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집이 만만치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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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기술자의 끝은 치킨집이라는 자조적 우스개가 도시전설처럼 떠돌고 있다. 하지만 이 치킨집, 우스워 보이지만 그리 만만치 않다. 한국의 서비스산업은 부가가치 창출의 60%를 맡고 있지만, 그 노동생산성은 제조업의 반절이다. 미국, 일본, 독일과 비교하면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변해가는 산업구조와 사회구조는 꿀 같던 일자리들을 점점 앗아가고 있다. 정보화와 세계화 덕에 고용은 너무나 쉽게 해외로 이전된다. 종래의 제조업은 고도화될수록 인재의 양보다 질이 중요해지기에 고용흡수력은 줄어드는 것이다. 게다가 웹 등 IT 혁신의 파고가 높았던 IMF 외환위기 직전 사회에 진출한 세대(1970년 전후 출생)가 두껍게 버티고 앉아 있고, 그 경험은 여전히 유효하기에 젊은 피도 별로 필요가 없다.

여기에 과당경쟁의 한국 고등교육까지 합세해 너도나도 기술입국과 무역입국을 내세운다. 대한민국을 리드할 글로벌 인재를 당장이라도 배출할 것인 양 홍보하지만, 안타깝게도 달라진 세계에서 그런 스펙의 인재는 그리 많이 필요가 없다. 이러니 모두가 힘든 것이다.

서울의 한 치킨집 주방에서 닭을 요리하고 있다. 서비스산업의 생산성 향상은 한국 경제의 최대 과제로 지목되고 있다. | 연합뉴스

서울의 한 치킨집 주방에서 닭을 요리하고 있다. 서비스산업의 생산성 향상은 한국 경제의 최대 과제로 지목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은 재벌과 공공이 ‘슈퍼 갑’으로 혁신의 중추 역할을 장기간 독점해 왔기에 이 좁은 자리의 경쟁률은 가공할 수준이다. 그러나 이처럼 관료가 끌고 재벌이 미는 고도성장기의 산업 모델은 이미 기능부전에 빠졌다. 이명박 정권의 토건정책도, 박근혜 정권의 창조경제도 모두 ‘관’에 의존적인 체질만 고착시켰을 뿐이다. 한국에서는 가장 시장적이어야 할 스타트업조차 정부지원금에 혈안이 되어 있다.

기술의 힘으로 만약 지금까지와 다른 경험의 치킨집을 열고 지역경제를 자극할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스타트업의 꿈보다 소중하다. O2O니 옴니채널이니 올해의 트렌드 기술들이 일제히 우리 주변의 오프라인을 돕겠다고 나서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제조업의 시대에 우리는 슈퍼마켓에서 핫케이크 가루를 사서 아침을 맞았다. 서비스업의 시대에 우리는 동네 베이커리를 찾는다. 그러나 고도화된 서비스업의 시대에는 여기에 경험이라는 부가가치를 더한다. ‘브런치’라는 이름이 붙을 수 있을 때 그 부가가치의 가격은 점프한다. 살아가는 맛을 경험하게 해줄 때 소비자는 지갑을 연다.

사실상 고용의 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는 서비스 분야의 생산성이 높아지는 일이야말로 한국 경제의 최대 과제다.

그리고 이는 이미 성장의 벽을 맛본 모든 성숙기의 국가들이 겪었던 일이기도 하다. 1980년대의 미국도, 얼마 전까지의 일본도 제조업의 막다른 길에서 ‘지역 기반의 서비스 경제’라는 희망의 불씨를 찾아 헤맸던 것이다.

세계 정복도 좋지만, 오히려 지금 손에 잡히는 것을 가지고 지금 밟고 서 있는 이 지역에서 어떻게든 살아남는 일도 전혀 우습지 않다. 1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나와도 어차피 사양산업의 꼬리밖에 되지 못할 바에야, 한 마리 늑대가 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한국이 전후 60년간 겪었던 성장의 로또가 또다시 찾아올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게다가 그것만이 정답도 아니다. 훨씬 더 많은 세월, 이 땅의 주민들은 각자 고장의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지역구의 삶을 살았다.

세상을 바꾸려는 뜨거움만큼이나 세상을 직시하는 냉정함도 필요하다. 그 잔인한 세상이 객관적으로 보일 때 비로소 우리는 이 난국을 경쾌히 뛰어넘을 용기가 생기기 때문이다.

<김국현 IT칼럼니스트·에디토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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