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위헌 제청에도 논란 불씨는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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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제정된 아청법 31차례나 개정… 표현의 자유·과잉처벌 문제는 거의 안 다뤄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아청법)의 제정 계기는 1997년도에 사회적 물의를 빚었던 이른바 ‘빨간마후라’ 사건이다. 당시 여중생이 고등학생과 성행위하는 내용을 담은 이 영상은 10대 청소년들 사이에서 비디오 복제 형태로 유포되다가 성인에게까지 유포되면서 논란이 되었다. 이와 함께 일본에서 건너온 음성적인 ‘원조교제’ 문화도 법 제정의 사회적 배경으로 꼽힌다.

법이 제정될 당시 이름은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청소년성보호법)이었다. 당시에도 청소년에는 ‘아동을 포함하여 19세 미만의 자’라고 규정해 현재의 아청법처럼 아동을 포괄하는 법이었다. 현재와 같이 명시적으로 아동·청소년으로 용어가 변경된 것은 2009년부터다.

법 제정 당시 2조 3호에 규정되어 있던 ‘청소년 이용 음란물’은 현재의 2조 5호에 규정되어 있는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로 변경되면서 포괄하는 내용이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왔다. 특히 물의를 빚게 된 것은 지난 정부 시기인 2011년 9월 개정된 아청법이다. 구아청법 당시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은 미성년자가 등장하는 음란한 내용의 영상이라는 의미였지만, 현재의 규정은 “신체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접촉·노출하는 행위로서 일반인의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행위”, “그 밖의 성적 행위”,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 등이 추가되었다.

아청법의 2조 5호가 표현·창작의 자유를 해친다며 항의의 표시로 누리꾼들이 전개하는 개정촉구 창작 퍼포먼스 캠페인 페이지에 올라온 투고 이미지. 성보호를 받아야 하는 것은 가상의 캐릭터가 아니라 현실의 아이들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이다. | http://acheong25no.tumblr.com

아청법의 2조 5호가 표현·창작의 자유를 해친다며 항의의 표시로 누리꾼들이 전개하는 개정촉구 창작 퍼포먼스 캠페인 페이지에 올라온 투고 이미지. 성보호를 받아야 하는 것은 가상의 캐릭터가 아니라 현실의 아이들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이다. | http://acheong25no.tumblr.com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보면 관련 법조문의 개정을 포함, 현재까지 아청법은 31차례 개정되었다. 가장 최근 버전의 아청법 전부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2012년 11월 19일이다. 이 법안 통과로 폐기된 과거 의원발의안은 22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국회에 다시 계류 중인 일부개정안은 모두 30건이다. 왜일까. 현재 의안시스템 상에 등록되어 있는 발의안들의 개정 이유를 보면 대부분 아동 대상 성범죄자의 고지의무 제도의 개선, 성범죄자 취업제한기관의 확대 등을 개정취지로 제시하고 있다. 논란이 되었던 아청법에서 표현의 자유와 형벌에서 과잉금지 문제를 다루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국회에 계류 중인 일부개정안 모두 30건
거의 유일하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은 2013년 2월 민주당 최민희 의원 등 11명이 제출한 일부개정안이다. 핵심은 규제대상을 ‘아동·청소년 또는 아동·청소년으로 보이는 사람’에서 ‘아동·청소년’으로 축소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실존하는’이라는 4글자를 넣었다. 그렇게 바뀌는 조문은 이렇다. “아동·청소년 또는 ‘실존하는’ 아동·청소년으로 명백하게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이 등장하여….” 최 의원 등은 “가상의 아동·청소년 캐릭터가 등장하는 음란물에 대한 가중처벌은 청소년을 성범죄로부터 보호하려는 입법취지와 달리 가상의 캐릭터를 허구로 꾸며진 성범죄로부터 보호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며 아청법이 창작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장 입법조사관의 검토보고서에서부터 반대에 부닥쳤다. 당시 검토보고서를 검토해보면 “아청법은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아동·청소년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뿐 아니라,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되는 인물이 등장하는 음란물의 유포로 인하여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의도도 있다”며 사실상 반대의견을 냈다. 또 ‘아동 및 청소년 성착취 예방과 방지를 위한 리우데자네이루 선언 및 행동강령’에서 가상 이미지 등의 묘사도 유죄로 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2013년 5월 법원이 이 조항에 위헌소지가 있다며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며 상황이 반전됐다. 서울북부지법 변민선 판사는 교복을 입은 성인 여성이 성인 남성들과 성행위하는 내용의 동영상을 전시·상영한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 대한 재판 과정에서 위헌제청했다. 8월에는 수원지법 안산지원에서 다시 위헌제청했다.

당시 서울북부지법은 “유엔 아동의정서는 아동 포르노를 실재하는 아동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정의하여 성인이 아동을 연기하거나 또는 아동 캐릭터가 등장하는 비사실적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아동 포르노에 포함하지 아니하였다”고 입법조사처와 다른 기준을 제시했다. 또 해당 음란물을 다운로드만 해도 취업을 제한하고 신상이 등록되는 것은 과하다는 과잉금지의 원칙 역시 위반했다고 봤다.

그리고는 이 법의 여러 조항이 애매하다고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재판부는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말려’는 유치원생 아동이 엉덩이를 노출하여 흔드는 등으로 신체 부위 일부를 노출한 행위이므로 같은 법이 정한 ‘신체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접촉·노출하는 행위’에 해당하는 만큼, 역시 같은 법에 있는 ‘일반인의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행위’에 해당된다고 판단하면 처벌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2조 5호에 대해서도 “영화 ‘방자전’, ‘로미오와 줄리엣’, ‘은교’와 같이 성인 배우가 가상의 미성년자로 연기하였고, 관객 또는 일반인도 (가상의) 미성년자라고 알 수 있는 경우에도 해당된다”며 “예를 들어 영화 ‘은교’는 성인 여배우가 극중에 고교생으로 등장해 교복을 수시로 입고 나오면서 노골적인 성행위를 묘사하였으므로 아청법의 단속대상이지만, 일반인의 입장에 비추어도 선뜻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헌법재판소 2년째 심리 중
국회의 개정안 논의는 발의 직후 소관위인 여성가족위원회에서 한 번 논의되고 2년 가까이 중단된 상태다. 헌법재판소도 아청법 위헌제청 사건에 대해 2년째 심리 중이다. 이런 경우 국회는 헌재를, 헌재는 국회를 이유로 대면서 시간만 보낼 가능성이 있다. 한편, 관련법이 위헌제청된 경우 검찰은 대체로 유사사건에 대해 기소를 미룬다.

논란의 여지는 아직 남아 있다. 아청법 상에서 규정되어 있는 아동·청소년은 ‘19세 미만의 자’이다. 형법상 규정되어 있는 아동은 ‘13세 미만의 자’이다. 법문을 떠나 일반적으로 ‘아동 포르노’로 인식되는 영상물은 사춘기 이전의 아동이 등장하는 성표현물이다. 국제적으로 아동 포르노는 제작자뿐 아니라 단순소지 자체가 범죄다. 인터넷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은밀한 거래대상이다. 죄질이 다름에도 다른 처벌법규에 비해 합리적 이유 없이 가중처벌하는 것 역시 위헌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회에 계류 중인 아청법 일부개정안과 관련, 최민희 의원은 “발의한 법개정안은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폭력이나 조장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을 약하게 하자는 것이 아니라 처벌범위를 명확히 해 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하는 것을 방지하자는 것”이라며 “관련 소위인 여성가족위원회의 유승희 위원장이 법의 취지에 100% 동감을 표시하고 있기 때문에 위원장이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인다면 법개정안 통과는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용인·이범준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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