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닉슨 ‘닮은꼴’ 국정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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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분 있는 사람만 만나고 극소수 지인들은 무한 신뢰… 여론에 아랑곳 않고 인사 강행

박근혜와 닉슨?

아마 독자들은 이 두 사람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궁금해 할 것이다. 리처드 닉슨은 미국의 37대 대통령(재임기간 1969∼1974년)으로 그 유명한 ‘워터게이트’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한국과 미국의 두 전·현직 대통령은 살아온 시대도, 성별도, 국적도 다르다. 얼핏 보기에는 유사점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최근 박근혜 대통령과 닉슨 전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이 비슷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어서 화제다.

우선 박 대통령과 닉슨은 고독한 국정운영 스타일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고 한다. 닉슨 대통령은 사람을 만나지 않은 지도자로 유명했다. 그는 외부인은 물론 백악관 비서관들과도 자주 소통하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1월 26일 수석비서관회의 시작 전 새로 임명된 현정택 정책조정, 우병우 민정, 조신 미래전략 수석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1월 26일 수석비서관회의 시작 전 새로 임명된 현정택 정책조정, 우병우 민정, 조신 미래전략 수석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임기중 사임
백악관 참모진 중 유일하게 홀드만 비서실장과 에리크만 국내담당 보좌관 정도만 그의 집무실에 드나들 수 있었다. 이들은 대통령에게 올라오는 각종 문건과 일정을 통제함으로써 호가호위했다.

닉슨은 국정운영에서도 정부보다는 백악관 중심주의를 견지했다. 그는 백악관 집무실에서 정부 운영과 관련해 디테일까지 원격 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백악관을 오랫동안 출입한 한 기자는 “닉슨은 미국 근대 역사에서 대부분의 대통령들과 달리 매우 내성적이고 광범위한 인적 접촉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도 닉슨을 쏙 빼닮았다. 박 대통령도 오랜 친분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만나지 않는다는 게 정설이다. 박 대통령이 그나마 소통하는 사람들은 과거 박정희 정부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7인회’(김기춘·강창희·현경대·김용환·최병렬·안병훈·김용갑) 등 원로그룹과 극소수의 지인들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비서관들과 부처 장관들보다는 비서관 ‘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 비서관)에 의지해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 것도 닉슨을 닮았다.

박 대통령도 닉슨처럼 국정의 세밀한 부분까지 직접 지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일컬어 언론에서는 ‘만기친람’, ‘깨알지시’, ‘수첩공주’라고 표현한다.

각 부처로부터 보고를 받을 때 대면보고보다는 문건보고를 선호했다는 것도 판박이다.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닉슨 대통령 당시 홀드만 비서실장과 에리크만 보좌관이 지금으로 말하면 김기춘 비서실장, ‘3인방’과 같은 위치에 있었다”며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운영에서 정부·국회와의 협력적 파트너십보다는 일방적 지시형을 더 선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두 지도자의 통치행태가 자라온 환경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하고 있다.

닉슨은 캘리포니아 남부의 한 작은 마을, 구멍가게를 하는 집안에서 다섯 명의 아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가난한 집안에서 자란 그는 다른 형제들과 달리 성격이 내성적이었다고 한다. 그는 어려서 형과 동생을 결핵으로 잃는 큰 충격을 겪었다. 그의 집에는 결핵을 치료할 돈조차 없었다고 한다. 이후 닉슨은 가난을 뛰어넘는 수단으로 공부를 선택했고 세상과 단절된 채 공부만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다시 좌절을 겪었다. 닉슨은 하버드대학에 장학금을 받기로 하고 합격했지만 생활비와 교통비가 없어 결국 하버드대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그는 지역에 있는 퀘이커교 학교인 휘티어대학에 들어갔다.

이후 닉슨은 미국 동부의 상류층과 지식인들을 유난히 싫어하는 ‘하버드대 콤플렉스’를 갖게 됐다.

1960년 대선 때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으로 앞섰다가 케네디에게 패한 뒤 “동부 상류층의 장난 때문”이라고 말한 데서도 그의 ‘하버드대 콤플렉스’가 엿보인다.

닉슨 대통령 부부. | 경향신문 자료

닉슨 대통령 부부. | 경향신문 자료

지지율 곤두박질 최악 대통령 우려
김형곤 건양대 교수는 “닉슨은 부자들이 많은 미국 동부와 명문대 출신에 대한 열등감이 매우 강했다”며 “이런 사람들이 판을 치는 정치판에서 자신을 아웃사이더라고 생각하고 오직 믿을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도 굴곡이 큰 삶을 살아왔다. 남들은 평생 한 번 겪지 않아도 될 일을 박 대통령은 두 차례나 지켜봐야 했다. 심리적인 충격이 누구보다 클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이 2인자를 두지 않는 것도 아버지의 죽음에서 받은 배신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박 대통령은 다른 형제들에 비해 조용한 성격인 데다 36년 동안 고립된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비밀주의 리더십이 정치에도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대통령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은 자신의 경험이 훗날의 생활에 투영되게 마련”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 부모님의 그림자가 항상 따라다닐 수밖에 없으며, 국정운영에서도 은연중에 이 같은 모습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여론에 아랑곳않고 인사를 밀어붙이는 고집도 비슷했다. 박 대통령은 정권 출범 당시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윤진숙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본부장을 해수부 장관으로 내정했다. 하지만 윤진숙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때 각종 말실수와 관련 분야 지식 부족을 드러내 여당에서조차 임명을 반대했다. 이로 인해 국회 인사청문 보고서 채택이 무산되는 진통을 겪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여론을 무시하고 윤 장관 임명을 강행했다.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 임명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정국에서 보수논객으로 활동하며 야당 후보들을 ‘정치적 창녀’로 매도하는 등 각종 구설수에 시달리던 윤창중씨를 청와대 대변인으로 발탁했다.

닉슨 대통령도 집권 초기 인종분리정책을 옹호한 헤인스워스와 카스웰 판사를 대법관으로 지명했다. 이들이 과거 경력 때문에 인준 청문회에서 모두 거부됐음에도 불구하고 닉슨은 자신의 오류를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

닉슨 대통령과 박 대통령은 모두 국민과의 소통, 투명한 국정운영, 정부와 청와대 간의 견제와 균형, 체계적인 인사검증 등 민주주의 기본원리를 지키지 않아서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상실하고, 스스로 위기를 맞은 공통점이 있다.

박 대통령은 과연 닉슨에게서 교훈을 얻을까.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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