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 재보선 민심 르포-서울 관악을

‘야성’ 강하지만 야권 분열로 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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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 동안 새누리당 후보 단 한 번도 허락하지 않은 ‘서울의 광주’

관악을 지역은 ‘서울의 광주’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988년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를 도입한 이후 27년 동안 새누리당 후보를 의원으로 단 한 번도 허락하지 않은 곳이다. 서울대가 위치하고 있는 이 지역은 과거 신림동으로 불렸지만 지금은 대학동, 삼성동, 난향동, 서림동, 신원동, 신사동 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과거에는 이 지역에 유권자 중 호남 출신이 40% 이상을 차지했기 때문에 야당이 강세를 보였다. 최근에도 야당이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배경은 좀 달라졌다. 진보성향의 10∼40대 젊은 층이 대거 유입되면서 야성이 유지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이 지역에는 원룸촌이 광범위하게 자리잡고 있다. 서울대 주변의 고시촌에서 도림천을 따라 서울대입구역 사거리까지 1인 가구촌이 형성돼 있다. 이번 재·보선의 승부는 젊은 층 표심의 향방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누리당 오신환 후보가 한 주민으로부터 김치를 받아먹고 있다. / 오신환 후보 제공

새누리당 오신환 후보가 한 주민으로부터 김치를 받아먹고 있다. / 오신환 후보 제공

“이번엔 한 번 바꿔봐야 하는 것 아니냐”
관악을에서는 새누리당 오신환 후보, 새정치민주연합 정태호 후보, 옛통합진보당 의원이었던 무소속 이상규 후보 등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오신환 후보는 이 난공불락의 요새를 뚫기 위해 하루 종일 발품을 팔며 주민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지난 2월 일찌감치 공천장을 받고 선거에 뛰어든 오 후보는 주민들에게 다가가서 “이제는 바꿀 때가 됐다”며 한 표를 호소하고 있다. 일부 주민들도 그의 말에 호응했다. 서울대 주변 녹두거리에서 만난 한 30대 남성은 “그동안 새정치연합 후보를 계속 뽑아줘서 그런지 요즘은 선거 때가 돼도 긴장하지 않고 너무 안일한 것 같다”며 “원룸촌에서도 이번에는 한 번 바꿔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말했다.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식당을 하고 있는 오모씨는 오 후보의 고시촌 부활 약속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로스쿨제도 시행으로 고시생들이 빠져나가서 공실률이 대부분 30% 이상입니다. 과거 점심시간 때면 식당에서 밥 먹기가 어려울 정도로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지금은 거리도 텅 비어 있습니다. 오 후보가 사법시험 존치를 약속한 만큼 오 후보를 지지할 것입니다.”

새정치민주연합 정태호 후보가 상가 주민에게 인사하고 있다. / 정태호 후보 제공

새정치민주연합 정태호 후보가 상가 주민에게 인사하고 있다. / 정태호 후보 제공

오 후보 측은 이번 선거가 새누리당, 새정치연합, 정의당+노동당(또는 국민모임), 이상규 후보(옛 통합진보당 의원) 등 4자구도로 치러지길 내심 바라고 있다. 야권의 표가 분산되면 35% 정도의 고정표를 갖고 있는 새누리당에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새누리당은 중앙당에서 2명의 직원을 후보 캠프에 파견하는 등 중앙당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일부 주민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새누리당에 대한 거부정서가 강했다. 신원시장 골목에서 만난 한 60대 노인은 “이 지역을 결코 새누리당에 내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새누리당이 아무리 이 지역에서 발버둥쳐봐도 소용없을 것”이라며 “이 지역에서는 노년층에서도 고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 존경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다”고 말했다.

새정치연합 정태호 후보 측은 주민들이 결국에는 박근혜 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제1야당 후보에게 전략적 투표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비록 야권 후보들이 난립한다고 해도 투표장에서는 사표방지 심리가 작동해 새정치연합 후보에게 표를 몰아줄 것이라는 기대다.

무소속 이상규 후보가 한 경로당을 방문해 어르신과 얘기하고 있다. / 이상규 후보 제공

무소속 이상규 후보가 한 경로당을 방문해 어르신과 얘기하고 있다. / 이상규 후보 제공

유동인구가 많은 신림역 사거리에서 만난 주부 이모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를 잘못하고 있기 때문에 갈수록 서민들의 생활이 어려운 것 같다”며 “제1야당 후보가 당선돼야 박근혜 정부가 조금이라도 정신을 차릴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당이면서 정태호 후보 측과 김희철 후보 측으로 나뉘었던 당원들도 이제는 한때 소원했던 감정을 추스르는 분위기다.

과거 평민당 때부터 당원이었다고 밝힌 조모씨는 “경선 때는 정태호 후보와 김희철 후보가 치열하게 경쟁을 했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끝난 만큼 당원들도 한마음으로 정 후보의 당선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이번 선거에서도 1만8000여명의 권리당원들이 지역 곳곳에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4·29 재보선 민심 르포-서울 관악을]‘야성’ 강하지만 야권 분열로 혼전

“야당 후보 당선돼야 현 정부 정신 차려”
옛 통합진보당 출신인 이상규 후보도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주민들과 일대 일 접촉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야권연대 후보로 나서 당선됐던 이 후보는 헌법재판소의 의원직 박탈 결정에 대한 부당성을 알리며 직접 주민들의 심판을 받겠다는 각오다.

자생적인 소규모 풀뿌리시민운동 조직이 많은 이 지역에서는 이 후보에 대한 지지세도 만만치 않다.

“사실 헌재가 통합진보당을 해산할 줄은 알았지만 국회의원직까지 박탈할 줄은 몰랐다. 그런 면에서 이상규 후보에게 동정심이 간다.”(난곡동 한 주민)

이 후보 측은 현재 비공식 여론조사에서 다른 후보들에 밀리는 것에 대해서도 개의치 않고 있다. 이 후보 측 관계자는 “지난 총선에서도 무소속 김희철 후보에게 밀리는 등 여론조사에서 1위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며 “하지만 막상 투표함을 열어보니 이상규 후보가 당선됐다”고 말했다.

이외에 정의당 이동영 후보, 노동당 나경채 후보 등도 금배지를 향해 열심히 뛰고 있다. 지역에서는 정의당과 노동당이 결국 연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동영 후보 측은 “앞으로 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후보들 간에 연대문제가 자연스럽게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새누리당 오신환 후보가 새정치연합 정태호 후보를 오차범위 내에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일보>가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 15~16일 19세 이상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오신환 후보 39.6%, 정태호 후보 34.5%, 무소속 이상규 후보 5.6%, 정의당 이동영 후보 4.2% 순이었다.

하지만 지역 전문가들은 선거 막판으로 갈수록 새정치연합과 새누리당의 당력이 총동원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의 다자구도가 양자구도로 급속히 재편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 전문가는 “이 지역이 서울의 유일한 보궐선거 지역이기 때문에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이 집중적으로 지원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럴 경우 인물대결보다는 진보층과 보수층의 세력대결 양상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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