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쓰는 휴대폰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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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나 동물처럼 제품에도 수명이 있다. 그 수명은 제품을 사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기한이라고 할 수 있다. 천수를 누리는 상품은 거의 없다. 작동에 문제가 없는 제품인데도 버려지는 게 다반사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새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호기심이나 기존의 제품을 계획적으로 진부하게 만드는 기업마케팅, 기술발전 등도 그 중 하나이다.

이유야 어떻든 요즘 제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요절’하는 상품이 넘쳐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 휴대폰이다. 기업에서 제시하는 ‘휴대폰의 수명’은 8년이다. 우리나라 사람의 휴대폰 교체주기는 15.6개월. 제조회사가 밝히는 수명의 4분의 1도 안 된다. 새로운 휴대폰으로 바꾼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아서 다시 바꾸는 사람도 77%나 된다.

우리나라는 휴대폰 교체주기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국가다. 지난해 4월 미래창조과학부가 발표한 ‘1년 내 휴대폰 교체율’을 보면, 북아메리카 국가는 54.5%, 서유럽 국가는 33.7%, 중앙·동아시아 국가는 22.9%다. 새로운 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호응과 흡수력은 산업 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 우리나라가 스마트폰 강국이 된 데에는 그런 소비자 성향도 일조했다.

서울 광화문 우체국에 마련된 중고휴대폰 매입 서비스 코너. | 우정사업본부 제공

서울 광화문 우체국에 마련된 중고휴대폰 매입 서비스 코너. | 우정사업본부 제공

작용과 반작용은 세상의 이치다. 새로운 상품으로 삶을 풍성하게 채우는 이면에 대가도 따른다. 버려지는 휴대폰이 그것이다. 환경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13년 한 해 동안 버려진 휴대폰은 무려 1800만대다. 출고된 휴대폰(3300만대)의 50%를 넘는다. 반면 수거된 휴대폰은 730만대에 불과하다.

생활을 윤택하게 만드는 제품을 사용하다 보면 폐기물은 생기게 마련이다. 그것을 적절하게 처리하지 못했을 때는 후대에 부담으로 남는다. 소비의 관성은 자원과 환경까지 먹어치우기 때문이다.

현재 집안의 어느 구석엔가 처박혀 있는 ‘장롱폰’의 재활용 혹은 재제조 가치는 얼마나 될까. 통계는 없지만 상당한 규모일 것으로 짐작된다. 버려지는 자원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규모다. 한 중고휴대폰 재활용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장롱폰’에 숨어 있는 희유금속의 가치만 112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크롬, 몰리브덴, 티타늄 등 희유금속은 자동차, 휴대폰,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산업 전반에 사용되는 산업의 비타민이다.

우정사업본부가 죽어 있던 휴대폰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을 시작했다. 중고휴대폰 시장을 개설한 것이다. 지난 7일부터 전국 221개 주요 우체국에서 중고휴대폰 매입대행 서비스를 시작했다. 판매도 이뤄진다. 이곳에서는 전원이 고장나거나 액정이 파손된 휴대폰이 아니면 성능, 기종과 상관없이 모두 매입한다. 물론 분실·도난 기기는 취급하지 않는다. 또 휴대폰 판매자의 개인정보 유출을 막기 위한 인증절차도 밟아준다. 중고 휴대폰을 매매하기 위해서는 신분증을 꼭 지참해야 한다.

일부 기초단체나 시민단체 등에서 폐휴대폰 수거운동을 전개했다. 개별적이고 단기적 캠페인임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성과가 있었다. 우정사업본부는 전국에 실핏줄처럼 뻗어 있는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이 네트워크는 휴대폰의 회수·재생·사업 활성화는 물론 자원 재활용을 위한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수거된 휴대폰은 중고휴대폰으로 매매되거나 업사이클링 과정을 거쳐 수출된다. 폐기해야 하는 휴대폰에서는 금, 은, 철, 희유금속 등을 골라낸다.

<김경은 출판국 기획위원 jj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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