히데오 또한 동료 아리스가와(작가와 이름이 같은 인물)에게 아침식사-토스트와 스크램블 에그, 그리고 커피-를 차려주면서 그를 깜짝 놀라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음식에 대해 광적인 관심을 가진 어떤 탐정에게 토스트와 오믈렛 정도는 어린애 장난 수준이다. 네로 울프 시리즈를 쓴 렉스 스타우트는 <네로 울프 요리법>이라는 요리책을 저술할 정도로 요리에 대해 높은 식견을 가진 작가이다. 역대 최고의 미식가 탐정으로 꼽을 만한 네로 울프는 뉴욕의 3층짜리 건물에 살고 있다. 독신이긴 하지만 탐정 업무의 조수 아치 굿윈을 비롯해 정원사, 요리사를 고용하고 있다. 굿윈이 울프의 손발이 되어 온갖 고생을 하는 자신보다 요리사인 프리츠 브레너의 월급이 더 많다고 불평할 정도로 훌륭한 요리에 대한 울프의 집착은 대단하다. <요리사가 너무 많다>(1938)에서는 그러한 울프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울프는 ‘열다섯 명의 요리장’ 행사에 사건 의뢰가 아닌 ‘고급 요리에 미친 미국의 공헌’에 대해 연설하려 참석했다. 이때 살인사건이 벌어지자 그는 사건을 해결하고 누명을 쓸 뻔했던 요리장 제로메 베린을 구해준다. 그런데 무엇으로든 신세를 갚겠다는 베린에게 울프가 요구한 것은 금전적인 보수가 아니라 꽁꽁 숨겨놓았던 소시지 요리법이었다. 베린은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 울며 겨자 먹기로 응낙한다. 맥주와 맛있는 요리를 좋아하는 반면 움직이는 것은 극도로 싫어하는 울프의 체중은 무려 300파운드(약 130㎏)에 달한다고 전해진다.

<셜록 홈즈와의 식사>, 렉스 스타우트 <네로 울프 요리책>, 일본에서 출간된 <스펜서의 요리>

<셜록 홈즈와의 식사>, 렉스 스타우트 <네로 울프 요리책>, 일본에서 출간된 <스펜서의 요리>

악인 한니발 렉터, 탐미적 미식가
로버트 파커가 창조한 탐정 스펜서 역시 요리에 일가견을 가졌다. ‘불확실할 때는 무엇이든 요리해서 먹어라’는 신조 때문에 혼자서도 거창한 요리를 만들고, 연인에게 아침식사로 콘케이크를 만들어주는 세심함을 발휘할 때도 있다. 식사량이 적은 편은 아니지만, 울프와는 달리 권투와 조깅 등으로 체력관리를 열심히 하고 또한 직접 발로 뛰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항상 탄탄한 체격을 유지하고 있다. 요리 묘사 장면이 꽤 많다 보니 일본에서는 <스펜서의 요리>라는 책이 출간되었을 정도이다.

이처럼 요리사로서도 뛰어난 탐정은 울프와 스펜서를 꼽아왔다. 그런데 비록 ‘탐정’은 아니지만 이 둘에게 전혀 뒤지지 않을 듯한 인물이 요즘 새삼스럽게 등장했다. 토머스 해리스가 창조한 독특한 악인, 한니발 렉터이다. <레드 드래건>(1981)이나 <양들의 침묵>(1988)에서는 감금된 상태라 주는 음식만 받아먹는 신세였지만, 체포되기 전에는 탐미적인 미식가로 잘 알려져 있었다. 다만 문명사회에서는 금기인 특별한 재료(인육)로 요리를 만들어 먹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TV 드라마로 제작된 <한니발>(2013)에서는 그의 훌륭한 요리 솜씨를 유감없이 확인할 수 있다. 에피소드 제목들도 시즌별로 프랑스, 일본, 이탈리아 요리 이름이다.

또한 드라마 <한니발>에서는 지금까지 별로 볼 수 없는 장면도 나온다. 직접 요리해서 식사를 마친 후에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 즉 설거지 하는 장면이다. 특별한 재료를 직접 조달할 정도의 부지런함을 지닌 한니발은 설거지도 직접 꼼꼼하게 하는 것 같다. 사실 직접 요리하고 먹는 것까지는 즐겁지만, 식사 후의 나른한 상태에서 그릇을 씻고 찌꺼기를 버리는 등의 뒷정리는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많은 독신 탐정들은 설거지의 귀찮음 때문에 요리하는 것을 포기한 것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상상을 해 본다.

<박광규 추리소설 평론가>

박광규의 미스터리 산책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