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찬의 눈

열정 없는 진보를 누가 지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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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찬의 눈]열정 없는 진보를 누가 지지할까

4·29 재·보궐선거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최근 인천 서구 강화을이 추가되면서 서울 관악을, 성남 중원, 광주 서을 등 총 4곳이 확정됐다. 서울, 경기, 인천, 광주 등 대도시에서 선거가 치러지는 셈이고, 그런 만큼 작지 않은 의미를 갖게 됐다. 그런데 너무 조용하다. 선거 인지도 조사를 하면 역대 재·보궐 사상 최악의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소리가 들릴 정도다. 모든 선거는 의미 규정에서 시작된다. 의미를 규정한 뒤 그에 따른 전략 프레임을 설정하고, 메시지를 기획하며, 그것을 효율적으로 지역 유권자들에게 알리는 방법, 즉 캠페인을 실행하는 것이 선거다. 해당 선거에 대한 의미 규정은 그런 점에서 후보를 정하는 일을 비롯한 모든 것의 출발점이다. 그렇다면 여야 지도부는 이번 4·29 재·보선의 의미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

새누리당은 지난해 7·30 재·보선 승리를 교훈 삼아 이번 선거의 의미를 ‘지역일꾼을 뽑는 선거’로 규정했다. 이런 규정에 기반해 일찌감치 신상진(성남 중원), 오신환(서울 관악을) 후보를 확정했다. 재·보궐선거는 전통적으로 투표율이 낮고, 투표율이 낮으면 보수당인 새누리당에 유리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런 공식은 민컨설팅 박성민 대표의 말에 따르면 ‘수학도 아닌 산수’다. 새누리당 입장에선 괜히 소란스럽게 만들어 투표율을 끌어올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최근 새누리당 일각에서 지역일꾼론을 넘어 종북심판론을 전략적 프레임으로 가져갈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아마도 관악을의 새정치연합 정태호 후보가 통진당 이상규 후보의 선거대책위원장을 지냈다는 사실을 부각시키기 위한 포석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정치선거로 올라서면 박근혜 정부 심판론으로 확전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새정치연합은 어떤가. 새정치연합에서 나온 첫 번째 선거 규정은 공천장을 주면서 나왔다. 뭔가 순서가 틀린 셈이다. 문재인 대표는 지난 19일 “4월 국회의원 재·보선을 국민의 지갑을 지키는 선거로 규정했다”며 “기필코 이겨서 정부의 경제 무능과 실패를 심판하고, 우리 당이 유능한 경제정당으로서 국민의 지갑을 지키고 두툼히 만든다는 희망을 국민들께 드리겠다”고 말했다. 이런 선거 규정의 옳고 그름을 떠나 해당 선거에 대한 규정은 후보 선출 이전에 정리돼야 하고, 그것에 따라 이길 수 있는 후보를 뽑는 것이 순서다. 선거에서 후보 선출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규정은 옳은 것일까. 틀리진 않았지만 지나치게 소심해 보인다. 이번 선거는 정확하게 내년 20대 총선의 예고편이다. 적어도 야당은 패배 후유증이 두려워서 선거를 축소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크든 작든 박근혜 정부에 대한 전면적인 중간평가의 성격을 갖는 선거이기도 하다. 세상엔 져도 괜찮은 선거는 없는 법이며, 애써 의미를 축소한다고 해서 패배가 패배가 아닌 것으로 되는 선거도 없다. ‘국민의 지갑을 지키는 것’은 의미 규정이라기보다 하나의 메시지에 가깝다. 우윤근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했던 말을 상기하고 싶은 이유다. “정치란 열정과 균형감을 가지고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뚫는 작업이다. 만약 지금까지 불가능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계속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가능한 어떤 것도 성취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른바 진보가 균형감을 과도하게 강조하면서 중도노선을 취한다고 지지영역이 ‘결정적으로’ 확장되는 것은 아니다.

진보의 매력은 열정에서 나온다. 정의, 자유, 평화,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적인 열정이 없는 진보를 누가 지지할까. 균형감을 넘어 열정과 책임감을 동반한 진짜 정치를 보고 싶은 것이 나뿐일까.

<소셜미디어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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