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신당, 국민의 눈물 닦아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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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당 선언한 ‘국민모임’… 새정치연합 제외한 진보세력 결집 목표

새해 벽두부터 진보정치의 재편이 시작되고 있다.

최근 내로라하는 학계·종교계·노동계·문화예술계 인사들이 ‘국민모임’(국민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의 건설을 촉구하는 국민모임)을 결성하고 신당 창당을 위한 돛을 올렸다.

정치권에서는 통합진보당의 해산 사태와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국민적 실망감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제3신당 창당이 탄력을 받을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국민모임’은 신당 창당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모임을 이끌고 있는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예사롭지 않다. 김세균 서울대 명예교수, 이수호 전 민노총 위원장, 김상근 목사, 함세웅 신부, 명진 스님, 신학철 화백, 정지용 감독 등 민주개혁 진영과 진보 진영 인사들이 총망라돼 있다. ‘국민모임’ 인사들 중 일부는 창당 제안에 그치지 않고 신당이 창당된 이후에도 선거에 출마하는 등 현실정치에 참여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여기에 정동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과 진보 성향의 임종인 전 의원도 신당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명진스님, 김세균 교수 등 진보진영 인사들이 참여한 ‘국민모임’이 2014년 12월 24일 국회 정론관에서 새로운 정치세력 건설을 선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명진스님, 김세균 교수 등 진보진영 인사들이 참여한 ‘국민모임’이 2014년 12월 24일 국회 정론관에서 새로운 정치세력 건설을 선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여론 지지도 새정치연합에 근접
현재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휴먼리서치가 구랍 30∼31일 전국 유권자 1520명을 대상으로 신당 창당 시 정당 지지도를 물어본 결과, 신당의 지지율은 새누리당(39.6%), 새정치연합(21.1%)에 이어 18.7%를 기록했다.(95% 신뢰수준, 표준오차 ±2.5%포인트) 창당도 되지 않은 신당이 새정치연합과 오차범위에서 다투고 있는 것은 그만큼 대안 야당의 출현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치가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함효건 휴먼리서치 대표는 “신당의 정당 지지도가 새정치연합에 근접한 것은 야당에 대한 불신과 새로운 정치세력에 대한 기대감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신당 창당이 현실화되고 신당에 참여하는 인사들이 구체화된다면 지지도는 더 상승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국민모임’의 신당 창당 논의는 지난해 가을부터 시작됐다. 세월호 특별법 협상과정에서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이 보여준 태도에 실망한 진보 진영 인사들이 ‘세월호 광장’(광화문광장)으로 하나하나 모여들어서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오만함과 원칙도 없이 협상에 나서 질질 끌려만 다니는 새정치연합의 무능함을 성토했다.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만이 잇따라 폭발하면서 참석자들 사이에서 새정치연합을 대체할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데 뜻이 모아졌다.

이들은 지난해 10월 ‘야당의 길을 묻다’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각계로부터 신당 창당을 촉구하는 제안자를 모집했다. 1차로 서명한 인사 105명의 모임이 바로 ‘국민모임’이다.

‘국민모임’ 대변인을 맡고 있는 양기환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이사장은 “‘국민모임’은 통합진보당 해산 이전부터 준비해왔기 때문에 통합진보당 해산과는 관계없다”면서 “현재 ‘국민모임’에는 1차로 105명만 이름을 올려놓고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각계로부터 수천, 수만명이 신당 창당에 앞장서겠다고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모임’은 1월 12일과 23일, 그리고 2월 5일에 서울과 부산·광주에서 신당 창당과 관련해 국민 대토론회를 갖고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세 차례에 걸친 토론회를 통해 신당의 참여세력, 이념과 노선, 창당과 관련한 구체적인 로드맵이 나올 것으로 ‘국민모임’ 측은 예상하고 있다. 이 기간은 공교롭게 새정치연합이 지도부를 뽑는 2·8전당대회가 진행되는 시점이어서 양측간의 기싸움도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모임’의 이수호 전 민노총 위원장은 “진보 진영 내에서는 이대로 가면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의 보수 양당체제로 굳어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많다”며 “이런 상황에서 ‘국민모임’의 제안은 진보정치의 재편을 촉발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4년 7월 30일 저녁 서울 동작을 정의당 노회찬 후보 선거사무실에서 천호선 대표, 심상정 원내대표 등 당직자들이 재·보궐선거 개표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 정지윤 기자

지난 2014년 7월 30일 저녁 서울 동작을 정의당 노회찬 후보 선거사무실에서 천호선 대표, 심상정 원내대표 등 당직자들이 재·보궐선거 개표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 정지윤 기자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출마 계획
아직 구체적인 신당의 밑그림이 나와 있지 않지만 노동자, 농민, 자영업자 등 서민들과 소외계층이 신당을 지지하는 주요 세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새정치연합을 제외한 정의당·노동당 등 기존 정치권과 민주노총 등 진보단체가 참여하는 것을 ‘국민모임’ 측은 기대하고 있다.

또 신당은 신자유주의를 배격하고 노동·복지·생태·평화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정당을 표방할 것으로 보인다.

신당에 모든 진보세력을 담아야 하는 만큼 단시일 내에 창당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창당과정 중에라도 오는 4월 29일에 실시되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는 후보를 반드시 낸다는 계획이다.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의한 의원직 박탈로 서울 관악을, 경기 성남 중원, 광주 서구을 등 3곳에서 재·보선이 치러진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에서는 정동영 상임고문이 합류할 경우 서울과 성남 중 한 곳에서 출마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실적 난관 많아 ‘실제 창당’ 반신반의도
하지만 신당 창당까지는 현실적으로 많은 난관이 있다는 점에서 실제 창당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우선 원내 유일 진보정당인 정의당(국회의원 5석)이 동참 의사를 유보한 채 관망하고 있다. 아직 신당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는 의도다. 천호선 정의당 대표는 <주간경향>과의 통화에서 “정의당은 진보정치의 영역 확대를 강화하기 위해 주도적으로 나설 것”이라며 “하지만 ‘국민모임’에서 어떤 정당을 만들 것인지 아직 구체적인 구상이 없기 때문에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진보정당인 노동당도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다. 현재 당대표 선거가 진행 중인 노동당에서는 신당 참여와 관련해 진보 통합파와 독자파 간에 치열한 대결을 벌이고 있다. 노동당의 참여 여부는 대표가 선출되는 1월 23일 이후에나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노동자 단체인 민주노총이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도 주목거리다. 최근 한상균 위원장 체제로 지도부가 바뀐 민노총은 아직 신당과 관련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김종철 노동당 부대표는 “정의당, 노동당 등 기존 정당으로는 모든 진보세력을 수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국민모임’이 신당 창당을 제안한 것 같다”며 “진보 대통합을 위해서는 정의당·노동당과 함께 민노총의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백척간두에 서 있는 진보정치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뭉치는 길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특히 차기 총선에서 비례대표를 한 석이라도 더 건지기 위해서는 덩치를 키워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총선에서는 3% 이상의 득표율을 얻은 정당에 한해서만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한다. 이정희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진보 진영이 뭉쳤던 민주노동당이 가장 높은 득표율을 보였지만 이후에 계속 분열해왔기 때문에 진보정당 전체의 지지율도 하락했다”며 “최근에는 새정치연합에서의 이탈층도 나오고 있는 만큼 신당의 출현은 흩어진 진보세력을 다시 불러모으는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3신당에 대한 국민 반응은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국민모임의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봄이 오면 들판이 파랗게 솟아나듯이 (국민모임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이 전 위원장은 특히 젊은 사람들의 참여를 기대했다. 국민모임의 출범에 관심을 갖고 있는 ‘국민’들의 생각을 들어봤다.

과거 민주노동당 당원을 지냈던 이미진씨는 현재 당적이 없다. 이씨는 2008년 진보신당이 민주노동당에서 갈라져 나왔을 때 함께 나왔다. 하지만 2011년 통합진보당 출범을 앞두고 벌어진 계파싸움에 실망해 무당파가 됐다. 그래도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기존 양당을 대신할 제3세력의 필요성을 느꼈기에 ‘안철수 신당’에도 잠시 눈길을 줬다. 이씨는 국민모임을 ‘정동영 신당’이라 불렀다. “정동영씨가 제일 유명하기 때문”이란다. 그는 “안철수 신당은 ‘새 정치’를 보여주지 못했으니까 지켜만 보다가 끝났다. 정동영 신당이 조금이라도 구체적인 ‘새 정치’를 보여준다면 과거 당원 시절처럼 없는 시간 쪼개서 선거운동이라도 나서줄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20년 넘게 새정치연합 계열만 지지해 왔다는 무역업자 라정현씨는 “국민모임 신당이 만들어지면 수권할 수 있는 강력한 의지부터 보여야 한다”면서 “전당대회 결과에 따라 구민주계가 국민모임으로 옮겨가 야권의 판을 흔들어야 한다. 정동영 전 의장이 중간에서 충분히 다리를 놔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민모임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다들 ‘정동영’을 거론한다. 실제 여론은 ‘정동영’의 이름값을 어떻게 생각할까. 정동영 전 의원의 이름이 나오지 않은 휴먼리서치의 여론조사에서 야권 지지층의 절반가량은 신당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반면 질문지에 ‘정동영 신당’을 명시한 리서치뷰 여론조사에서는 야권 지지자의 29%만이 신당 창당에 동의했다.

국민참여당 당원이었던 자영업자 정선수씨는 “5년 전 국민참여당 창당 때가 생각난다”고 말했다. 그는 “그때 유시민씨도 국민참여당이 다 만들어진 뒤에 나중에 들어왔다. 그때처럼 정동영씨도 당에서 비주류로 몰리니까 자기 정치하겠다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한편, 진보정당 지지자들은 국민모임에 대해 인색한 평가를 내렸다.

노동당 청년당원 박진수씨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정동영 전 의원이 희망버스 등 진보적인 행보를 많이 보였다. 그런데 오히려 진보적 신당을 표방하는 국민모임에 반감이 있다”며 “국민모임을 보는 순간 때만 되면 나타나서 훈계만 하고 사라지는 ‘진보 원로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청년 당원들 사이에서는 그만 좀 했으면 좋겠다는 정서가 강하다”고 말했다.

10여년간 비NL계 진보세력을 지지해 왔던 조성일씨는 국민모임이 통진당 해산 직후 출범한 것에 대해 “통진당 출범에 일조했던 분들이 통진당 해산을 기회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 시작부터 좋지 않다”고 말했다. 조씨는 “국민모임에서 인터뷰한 글을 읽어보면 여당과 싸우는 것도, 안 싸우는 것도 아닌 새정치연합에 실망한 ‘새누리당 혐오세력’들을 모으겠다는 것처럼 들린다. 경험상 비판만 잘한다고 해서 ‘새로운 진보’로 인정받을 순 없다”고 말했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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