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특보단 신설, ‘옥상옥’ 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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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신년회견서 밝혀…

정무·홍보 등 공식라인과 업무 겹쳐 갈등 빚을 수도

지난 2012년 1년 동안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에는 엄청나게 큰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거기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과 함께 ‘국민만 보고 가겠습니다’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 유권자들은 그 말만 믿고 그해 치러진 총선과 대선에서 1번과 박근혜 후보를 찍었다. 그러나 지금의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이 아닌 ‘나만 보고 가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1월 12일 가진 신년 기자회견에서 “올해는 경제활성화를 통해 국가 재도약을 이루겠다”는 의지를 강조하며 ‘경제’라는 용어를 무려 42차례나 언급했다. 하지만 국민들이 박 대통령에게 기대했던 비선실세 의혹·항명파동 등 현안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와 인적쇄신, 국정운영 스타일 개선 등에 대한 방안은 내놓지 않았다.

오히려 박 대통령은 김기춘 비서실장과 문고리 권력‘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 비서관)의 교체 여부에 대한 질문에 “교체할 이유가 없다”며 강한 신임 의지를 나타냈다.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이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만 확인된 자리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1월 12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1월 12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비서실에 사람 없어 문제냐” 비판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박근혜 대통령은 무엇보다 민심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것 같다”며 “이렇게 갈 경우 박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시간이 갈수록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여론조사기관인 한국갤럽이 1월 13∼15일 조사한 결과 박 대통령에 대한 국정지지도는 35%로 취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1002명 조사,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는 ±3.1%포인트)

박 대통령이 청와대의 인적쇄신과 시스템 개선 요구와 관련해 밝힌 유일한 구상이 특별보좌관단(특보단) 신설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특보단을 설치하는 것만으로는 국민들의 국정쇄신 요구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이 되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본질(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은 바꾸지 않고 형식(특보단 신설)만 바꾸겠다고 한 것과 같다는 얘기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소통 부족과 폐쇄적인 국정운영 스타일로 인해 비판을 받아왔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과 부처 장관보다는 비서관 3인방을 통해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는 지적도 여러 차례 받았다.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변화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장관들의 대면보고에 대해 “전화나 그런 것이 더 편리할 때가 있다. 필요하다고 여겨지면 더 늘려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는데, 이 또한 의사소통의 기본을 모르는 발언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수첩인사’라는 말이 널리 통용되듯이 고위직 인사와 관련해서도 어떤 추천과정을 거쳐 등용되고 있는지 베일에 가려져 있다. 비선실세의 인사개입 의혹과 ‘3인방’의 국정개입 의혹사건이 박 대통령의 투명하지 못한 국정운영 스타일에서 비롯됐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잇따랐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지금 비서관실에 사람이 없어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박 대통령이 이들에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느냐, 이들과 자주 소통하느냐의 문제였다”고 말했다.

대통령 특보는 말 그대로 대통령을 ‘특별하게 보좌’하는 자리다. 기존 청와대의 조직인 비서실 또는 국가안보실의 비서관 등 정식 참모와는 다르다.

특보단이 어떻게 구성될지는 아직 구체적인 그림이 나오지 않았지만 정무특보와 언론(또는 홍보)특보는 신설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친박(박근혜)계 등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그동안 청와대 정무기능이 약하다며 정무장관 또는 특임장관 부활을 요구해 왔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에 조윤선 정무수석이 있지만 정무기능보다는 대통령 의전 때에만 자주 나타나는 것 같다”며 “청와대와 여야를 잇는 창구 역할을 할 정무특보가 필요하다는 데 당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가운데)이 2014년 12월 30일 국가경쟁력포럼 송년회에서 모임 총괄간사인 유기준 의원(왼쪽) 등 동료 의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가운데)이 2014년 12월 30일 국가경쟁력포럼 송년회에서 모임 총괄간사인 유기준 의원(왼쪽) 등 동료 의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특보단장에 서청원·한화갑 하마평
여의도에서는 벌써부터 특보 후보들이 구체적으로 거명되고 있다. 특보단장의 경우 친박계의 맏형격인 서청원 의원이 1순위로 꼽히고 있다. 서 의원은 박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고 여권은 물론 대야관계에까지 발이 넓기 때문에 제격이라는 것이다. 야권과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한화갑 한반도평화재단 이사장을 특보단장으로 기용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정치권에서는 보고 있다. 동교동계 출신인 한 이사장은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 캠프’에 합류했다.

언론특보에는 박 대통령의 원로 조언그룹인 ‘7인회’ 멤버 중 홍사덕 민화협 상임의장과 조선일보 출신의 안병훈 도서출판 기파랑 사장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특보단 신설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잇따르고 있다. 당장 우리나라에서 ‘특보정치’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7월 미국산 쇠고기 개방에 반대하는 촛불시위가 잇따르자 민심수습 차원에서 호남 출신인 김덕룡 전 한나라당 의원을 국민통합 특보로, 이성준 전 한국일보 편집인을 언론문화 특보로 기용했다. 하지만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들을 기용한 후에도 국민들의 쇠고기 수입 재협상 요구와 촛불집회는 더욱 거세졌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취임 이후 최저인 20% 초반까지 떨어졌다.

특보단과 기존 조직 간의 권한과 업무중복 문제 등 각종 잡음이 발생할 수도 있다. 만약 특보의 권한이 기존의 정무수석, 홍보수석 비서관보다 강할 경우 공조직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수도 있다. 청와대가 ‘백악관 모델’이라며 특보단 신설을 밝혔지만 미국에서도 ‘특보정치’의 폐해는 있었다. 빌 클린턴 대통령 당시 정치컨설턴트였던 딕 모리스를 국내 전략담당 특보로 기용했으나, 본인 업무 이외에 외교전략에도 관여해서 ‘월권’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또한 우리나라의 정치구조상 청와대 비서실과 특보단이 유기적인 협조를 하기도 사실상 어렵다.

박 대통령의 직속 조직이다 보니 특보는 각종 비공식 활동을 많이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비슷한 일을 하는 청와대 공식라인과 갈등을 빚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특보단이 대통령과 멀리 떨어져서 자문단 역할에 그친다면 특보단은 유명무실할 수밖에 없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운영을 하는 데 있어서 조율하는 스타일이 아니다”라며 “특보와 수석비서관 간에 갈등이 생기면 박 대통령이 개입해서 정리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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